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해남파 (2) (340/481)

<96화> 해남파 (2)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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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수로 13채주 장시춘의 은밀한 비밀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마초 같은 그의 체구로 여장을 하고 다니니 결국 들통이 나지 않을 수 없어 보였지만, 설마하니 수로채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에 그의 기행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발각되어 채주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지. 장강수로채주들끼리는 형제의 연을 맺어 서로를 각별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사내다움에 반한 것이니까. 형제의 연을 맺었을 뿐, 남매의 연을 맺은 것은 아니라며 장시춘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천화는 최후의 협상 카드로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그 취미를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손을 본 순간 알아차렸다. 매끄럽게 단정된 그의 손톱으로 보아 벌써 손톱 정리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으니까.

1658667905357.jpg[이렇게 하시죠. 마침 저희가 도운 것이 있으니…….]

전음을 받고서 고민하는 채주에게 천화는 몇 마리 말을 더 전했다. 그들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끔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리고 장시춘은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였다.

16586679053574.jpg“내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 비록 정과 사가 분명하나 은혜를 모르는 것은 금수와 다름없으니, 내 그대를 형제로 받아들이겠네.”

16586679053574.jpg“채주!”

16586679053574.jpg“시끄럽다! 형제의 일을 대신해준 것이니 어찌 그 허물을 탓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일은 내 형제가 나를 대신하여 못난 부하들을 꾸짖은 것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리고 형제를 속이고 제 주머니를 채우려 한 저 탐욕스러운 것들은 차후 내가 직접 문책할 것이다!”

천화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수로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같은 무림인으로서 인정하고, 의형제의 연을 맺는다는 것이기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다. 무림인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의형제를 맺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장강수로 13채주 장시춘과의 우호도가 증가합니다.] [장강수로채와의 관계가 협력으로 변화합니다.] 물론 눈속임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정말 의형제를 맺는다거나, 장강수로채와의 관계가 우호, 신뢰로 올라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우호적인 사이가 될 수 있었다.

16586679053587.jpg“천화 형님. 어찌 수로채의 무인과…….”

형제의 형제는 자신과도 형제가 되는 것이기에 무진이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꼭 그에게 장시춘과 형제처럼 지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전음을 이용해 가볍게 달래었고,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1658667905357.jpg“이처럼 사.내.다.운. 형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천화는 은근히 장시춘을 갈구었다. 여차하면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경고 아닌 경고를 날리며 빙긋 웃어보였다.

1658667905357.jpg“이것도 인연이니 형님께 한 가지 꾀를 드리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16586679053574.jpg“꾀라고?”

장시춘을 상대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1658667905357.jpg“예. 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대 장강수로채를 습격할 정도면 어지간히 중한 인물이 잡혀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대로 저자를 수채 안에 잡아둔다면 언제든, 어쩌면 오늘밤에도 다시 습격을 해올지 모르는 일일 터. 그렇다면 오히려 저들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16586679053574.jpg“그게 무슨 말이지? 소상히 이야기해보거라.”

1658667905357.jpg“오다가 보니 물살이 거세어 와류가 형성되는 물길이 있더군요. 그곳에 저자가 갇힌 철창을 두는 것입니다. 단전을 제압해둔 상태에서 그리한다면, 자칫 습격을 가하다가 저 자가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상대도 알 테니 섣불리 습격을 시도하지 못하겠지요. 거기에 약간의 장치만 더한다면 적은 인원으로도 효과적으로 감시를 하고, 적의 공격도 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586679053574.jpg“호오, 와류의 위에 철창을 둔다?”

그 말에 혹하는 것은 당연했다. 천화의 말처럼 수채 안에 저자를 잡아두는 것은 적의 습격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이니, 설령 재차 습격을 하더라도 수채가 아닌 다른 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철창이 와류 속으로 빠져들게끔 장치를 꾸민다면 적들도 함부로 공격을 해오지 못할 것이다. 특히나 이 근방의 와류라면 수공에 능한 수로채의 무인들조차 한번 빠지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저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설사 내공의 금제가 풀린다 하더라도 철창에 갇힌 상태라면 부수고 나오기도 전에 와류에 휩쓸려버리겠지.

16586679053574.jpg“그거 묘안이군. 즉시 실행하라!”

16586679053574.jpg“예! 채주!”

