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물귀신 잡는 고인물 (1) (333/481)

<89화> 물귀신 잡는 고인물 (1)2021.05.30.

배 위로 다시 올라온 천화는 은룡을 데리고 물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연구했다. 은룡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보였고, 천화가 의견을 제시하여 응용하는 등 신수로서의 능력을 파악했다. 반려동물 관리창에 나타나는 은룡의 보유 능력은 ‘물의 주인’으로만 표시되는 까닭이다. 무공으로 따지자면 삼재검법만 표기가 되어 있고, 그 안에 초식처럼 세부적인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16586678518124.jpg‘어쩌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표기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처음에는 그게 조금 답답했고, 막연해서 천화 역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자 흥미가 생겼다. 고인물 특유의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고인물의 시작은 상상력과 호기심이니까. 단지 있는 것을 사용하기만 해서는 고인물이라 불리기 어렵다. 스킬이나 아이템 설명 하나하나를 뜯어 살피고, 없는 것까지 찾아 살피는 노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고인물이라는 이름에 발이라도 걸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천화인 만큼, 순식간에 은룡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수많은 능력의 활용들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16586678518129.jpg“쀼우우우…….”

그렇게 약 반 시진 정도 실험에 동참하던 은룡이가 축 늘어졌다. 여의주의 힘을 흡수했다고는 하나, 아직 너무 어린 까닭에 힘이 다한 것이다. 가만히 쉰다면 회복이 되겠지만, 당장은 더 힘을 사용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6586678518124.jpg‘이 정도란 말이지…….’

그것마저 천화는 머릿속에 기록했다. 어느 정도까지 은룡이 힘을 쓸 수 있고, 또 얼마나 빨리 힘을 회복할 수 있는지 역시 아주 중요하니까.

16586678518139.jpg“이제 그만해! 은룡이가 힘들어하잖아.”

때문에 어차피 푹 쉬게 해줄 생각이긴 했지만, 설영이 얼른 녀석을 품에 안으로 싸고 돌았다.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천화는 은룡을 쥐어짜는 대신, 녀석이 보여준 능력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결합해 머릿속으로 가상의 상황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며칠 뒤 다가올 상황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은룡이 능력을 보인 후 정확히 삼 일. 배 위에서 딱히 할 일이 없던 터였기에 천화는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고, 혈마검을 이용해 운기조식을 취하며 남만에서 얻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영약과 내단을 통해 내공을 뻥튀기 시킨 상태였지만, 아무래도 차근히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한 것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힘을 쓰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당장 쓸 수 있는 무공 자체가 별로 없지만, 혈도를 단련하고 내기를 휘돌리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것들을 빌려 커다란 내공과 그것이 이동할 길은 뚫어내었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혈도가 열렸다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세맥에 흐르는 기운까지 통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두 칠성신단과 금혈진체보신단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작업에만 몇 달을 더 소요해야했겠지. [경고. 취기가 75%에 올랐습니다.] [신체 능력이 저하됩니다.] [반응 속도가 저하됩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마음껏 먹고 마셨다. 배 위에서 술판을 벌이는 것은 제법 운치가 있는 일이었지만, 이처럼 갑판 위에서 대놓고 술판을 벌이는 것은 이 배 안에서 천화가 유일했다.

16586678518143.jpg“쯧쯧, 저러다 강에 빠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구만.”

16586678518143.jpg“저러다가 골로 가는 친구들을 내 많이 봤지.”

16586678518143.jpg“아무리 배 위라지만, 무인이라는 자가 어찌 저리 무방비할 수 있는 겐지…….”

따라서 주변의 상인들과 무인들도 그런 천화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천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먹고 마셨다. 꼭 배를 타면 그런 사람이 한둘은 있었다.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양, 제 안 방처럼 갑판 위에서 술을 퍼마시다가 물속에 빠지는 이들. 간혹 운이 좋은 자들은 건져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많아지는 통에 이미 선주가 물에 빠지면 구해주지 않을 것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기에, 취한 채 물에 빠지는 순간 죽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터였다. 장강의 거센 물살 속으로 잘못 구하러 들어갔다가는 구하려던 이들까지 죽을 테니까 말이다.

