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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어서와. 고인물은 처음이지? (1) (357/481)

<113화> 어서와. 고인물은 처음이지? (1)2021.07.25.

비형(非形). 형태가 없다는 뜻의 그 단어가 비형칠검의 운명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전수가 되었겠지만,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된 해석과 쉽게 익히기 위한 편법들이 생겨나며 검법을 변질시킨 것이다. 그렇게 한번 검법이 망가진 이후부터는 검법의 이름에 집중하며 해답을 찾으려 했겠지. 하지만 비형칠검에서 말하는 비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였다. 어떤 뜻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 그 자체였으니까.

16586680633653.jpg‘비형. 도깨비의 왕.’

장백산 너머에 산다는 도깨비 왕의 이름. 그가 펼치는 일곱 가지 수법을 검으로 표현한 것이 비형칠검의 원형이었다. 그러니 그 이름에만 집착해서는 제대로 된 길을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16586680633653.jpg‘뭐, 처음에는 고인물들도 깜박 속았으니까.’

그래도 환검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에서는 어느 정도 근접했다. 운휘가 펼친 비형칠검에 천화가 제법 점수를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현란하기만 한 칼춤에 불과했지만, 환검을 펼치기 위한 기본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손목. 환과 변의 핵심은 그 중심이 되는 손목에 있다. 아무리 현란한 검법이라도 손목이 버텨주지 못한다면 금세 검로가 밋밋해지거나 힘이 약해 패력으로 깨부숴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휘의 기본기는 생각보다 잘 단련이 되어 있었다. 틈틈이 수련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점소이 생활을 하며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나른 탓인지 모르겠지만, 기본이 충분하다면 그걸로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16586680633653.jpg“스으-.”

천천히, 그리고 길게 호흡을 내뱉던 천화가 약 3분의 2 지점에서 호흡을 멈추었다. 동시에 전신의 잔떨림도 멈추며 솜털 하나하나까지 그의 통제하에 들어왔다. 경지에 이르면 오히려 불규칙한 호흡을 하면서도 전신을 통제하고, 수많은 잔상을 일으키는 환검을 펼쳐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성취는커녕 비형칠검이라는 무공 자체를 익히지 못한 천화였기에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설영에게 원류검법을 가르칠 때도 확인한 것이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무공을 남에게 전수하는 것은 가능해도, 스스로 익히고 무공으로 등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공으로 등록하지 않은 것들은 그 형식과 내공 운용법을 알고 있으면 사용은 가능하지만, 추가 효과를 받고 오의라 할 수 있는 능력까지 끌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굳이 흑점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무공을 구할 필요도 없었겠지. 아쉽지만, 그 정도 패널티는 천화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천화의 검이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때마다 덤벼들던 패광문의 무인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뭐가 지나가는지도 알 수 없는 사이에 혈도를 베인 상대들은 도를 놓치고 다리를 절며 무력화되었고, 동료들의 상처를 확인 다른 이들의 몸이 잔뜩 굳기 시작했다.

16586680633667.jpg“무슨 사술을……!”

분명 검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상처가 생겨나니,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놈들은 천화의 검법을 사술로 치부했지만, 사술이든 아니든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도망쳐야 하나? 아니다. 이대로 패퇴하여 돌아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도 불 보듯 뻔했다. 이를 악물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었다.

16586680633667.jpg“패광참수!!”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져내리는 검. 패력을 중시하는 도법이 천화를 힘으로 찍어누르기 위해, 환검을 깨뜨리기 위해 떨어져내렸다. 허나 천화의 표정은 냉담했다.

16586680633653.jpg“짭이네.”

천화가 보기에 놈들의 도법은 그저 흉내내기에 불과했으니까. 그것도 다름 아닌 비형칠검의. 이제야 패광문이 운휘를 괴롭히고 비형칠검을 탐낸 이유를 알겠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패광문의 문주라는 놈은, 그 윗대의 문주들은 비형칠검을 훔쳐 자신들의 독문 무공을 만들고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비형칠검을 원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있지도 않은 비형칠검의 원형을 원하는 것이겠지. 환검을 기본으로 하지만 도깨비 왕이 내지르는 패도적인 일격일격이 숨어있는 것이 비형칠검이었으니까. 반짝

16586680633653.jpg“윽?”

그 순간, 천화의 눈을 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놈의 도가 떨어져내리는 움직임이 이상하다 싶더니, 도면으로 햇빛을 반사시켜 천화의 눈에 비춘 것이다.

16586680633653.jpg“아씨, 어디서 눈뽕질이야?!”

그것은 실수였다. 그냥 얌전히 처맞았으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주었을 텐데, 일명 눈뽕이라 불리는 섬광질을 하다니? 시야가 사라졌지만 짜증이 치솟고 천화의 감각도 활성화되었다. 뻔하디뻔한 놈들의 도법이야 눈감고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천화였기에, 인상을 찡그리고 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푸확!! 혈마검의 도움도 필요 없다. 오직 감각과 심상으로 상대의 도를 쫓은 천화의 검이 놈의 가슴을 갈라버렸다. 더러운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16586680633687.jpg“대주님!”

