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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장강수로채 (1) (336/481)

<92화> 장강수로채 (1)2021.06.06.

배로 돌아오는 천화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빨랐다. 아무리 은룡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특별히 힘을 더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물살을 가르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다. 어린갑. 물고기의 비늘을 본떠 만든 얇은 갑옷을 입은 덕분이었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물귀신들이 어린갑을 두 벌이나 갖추고 있었기에, 천화는 그중 한 벌을 착용한 상태였다. 레벨이 레벨인지라 어린갑의 등급은 고급에 불과했지만, 무신지로에서도 100레벨 구간에서는 기껏해야 명품 등급을 두어 개 갖추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이 정도면 훌륭했다. 더구나 어린갑은 관통 저항 이외에 수중에서의 이동 속도 향상이 붙은 몇 안 되는 수중 특화 장비였으니, 그 가치는 명품 등급에 비견될 정도였다.

16586678774688.jpg“다녀왔어!”

그렇게 다시 배를 따라잡은 천화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설영에게 웃어보였다. 쉬고 있으라고는 했지만 걱정이 되었는지 선뜻 선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설영이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천화를 맞이했다. @ 밤사이 제법 큰 일이 있었지만 천화와 설영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날을 보냈다. 다른 무인들과 상인들도 그저 천화가 밤에 술판을 벌였다는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 이후로 딱히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기에, 좋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보는 것 이외에 딱히 시비가 붙거나 문제가 생길 일은 없던 것이다. 곧이어 지나치게 될, 장강수로채의 영역을 주시하고 긴장할 따름이었다.

16586678774694.jpg“나타났다!”

16586678774694.jpg“속도를 줄여라!”

16586678774694.jpg“무인분들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주십시오!”

그리고 점심나절이 지났을 때, 장강수로채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린 배가 한 척 그들 앞으로 나타났다. 선원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며 배의 속도를 조절했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무인들과 상인들을 선실 안으로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당장 배 안에 뛰어난 무인이 있어 그들을 물리칠 수도 있겠지만,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해야하는 것은 자신들이니까.

16586678774694.jpg“들어가주시죠. 곧 수로채의 배와 접촉할 겁니다.‘

16586678774688.jpg“뭐, 그러죠.”

수로채는 그저 하나의 무리가 아니다. 총 18개의 수채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단이었다. 그중 하나가 공격을 받는다면 당연히 다른 수채에서 복수를 하려 들 테고, 각 수로채주들은 형제의 연을 맺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수습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단거리 운행만을 할 것이 아니라면 장강의 운행을 거의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 전에 습격을 받아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지. 그런 관계로 천화 역시 굳이 소란을 일으켜 이들에게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줄 것도 아니니까.

16586678774688.jpg‘나만 안 건드리면 뭐.’

설영 역시 마찬가지다. 장강수로채가 무분별한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지만 중원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물길을 틀어막고 통행료 장사를 하고 있음에도 정파의 명문들이 그냥 놔두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물위로, 물속으로 도망친다는 난해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무공 실력이 출중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들을 완벽히 토벌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토벌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니까. 장강수로채에서는 일류 고수만 하더라도 꽤나 많이 보유한 데다, 각 수로채의 간부쯤 되는 인물들이라면 절정에 가깝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것이다. 바로 같은 이유로 산적들의 집단인 녹림 역시 문제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16586678774694.jpg“거기, 정지!”

천화와 설영이 배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렁찬 수적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마찰이나 저항 따위는 없다. 곧 배가 아예 닻을 내리며 멈춰섰고, 장강수로채의 무인들이 배를 넘어 올라탔다.

16586678774694.jpg“아이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16586678774694.jpg“흐음. 장선주, 또 보는군. 일이 잘 되나 보오?”

16586678774694.jpg“하하, 이게 다 장강의 영웅들께서 잘 지켜주시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여기, 제 성의이니 받아주시지요.”

이 물길을 이용해 종종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는 선주가 나서서 전낭을 쥐어주며 그들을 달랬다. 장강에 주인이 어디 있겠냐마는, 일단 그들이 자리잡은 이상 적당한 통행료를 지불하고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이 관례였기에 몇 번을 오가든 일정한 금액을 쥐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전낭을 받고 너스레를 떨며 사라져야 할 사내가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16586678774694.jpg“혹, 무슨 문제라도……?”

생각 같아서는 돈 받았으니 얼른 꺼져! 하고 소리치고 싶겠지만 선주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보았다.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터질까 두려워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의중을 살폈다.

