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금강토룡 (1) (317/481)

<73화> 금강토룡 (1)2021.04.22.

16586677376279.jpg“무웃!!!”

콰앙!!! 돈왕의 질주는 설영을 반 장(약 1.5미터)도 남지 않은 위치에서 간단히 제지당했다. 놈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달려든 흑우가 놈의 옆구리를 받아버린 것이다. 체구라면 흑우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돈왕이었지만, 미처 반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측면을 가격 당하자 그대로 튕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16586677376284.jpg“꾸, 꾸울?”

그나마 흑우의 크고 두꺼운 뿔에 찔리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두터운 살집 때문에 뼈가 상하지는 않았는지 헤롱거리는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일어나는 돈왕의 눈에, 마치 여기는 제 자리라는 듯 설영의 가슴에 얼굴을 부벼대는 흑우가 보였다.

16586677376284.jpg“꾸우르…….”

그러나 돈왕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재차 발을 구르며 돌진할 태세를 취했고, 그때 흑우가 무심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흠칫! 살기를 가득 담은 눈빛. 금방이라도 돌진할 것 같던 돈왕을 멈춰세운 것은 진득한 살기였다. 달려들면 죽는다. 그 무언의 경고가 돈왕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16586677376284.jpg“꾸우우울!!!!!”

타다다다다닷!!!! 그와 함께 녀석이 달리기 시작했다. 흑우와 설영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화를 노린 것도 아니다. 재빨리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16586677376296.jpg“누가 겁쟁이 아니랄까 봐…….”

겁쟁이 돈왕. 그것이 녀석을 부르는 호칭이기도 한 것이다. 거대한 덩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돈왕은 참으로 겁이 많았다. 제 힘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대적하거나 승리할 수 있는 상대임에도 겁을 먹어 패배하거나 도망치는 일이 잦은 것이 바로 녀석이었다.

16586677376296.jpg“쫓아간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천화는 즉시 추격을 지시했다. 설영이 즉시 신법을 전개했고, 내공 부족으로 아직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없는 천화는 흑우의 등에 올라 차분히 놈을 쫓았다. 흑우가 전력을 발휘한다면 단숨에 녀석을 앞지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천화는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 뒤를 쫓는 것에만 집중했다. 녀석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으니까. 전력을 다한다면 단숨에 끝장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천화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16586677376296.jpg“몰이를 해야 해. 아직 공격하지 마!”

그렇게 녀석은 달리고 또 달렸다. 쿠웅! 쿠웅! 그런 놈의 앞으로 남만의 빽빽한 수림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아름드리나무를 그대로 들이받으며 쓰러뜨리면서도 속도가 거의 줄지 않고 달려나갔다. 덕분에 쓰러지는 나무들을 피해야 했지만 그 또한 문제는 아니다. 천화는 천천히, 놈이 쫓기고 있다는 느낌만 들도록 계속해서 압박하며 막다른 길까지 녀석을 몰아넣었다.

16586677376284.jpg“꾸룩?”

한참을 달리고 달려 녀석의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절벽이었다. 그 흔한 동굴조차 없는 높게 솟은 절벽. 힐끔 뒤를 돌아본 녀석은 아직까지도 흑우와 설영, 천화가 자신을 쫓고 있음을 확인했고, 결단을 내렸다. 타다다다다닷!! 콰앙!!! 절벽을 뚫을 기세로 달려든 것이다.

16586677376313.jpg“……아니?!”

쏘옥 그리고 사라져버렸다. 돈왕의 모습이 절벽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진 것이다.

16586677376296.jpg“진법이야. 절벽처럼 보이지만 저기에 동굴이 하나 있거든. 녀석의 은신처이지.”

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천화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처음부터 천화가 노리던 것은 돈왕 그 자체가 아닌, 녀석이 기거하는 은신처인 것이다.

16586677376296.jpg“우리도 들어간다.”

16586677376279.jpg“무우?”

