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금강토룡 (2)2021.04.25.
“어우, 냄새.”
돈왕이 쌓아놓은 똥무더기를 뒤적거린 천화는 결과적으로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알 수 없는 구슬][유일] 천화의 예상대로, 녀석이 꿀꺽 집어삼킨 뒤 소화시키지 못해 그대로 변과 함께 배출해냈던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수통에 채워둔 물을 부어 어떻게든 씻어내긴 했지만, 분변에 꽤나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까닭인지 그것에 밴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얼른 소지품 창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소지 불가] 물품이었다. 가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소지품 창에 보관이 되지 않는 종류인 것이다. 덕분에 천화는 잘 빠지지도 않는 그 역한 냄새를 참으며 근처 냇가로 가서 수백수천 번을 박박 씻어냈지만 오히려 손과 수투에 냄새만 밴 것 같은, 딱히 나아지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혼자 죽을 수는 없지!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흑우를 억지로 잡아 올라타자 녀석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버린 몸, 천화가 잠시 땅으로 내려오고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자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크흠, 나는 걸어서 갈게. 아무래도 요즘 너무 안 움직인 것 같아서.”
다만 설영은 함께 흑우에 타고 가는 것을 거부했다. 움직이고 싶다면서 코는 왜 막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끄응. 어쩔 수 없지.’
생각 같아서는 다른 방법을 찾고 싶기도 했지만,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움 아닌 설움을 겪으며 흑우에 올라탄 천화는 애꿎은 돈왕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안내해.”
“꾸, 꾸울?”
안내하라니? 대체 어디로? 돈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천화는 단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다른 곳에라도 화풀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금강토룡. 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
그러나 다음 순간 천화의 입에서 어떤 존재의 이름이 나오자, 돈왕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그놈에게 안내를 하라고? 누굴 죽일 일이 있나?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가로젓는 돈왕이었지만, 천화는 사정을 보아줄 생각이 없었다.
“안내할래, 내 손에 뒈질래?”
날이 바짝 선 무명검을 꺼내드는 천화의 모습에, 순간 돈왕은 갈등에 빠졌다. 금강토룡의 존재도 무시무시하지만 눈앞의 폭력이, 눈앞의 죽음이 더 두려운 것이다.
“안내만 하면 풀어주지. 단, 네가 남만인들의 경작지 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고민하는 돈왕에게 천화가 살길을 일러주었다. 일단 안내만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놈을 찾은 이후에는 돈왕이 도망을 치든 뭘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며 녀석을 구슬렸다.
“꾸울…….”
그럼에도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겠는지 녀석은 봐달라는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몸을 웅크렸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천화가 그것을 부정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듯 무명검을 쳐들자 다급하게 꿀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사지로 걸어가라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른 누구보다 본능에 충실한 것이 짐승들이다. 그런 녀석에게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찾아가라는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돈왕에게는 남들과 다른 추적 기술이 있고, 금강토룡을 만나본 적도 있으니까. 돈왕이 악물이라 불린 표면적인 이유는 경작지의 훼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금강토룡과 접촉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놈과 접촉하고 놈의 기운을 일부나마 나눠받을 경우 표시가 나니까.
“안내하겠다는군. 준비해, 바로 끝판왕을 만나러 갈 테니까 말이야.”
“끝판왕?”
“그래. 악물들이 난동을 부리는 판을 깔아놓은 녀석이지. 녀석의 영향과 선동으로 이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거거든.”
“뭐?”
악물들의 소요 사태에 배후가 있었다고? 그것도 사람도 아닌 영물이 배후이고? 설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이었다. 지금 설치고 있는 소위 악물들의 행동에는 모두 금강토룡의 지시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시선을 분산시킬 뿐 아니라, 목표한 대상을 약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놈의 목적이었다.
‘물론 최종 목표는 따로 있지만.’
“으흠, 알겠어.”
고위 영물들은 나름대로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이야? 설영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단단히 채비를 했다.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점검하고 은근히 내기를 끌어올려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돈왕의 안내를 받아 놈을 먼저 발견하는 것이 목표라지만, 반대로 놈이 자신들을 먼저 발견하고 공격을 해올 수도 있는 일이니까.
‘내가 지켜야 해.’
최근에는 어쩐지 존재감이 낮아진 기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자신은 천화의 호위무사였다. 함께 다니는 동안은 그것을 약속했기에, 적어도 천화만은 자신이 지키리라 새삼 다짐했다.
“딴 데로 데려가면, 알지?”
“꾸울, 꾸우울!!”