16586678774694.jpg“가만 생각해보니 말이오.”

16586678774694.jpg“예?”

16586678774694.jpg“우리 사이에 서로의 경조사를 알리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다 싶구려.”

16586678774694.jpg“그게 무슨…….”

16586678774694.jpg“조만간 우리 채주께서 생신을 맞으시는데, 서로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 하는 말이외다.”

16586678774694.jpg“아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을 주시지요! 작지만 제 성의이니 채주께 말씀 좀 잘해 주십시오. 헤헤.”

노골적인 추가적인 금전 요구였지만, 선주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얼른 전낭을 끌러 몇 냥을 더 쥐어주었다. 적지 않은 돈이라 이러고 나면 이번 운행을 마치고도 남는 것이 거의 없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개 선주인 그가 장강수로채와 척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16586678774694.jpg“꼭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마지못하는 척 그 돈을 받아들고 슬쩍 세어본 사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선실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살짝 표정을 굳히고선 여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16586678774694.jpg“흐음. 이 정도면 채주께 당과나 사다드려야겠구려.”

16586678774694.jpg“나으리, 이 장모의 형편도 생각해주십시오. 그게 제가 지금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차후에 운행을 나올 때 조금 더 마련해볼 테니…….”

돈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운행 때마다 통행료를 받는 주제에 이런 추가금을 요구할 경우, 아무리 장강수로채라 할지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선주를 쳐다보았다.

16586678774694.jpg“누가 장 선주에게 돈을 더 달라고 했소? 이것도 인연인데 다른 이들이 혹 축하를 해주실지 물어보면 되지 않소?”

16586678774688.jpg‘이 새끼가 미쳤나?’

그 말을 가만히 안에서 듣고 있던 천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선주뿐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삥을 뜯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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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장강의 뱃길이 수로채의 영역이라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선주에게서 받는 통행료와 축하금도 적지 않을 텐데 승객의 주머니까지 노리다니? 급전이 필요한 중대한 상황이 아니라면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16586678774694.jpg“아무리 그래도 승객들에게까지…….”

16586678774694.jpg“그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소이까?”

16586678774694.jpg“컥!”

선주가 당황하며 그를 말려보려 했지만, 진득하게 쏘아진 살기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인 선주가 일류 고수인 그의 살기를 받아내기는 힘든 것이다.

16586678790457.jpg“멈추시오!”

16586678774688.jpg“어이구야.”

그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선실에서 누군가 튀어나갔다. 천화는 아니었다. 근래에 수로채에 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이번 달 상납금을 맞추지 못한 것인지 조금 심한 행사를 하고 있긴 했다. 그렇다지만, 승객들에게 돈을 걷는다 해도 기껏해야 한두냥 정도가 고작일 터였다. 과하기는 하나 승객들도 못 내어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16586678774688.jpg‘물론 예전에 걸렸으면 생일빵을 전해주러 달려갔겠지만…….’

그런 짓을 잘못하다 수로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거 천화 같은 고수에게 걸린다면 생일 선물 대신 생일빵만 죽도록 처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금 무림에 그만한 인물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자가 있다면 능히 부와 세력을 거느리고 배를 따로 몰 것이기에 저들도 조심했겠지.

16586678790457.jpg“거 듣자하니 너무하시는구려! 언제부터 수로채가 이리 무뢰배 집단이 되었소!”

그렇기에 일을 벌일 것일 터였다. 물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의 전부가 채주에게 가지는 않겠지. 적당히 자기들끼리 나눠가진 후,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채주에게 바칠 게 분명했지만 변수가 생겼다. 꼭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끼어드는 놈들이 있으니까.

16586678774688.jpg‘도사인가?’

하얀 도포를 나풀대며 선실에서 갑판 위로 뛰어오른 이의 뒷모습을 보며 천화가 혀를 찼다. 자신 역시 피 같은 돈을 쉽게 내줄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저렇게 전면으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 단지 살기를 날리고, 적당히 무력행사를 하며 알아서 물러나게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나서면 수로채의 놈들도 자존심상 쉽게 물러날 수 없게 된다. 대번에 수로채의 인원들이 표정을 굳혔고, 뛰어든 사내는 그들을 엄히 꾸짖기 시작했다.

16586678790457.jpg“모두가 이용하는 수로를 차지하고 부당한 통행료를 받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선량한 백성들을 갈취하려 들다니, 그러고도 그대들이 무인이라 할 수 있단 말이오!”

흔해 빠진 정파의 협객들의 단골 멘트였다. 저러다 얻어터지고 물에 던져지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16586678774688.jpg“어? 저놈이었어?”

