<66화> 영물 사냥 (1)2021.04.06.
“영물 사냥이라니, 야수궁과 척을 지기라도 할 셈이야?”
“에이. 누가 그놈들이랑 싸운대? 주인 있는 놈들에게는 관심 없어. 길들여지지 않은 놈들을 노려야지. 내단도 빼먹고, 겸사겸사 몇 마리 꼬셔 가면 더 좋고!”
“하……?”
천화의 말에 설영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남만야수궁과 싸우겠다는 말은 아니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 말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영물을 사냥하겠다고? 아무리 남만이라 해도 영물이란 놈들이 그리 흔하게 널려 있는 놈들이 아니다. 사냥은커녕 만나기도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설마 강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게 혈마검에 영물의 피를 흡수 시키고, 내단을 먹어치운다는 계획이었던 걸까?
“응? 그게 왜? 뭐가 어때서?”
가만히 서서 황당해하는 설영을 보며 천화는 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뭐, 내 완벽한 계획이 어때서. 영물을 잡아 혈마검의 힘도 회복하고, 내단도 먹어치우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더구나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약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영물을 반려동물, 소위 펫이라 불리는 그것으로 만들면 차후의 성장이나 진행에도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이미 천화의 머릿속에는 쓸 만한 영물들과 사냥할 만한 영물들의 이름, 위치, 공략법 따위가 촤르륵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설영은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영물을 잡아 고수가 되겠다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내단을 섭취하려면 그와 상극의 기운을 가진 영물을 골라서 처치해야 할 텐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응?”
“안다고, 놈들의 위치. 그럼 됐지?”
그러나 천화가 그 걱정을 일축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데 뭔가 문제란 말인가? 믿기 어려웠지만 워낙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그 말투에 설영이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그리고 영물을 길들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그것도 다 방법이 있지. 그럼 된 거지? 그리고 원래 펫은 초반에 길들여야 하는 거야. 나중에 고렙되서 쪼렙 펫을 다시 키우려면 아주 성질이……. 어휴!”
천화가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그 약해빠진 놈 키우느라 피똥 싼 걸 생각하면…….’
무신지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평가 받는 고인물 중의 고인물인 천화였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오점이 있었다. 바로 쓸모없는 반려동물이었다. 무신지로에서 반려동물의 등록은 딱 1마리로 제한되었기에, 만약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반려동물을 해방시키고 다시 처음부터 키워야 했다. 저레벨의 반려동물을 쓸모가 있을 만큼 성장시키는 일은 무척이나 고단하고 지루한 일이었지만, 천화는 몇 번이나 그것을 해냈다.
‘속은 내가 바보였지.’
그리고 문제는 마지막에 일어났다. 누군가 신수 대붕의 알이라며 그에게 주었던 것을 성장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꽝. 날갯짓으로 태풍을 일으키고, 날개를 펼치면 하늘을 가린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대붕이라 굳게 믿고 성장을 시켰지만, 레벨을 있는 대로 올린 후에도 대붕은커녕 그저 커다란 새 한 마리밖에 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태생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천화를 태우고 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다못해 발목이라도 잡고 날아오를 수 있다면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폼을 잡는 용으로 사용을 했을 텐데, 그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때 받았던 조롱과 멸시들…….’
덕분에 다른 고인물들에게 받은 조롱과 멸시, 그리고 자랑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치가 떨렸다. 결국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려서 사생결단을 내려 한 적도 있을 정도이니까.
‘이번에는 기필코.’
이미 고인물들 사이에서 1티어로 꼽히던 영물, 흑우를 손에 넣은 천화였지만 따로 반려동물 등록에 제한이 없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멋들어진 신수를 얻어 볼 참이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아무튼 해결됐지? 그럼 가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어……. 그래.”
그 묘한 박력에 설영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내공 수위를 높이는 것도, 혈마검의 힘을 회복시키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긴 했으니까. 혈마신공의 성취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미 정체 상태가 되어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는 중이었으니 다른 쪽으로 활로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터였다. 설영은 알지 못했지만, 실제 설영의 성취가 더 높아지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내공의 부족이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의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천화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흑우를 재촉했다. 귀주성을 빠져나가 남만으로 들어섰다.
@ 남만 땅은 열대우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숲은 울창했고, 물도 많았으며 북쪽으로는 산도 아주 높게 솟아 있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아 개발은 덜 되었기에 가는 길부터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만큼 생태계는 아주 잘 보전되고 있었다. 더불어 자연의 기운이 응집되는 지역도 많아서 굳이 심법을 수련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공이 쌓일 정도라는 것이 남만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원 무림인들이 남만을 찾아 수행을 하지 못하는 것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공기 조오타!”
바로 영물과 야수궁, 그리고 그들의 관계 때문이었다. 대지와 대기에 풍부하게 흐르는 기운들은 인간만이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식물 역시 그것들을 머금을 수 있었고, 그 기운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동물은 영물이, 식물은 영초로 변하는 것이다. 다시 영물은 영초들을 뜯어먹으며 힘을 부풀렸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영역 내에 발을 들이는 인간들을 공격하고는 했다. 물론 영물들 중에는 그저 그런 놈들도 있었지만, 종류와 살아온 세월에 따라 일류 고수 또는 절정 고수 이상의 무력을 갖춘 놈들도 있었다. 그러니 멋모르고 헤집고 다니다가는 영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어디 보자, 아직 초입이니까 야수궁 놈들이 나타날 리는 없고.”
