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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용화지회 (3) (332/481)

<88화> 용화지회 (3)2021.05.27.

16586678465547.jpg“아~. 잘 먹었다.”

16586678465553.jpg“천화,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거야?”

주루에서 푸짐하게 한상 차려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 천화에게 설영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는 무려 용화지회라 불리는 무림의 대표 후기지수 모임이니까. 천화는 거짓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아닌가? 괜한 해코지를 당하거나, 혈마의 후예라는 이름 외에도 좋지 않은 낙인이 찍힐까 염려스러웠다.

16586678465547.jpg“왜? 걱정 돼?”

16586678465553.jpg“뭐가 있는지도 모른다며? 혹여나 위험한 게 있으면…….”

16586678465547.jpg“보모들이 바빠지겠지.”

16586678465553.jpg“응?”

천화의 시큰둥한 대꾸에 설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86678465547.jpg“몰랐어? 용화지회니 어쩌니 해도, 결국 각 문파에서는 걔들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생각할걸? 어릴 때부터 영약 처먹여서 키워놓긴 했는데 아직 경험은 일천하니까. 재수 없으면 이제 막 일류에 올랐거나 이류인 놈들한테도 방심하다 훅 가는 거야. 쟤들은 그것도 모르고 힘 좀 세다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 드는 거고. 그러다 사파 놈들이 헤까닥 눈 돌아가면 칼침 맞기 딱 좋지. 암.”

16586678465553.jpg“그거야…….”

솔직히 설영도 동의하는 바였다. 용화지회의 구성원들은 기껏해야 약관이나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린 나이임에도 최소 일류 수준의 무위를 갖추고 있었지만, 영 어설퍼보였으니까. 내공이야 영약으로 키워놓았다지만, 재능 좀 뛰어나다고 사문에서 너무 감싸고 도느라 제대로 실전을 경험하거나 패배를 경험할 일이 없던 탓일 터였다. 겉멋은 잔뜩인데 막상 무림에 막 나섰을 때의 설영 자신과 견주어 봐도 뛰어나다 말하기는 어려웠다. 혈마화를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16586678465553.jpg‘저번에 봤던 무당신룡과 저 여인. 설산빙화라고 했나? 둘을 제외하면 해볼 만했겠어.’

물론 둘은 예외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두 사람은 절정의 초입에 들어선 강자들이니까. 단순히 영약만으로 키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진짜 천재들. 남궁세가의 소가주나 화산파의 이소란 역시 일류의 끝자락에 가까워진 이들이긴 하지만, 그 둘은 이미 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혈마화를 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설영과 붙더라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들이었다.

16586678465547.jpg“아무튼 그렇게 애써 키워놨는데 그렇게 뒈지면 허무하잖아? 저놈들이 자존심이 상할까 봐 멀리서 지켜보고 따르고 있지만, 여차하면 언제든 튀어나가서 도울 수 있게 도우미들이 대기하고 있을걸? 기척을 제법 잘 숨기고 있긴 하지만…….”

16586678473287.jpg[그놈들 주변 오십 장 밖에서 뒤따르고 있군요. 숫자는 그 할멈을 제외했을 때 다섯이고요.]

  혈마검까지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혈마검은 그들이 갈무리한 내공의 기운을 감지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지닌 특유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으니까. 사실 천화 역시도 미리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 그들을 감지해내는 것은 무리였다. 경험이야 어쨌든 일류 고수인 그들을 은밀히 뒤따를 수 있는 이들이 평범한 수준일 리 없지 않은가? 더구나 한 세가의 대를 이을 소가주도 여럿이었으니, 절정급의 고수들이 기운을 감추고 그들을 따르는 중인 것이다.

16586678465547.jpg‘그 정도면 어쨌든 괜찮겠지. 어차피 공을 세운다고 나한테 나눠줄 것도 아니고.’

무당신룡이 없다 하더라도 절정 고수만 일곱이다. 이 정도면 마교의 일개 각이 전력으로 덤빈다 해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중 한 명은 독과 암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당문의 소속이 아니던가? 적어도 몸을 빼내는 것은 가능 할 테고, 애초에 마교 역시도 전력으로 부딪히기에는 부담을 느끼겠지. 그들을 전멸시킬 자신이 없다면 애당초 맞붙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정파에서도 대표격인 문파의 일원들을 상대하기에는 부담이 컸으니까. 만약 그들을 살해하고 일부를 살려보낸다면, 그때는 진짜 마교와의 전면전이 벌어지거나 대규모 색출 작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문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후기지수를 잃은 분노는 생각보다 클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의 협행이 어떻게 진행될지, 또 끝이 날지는 천화조차 예상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은 제법 고생을 할 것이고, 그사이 자신과 설영은 그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천화가 일러준 장소는 그가 향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의 물길이었으니까.