천화의 돌진 명령에 흑우가 잠시 주춤거리긴 했지만, 그 머뭇거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딱 감고 그대로 놈이 사라진 절벽 한편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16586677376296.jpg“?!”

그 순간 시야가 변했다. 남만 지역의 특성상 전사묘처럼 곳곳에 천연의 진법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이곳에 펼쳐진 것은 주변과 동일하게, 절벽처럼 환상이 보이도록 만들어진 진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물리력을 가지지 못했고, 무엇보다 감각에 혼란을 주는 등의 다른 진법 또한 겹쳐져 있지 않았기에, 막상 몸을 부딪치자 아무런 저항감조차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16586677376279.jpg“무히히!”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 흑우가 웃었고, 천화는 다른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16586677376296.jpg‘이게 보이네.’

그에게는 보였던 것이다. 이곳에 펼쳐진 환상진의 흔적이. 본래대로라면 돈왕이 몸을 부딪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장소였지만,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묘한 모습으로 진법이 펼쳐진 동굴의 위치가 시야에 표시된 것이다.

16586677376296.jpg‘선천진기 때문인 건가?’

그것을 천화는 선천진기를 개화한 덕분이라 판단했다. 선천진기는 내공처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개화한 것만으로 시야와 정신을 현혹시키는 온갖 환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권능을 지녔으니까. 이제 막 개화했기에 희미하게,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눈을 비벼야 할 만큼 아슬아슬하게 보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좀 더 단련이 된다면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천통이라 불리는, 완전히 개화한 능력을 갖게 된다면 환술이나 진법뿐 아니라 천기마저 읽을 수 있게 되겠지. 그것을 확인했기에 천화는 만족스레 흑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한 전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굴이 있긴 하지만 다른 동굴과 이어진다든가 하는 식의 탈출로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돈왕이 아무리 뛰어봤자 결국 그들이 만나는 곳은 동굴의 막다른 길이 될 테니까.

16586677376313.jpg“죽일 거야? 그렇게 나쁜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던데…….”

그렇게 천천히 동굴 안으로 진입하는 동안 설영이 살짝 망설이는 투로 말했다. 설영의 말처럼 돈왕이 악물로 꼽히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써 길러놓은 농작물 따위를 망치고 다니는 까닭이 컸다. 원체 겁이 많은 놈이라 조금만 강한 영물 앞에서는 지금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치니, 사실 그렇게 위협이 되는 놈은 아닌 것이다.

16586677376296.jpg‘아, 꼬리는 이미 말려 있나?’

그럼에도 악물 명단의 말단에 위치해 있는 이유는 그만큼 농작물이 남만인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지력이 풍부한 남만인 만큼, 혹자들은 농작물을 심어도 꽤나 풍작이 들지 않겠냐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주 오는 비가 대지의 영양분을 씻어내 버리거나,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영물들이 나무열매나 씨알을 훑어먹는 까닭에 제대로 경작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나마 남만을 오가는 중원의 상단이 있어 식량과 약초, 짐승의 가죽 따위를 거래하기는 하지만, 오직 남만에서만 기를 수 있는 영초들은 직접 관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돈왕이 모조리 파먹어버린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억울하게 악물로 낙인이 찍힌 것이기는 했고, 그런 만큼 놈을 사냥해낸다 해도 달성도는 아주 소폭이 상승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천화가 녀석을 첫 번째 사냥감으로 정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16586677376296.jpg“하는 거 봐서? 어차피 진짜는 녀석이 아니라 녀석이 모아놓은 물건이거든.”

16586677376313.jpg“물건?”

그건 바로 놈의 보물창고였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먹어치워버리는 녀석이지만, 먹지 못하는 물건들은 자신의 거처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악물 사냥 임무의 단계를 단숨에 넘을 수 있는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16586677376296.jpg‘겸사겸사 돈도 조금 벌 수 있을 테고 말이지.’

또 다시 거금을 벌어들일 생각에 눈을 반짝이는 천화를 보며 설영이 영 못 미더운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동굴의 끝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16586677376313.jpg“지진?”

16586677376296.jpg“아니, 저길 봐.”