게다가 남만 지역의 원주민들은 그런 영물들을 귀히 여기고, 친구처럼 때로는 상전처럼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약한 영물이라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즉시 그들의 추격과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원인들이 경지의 상승을 위해, 혹은 일확천금을 위해 몰려든 까닭에, 원주민들은 집단을 이루어 대항하기 시작했다. 남만야수궁. 세외사궁이라 불리며 구파일방에 비견되는 이들은 바로 그렇게 시작된 문파였다.
“여기 위치가 대충 이쯤이니까…… 저쪽으로 가자!”
때문에 설영은 남만 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잔뜩 긴장을 한 상태였다. 언제 영물의 영역에 들어서며 공격을 받을지, 남만야수궁의 고수들이 나타나 그들을 공격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천화는 전혀 걱정이 없는 모습이었다. 삐뚤거리게 직접 작성한 지도를 펼쳐들고 위치를 가늠해가며 어딘가를 찾았다. 보통은 남만에서 활동하기 위해 남만야수궁의 허락을 구하거나, 마을로 들어가 원주민들과 교류를 하며 일종의 활동허가를 얻은 뒤 움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화는 제멋대로 길을 만들어가며 이동하는 것이다.
“정말 괜찮은 거지?”
“에헤이! 어디 속고만 살았나. 괜찮다니까. 설령 야수궁 놈들이 나타나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
너한테는 많이 속았지. 설영은 목 끝까지 솟아오르는 말을 삼키며 자신이라도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다 한들, 진짜 강력한 영물이나 야수궁의 고수가 튀어나오면 상대할 수 있다 자신하긴 어려웠지만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려는 것이다. 어이없게 독을 품은 영물 따위에 물려 죽거나, 다짜고짜 공격부터 해 오는 야수궁의 고수에게 맞아죽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좋아. 처음은 여기다!”
그렇게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기를 한참. 천화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듯 선언했다.
“응? 여기?”
그러나 설영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수풀들마저 없거나 말라비틀어진 것으로 보아 제법 화기가 쌓여있는 장소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뿐인 것이다.
“가만, 사굴이잖아? 조심해!”
아니다. 특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바로 천화가 자리 잡은 곳의 주변으로 검은 구멍이 수십 개나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굴 혹은 뱀굴이라 불리는 것임을 설영이 바로 알아차렸다.
“괜찮아. 혹시 모르니까 잠깐만 피해 있어.”
그러나 천화는 자신 있는 얼굴로 일단 설영을 물러나게 했다. 저 굴들 속에 도사리고 있을 뱀들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옆에 있으면 실패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뭐가 나타나든, 무슨 짓을 하든 절대 나오지 마.”
설영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준 뒤, 천화는 소지품 창에서 작은 환약을 꺼냈다. 칠성신단. 이론상으로는 무려 20년 내공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그것을 입안에 굴리며 제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10성에 이른 삼재심법을 이용해 약성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담보로 맡아놓은 물건이었지만 애초부터 천화는 그것을 보전해줄 생각이 없었다. 고불이 결국 돈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고, 여차하면 똑같은 것을 하나 만들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완벽히 같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뛰어난 영약의 제조법과 입수처가 천화의 머릿속에 들어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일단 먹어치운다. 강해진다.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과 몸이 기억하는 경험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수준까지 무공을 회복시킨다. 천화는 단단히 각오를 다지며 칠성신단의 기운을 천천히 흡수해나갔다.
‘천천히, 천천히…….’
20년 내공. 실로 막대한 양이었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애초에 칠성신단을 온전히 흡수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내공의 양은 20년치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약성 자체만을 생각하면 최대 20년 내공까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배합상 내공으로 화할 수 있는 부분은 10년 치 정도일까? 나머지는 전신세맥에 골고루 퍼져 잠들어버린다.
‘토양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이니까.’
누군가는 그것을 기운의 유실이라고 보겠지만, 천화는 알고 있었다. 세맥에 퍼진 힘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그것은 최소 절정 이상의 무위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시작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치거나 무시했다. 하지만 천화는 달랐다. 삼재심법을 이용해 칠성신단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은 물론, 최대한 나머지 기운들도 전신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며 차분히 내공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스스스슷- 잠시 후, 천화의 기운을 감지한 뱀들이 속속 굴에서 기어나왔다. 영물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지열과 지기를 받아먹고 자란 놈들이기에, 천화가 이끌어낸 기운에 반응을 한 것이다.
“캬학!!”
그때, 어디선가 하악질 소리가 나며 천화의 주위를 기웃거리던 뱀들을 위협했다. 뱀굴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구멍 속에서 무언가 빠르게 기어나오며 놈들을 쫓아버렸다. 마치 자신이 찜한 것에서 관심을 끄라는 듯이.
‘나왔군.’
천화는 곧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기묘한 촉감을 느꼈다. 접촉면이 화해지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촉감과 함께, 자신의 몸에서 퍼져나가는 칠성신단의 잔여 기운을 빨아들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화령독사. 보통은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고, 독액이 흐르는 이빨에 물리면 피를 타고 흐르는 양강의 기운에 장기까지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영물뱀이 다른 뱀들을 쫓아버리고 천화의 몸을 차지했다. 기다란 몸으로 허리와 가슴을 휘감으며 머리끝으로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