16586678518143.jpg“내일은 수로채의 관문을 지날 것이니 적당히 드십쇼. 혹여 취해서 행패라도 부리면 우린 그쪽을 버릴 거유.”

하지만 천화는 밤이 늦도록, 모든 이들이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할 때까지 계속해서 마셔댔다. 다음 날 장강수로채가 자리 잡은 관문을 지나기에 예민해진 선원들이 경고를 남기기도 했지만, 알 바 아니다. 그 말처럼 수로채의 무인들과 시비라도 붙거나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면 정말 모르는 척을 하며 그들에게 천화를 넘길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또한 나쁜 일은 아니다. 수로채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천화의 목적은 고작 수로채의 재물 따위가 아니었다.

16586678518124.jpg‘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일류 고수쯤 되면 내공을 이용해 얼마든지 주독을 몰아낼 수 있을 텐데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계속해서 술을 몇 병이나 비워내던 천화가 슬쩍 강물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슬슬 ‘조건’을 채운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잠잠한 것이다.

16586678518124.jpg‘어때? 반응 없어?’

게슴츠레하게 눈을 반개한 천화가 심령이 연결된 혈마검에게 묻자, 녀석이 주변의 기운들을 살피며 말을 전했다.

16586678518143.jpg[예. 아직까지는……. 어? 옵니다. 정말 나타났습니다!]

  배 위뿐 아니라 배 밑과 물속까지 샅샅이 훑은 혈마검이 돌연 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천화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기에 흥분을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그만큼 천화에게는 경고의 의미가 될 터였다. 휘릭! 물속에서 솟구친 무언가가 천화가 있던 자리를 할퀴였다. 갈고리. 굵고 단단한 밧줄에 연결된 갈고리가 허공을 채었다.

16586678518124.jpg“히끅!”

그러나 천화는 못 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짝 비틀거리며 그것을 피해냈다. 취권의 일종이었으나 고불과 상대할 때처럼 공격적인 활용은 아니었다.

16586678522469.jpg

  첨벙! 그사이 물에서 튀어나왔던 무언가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낚아챌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실패하자 얼른 물속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16586678518124.jpg“아, 취한다.”

한번 실패했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기에 천화는 오히려 배의 난간 쪽으로 다가서며 바지춤을 움켜쥐었다.

16586678518124.jpg“오줌이나 누어야겠다.”

주섬주섬 바지춤을 끌러내리는 시늉을 했다. 배 안에도 변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긴 했지만 이미 설영은 쉬러 내려간 까닭에 갑판 위에는 천화뿐이었으니 노상방뇨를 하겠다는 것이다. 쐐액! 그 순간, 다시 한 번 물속에서 무언가가 튀어올랐다. 이대로면 천화의 오줌 줄기를 맞을 판이기 때문일까, 조금 전보다도 빠르고 거칠게 쏘아진 갈고리가 천화의 몸에 박혀들었다.

16586678518124.jpg“잡았다, 요놈.”

그 순간, 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미 몸속의 주독은 모두 몰아낸 상태다. 힘은 굳건했고, 내공은 쾌속하게 몸속을 휘돌았다. 상대가 날린 갈고리는 예리했지만, 천화의 손에 끼워진 비영투를 뚫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물건이 괜히 기물이라 물리며 무림인들의 보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니니까.

16586678518124.jpg“으랏차차!”

휘익!!! 천화는 갈고리를 잡아챈 그 상태로 낚시를 하듯 힘을 주어 당겼다. 이것을 쏘아낸 흉수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16586678518143.jpg“큭?!”

기름을 먹여 단단하게 강화시킨 밧줄이 천화의 힘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까닭에, 갈고리를 던지기 위해 뛰어올랐던 상대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천화가 갈고리를 움켜쥐는 순간 줄을 놓아버렸다면 도망 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까닭에, 애써서 만들고 관리한 무기를 버리지 못한 망설임 때문에 그대로 갑판 위까지 딸려오게 되었다.

16586678518143.jpg“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었구나!”

그러나 무방비로 날아든 것은 아니다. 이미 몸이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상대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내공을 끌어모아 천화에게 부딪혀갔다. 장심에 모아진 웅후한 내공이 천화를 분쇄할 듯, 거칠게 후려쳤다.

16586678518124.jpg“에헤이! 파랑십이권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지!”