실로 묘안이 아닐 수 없기에 장시춘이 눈을 반짝거렸다.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는 천화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도 훌륭한 계략이었기에 즉시 그것을 명했고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화를 완전히 믿기는 어려웠다. 곤륜의 도사와 함께 다닌다면 정파의 인물이 분명할진데, 어째서 자신과 형제의 연까지 맺어가며 도와주려는 것일까? 자신으로 인해 피해받을지도 모르는 선주와 상인들을 돕기 위해?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천화의 능글거리는 성격으로 보았을 때 그것만은 아닐 터였다.

16586679053574.jpg“꾀를 빌려주었으니 나도 뭔가를 주어야겠지. 혹 원하는 것이 있나?”

때문에 장시춘은 아예 대놓고 천화에게 원하는 바를 물어보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이럴 때 바라는 것이 없다고, 형제를 도운 것인데 무슨 보상을 바라겠냐고 이야기하는 것이 답일 터였다. 그러나 장시춘은, 장강수로채주는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더 의심을 사겠지. 그렇기에 천화는 씨익 웃으며 슬쩍 운을 띄웠다.

1658667905357.jpg“따로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 아우가 장강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라…….”

16586679053574.jpg“좋아. 그럼 내 소개장을 써주지. 다른 형제들에게 보여준다면 그들 또한 아우를 각별하게 대해줄 것이네.”

장시춘은 그 말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장강수로채주의 소개장이라면 별도의 마찰이나 통행료 없이 장강을 마음대로 들고 날 수 있는 마패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을 위해 줄을 대거나 접근해오는 이들이야 얼마든지 있었기에, 그 역시 천화가 처음부터 그것을 노렸다고 짐작했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16586679053574.jpg“오늘은 새로운 형제를 맞아들인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형제들을 잃은 슬픈 날이기도 하다. 작업을 마치는 대로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술잔을 들어 그들의 넋을 기리자!”

16586679057647.jpg“예!”

16586679060652.jpg“무우!!!”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장시춘은 술과 고기를 풀어 형제들을 달랬다. 복면인들의 습격으로 적지 않은 형제들이 죽어나갔으니 그 울적한 마음도 풀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그들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 테니까. 천화의 계략 덕분에 밤새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에, 적당히 먹고 마시는 것은 가능할 터였다. 물론 여차하면 내공으로 취기를 몰아낼 수 있다는 것과, 술자리를 통해 천화의 진의를 읽어내겠다는 생각이 얽혀있는 것이었지만, 천화도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고작 술기운에 취해 진심을 털어놓기에는 그 역시 무림에서 구른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새벽이 깊을 때까지 장강수로채의 무인들과 천화 일행은 술잔을 기울였다. 인피면구를 쓴 까닭에 다행히 설영에게 접근하거나 치근거리는 놈들은 없었고, 무진 역시 술잔을 받기만 했을 뿐 마시지는 않았기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와류가 생성되는 지역은 외부에서도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었기에 복면인들의 재습격 또한 없었다. 그렇게 천화 일행과 장강수로채의 무인들의 술자리는 묘한 기류 속에서 무탈히 밤을 넘겨 끝이 났다. @

16586679053574.jpg“대협, 돌아오셨군요!”

천화와 설영, 무진이 장강수로채의 배를 얻어타고 처음의 장소로 돌아온 것은 아침이 되어서였다. 해장술을 한잔 하고 가라는 장시춘의 청이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정중히 거절한 그들은, 빠르게 강물을 가르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선주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16586679053574.jpg“가신 일은 잘되셨는지…….”

장강수로채의 배를 얻어 타고 무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조하게 말을 건네자, 천화가 대답 대신 장시춘이 넘겨준 소개장을 내보였다. [장강수로채주의 소개장][희귀] 장강수로채 13채주 장시춘이 직접 작성한 소개장. 소지자의 신분을 보증하고 통행료를 면제 받을 수 있다. - 장강수로채 관문에 한하여 통행료 면제 - 장강수로채 관문에 한하여 검문 없이 통과 가능 - 장강수로채 무인들과의 친밀도 상승

16586679053574.jpg“아아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것을 확인한 선주는 소개장을 넘겨주겠다는 것이 아님에도 거의 땅에 머리를 처박고 감사를 표했다. 소개장이 있다면 평생 통행료를 면제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번 일이 무사히 넘어간 것만으로도, 해코지를 당할 위험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16586679060673.jpg“정말 괜찮은 거야?”