그리고 거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대지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 지진일까? 동굴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순간 설영이 긴장했지만, 천화는 느긋하게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분홍빛 몸뚱아리를 동그랗게 말고 달달 다리를 떠는 돈왕이 있었다. 머리만 처박고 있으면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짧은 앞다리로 얼굴을 가리고, 긴장되는지 다리를 떨고 있는 놈을 보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녀석의 처분을 결정하기 전에 일단 확실하게 서열을 정리해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16586677376279.jpg“무힛.”

그 모습이 흑우도 우습게 느껴졌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아까와 같은 경계나 살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설영 역시 마찬가지. 꼭 녀석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천화의 말에 연민이 생겼는지, 선뜻 혈마검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천화가 직접 나서야 할까? 아니다. 무명검이 있다면 능히 저 두꺼운 가죽을 베어 낼 수 있겠지만, 힘과 파괴력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일류 고수 뺨치는 놈에게 직접 다가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달려들어도 부딪히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그런 귀찮은 짓을 뭐하러? 녀석을 제압하는 것은 딱 두 마디면 충분했다.

16586677376296.jpg“흑우야, 돼지고기다.”

16586677376279.jpg“무후?”

16586677376296.jpg“삼겹살, 임마.”

16586677376279.jpg“무후후훗!!!!!”

그 말에 흑우의 눈빛이 돌변했다. 저놈이 그 맛있는 삼겹살의 주인이라고? 저 정도 덩치면 대체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 거지? 흑우가 다시 살광을 번뜩이자 돈왕도 그것을 느꼈는지 거의 경기를 일으켰다.

16586677376296.jpg“그만.”

16586677376279.jpg“무우! 무우!!”

16586677376296.jpg“내가 삼겹살 열 번 구워 줄게, 참아.”

이미 흥분한 흑우가 말리지 말라는 듯 당장이라도 뿔을 찔러넣을 기세를 피워올렸지만, 천화는 다시 같은 방법으로 녀석을 진정시켰다.

16586677376279.jpg“무……우?”

16586677376296.jpg“그럼 스무 번. 싫으면 말고.”

그 말에 계산에 혼란이 왔는지 돈왕과 천화를 번갈아 돌아보는 흑우였지만, 천화가 두 배를 더 부르자 얼른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쁨을 표출했다.

16586677376296.jpg‘이제 대화가 좀 되겠군.’

거의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바짝 얼어있는 돈왕을 보며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미 마음으로 굴복한 상태이기에 잘만 하면 다른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16586677376296.jpg“자, 그럼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16586677376284.jpg“꾸, 꾸르?”

그런 상황에서 천화가 다가오자 돈왕이 살짝 망설였다. 흑우는 두렵고 설영은 좋은데, 이 인간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남자놈이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야?

16586677390356.jpg

16586677376296.jpg“이 새끼가……. 맞을래, 뒤질래?”

16586677376284.jpg“꾸울!!!!”

허나 살짝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려는 순간, 천화 역시도 진한 살기를 놈에게 집중시켰다. 흑우의 살기에는 귀기가 어려 있다면, 천화의 살기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순수한 공포였다. 영물의 본능으로 그것을 감지한 순간, 돈왕은 다시 납작 머리를 조아렸다. 아예 몸을 까뒤집고 바닥을 뒹굴었다. 제 딴에는 배를 보인다고 몸을 굴린 것 같은데, 몸집이 너무 비대해서 오뚝이처럼 둥실거린다.

16586677376296.jpg“일어나.”

파닥!

16586677376296.jpg“앉아.”

쿠웅!

16586677376296.jpg“짖어.”

16586677376284.jpg“꾸울!!”

천화의 조련은 아주 간단했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의 영물들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에, 살기를 유지한 채 짧고 강하게 명령하자 돈왕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16586677376296.jpg“좋아. 그럼 일단 맞자.”

16586677376284.jpg“꾸, 꾸울?!”

16586677376296.jpg“그럼 뒈질래?”