16586678473287.jpg“자, 어서 타시오! 곧 출발합니다!”

그렇게 용화지회의 인원들을 따돌리고 다시 부두에 도착한 천화는 삯을 치르고 미리 협의해두었던 배에 올랐다. 거대 상단의 배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배만 빌려주는 운수업자들의 배였기에 그들을 비롯해 제법 많은 무림인들과 상인들이 올라탔고, 곧 닻을 올렸다. 물길을 따라 사천의 끝자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배에 오른 뒤,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진 선실에서 천화가 한잠 푹 자고 일어난 것은 배에 오른 지 약 한 시진쯤 지나 어스름이 깊어질 때쯤이었다. 설영은 은룡이가 언제 나타날까 불안한 마음으로 배의 후미를, 물속을 바라보았지만 정작 천화는 눈곱을 떼며 휘적휘적 걸어와 그녀의 옆에 설 뿐이었다.

16586678465547.jpg“뭘 그렇게 봐?”

16586678465553.jpg“은룡이는 언제 온다는 거야?”

태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지 꽤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문에 잡혀갔으니, 신수라 할지라도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천화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마치 곁에 있는 친구를 부르듯 가벼운 목소리로 은룡을 불러냈다.

16586678465547.jpg“은룡아, 나와.”

16586678473316.jpg“쀼!!”

16586678465553.jpg“?!”

그 순간, 허공에서 은룡이가 나타났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설영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역소환과 소환. 흑우가 그렇듯 은룡이 역시 언제든 역소환을 하여 모습을 감추게 만들거나 다시 곁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야 은룡이가 거부해서 불발이 되었다지만 녀석 역시 당소련보다는 설영이 더 좋았고, 무엇보다 여의주를 자신에게 준 천화에 대해 깊은 신뢰와 호감이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특별히 역소환에 응해준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16586678465547.jpg“기다려.”

16586678473316.jpg“쀼?”

하지만, 얼른 뛰어올라 안기려는 은룡을 천화가 손바닥을 펼쳐 가로막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6586678465547.jpg“정화.”

16586678473316.jpg“쀼! 쀼!”

  [신수 ‘은룡’이 미혼약을 정화했습니다.] [신수 ‘은룡’이 천리추종향을 정화했습니다.] [신수 ‘은룡’이…….] 녀석의 몸에 묻어있는 독과 이물질을 모두 정화시킨 것이다. 상태이상을 일으키는 독이나 약재, 심지어 천리추종향까지도 말이다. 일반 영물이라면 자신에게 상태이상을 일으키는 종류의 것들만 정화를 하겠지만, 천화는 이미 남만에서 은룡의 남다른 정화 능력을 확인한 상태였다. [정화(진화 중)][특수 능력] 자신의 체내와 체외에 적용된 모든 효과를 제거한다 신수가 가진 능력의 성장에 따라 추가적인 진화를 이룰 수 있다. - 상태이상을 포함한 자신에게 부여된 모든 효과 제거 그로 인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강화 효과까지 지워버릴 수도 있긴 했지만, 무협이라는 배경의 특성상 소위 버프라 불리는 강화 효과를 일으킬 만한 무언가는 드물었으니 상관없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주 기초단계의 정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은룡이 성장하고, 더 강해진다면 그만큼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를 정화시켜줄 수도 있겠지. 어떤 식으로 진화를 하든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아주 많을 터였기에, 천화는 은룡이를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16586678473316.jpg“쀼웃-!”

16586678465547.jpg“그래, 이리……? 야!”

사사삭- 그렇게 정화를 마친 은룡이 고향에 돌아온 듯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천화가 손을 뻗어 녀석을 마중했지만, 곧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은룡이 향한 곳은 천화의 손바닥 위가 아닌, 설영의 품속이었으니까. 꽤나 아늑한지 기분 좋은 소리까지 내는 녀석에게 차마 뭐라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어쨌든 고생을 하고 오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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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78465547.jpg‘지금쯤 난리가 났겠군.’