벌어질 상황이 뻔했기에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천화가, 갑판 위로 올라선 도사를 알아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남다른 체격과 도포에 수놓아진 구름 문양의 수를 알아본 것이다. 지금까지도 워낙 잘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데다, 배에 오른 이후에도 선실에 처박혀 나서지 않았던 터라 천화도 이제야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가 수적이고 누가 도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거체를 지닌 곤륜의 도사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천잠거룡 무진. 아직은 강호에 이름을 알리지 않아 오룡에는 들지 못하지만, 무당신룡과 함께 후기지수의 칭호를 벗어버리고 진정한 고수이자 마교의 공포로 자리잡는 이름이다. 그러니 어찌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나?

16586678774688.jpg‘이러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그렇기에 천화도 고민을 했다. 어째서 저 녀석이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으니까. 만약 저자가 무진이 맞다면, 여기서 나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였다.

16586678774694.jpg“곤륜의 도사라고 우리가 무서워할 것 같나? 흥! 사문의 이름값을 믿고 설치나 본데, 도사면 도사답게 산 속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속세에 나와서 남의 행사를 방해질이야?”

16586678774694.jpg“도사놈이 무슨 몸뚱아리가 저리 커? 어지간히도 고기를 처먹었나 보구나!”

16586678774688.jpg“어이구야.”

되레 호통을 치는 수로채의 인물을 보며 천화가 다시 탄성을 토했다. 아까는 쓸데없는 객기로 나서는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는 그에 대한 것이다. 정말 무진이 맞다면, 덩치와 힘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곤륜 무학의 정수를 한 몸에 이어받은 고수이자 천재였으니까.

16586678790457.jpg“남의 돈을 갈취하는 것이 어찌 행사가 될 수 있단 말이오! 자잘한 수적들을 관리하는 까닭에 자리를 보전하는 것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양민들을 괴롭힌다면 무림동도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16586678774694.jpg“뭐? 푸하하하하하!! 얘들아, 이 도사께서 우리를 인정해주고 있으시단다. 우리를 무슨 관문지기로 여기나 본데…….”

그것을 모르는 상대는 강호초출다운 어설픈 소리를 늘어놓는 무진을 조롱했다.

16586678774694.jpg“그들이 우리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말코 도사 놈아. 구파일방이 아니라 무림맹을 결성해 쳐들어온들 우리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

그들 역시 크게 기분이 상한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장강수로채가 장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대외적으로야 무진의 말처럼 자잘한 수적들을 몰아내주는 조건으로 암묵적인 인정을 받아 운영되는 것이지만, 실상은 누구도 그들과 전쟁을 벌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니까. 물길 한가운데에 있는 외딴 섬들을 거점으로 삼는 수로채의 특성상,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장강수로채의 인원들은 하나같이 고도의 수공을 익힌 데다, 물길 또한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을 육지의 문파들이 공격하려고 한다면 자신들 역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공격을 못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것이 아니었고, 구파일방의 위세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적들은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건드렸으니 상대의 반응도 당연했다. 게다가 녀석이 선실 안쪽을 노려보며 소리치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6586678774694.jpg“그리고 저들이 우리 채주의 선물을 알아서 챙겨주겠다는데, 네놈이 무슨 권리로 그것을 막는다는 것이냐? 거기! 우리가 강도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나서보아라!”

선실에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할 거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러고 싶은 이들이 있을 리야 없지만, 진득한 살기를 풀어내며 소리치자 벌써부터 겁을 먹은 이들이 생겨났다. 일단 상인들의 고민이 컸다. 그들 중에는 단발성으로 이곳을 오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다녀야 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무진이 저들을 물리칠 수 있든 아니든, 결국 그들은 또 다시 저들과 마주쳐야만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리고 무인들. 그들의 고민은 조금 달랐다. 상인들만큼 꼭 이 길을 택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무진의 무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천화와 설영조차 여전히 무진의 무공 수위를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작해야 삼류나 이류 수준인 그들이 무진을 파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괜히 무진의 편을 들었다가 객사를 할까 싶은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16586678774688.jpg“까고 있네.”

그때, 누군가 그들을 비웃으며 갑판으로 올랐다. 다름 아닌 천화였다. 그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선실로 날아든 살기보다 수 배는 더 진득하고 사나운 살기를 놈에게 집중시켰다.

16586678774688.jpg“나를 노리는 건 용서할 수 없지만, 내 돈을 노리는 건 더 용서할 수 없다!!”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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