그렇게 목적을 달성했음을 인증하고 맡겨두었던 전낭을 돌려받은 천화에게 설영이 다가와 은근하게 물었다. 명색이 사파인 장강수로채와 인연을 맺은 것이 괜찮은 것인지를 묻는 게 아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청의인들과 척을 지게 된 것을 우려하는 것도 아니다. 설영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떠나온 수채에 홀로 남겨진 은룡 때문이었다. 수채를 떠나오면서, 천화가 은밀하게 은룡에게 임무를 맡겨 남긴 것이다.

1658667905357.jpg“괜찮아. 있는 줄도 모를 테니까.”

이전에 당문의 손아귀에 들어가서도 멀쩡하던 은룡이었으니 은밀하게 숨겨두고 온 지금은 더욱 문제가 생길 소지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이다. 신수라고는 하나, 너무 약고 여려보였으니까. 하지만 천화는 걱정 말라는 듯 설영을 다독였고, 그 옆에 선 무진은 고민이 있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16586679053587.jpg“……형님. 저는 곤륜의 도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적과 형제가 되는 건…….”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기로 한 천화가 수적과 형제의 연을 맺은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기에 천화는 너털웃음을 터트린 뒤, 그 관계가 오직 천화와 장시춘에게만 적용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조차 단지 형식적인 관계일 뿐이라고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무진이 자신과 천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기에 그리 설명한 것이다.

16586679053587.jpg“그런 것이군요. 강호의 은원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사문에 누를 끼치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하하.”

그제야 무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화도 그런 무진의 순수함이 싫지 않았다. 당금 강호에 무진과 같은 강함을 지니고서도 저와 같은 순수함을 지닌 이가 몇이나 있겠나? 심마에 빠져 백치가 된 것이 아니라면 없다고 봐야하겠지.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고 천화와 설영, 무진은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배를 타고 흘러갔다.

16586679053574.jpg“모두 조심하십시오. 근래에 이 근방에서 새로운 수적들이 날뛰고 있다고 합니다.”

선주가 모두에게 경고의 말을 전한 것은 그날 저녁이 되어서였다. 본디 장강에는 수많은 수적들이 있었으나 장강수로채가 세워지며 대부분 그들에게 흡수되거나 토벌되었다. 허나 근래에 용왕채라 스스로를 칭하는 수적 집단이 생겨났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장강수로채처럼 수채를 세워 통행료를 걷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출현하여 선주들을 압박하기에 선주의 표정은 장강수로채를 앞두었을 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해졌다.

16586679060673.jpg“천화?”

그 말을 들은 설영이 천화를 돌아보았다. 장강수로채를 두려워하지 않는 수적들이라니? 한 가지 의심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청의의 복면인들. 혹시 그들이 용왕채의 수적들이 아니었을까?

1658667905357.jpg“잠깐 다녀올게.”

천화는 대답 대신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아마 용왕채가 이 배를 공격해오는 일은 없을 터였다. 중요한 인질이 수로채에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 영업 따위를 할 정신이 없겠지. 그것을 알기에, 천화는 그들에게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것도 단신으로.

16586679060673.jpg“나도 갈게.”

16586679053587.jpg“저도 가겠습니다, 형님. 어디를 가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험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설영과 무진이 함께 갈 것이라 의사를 밝혔지만, 천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8667905357.jpg“아니야. 이건 나 혼자 가야 해. 오직 나만, 나 혼자 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거든.”

16586679060673.jpg“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다면 확실히 전력 상승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천화는 싸우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있을 경우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지금부터 천화가 하려는 일은 다름 아닌 해남파, 그 자체를 손에 넣으려는 것이니까. 천화의 단호한 태도에 설영이 입을 다물었고, 무진 또한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녀석에게 천화가 빙긋 웃어 보이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1658667905357.jpg“걱정 마. 싸우려고 가는 게 아니니까. 아침까지는 돌아오지. 어쩌면 그것도 걸리지 않을 거야.”

16586679060673.jpg“……조심해.”

16586679053587.jpg“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천화가 은밀히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해왕채라 불리는, 수적의 행세를 하고 있는 해남파 잔당들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무형보를 펼쳐 빠르게 물속을 가로질렀다. 그들의 거처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소지품 창에 챙겨두었던 가면을 꺼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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