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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장문인이 기다리십니다 (1) (350/481)

<106화> 장문인이 기다리십니다 (1)2021.07.08.

[별호 : 호북정협을 획득하셨습니다.]

16586679630128.jpg“엥?”

상무문을 그야말로 기둥뿌리까지 무너뜨리고 돌아오는 길에, 천화는 새로운 별호를 획득했다는 알림을 확인했다. 그 동안 삼류 무인, 이류 무인, 일류 무인 따위의 의미 없는 별호나 인간 수레, 이놈 아저씨 같은 내세우기 창피한 별호들만 얻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처음으로 얻는 제대로 된 별호였다. 그러나 그것을 접한 천화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16586679630128.jpg“악명이 아닌 게 다행이기는 한데……. ‘정’과 ‘협’이라니?”

일단 악명이 아닌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사파스러운 별호를 얻게 된다면 명성과 함께 악명이 올라가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행에 약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아니, 문제랄 것까지도 없다. 악명을 낮추기 위한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의미 없이 산적 따위를 때려잡거나 사파의 고수들을 처치할 필요가 있었겠지. 헌데 뜬금없이 호북정협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별호가 붙어버린 것이다.

16586679630128.jpg“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일단 별호 앞에 지역명이 붙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막 명성을 얻기 시작한 무인들은 으레 지역구로 활동을 하니까. 하다못해 처음 만났던 파락호들도 귀주삼랑이라는 별호를 스스로에게 붙이지 않았던가? 사천독룡과 같이 지역명이 붙으면서도 전국구의 명성을 떨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사천당문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특수한 경우였다. 그 외 대부분은 지역명이 붙은 별호를 사용하다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보다 명성을 쌓으면서 지역명이 아닌 개별적인 별호를 얻는 식이었다.

16586679630128.jpg“귀찮아지지 않을까 모르겠군.”

그러나 ‘정’과 ‘협’은 별호를 얻은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정은 말 그대로 명성을 날리는 과정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거나 인정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 붙는 것이었고, 협은 그야말로 협행을 할 경우 붙는 것이었다. 쉽게 풀이해 천화가 얻은 호북정협은, 호북의 다정한 협객 정도의 의미였다. 다분히 정파스러운 별호이니 정파 무림에 녹아들기에는 무척 괜찮은 별호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정과 협 중 하나라도 붙을 경우 돈은 안 되고 귀찮기만 한 임무들이 들러붙기 쉽다는 것이다. 가끔은 오히려 제 돈과 시간, 무력을 써가며 남 좋은 일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제대로 거르지 않는다면 임무창이 난잡해지거나 명성이 깎일 수도 있었다. 호북정협이라는 별호를 가지고서 남들의 부탁을 거듭해서 거절하기만 한다면, 별호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인식되어 명성이 하락하는 식이다.

16586679630128.jpg“최대한 빠르게 교체하는 수밖에.”

그렇기에 천화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다음 계획들을 떠올렸다. 이 족쇄 같은 별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일을 벌여 새로운 별호로 덮어씌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1658667963015.jpg“천화!”

그렇게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자 두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영과 추가연. 설영은 추가연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표정이 제법 풀어져 있었고, 추가연 역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천화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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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7963015.jpg“금을 배우러 간 거였으면 말을 했어야지!”

16586679630128.jpg“아니, 말을 하려고 했는데 듣지도 않고 네가 들어가버렸…….”

1658667963015.jpg“어쨌든! 상무문은 어떻게 됐어?”

억울해진 천화가 반론을 제기해보지만 가뿐하게 씹혔다. 천화가 쳐들어갔다는 상무문에 대한 것으로 화제를 전환하자, 설영과 추가연뿐 아니라 주위에서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신으로 그들에게 쳐들어간 천화가 멀쩡히 돌아왔으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대화로 좋게 좋게 풀고 끝낼 이들도 아니었으니 결과가 예상되긴 했지만, 천화의 입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16586679630128.jpg“그거야 뭐…….”

천화는 간단하게 내용을 축약했다. 상무문에 쳐들어갔고, 그들과 싸웠으며 상무문주가 배신을 당해 죽었다는 것까지. 다만 건물을 무너뜨린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각색을 거쳤다. 사실은 안에 있던 돈이나 물건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모르게 만들기 위해 전각을 몽땅 무너뜨려버린 것이었지만, 다수와 싸우기 위해 전각 내부의 좁은 길목을 찾아다니다가 싸움의 여파로 몽땅 무너져내렸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하게 무너져내리긴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승자에게는 아주 약간의 명분만이 필요한 것이 무림의 이치이니까.

16586679635776.jpg“정말 다행이에요. 걱정했어요.”