설영의 품에서 마음껏 응석을 부리는 은룡을 보며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소련이 있는 쪽에서는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났을 터였다. 은룡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을 테니까. 어떠한 우리도, 금나수의 수법으로도 잡을 수 없는 존재 자체의 이동이었기에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물론, 당소련의 성격상 주변을 한바탕 뒤집어놓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용화지회의 인원들과 함께라면 어느 정도 자제를 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폭급한 성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 분명 문제를 일으킬 테고, 그것은 천화가 알 바가 아니었다.

16586678465547.jpg‘장강이라……. 이 근처에 그게 있었지?’

이미 천화의 관심은 그들에게서 떠났으니까. 차후에 갚아주어야 할 것을 잊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눈앞의 상황에 더 집중해야 할 때였다. 굳이 흑우를 이용해 육로로 이동하지 않고,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 이동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기연. 사천에서 호북으로 향하는 이곳 장강의 뱃길에도 숨겨진 기연은 얼마든지 있었다. 천화의 머릿속에 배가 부두에 다시 정박하기 전까지 얻을 수 있는 기연의 목록이 촤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16586678465547.jpg‘일단은 수공부터 익혀야 하나?’

다만 그 기연들을 얻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단은 수공. 물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수공은, 대부분의 활동영역이 육지이고 전투 또한 육지나 배 위에서 벌어지는 무신지로의 특성상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종류의 무공이었다. 때문에 장강수로채 등의 수적들이 아닌 이상 익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시중에서 비급을 구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대문파에서도 수공 계열의 무공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당연히 천화가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미리 익힌 수공 또한 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에게는 무형보가 있으니까.

16586678465547.jpg“슬슬 느려지는군. 잠깐 놀다올게.”

16586678465553.jpg“응? 어딜……. 야! 천화!!”

풍덩! 수공을 익히자마자 범선만큼의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수 있기에, 배가 속력을 내지 못하는 구간에 이르러서야 천화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잠시 호텔에서 수영이라도 즐기고 오겠다는 듯한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고작 수영으로는 느려졌다 해도 배의 속도를 쫓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설영이 다급히 소리를 쳤지만, 이미 물속으로 떨어진 천화의 몸은 저만치 멀어진 상태였다. 어떻게 하지? 따라 뛰어내려야 하나? 천화를 따라 지하수로를 유영했을 만큼 자맥질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 역시 배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천화가 떨어진 곳에서 작은 물보라가 일어났다.

16586678465553.jpg“뭐, 뭐야. 저거?”

천화가 크게 발을 굴러 잠영을 시도하는가 싶더니,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인영이 빠르게 접근을 해오기 시작했다. 사실은 수공을 익혔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무형보(9성)의 숙련도가 0.2만큼 상승했습니다.] [무형보(9성)의 숙련도가 0.1만큼 상승했습니다.] 수공이 아닌 보법이었다. 물속에서 펼치는 보법이라니. 물의 저항력이 있다 한들 그 속에서 보법을 펼친다는 건 다른 무림인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무형보는 단순한 보법이 아니라, 힘을 발출하여 몸을 밀어내는 요령과도 같았으니까. 물속이라고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발바닥 전체에 넓게 퍼트린 내공을 밀어내며 추진력을 얻었고, 마찬가지로 손바닥에 모여든 내공이 노를 젓듯 물을 밀어내며 다시 한 번 속력을 올렸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저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속도를 올릴 수도 있을 터였다. 이 정도면 전문적인 수공에 비해서는 그 효율이나 속도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충분히 수공으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그 감각을 떠올리며 천화가 무형보를 수련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물속에서의 이동속도가 대폭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16586678465547.jpg‘이건…….’

분명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물살이 몸을 떠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천화는 당황하면서도 침착을 유지했고, 곧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16586678473316.jpg“쀼쀼!!”

은룡. 신수이자 수룡인 녀석이 물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변으로만 물살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도록 만들어, 더 빠르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다.

16586678465547.jpg‘써먹을 수 있겠는데?’

물을 조종하는 능력. 기본적으로 주변에 물이 있어야 하는 까닭에 자주 써먹기는 어렵겠지만, 이건 분명 써먹을 수가 있을 터였다. 그 힘과 범위, 지속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물에서는 은룡이, 땅에서는 흑우가 나서준다면 앞으로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되겠지. 물론 전투에서도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천화는 즉시 배 위로 뛰어올랐다. 그런 뒤, 은룡이와 함께 녀석이 쓸 수 있는 능력의 종류와 한계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곧 그것을 써먹을 수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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