16586677376284.jpg“꾸우울…….”

퍼버버벅!!!!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천화는 주먹을 들어 놈의 몸뚱아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까!

16586677376284.jpg“꾸위위윅!!!”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동굴 가득 울려퍼졌지만 천화는 멈추지 않았다. 용케도 그 두꺼운 가죽과 살집을 뚫고 가장 아프게 놈을 두들겨 팼다.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애초에 처치해줄 것을 의뢰받았으니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터였다. 게다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후에 놈이 협조하지 않을 공산이 컸고.

16586677376284.jpg“꾸우우우…….”

16586677376296.jpg“일단 이쪽으로 나와있어. 도망치면 뒈진다.”

16586677376284.jpg“꿀!”

천화의 말에 돈왕이 얼른 몸을 날려 지정된 자리로 섰다. 생각보다 말을 잘 알아듣는 듯싶지만, 굳이 놈을 길들여서 반려동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동물농장을 차릴 것도 아니고 소에 돼지까지 키울 생각은 없으니까. 그랬다가는 아마 식비만으로 파산을 하지 않을까? 설영이 녀석을 선택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돼지치고 귀여울 뿐이지 변태 돼지를 키울 생각은 없어보였으니, 그 쓰임을 다하면 경고를 하고 풀어놓든 해야 할 터였다.

16586677376296.jpg“많이도 모아놨네.”

그렇게 돈왕이 눈치를 보며 슬쩍 옆으로 비껴서는 동안 천화는 녀석의 보금자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차마 먹을 수 없었던, 먹지 못했던 물품들을 모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광물과 보석의 원석부터 자잘한 병장기까지 있었는데, 모두 물어뜯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먹으려고 시도는 몇 번 해본 모양이었다. 아마 이곳에 모아둔 것도 포기를 해서가 아니라, 언젠간 먹고 말겠다는 집념 때문이 아닐까? 영물로서 좀 더 성장한다면 정말 날붙이까지 먹어치우고도 멀쩡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물품 정보를 살폈다.

16586677376296.jpg“어우, 이건 못 쓰겠네.”

일단 병장기류는 거의 쓸모가 없다. 녀석이 잔뜩 물어뜯은 탓에 내구도가 바닥을 쳤거나 손상되어, 다시 날을 간다 해도 제 가치를 되찾기 어려운 것이다. 비급 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녀석은 종이도 먹어치우니까. 그나마 몇 가지 광물과 보석 원석들은 상태가 나았지만, 천화는 그중 보석 원석만 몇 개 챙길 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광물로 소지품 창을 채우기에는 아까웠다. 만약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야수궁에 요청을 해도 되고.

16586677376296.jpg‘왜 없지?’

허나, 정작 그가 찾던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일찍 와서 돈왕이 아직 그것을 구하기 전인 것은 아닐까? 순간 표정이 심각해졌다. 살기어린 눈빛으로 슬쩍 돈왕을 돌아보았다. 만약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녀석의 쓸모는 없는 셈이니까. 물론 시간을 주고 이따금씩 이곳을 방문해 확인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기다릴 거면 차라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 여차하면 돈왕이라도 잡아서 경험치라도 챙기는 수밖에.

16586677376296.jpg‘가만?’

그때, 문득 천화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기를 바라는 아주 끔찍한 생각이.

16586677376296.jpg‘만약 아직 없는 게 아니라 미리 먹어치운 것이라면? 분명 이 정보를 알려준 놈도 더러운 꼴을 본 보람이 있다고 했었지. 그럼 설마…….’

천화의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돈왕이 아닌 돈왕이 남겨놓은 잔해를 향해서. 동굴의 한편에서 아까부터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 무더기를 향해서 말이다.

16586677376296.jpg‘젠장, 똥통을 뒤져야 하다니……. 여기 없기만 해봐라. 넌 뒤졌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방금 찾은 망가진 검 한 자루를 꼬챙이처럼 쥔 천화가 코를 막고 그것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천화를 설영과 흑우가 외면했다.

1658667739826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