천화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의 설영과 달리, 추가연은 진심어린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금방 표정이 어두워졌다.

16586679635776.jpg“하지만 듣자하니 그들이 무당과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특히 상무문주는 무당 도사 중 한 명에게 직접 무공을 사사했다고…….”

이후에 있을 무당의 반응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오문 소속이기는 해도 아직 말단인 탓인지, 아니면 상무문주의 연기가 제법 괜찮았던 것인지, 실제적인 그들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차후 중원 무림의 정보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하오문주의 모습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짜일 때는 이런 풋풋함도 있어야지. 천화는 걱정 말라는 듯 웃어보이며 정보를 흘렸다.

16586679630128.jpg“그게 거짓인 것 같더라고. 칠성검도 겨우 익힌 것 같던데. 아무래도 삼대제자 중 하나에게 아무렇게나 배운 수준인 것 같아. 수하들이 배신할 때 이야기하는 걸 들었지.”

1658667963015.jpg“와, 속일 게 없어서 그런 것까지 속인단 말이야? 들어보니까 거의 속가 수준처럼 알려져 있던데.”

16586679630128.jpg“어. 후원금을 보내는 것도 그다지 크지 않은 모양이고.”

16586679635776.jpg“하지만 상무문이 매년 무당파에 후원금을 보내는 행렬은 꽤나 큰 행사였는걸요?”

16586679630128.jpg“사기 친 거겠지. 위쪽에만 그럴싸한 것들을 깔아놓았다거나 나중에 수레를 바꿔치기한다거나. 어차피 주변 문파들에게 보이기 위함일 테니까.”

16586679635776.jpg“아……!”

아주 간단한 수작이었다. 그제야 추가연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생각이 많아졌는지 짧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오문에 보고할 정보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다지 중요한 문파까지는 아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하오문까지 속일 정도라면 상무문주의 수완도 제법 좋은 편이었던 모양이다.

16586679630128.jpg‘몇 가지 더 던져줘 볼까?’

내친 김에 천화는 추가연에게 한 가지 선물을 더 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추가연이 빠르게 성장한다면, 그만큼 하오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질 테니까. 자신이 벌인 일들로 인해 자잘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세부적인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은 향후 진행을 위해서라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16586679635776.jpg“드릴 말씀이 있어요.”

16586679630128.jpg“응?”

16586679635776.jpg“소녀는 하오문의 사람이랍니다. 하지만 일부러 공자님을 속인 것은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그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추가연이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 속인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이다. 보통 하오문 소속들은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정보를 구매하고 판매하는 몇몇을 제외하고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감춘다. 이를 감안하면, 추가연의 판단은 천화로서의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16586679630128.jpg“하오문?”

그에 천화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편해진다. 어떤 식으로 정보를 더 흘려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기에, 천화는 천연덕스럽게 전혀 몰랐다는 듯 표정을 지었고 송구스러워하는 추가연을 안심시켰다.

16586679630128.jpg“흐음, 그거 참 의외네.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그냥 내켜서 도운 것뿐이니까.”

16586679635776.jpg“감사해요. 그리고 혹 괜찮으시다면 말씀해주신 내용들을 보고해도 괜찮을까요? 상무문은 중소문파에 불과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제법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곳인 만큼, 그들의 몰락은 이 마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다면 피를 뒤집어쓰는 이들도 제법 많을 테고요.”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가장 유력한 문파가 사라졌으니 그들의 사업장이나 영역, 인맥 등을 차지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던 이들이 일어날 테니까. 하오문이 하는 일은 아마 그들 중 한 곳을 지원하며 관계를 쌓고, 상무문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겠지. 만약 이 사실을 몰랐다면 다들 무당파의 개입을 염려하여 눈치만 보고 암중으로 움직이겠지만, 이런 일은 사실 선수를 치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 그러니 하오문이 지원하는 문파가 대담하게 치고 나간다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쉬웠다. 그로 인해 많은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을 테고. 뜻대로만 된다면 하오문으로서는 약간의 지원만으로 마을 하나를 거의 통째로 먹어치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터였으니, 꽤나 큰 이득을 취할 수 있겠지.

16586679635776.jpg“제가 위에 보고해서, 공자님께서 주신 정보의 대가는 꼭 지불하도록 하겠어요.”

따라서 천화가 제공한 정보는 돈으로 따져도 꽤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고 돈으로 환산하는 하오문인 만큼 추가연은 결연한 표정으로 약속했고, 천화는 신입사원의 패기와 열정 같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586679630128.jpg“그건 괜찮아. 네가 알아낸 걸로 하지.”

16586679635776.jpg“예?”