그렇게 시작된 이동. 아니, 추적. 금강토룡이라는 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던 돈왕이 천화의 엄포에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쳤지만, 겁쟁이 돈왕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머리가 아주 나쁜 놈도 아니니 어떻게든 자신들을 떼어내고 달아나려 할 수도 있을 터이기에, 천화는 돈왕의 행동과 이동경로를 유심히 살피고 또 살폈다.
‘대충 비슷하게 가는 것 같긴 하군.’
그리고 짐작했다. 녀석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천화 역시 현재 금강토룡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략의 위치, 지역은 파악하고 있지만 그것이 완전치는 않았다. 금강토룡은 쉴 새 없이 이동을 하는 놈이기에, 예상 위치로 곧장 이동을 한다 해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렇게 흑우의 등에 올라탄 채 돈왕을 쫓길 약 한 시진. 결코 약하지 않은 지진이 그들을 덮쳐왔다.
“제대로 찾아왔군.”
그러나 천화는 확신했다. 그것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이 아니라는 것을. 애초에 이곳 남만이 그리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도 아니었기에, 이곳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대부분은 어떤 영물이 일으킨 것이다. 이번 지진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천화도 알고 있는 놈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기에, 이 지진의 근원은 금강토룡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속도를 높이자!”
“꾸울.”
“무우!!”
더욱 힘이 없어진 돈왕과 잔뜩 신이 난 흑우. 상반된 반응을 보이며 둘이 동시에 속도를 높였다. 방향을 잡고 달릴수록 지진의 기운은 더 커졌지만 그것이 더 기꺼웠다. 금강토룡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뜻이니까.
“어?”
그러다 어느 순간, 돈왕과 흑우가 제 자리에 멈추어섰다.
“진동이 사라졌어?”
금방이라도 땅거죽이 뒤집힐 듯 울려대던 진동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놈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린 것일까? 아니면 활동을 정지해서? 긴장한 설영이 최대한 기감을 넓히며 주변을 경계했지만, 딱히 얽혀드는 기운은 없었다.
‘온다. 잠시 웅크리고 있는 것 뿐이야. 이걸 가지고 있는 이상, 곧…….’
그러나 천화는 확신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구슬]을 가지고 있는 이상, 녀석은 분명히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래야!!”
그때, 설영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중심으로 넓게 펼치던 기감에 잡히지 않던 영물의 기운이 바로 아래, 땅 속에서 느껴진 것이다.
‘최소 절정, 그 이상!’
그것도 절정 이상의 막대한 기운이! 드드드드드드! 그 순간 진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보다 더 크게, 아까보다 더 가깝게!
“토룡이라더니, 진짜였어?!”
“쿠와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혔다. 흑우의 등에 타고 있던 천화와 설영을 한입에 삼킬 듯, 거대한 주둥이가 땅속에서 튀어올랐다. 그들이 지닌, 또 흑우가 지닌 기운을 느끼고 녀석 쪽에서 먼저 함정을 파고 기다렸던 것이다. 땅속 저 깊은 곳에서!
“피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소리치는 것보다 몸을 날리는 것이 먼저였다. 설영은 놈의 기척을 감지한 그 순간 천화를 안고 몸을 날렸고, 아주 간발의 차이로 놈에게 삼켜지지 않고 몸을 빼낼 수 있었다.
“흑우야!!! 돈왕!”
하지만 천화가 타고 있던 흑우는 아니었다. 눈만 껌벅거리며 제 자리에 서있던 흑우는 그대로 놈의 입속으로 삼켜져 버렸고, 설영이 애타게 녀석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천화, 너는 괜찮아?”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한 입에 흑우와 돈왕을 삼킨 탓에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상에 몸을 꺼내놓은 저 거대한 토룡(지렁이)의 배를 당장 갈라낼 수만 있다면, 어쩜 질식하거나 소화되기 전에 흑우와 돈왕을 꺼낼 수도 있을 테니까.
“응. 이런 놈인 걸 먼저 말해줄걸 그랬군.”
거대한 지렁이. 혹은 애벌레 같기도 한 녀석을 노려보며 천화도 얼른 자세를 취했다. 금강토룡. 악물들의 배후이자 남만에서도 손에 꼽히는 영물인 녀석을 쓰러뜨려야 하니까.
“조심해. 방금도 봤겠지만 놈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니까. 그리고 저 덩치 보이지?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생채기도 내기 힘들어. 그러니까 최소 검기나 검강으로 베어야 해.”
“후우. 너나 조심해.”
