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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용화지회 (1) (330/481)

<86화> 용화지회 (1)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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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문이 열리고, 시끌벅쩍하던 주루의 소음이 일순간 멈추었다. 새롭게 들어선 이들을 주시하는 까닭이었다.

16586678348908.jpg“뭐, 뭐야?”

찰나에 가까운 짧은 정적이었지만, 그것을 간파한 설영이 당황하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매복인가? 언제라도 반응 할 수 있게 몸을 긴장시켰지만 다시 주루 안은 소란스러워질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16586678348913.jpg“누가 있나 본데?”

하지만 천화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설영보다 긴장한 것이 바로 주루 내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노리거나 속이기 위한 왁자지껄함이 아니라, 긴장한 자신을 속이기 위해 애써 떠드는 모습이자 안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긴장시킨 주범이 있을 텐데, 대체 누구일까? 자연히 시선이 위로 향했다. 총 5층으로 만들어진 주루의 상층. 모두를 긴장시킬 만한 누군가가 이미 방문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6586678348913.jpg“여긴 너무 시끄럽고, 올라갈까?”

16586678348908.jpg“흠, 괜찮겠어? 저런 곳은 비쌀 텐데.”

천화에게 빚만 잔뜩 달아두었을 뿐, 제대로 돈을 만져 본 적 없는 설영이 살짝 우려를 표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주루들의 경우, 고층으로 갈수록 자리가 적고 값은 높아지는 것이다. 일부는 층마다 판매하는 음식과 술의 종류에도 차등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16586678348913.jpg“오늘은 내가 쏜다. 모처럼 주루다운 곳에 왔는데, 목구멍에 때 좀 벗겨야지. 여기, 점소이!”

16586678348937.jpg“예이! 갑니다요!”

그동안 여럿 벗겨먹은 것부터 남만에서 챙겨온 것들까지. 천화의 주머니 사정은 생각보다 두둑했다. 금자만 세어도 능히 오십 냥은 가지고 있었고 전표나 은자, 현물들을 더하면 백 냥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할 만큼 막대한 금액이 수중에 있는 것이다. 설영에게 지워둔 빚까지 더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았고. 모두 훗날을 위해 알뜰살뜰 모아둔 덕분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기분을 내는 것도 좋을 터였다.

16586678348937.jpg“2층 말씀이십니까? 2층에 오르시려면 은자 두 냥을 주셔야…….”

위층으로 오르겠다는 천화의 말에 점소이가 살짝 눈치를 보았다. 당장 천화와 설영의 행색만으로는 돈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저분하고 행색이 초라했기에 겉모습만 보자면 당장 내쫓았을 텐데, 무림인을 함부로 예단하다가는 혼쭐이 난다는 것을 알기에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짤랑

16586678348937.jpg“헤헤. 바로 오르시죠!”

그런 점소이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천화는 말 대신 돈으로 답했다. 은자 세 냥. 2층의 자리 값은 두 냥이었지만 한 냥은 점소이에게 주는 돈이었다. 이렇게 돈을 찔러주면 점소이가 주방을 재촉하여 음식도 더 빨리 나오고 대우도 좋아지니까.

16586678348913.jpg“다음 층으로 가지.”

16586678348937.jpg“3층이요? 그럼 닷 냥은 주셔야……. 어서 오르시죠!”

그렇게 2층에 올랐지만 천화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름 이 근방에서 가장 크고 높게 솟은 주루라서 선택한 것인데, 2층까지는 1층과 별다를 것이 없고 지상의 소음으로 제법 시끄러웠다. 거기에 1층의 소음까지 섞이니, 자리가 넓은 것 말고는 별 이점이 없었다.

16586678348913.jpg“다음.”

16586678348937.jpg“4층은 은자 열 냥을…….”

허나 3층에도 자리를 잡지 않았다. 소음은 한결 줄어들었지만 시야가 영 좋지 못했으니까. 주변에 2~3층짜리 건물들이 많다 보니, 장강이 보이는 탁 트인 시야를 얻으려면 최소 4층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좋은 술과 음식을 주문하려면 높은 층에 올라야 할 테니 상관없겠지. 천화가 고민 없이 은자 열 냥을 추가로 지불하자 점소이의 허리가 90도보다 더 굽어졌다. 이렇게 큰 손님을 몰라볼 뻔하다니. 새삼 무림인들의 화통함에 놀라고 감탄하며 잽싸게 4층으로 올라 좋은 자리를 내어주었다.

16586678348937.jpg“이쪽은 어떠십니까? 장강이 한눈에 보여 4층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리입죠!”

16586678348913.jpg“한 층 더 오르지.”

16586678348937.jpg“5, 5층 말씀이십니까? 그게 좀…….”

