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금강토룡 (4)2021.04.29.
“이런!”
“물속이라니, 토룡 주제에 잠수도 할 줄 아는 건가?”
그 돌발적인 행동에 천화와 설영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천화는 난감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고, 설영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저길 봐.”
그때 천화가 녀석을 뒤쫓아 호수 근처까지 달려가며 물속을 가리켰다. 꿀렁 꿀렁 살이 차오른다. 저 물에 뭔가 특별한 회복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물에 들어가자마자 금강토룡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빨리 꺼내지 않으면 다시 회복하고 말 거야. 흑우와 돈왕도 위험하고.”
물(水)은 땅(土)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리하여 땅은 더욱 단단한 지반으로 변모한다. 마치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듯 금강토룡의 터져나간 살점이 괴물처럼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판타지 게임으로 따지자면 거의 트롤급의 회복력을 보이고 있었다. 천화의 말처럼 빨리 놈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기껏 입혀놓은 피해가 다시 0으로 바뀔 터였다.
“먹어치운다?!”
설상가상으로 놈이 입을 크게 벌리자 주변에 돌아다니던 물고기들이 모조리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영물은 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도, 물속에도 있었다. 저 중에는 분명 영물이라 불릴 만한 놈들도 있을 것이기에, 저것까지 먹어치우고 나면 금강토룡은 회복을 넘어 한층 강해진 모습을 찾게 될 터였다.
‘물속에서는 방어력이 약해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금강토룡이 물속에서 무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속에서는 방어력이 크게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저 호수 속에 놈을 위협할 만큼 강력한 영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놈을 최대한 호수에서 멀어지게 만든 뒤, 차근히 공격하다가 도망칠 때쯤 맹공을 펼쳐 사냥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천화의 내공 수위가 낮았던 탓인지, 아니면 설영이 여유를 두고 검을 떨친 탓인지 화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쪽이다!!”
풍덩! 그렇기에 천화는 즉시 손을 썼다.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놈을 잡는다해도 끌어낼 방도가 없다. 저 거체를 힘으로 끌어낼 만한 인물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일 테니까. 그러나 천화에게는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알 수 없는 구슬. 놈이 그렇게 탐내던 구슬은 발버둥을 치는 사이 천화에게 다시 회수가 된 상태였다. 천호는 그것을 낚시하듯 호수 멀찍한 곳까지 던져넣었고, 잠시 후 반응이 왔다. 출렁! 호수의 물이 크게 출렁이는가 싶더니, 잠영 중이던 금강토룡이 방향을 돌린 것이다. 몸이 회복되고 나자 다시 욕심이 치솟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이무기밖에 못될 놈이 욕심은……!’
놈이 그토록 미친 듯이 저 구슬일 노리는 이유를 천화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의주. 알 수 없는 구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여의주인 것이다. 보통은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로 미감정된 물품에 손을 댈 경우 해당 정보가 풀려나오지만, 여의주가 끝까지 정체를 숨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여의주는 인간이 아닌 용에게만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무당신룡이니 사천독룡 따위의 별호가 아닌, 진짜 용(龍). 다만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금강토룡과 같은 유사 용이다. 용의 정수를 얻어 그 힘을 이용해 용으로 재탄생하고자 하는 놈들이었고, 운이 좋으면 정말 용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보통은 이무기에 그치는 놈들. 하지만 모름지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이 더 큰 법이다. 여의주가 물속으로 들어온 것을 감지하자마자 호수가 출렁거리도록 격한 헤엄으로 금강토룡이 길을 되짚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그리고 놈의 거체가 여의주의 약 3장 가량까지 도달했을 때, 천화가 비영사를 세게 당겼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느려도 안 된다. 놈이 포기하거나 그대로 여의주를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됐……. 엥?”
천화는 정확한 타이밍에 비영사를 당겨 여의주를 끌어올렸고, 여의주의 끝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걸려있었다.
“뱀?”
물뱀일까? 그것은 아주 작은 뱀이었다. 너무 작아 여의주를 다 물 수도 없는 입으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녀석이 여의주와 함께 딸려왔다.
“쀼우!!!”
“무슨……. 어푸!”