16586678518143.jpg“!!”

허나 전혀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혀를 차는 천화의 말에 상대가 크게 당황했다. 내지르던 장법이 흔들렸고 전해지던 내력이 일순간 뚝 끊겼다. 그만큼 상대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16586678518124.jpg“그래서 상대가 파도에 휩쓸리기나 하겠어? 처음은 이렇게! 어?”

퍼엉!! 그 틈을 천화가 놓칠 리 없었다. 상대가 사용한 무공을 똑같이 사용하며 순간적으로 내공을 폭발시켰다. 단순히 형태만을 따온 것이 아니다. 내기의 운용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다른 것은 담겨있는 내공의 양과 그 성질뿐. 그렇기에 상대의 놀람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16586678518143.jpg“쿨럭!”

이전이었다면 공격을 회피했을 터였다. 파랑십이권은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낸 해남파의 무공이었고, 그 모든 초식을 알고 있는 천화라면 ‘피하고 때린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식대로 행동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힌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16586678518143.jpg“웬 놈이냐!!”

일단 내공부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수공이라는 특수한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물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동급, 혹은 한 단계 위의 경지를 지닌 무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상태에서는 확실한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어느 정도 이득을 취할 수 있겠지만 천화의 하체는 굳건했다. 철썩이는 장강의 물결에 배가 흔들려도 그 자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을 제대로 쏟아낼 수 있었고, 상대방의 손해를 일으킨 것이다.

16586678518143.jpg“어떻게 이 무공을 아는 거지?”

하지만 상대 역시 다시 물속으로 달아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승산이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천화가 자신이 사용한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이 영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해남파는 세외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중원에서도 외딴 지역인 해남도에 있는 문파였으니까. 물론 호사가들이 문파와 무공의 순위를 매길 때 구파일방 오대 세가 다음으로 손에 꼽는 곳 중 하나였지만, 중원행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무공 자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검문을 지향하는 문파이기에, 자신이 사용한 권법은 특히나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16586678518124.jpg“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둑놈이 무슨 깡으로 그렇게 캐묻는 거냐?”

천화는 그런 상대의 반응이 더 어이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안다는 반응이라니?

16586678518143.jpg“흥! 물속에 처박히고도 말을 하지 않는지 보자!”

천화가 코웃음을 치자 상대가 등에 매고 있던 검을 꺼내들었다. 조금 전은 다급하게 손을 쓰느라 권법으로 맞섰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검을 이용해 상대해주겠다는 것이다. 쿠웅! 달려듦과 동시에 묵직한 힘이 깃든 진각이 갑판을 때렸다. 가뜩이나 흔들리던 배가 크게 출렁거릴 만큼 상당한 위력이었다. 그만큼 내공의 소모도 클 테지만 덕분에 천화의 균형도 흐트러졌다. 배 위에서 싸우는 자들의 주된 수법 중 하나. 상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평지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싸우려는 것이다. 큰 소음과 충격으로 선실 안에 있던 무인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녀석은 그 안에 천화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천화가 내공을 갈무리하여 놈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16586678518124.jpg“어설프게 무공을 도둑질한 주제에 가지가지하는군.”

16586678518143.jpg“!!”

그 순간, 천화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놈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해남파의 무공을 얻어배우게 되었지만, 그들의 적과 싸우는 것이 두려워 몰래 도망친 수적 무리. 사실 천화가 용화지회에 제보 아닌 제보를 했던 기사를 만들어낸 이들은 바로 이놈과 그 무리들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마교가 놈들의 흉내를 내어 일을 꾸미고 있었을 뿐이다.

16586678518124.jpg“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니까.”

배가 출렁거리는 틈을 타 달려드는 상대를 향해 천화가 걸음을 내딛었다. 흐트러진 균형? 사실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는 수상전뿐 아니라 산전수전공중전까지 안 겪어본 것이 없는 고인물이었으니까. 단 한 걸음 만에 균형을 되찾았고, 기울어진 배를 따라 미끄러지듯 달려드는 놈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남해삼십육검. 해남파의 독문 무공이자 대표 검공이 천화의 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놈이 배운 반쪽짜리가 아닌, 오의와 극의를 담은 진짜배기가.

1658667852975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