허나 천화가 최상층에 오르기를 희망하자 점소이가 난색을 표했다. 돈이 없을까 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호탕함만 보더라도 최상층의 입장 비용인 금자 1냥은 너끈히 치를 만큼 대단한 재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점소이는 우물쭈물하다가, 천화에게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였다.

16586678348937.jpg“오르실 수는 있사온데, 자칫 대협들께 누가 될 일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냥 여기서 즐기심이 어떠하신지요?”

16586678348913.jpg“누가 된다? 위에 누가 있지?”

그 말뜻을 천화가 바로 알아들었다. 주루의 입장에서나 점소이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비싼 층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 더 비싼 술과 음식을 시키는 것이 이득이겠지만, 진심으로 천화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16586678348937.jpg“그게……. 잠시 후 용화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연배가 비슷해보이시는데 혹여 문제가 생길 수도…….”

16586678348913.jpg“용화지회가? 여기서?”

용화지회. 그것은 용과 화가 붙은 별호를 지닌, 구파일방 오대세가에서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의 모임이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딱히 이들이 하는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후기지수일 뿐이니까. 그 무력 수준이 일류, 혹은 절정에 이르며 장차 무림을 이끌어갈 확률이 높은 이들의 모임이니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 가문이나 문파의 대소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실상은 그저 친목을 다지기 위한 모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자기들끼리는 뭐 대단한 일인 양 거들먹거리기는 하지만.

16586678348913.jpg‘용화지회가 여기서 열린다고? 뭔가 또 바뀐 건가? 흠.’

문제는, 천화가 기억하는 용화지회의 장소가 이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룡삼화, 아직은 오룡이화라 불리는 이들 중 무당신룡과 사천독룡이 무해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일곱 중 둘이 참석할 수 없으니 그에 맞춰 이곳에 장소를 잡은 것이 아닐까?

16586678348913.jpg‘어쩌면 놀려먹기 위함일 수도 있고.’

벌써 두어 달째 임무를 해결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두 사람을 골려먹을 생각으로 누군가 정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16586678348913.jpg‘별것도 아닌 놈들이 꼴값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천화도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후기지수들의 모임이지만, 그렇기에 더 시비가 붙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특히 가문에서 천재니 뭐니 하며 기대와 촉망을 받는 이들인 만큼, 가문과 스스로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것이다. 자신이 넘치니 끼어들기를 좋아하고, 뒷배경이 든든한 까닭에 어지간한 무인들도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일상이니, 나서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 오지랖이 한창 넓을 시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오룡이화 중 ‘이화’에 속하는 여인들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외모가 출중함을 인정받은 이들이니, 그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라도 오룡이 날뛰는 경우가 많았다.

16586678348913.jpg‘진짜배기들은 조용한 법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과 비슷한 연배에서 가장 강한 후기지수들은 아직 무림에 이름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수행을 쌓는 중이라는 것이다. 마교가 발호할 때가 되어서야 그 이름을 드높이며 오룡삼화 따위와는 별개의, 후기지수가 아닌 진짜 고수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고.

1658667836167.jpg“뭐야? 비켜!”

16586678348937.jpg“어이쿠!”

16586678348913.jpg“응?”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들보다 한발 늦게 4층에 오른 누군가가 기분 나쁜 듯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점소이를 밀쳤다. 내공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잘 단련된 무인의 우악스런 손길을 점소이가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점소이는 그대로 밀려 쓰러졌고, 천화가 한 팔로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면하게 해주었지만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자칫 어디 다치기라도 했다면 며칠이고 일을 쉬었어야 할 텐데, 상대는 미안한 기색조차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1658667836167.jpg“흥. 점소이가 손님 가는 길을 그리 막고 서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그러고서 오히려 점소이의 탓이라는 듯 성질을 부리며 다음 층으로 올랐다.

16586678348913.jpg‘팽무혁?’

그 모습에 천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신이 그리 정의로운 편은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자고로 제대로 된 무인은 일반인을 건드리지 않는 법인데.

16586678348913.jpg‘이 유통기한도 짧은 새끼가…….’

더구나 오대세가의 일원이자 하북팽가의 직계인 녀석의 덩치는 흑우가 울고 갈 만큼 우락부락했다. 일반인은 툭 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근육질의 몸을 가진 것이다. 하북팽가의 도법은 힘에서 나온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질 만큼 크고 단단한 몸뚱아리와 괴력이라 부를 만한 힘이 그들의 자랑이니까. 허나 그런 만큼,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면 무력 역시 급감하는 것이 하북팽가의 특징이기도 했다. 젊을 때야 힘이 넘치니 어지간하면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근본적인 깨달음과 변화가 없이는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세간에서는, 다른 가문들의 약진으로 오대세가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하북팽가가 될 것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할 정도였다.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팽통기한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그들의 한계를 조롱하기도 했고.