추가연이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하오문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정보일 뿐이지만, 일개 말단 지부의 영역에서 보자면 꽤 큰 정보인데 그것을 공짜로 주겠다니? 금전적 가치로만 따져도 족히 금자 몇 냥은 받을 만한 것인데도 말이다.

16586679630128.jpg“이것도 인연인데 선물하는 셈 칠게. 그리고 이것.”

16586679635776.jpg“이게 뭐죠?”

16586679630128.jpg“장부인 것 같던데. 우연히 상무문에서 주워왔는데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군.”

대신 천화는 품에서 하나의 책자를 꺼냈다. 상무문의 검은 거래들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자였다. 누가 상무문의 자리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에서 큰 이점이 될 만한 물건이니, 가치가 낮지는 않을 터였다.

16586679630128.jpg“정 그렇다면 이것에만 가치를 매겨주면 좋겠군. 이것까지 공짜로 얻었다고 하면 위에서도 의심을 할 것 아니야?”

16586679635776.jpg“이건…….”

얼른 장부를 살펴본 추가연의 표정이 변했다. 아직 초짜이긴 하지만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능력이라면 발군인 그녀이기에,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모르지 않았다.

16586679635776.jpg“제가 책임지고 제대로 값을 받아드릴게요.”

또한 그것을 입수한 추가연의 공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표정이 결연해졌다. 뭐, 그렇게까지 전투적일 건 없는데. 천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추가연은 소중히 그것을 품에 넣었다.

16586679635776.jpg“공자님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소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한 값은 오늘 저녁까지 제가 직접 찾아와서 전해드려도 괜찮을까요?”

16586679630128.jpg“물론.”

천화 역시 당장 움직일 필요는 없었기에 기꺼이 그것을 수락했다. 그러자 추가연도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것이 아쉬워보였지만, 일단은 할 일부터 해야겠지. 그렇게 그녀가 떠났고, 설영은 물끄러미 천화를 보다가 뾰로통하게 입을 열었다.

1658667963015.jpg“좋겠네.”

16586679630128.jpg“뭐가?”

1658667963015.jpg“저런 미인이 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봐주잖아.”

16586679630128.jpg“뭔 소리야?”

1658667963015.jpg“너도 마음에 든 것 아니야? 너 같은 돈 귀신이 저런 정보까지 공짜로 내어주고. 나한테는 목숨값까지 꼬박꼬박 받아가더니…….”

16586679630128.jpg“마음은 무슨. 저 녀석, 저래 보여도 꽤 실력이 좋거든. 하오문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거야. 그런 인물을 미리 사귀어두어서 나쁠 것 없지.”

1658667963015.jpg“어휴, 바보.”

연심은 무슨. 천화는 신소리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고, 설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가 사라진 객잔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기루에 들른 것에 대한 오해가 풀렸을 텐데도 한동안 쌀쌀맞은 태도로 천화를 대했다. 그리고 그날 밤, 추가연이 다시 그들을 찾아왔다. 무려 금자 열 냥을 장부에 대한 대가로 치르고 돌아갔다. 그저 정보일 뿐, 그것을 이용해 어떤 문파를 상무문의 자리에 대체시키려면 하오문으로서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많은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추가연이 힘을 좀 쓴 것이겠지.

16586679630128.jpg‘이번 일의 책임자가 되었다니, 금방 날아오르겠군.’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보다도 그녀와의 관계였다. 하오문은 개방과 함께 중원에서 가장 큰 정보 세력으로 꼽히는 곳이니까. 미래의 하오문주와 밑바닥부터 인연을 맺어둔다면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다시 한 번 정사대전을 암중에서 일으키고 정리하고자하는 천화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

16586679630128.jpg‘어쨌든, 시작 됐군.’

그리고 또 한 가지. 추가연이 가져온 정보 중 천화가 기다리던 소식이 있었다. 무진이 숭산에 도착한 것인지, 소림에서 한 가지 사실을 공표한 것이다. 마교의 발호? 아니다. 그것을 벌써 중원에 알리는 것은 괜한 공포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16586679630128.jpg“무림 대회라.”

때문에 소림은 무림 대회라는 이름의 회합을 마련했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의 이름으로 중원에 이름난 문파들을 모두 초대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로써 무림의 힘을 하나로 규합하고, 암중에서 중원을 노리고 있는 마교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무림맹의 설립을 공표할 수도 있겠지.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비롯한 주요 문파들에게는 마교의 준동 소식이 이미 알려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화에게 있어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1658667963015.jpg“재미있겠네. 천화, 너도 출전할 거지?”

일명 천하제일 후기지수 무술대회. 후기지수들을 모아 겨루게 함으로써 무림대회에 숨어들 마교의 간자들에게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비무대회가 열린다는 것도 함께 공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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