츠츠츠츳! 그 말과 함께 설영이 혈마화를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새며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 나타났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지금까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곳 남만에 들어선 이후, 영물들의 피를 받아먹고 생명력을 정제하여 취한 혈마검이기에 처음 천화와 설영이 만났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혈마검에게 있어 혈정의 충전은 단지 혈마화를 진행 할 수 있는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힘 그 자체의 회복이었다. 왕년에는 천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혈마의 힘을 기억하는 녀석이었으니, 만약 남만에 있는 모든 영물의 피를 흡수하기라도 한다면 절정이 아니라 초절정, 그 이상의 경지로까지도 설영을 인도할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그것도 설영의 몸이 버텨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호,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힘을 낼 수 있겠군!”
이전보다 훨씬 증폭된 그 힘을 설영 역시 단숨에 파악했다. 단순히 혈마기가 충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금혈진체 보신단까지 먹어치운 덕이었다. 그것은 몸이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높여주는 영단이었으니까. 기존에는 설영의 몸이 버티지 못해 사용할 수 없던 혈마신공 상의 힘들이 새로이 그녀의 몸에 덧입혀졌다.
‘정신 수양은 좀 더 필요하겠는데.’
설영이, 정확히는 설영의 몸을 대신 차지한 혈마검이 한껏 신이난 모습으로 금강토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만약 설영의 정신력이 더 강인했다면 몸을 빼앗기지 않고도 저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좀 더 굴려서라도 수양을 쌓게 만들어야 할 모양이었다. 정신력이라는 것은 단지 영약이나 비급, 무구 따위로 강화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그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지!
‘그만큼 어려운 상대라는 뜻이기도 할 테고. 혈마검 녀석이 놈을 얕보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러나 사실 이번만은 온전히 설영의 잘못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웠다. 혈마검이 정통의 후계자인 설영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지금의 설영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혈마검을 제어하며 혈마화를 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혈마검이 직접 몸을 취할 때만큼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가능은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혈마검이 억지로 설영의 몸을 취했다.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니라, 금강토룡의 강함을 감지했기 때문일 터였다. 흑우와 돈왕을 동시에 삼켜버릴 만큼 거대한 금강토룡의 덩치를 차치하더라도, 그 움직임과 강함은 최소 절정 고수 이상의 것이니까. 아니, 무지막지한 생명력과 회복력까지 생각한다면 초절정 고수쯤 되는 이가 아니고서는 일대일로 자웅을 겨루기 힘들게 분명해보였다.
“무형보!”
그것을 알기에 천화도 미끄러지듯 놈에게 달려들었다. 혈마화를 했다고는 하나 설영 혼자서는 무리다. 적어도 자신이 시선을 끌거나, 설영이 시선을 끄는 사이 자신이 치명적인 일격을 꽂아넣지 않고서는, 단시간에 놈을 처치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투엣!”
“바위?!”
콰앙!! 그 순간 설영과 금강토룡이 처음으로 격돌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격돌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금강토룡이 땅속에서 먹어치운 돌덩어리를 뱉어냈고, 설영이 검강을 일으켜 그것을 부순 것이니까.
“큭!”
고작 토사물과 부딪힌 것임에도 설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달려들던 속도가 크게 줄어들고 몸이 삐걱거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혈마기를 통한 강기의 발출로 어떻게든 바위덩이 같은 저것을 파괴했지만 설영의 육체가 지닌 힘이, 근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다. 내력만으로 어떻게든 바위를 부순다 해도 그 반동은 설영의 몸이 직접 견뎌야 하니까.
“투엣!”
그 순간 또 하나의 토사물, 바윗덩이가 설영을 덮쳤다. 대체 몇 개나 되는 돌덩이를 저장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용케도 돈왕과 흑우는 뱉어내지 않고 바위덩이만 뱉어내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잡스러운 짓을!”
허나 설영도 이번에는 무식하게 힘으로 그것을 받아내지 않았다. 귀영보. 혈마신공 상의 보법을 펼쳐내며 단숨에 바윗덩이를 피해냈다. 무공을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설영의 몸이 사라졌다가 바윗덩이 뒤로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으리라. 후웅! 그 순간 금강토룡의 머리가 설영을 향해 길게 휘둘러져 왔다. 직경으로만 따져도 2장은 됨직한 그 거대한 머리를 철퇴처럼 휘두르며 공격을 해온 것이다.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설영은 다시 한번 보법을 펼치며 그것을 피해냈다. 적이 머리를 들이미는 상황이니 기회라면 기회였지만, 도저히 맞받아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집채만 한 머리에 부딪혔다가는 검강이든 뭐든 일단 분쇄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한 박자 늦게 놈의 머리가 지나간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검을 내질렀다.
“귀혈참!”
좀 전에 당한 것을 갚아주겠다는 듯, 강기를 가득 머금은 일격이 금강토룡의 뒤통수를 길게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