16586678348913.jpg‘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찼으니 자기가 사용하는 무공도 제대로 해석 못하는 거지.’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럼에도 오대세가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은 고인물들이 연구의 연구를 거듭한 결과, 원래는 팽통기한 따위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무공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다만 후대에 이어지며 그 패도적인 부분만 부각되며 무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잘못 해석된 채 전해졌기에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 원래의 의미도, 팽가의 무공을 제대로 복원해낼 방법도 모두 천화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팽무혁의 행동으로 가르쳐줄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다. 팽가주가 알았다면 팽무혁을 거꾸로 매달아 삼박사일 매질을 해도 시원찮을, 팽가에게 있어서는 천추의 한이 될 만한 순간이었다.

16586678348913.jpg“올라가지.”

16586678348937.jpg“예? 예??”

16586678348908.jpg“천화?”

그렇게 사라진 팽무혁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천화가 다시 입을 열자, 점소이와 설영이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소나기를 피해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굳이 저기를 올라간단 말인가? 딱히 용화지회 때문에 5층 출입을 금지시킨 것은 아니지만, 시비가 붙을 확률이 아주 높아 보이는데. 그러나 천화는 내뱉은 말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다. 겨우 몸을 가누는 점소이에게 금자 한 냥을 쥐어주고 앞장서서 5층으로 향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꽤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16586678348913.jpg“걱정 마. 일부러 이쪽에서 시비를 걸지는 않을 테니까. 모처럼 기분 내기로 한 건데, 이왕이면 가장 좋은 술과 음식을 먹는 게 좋지 않겠어?”

머뭇거리며 계단을 오르기를 주저하는 설영을 안심시키며 5층으로 마저 올랐다. 내부를 슥 둘러보자 용화지회의 선객들이 보였지만 일부러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창가 쪽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16586678348913.jpg“가장 좋은 술과 자신 있는 요리로 일단 세 개!”

주문까지 마친 뒤, 흑우에게 약속한 삼겹살 백 근과 요리들도 대량으로 준비시킨 뒤 선불로 지불했다. 꽤나 거금이 오가는 현장이었지만 후기지수들은 힐끔 천화와 설영을 쳐다볼 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 정도 돈이라면 그들 역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수준이니까. 도가 계열의 문파에 속해있는 도사라 해도 마찬가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온갖 사업과 각지에서 보내지는 후원금 등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각 문파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 여겨지는 이들에게 푼돈을 아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술과 요리가 나오는 동안 천화와 설영은 차분히 장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모처럼의 휴식을 즐겼다.

16586678364469.jpg“팽 형, 먼저 오셨군요.”

잠시 후, 속속 용화지회의 참석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팽무혁 이전에도 벌써 둘이나 되는 후기지수들이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뒤로도 두 사람이 차례로 걸어올라왔다. 남궁창룡 남궁훈. 거력패룡 팽무혁. 천뇌지룡 제갈무기. 매화선녀 이소란. 설산빙화 나예린. 거창하기 짝이 없는 별호와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무림의 동냥들이 각지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16586678364473.jpg“이제 다 온 게 아닌가요?”

무당신룡 청수 도장과 사천독룡 당문악은 아무래도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듯, 빙화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냉미녀 나예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남궁훈이 계단 아래를 힐끔 쳐다보며 조금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16586678364469.jpg“그래도 사천까지 온 것이라 문악이를 대신하여 여동생이 온다고는 했습니다만…….”

16586678348913.jpg‘역시.’

마지막 한 명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허나 천화는 곧 회합이 시작된다는 것보다도 여동생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당문악의 여동생이라면 조금 전 만난 바가 있으니까. 아무리 이곳이 사천땅의 끝자락이라지만, 당소련 정도 되는 아이가 올 일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뭔가 목적이 있거나, 최소 가장 좋고 비싼 곳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16586678369674.jpg“쀼우!!”

16586678369679.jpg“어맛?”

저벅 저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보다 먼저 은룡이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신수인 녀석이 천화와 설영의 기운을 포착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품 안에 자리 잡는 것은 무리였는지 당소련의 팔목에 감긴 채 길게 목을 빼낸 은룡의 반가운 인사에, 이화 중 한명인 매화선녀 이소란의 표정이 황홀해졌다. 은룡이의 귀여움에 반한 것이다. 그것은 표정부터 냉기를 풀풀 날린다는 나예린 또한 마찬가지. 그녀답지 않게 살풋 상기된 표정으로 은룡을 바라보았고, 은룡이가 반가워하는 천화와 설영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더불어 불쾌함이 가득 담긴 당소련의 눈빛 또한 천화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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