천화가 황당한 눈으로 녀석을 받아들자, 녀석은 어쩔 수 없음을 느꼈는지 여의주에서 입을 떼고 천화를 향해 물을 뿜었다. 여의주가 가진 영성에 이끌린 것은 알겠는데, 천화조차 손끝과 기감 모두로 감지해내지 못한 존재라니? 황당하고 놀라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녀석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넌 이따 보자.”
콰앙!!! 작은 뱀을 떼어 내고 천화가 서둘러 발을 구르자, 그 자리에 금강토룡의 거체가 떨어졌다. 놈이 날 듯이 뛰어올라 천화를 덮친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쥐포가 되었거나 아니면 한 입에 삼켜졌을 판이다.
“귀혈참!”
그 틈에 설영이 혈마강기를 쏘아냈다. 하지만 이미 상처를 상당 부분 회복했기 때문인지 금강토룡은 개의치 않고 몸을 꿈틀거리며 천화를 뒤쫓았다.
‘더 빨라졌다.’
심지어 조금 전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 반응 속도가 빠르다지만 이류급의 내공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천화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굉장한 속력이다.
“혈류가속!”
천화는 어쩔 수 없이 피를 빠르게 돌렸다. 지속시간은 5분 남짓. 지속시간이 끝나고 나면 후유증이 남는 기술이지만, 당장 깔려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몸을 굴리며 빠져나가는 천화를 금강토룡이 뒤쫓았고, 그 뒤를 설영이 빠르게 뒤따르며 검격을 날렸다.
“쀼쀼!!”
다시 그 뒤를 물뱀이 앙증맞은 몸으로 뒤따랐다.
“나려타곤! 나려타곤! 나려타고온!!”
천화는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피하는 것도 피하는 것이지만, 다시 놈이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최대한 육지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에는 놈을 처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물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물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녀석의 몸은 한동안 말랑말랑해지게 되니까. 약화된 방어력을 혈마강기가 두드리면 단시간에 아까 주었던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쿠엑?!”
그러다 어느 순간, 돌연 몸이 다시 몸을 뒤틀었다. 물속에 들어간 지 한참이나 되었고, 엄청난 양의 물을 들이켰으니 흑우와 돈왕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반려동물이 사망했다는 알림이 없긴 했지만…….’
이것은 천화 역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뱃속의 상처가 덧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 정도 물을 들이켰다면 설령 죽지 않았더라도 물속에 둥둥 떠다니느라 아까처럼 살점을 뜯어먹지도 못할 텐데?
“쿠에에에에엑!!!”
하지만 금강토룡의 비틀거림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뭔가, 놈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기회다.’
천화의 눈빛이 돌변한 것 또한 그때였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무방비해진 놈에게 확실한 공격을 꽂아넣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놈의 머리를 주시하며 빠르게 접근했다. 무명검을 꽂아넣었다. 투웅!
“컥?!”
허나 하필 그 순간, 내부에서도 충격이 일어났다. 흑우가 들이받기라도 한 것인지, 천화가 무명검을 놈의 몸뚱아리에 꽂아넣는 순간 강력한 충격이 전해진 것이다. 살점과 가죽에 한 번 상쇄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천화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천화의 몸이 떠올랐고, 금강토룡이 본능적으로 꼬리를 휘둘렀다. 날파리 같은 무언가를 강하게 후려쳤다.
‘이렇게 당한다고?’
저 거대한 것에 맞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 숨은 붙어있을 수 있을까?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천화의 눈앞으로 순간 주마등이 스쳐갔다. 유일하게 저것을 막아줄 수 있는 설영조차 반대편에서 검을 떨치던 상황이었기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도 없다. 천마나 무림맹주도 아닌, 고작 영물의 꼬리치기에 죽다니.
“공자님!!!!”
“?!”
그 순간,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가 천화를 감싸안았다. 콰앙!!!! 누군가 천화를 대신해 금강토룡의 꼬리와 부딪혔다. 아니, 맞받아쳤다. 쿠웅!! 호각. 그것은 분명 호각이었다. 대신 맞아준 것도 아니고, 힘을 약화시킨 것도 아니다. 금강토룡의 거체에서 뿜어진 힘을, 똑같이 받아치고도 아주 조금 밀려날 뿐이었다.
“어……. 롱롱이?”
그 무지막지한 일을 해낸 것은 다름 아닌 남만야수궁주 세주안의 영물인 롱롱이였다. 고작해야 어린아이만 한 덩치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크지 않은 꼬리를 휘둘러 똑같이 쳐낸 것이다.
“저도 왔답니다!”
황당해하는 천화를 안아든 소녀가 생긋 웃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세주연. 남만야수궁주의 딸인 그녀가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세주안은?’
허나 정작 롱롱이의 주인인 세주안의 모습이나 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가 독단적으로 천화를 돕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으니까. 세주안이 굳이 천화와 설영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가 있는 만큼, 세주연의 이런 행동은 남만인들의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도 세주연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었던 천화를 살포시 내려주며 금강토룡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감히 서방…… 아니 공자님을 공격하다니! 롱롱아, 혼내주자!!”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롱롱이에게 공격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자신 역시 금강토룡을 향해 뛰어들었다. 적수공권. 세주연의 손에는 어떠한 무기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천화는 그녀가 걱정되지 않았다. 이미 달려나간 속도부터가 결코 일류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고작해야 10대 소녀에 불과한 세주연이었지만 그 무위는 이미 절정급에 가까운 것이다. 퍼엉!!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금강토룡의 몸뚱아리가 요동쳤다. 소녀의 조막만 한 주먹질 한 방에 몸이 뒤집힐 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다. 흑우를 따귀 한 방에 날려버릴 때도 알아보긴 했지만, 근력만 따지자면 절정급의 외공 고수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였다.
“설영!!”
이유가 어찌되었든 화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강력한 아군의 등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천화는 즉시 설영에게 신호를 보냈고, 설영 또한 알아들었는지 혈마기를 잔뜩 끌어모았다. 단숨에 놈을 몰아쳐갔다.
“공자님! 다른 여인의 이름을 입에 담으시면 미워요!”
퍼어엉!!! 황당한 소리를 내뱉는 세주연의 일격에 뭔가 감정이 실린 것 같았지만 천화는 애써 외면했다.
‘지금 저거에 맞으면 최소 사망이겠는데.’
그럼에도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몸이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에서도 저 일격에 맞으면 체력이 팍팍 깎여나갔는데, 하물며 지금이라면 뼈가 가루가 될 거다. 그렇기에 세주연과는 가급적 엮이고 싶지 않았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떼어놓을 방법을 찾는 수밖에.
‘내가 낄 틈이 없군.’
간신히 자세를 회복한 천화였지만, 재차 금강토룡에게 달려드는 것은 무리였다. 마치 네 마리의 괴물이 한데 어우러져 싸우는 것만 같은 상황이었기에, 무명검이 있다 한들 자신이 끼어들 틈은 없는 것이다. 무명검의 힘으로 타격을 입힐 수야 있겠지만 다른 셋이 입히고 있는 피해에 비하면 방해만 될 뿐이겠지. 합격이라는 것은 아군이 피해 범위에 들어가지 않도록 섬세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쀼쀼!”
“응? 너 여기까지 왔냐?”
그때, 천화의 발치로 아까 보았던 새끼 뱀이 기어왔다. 혹여나 독을 가진 녀석일지도 모르지만 천화는 발치에서 앙앙거리는 녀석을 손바닥에 올려 가뿐히 들어올렸다. 녀석이 누구인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새끼 수룡.’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의 정체는 바로 수룡이었다. 아직 새끼에 불과하지만, 성장하면 물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는 녀석이다. 물론 무신지로에서도 이 녀석이 성체까지 성장한 적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중전 최강이라는 장강수로채를 몰살시킬 만큼 강력했지. 단 한 마리만 존재하는 특수한 영물인 데다 전설 등급의 영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완전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정확히는 성장시키지 못한 것이지만.’
당시 이 녀석의 주인은 성장시키기 위한 특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었기에 한계가 분명했지만 말이다.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천화는 큰 흥미를 느꼈다. 그 조건이란 바로 이 여의주였으니까. 정확히는 이 새끼 수룡의 어미의 것이었던 여의주.
‘그때는 금강토룡이 잠시 취하면서 타락했지만.’
무신지로에서는 처음 여의주를 얻었던 이가 금강토룡에게 빼앗기면서 그 힘이 바랜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은? 돈왕의 뱃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기는 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영향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충분히 실험해볼 가치가 있었다. [신수 ‘새끼 수룡’을 길들이시겠습니까?] 천화의 의지에 따라 눈앞으로 하나의 알림창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