대장 노릇을 하던 녀석이 쓰러지자 수하들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러댔지만, 이미 그들 역시 무력화된 상태였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천화의 처분을 기다릴 뿐. 눈을 감고도 대주를 베어버리는 것을 보았기에, 감히 눈이 먼 틈을 노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바닥을 기었다.

16586680633692.jpg“이게 비형칠검……!”

천화의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운휘의 눈빛이 황홀해졌다. 비형칠검이 저렇게 강했던가. 저렇게, 저렇게 당당한 검이었던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저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었다.

16586680633653.jpg“잘 봤냐?”

16586680633692.jpg“아, 네! 저 근데…….”

16586680633653.jpg“응?”

16586680633692.jpg“그 누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기에 아저씨가 온 걸 알고 있다면 혹시 그쪽에도…….”

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운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천화가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고서 움직였다면, 약재를 사러나간 설영도 위험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천화의 무위만을 확인한 운휘의 착각이었다.

16586680633653.jpg“참나, 왜 난 아저씨고 설영은 누나야? 그건 걱정하지 마. 그 녀석에게 싸움을 걸었다간 더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16586680633692.jpg“예? 그럼 그 누나도?”

16586680633653.jpg“고수지. 아마 패광문주인지 나발인지가 와도 안 될걸.”

실제 원형의 비형칠검에서 따온 도법이라 해도 패광도법은 고작해야 일류 수준의 무공일 것이 뻔했다. 그런 것으로 설영을 곤란하게 한다? 어림도 없지. 패광문주가 직접 나선다 해도 떡이 되도록 두들겨맞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였기에, 천화는 걱정하지 않았다. 독과 같은 같잖은 술수를 쓴다 해도 마찬가지. 혈마기를 품고 있는 설영의 재생력은 어지간한 독을 씹어먹을 만큼 대단했고, 여차하면 품에 안겨있는 은룡이 힘을 쓰면 그만이기에 통할 리가 없었다. 때문에 천화는 운휘를 안심시키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주 오래전, 성세를 이루던 비형검문의 하인이었으나 문주의 눈에 들어 무공을 익히고, 나아가 분파를 차리기까지 했던 패광문의 과거와, 이후 꾸준히 상납금까지 내가며 분파의 역할을 했던 것. 그리고 조부의 대에 이르러서는 약화된 비형검문의 무공의 약점을 파고들어 짓밟은 것도 모자라, 무공을 높여 돌아오겠다며 조부가 사라진 이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형검문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몰락시킨 것까지 말이다. 힘이 없으면 당하기 마련인 무림에서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더 없는 비극이었다. 거두어 먹이고 무공까지 가르쳐줬더니 그 후손들이 뒤통수를 친 것이니까.

16586680633653.jpg‘당한 놈이 잘못이긴 하지.’

심정적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사실 강호의 순리를 생각하면 마냥 그들을 몰아세울 수만도 없는 일이기는 하다. 비정한 무림에서 당하는 쪽이 잘못한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16586680633653.jpg‘그래. 당한 놈이.’

물론 그것에는 앞으로 당할 놈들까지 포함된 말이었다.

16586680636523.jpg“천화!!!”

그때, 익숙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설영이 달려왔다. 설영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신에게 방해꾼이 찾아왔다면 당연히 천화가 있는 쪽에도 누군가 찾아갔을 것이라는. 당연히 천화를 걱정했다기보다는 운휘와 그 어머니를 걱정한 것이었다. 어지간한 상대로는 천화를 곤란하게 할 수 없을 테지만, 인질이라도 잡았다가는 제아무리 천화라도 골치가 아파지니까. 물론 그것까지 감안해 움직였던 천화이긴 하지만, 얼른 복귀한 설영은 다급히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큰 일이 없음을 확인했다.

16586680633653.jpg“약재들은? 다 사왔어?”

16586680636523.jpg“어. 여기.”

사방에 널브러진 무인들을 힐끔 쳐다보고 설영은 짊어진 약재 꾸러미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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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재상이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설영이 약방으로 들이닥친 패광문의 무인들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보고 얼른 내어준 것이다. 패광문이 무섭기는 하지만 눈앞의 주먹보다 무섭지는 않으니까. 또한 그저 보신을 위한 약재들일 뿐, ‘그 독’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16586680633653.jpg“좋아. 그럼 잠깐만 쉬고들 있어. 시간 남으면 저것들 좀 한쪽에 꿇어앉혀두고.”

16586680636523.jpg“응? 응. 알았어.”

생각 같아서는 당장 패광문에 쳐들어가고 싶지만, 일단은 운휘의 어머니부터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천화는 즉시 설영이 가져온 약재들을 이용해 탕약을 달였고, 남는 시간에 환약을 몇 개 만들었다. 탕약은 장복하면 효과를 볼 것이고, 환약은 비상용이라고나 할까. 지능 수치를 높이기 위해 읽어두었던 잡서 중에 의서도 있었기에 이미 일반 기술 [의술]은 생성된 상태였으니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거기에 침까지 꽂아 탕약의 효험을 높이자 여인의 안색이 한결 좋아졌다.

16586680633653.jpg“흠. 놈들은 아직인가? 그럼 아직 시간이 있겠군.”

그동안 설영은 행동불능으로 만들어놓은 패광문의 무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을 아예 해치워버려고 좋고, 돌려보내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잡아두는 쪽을 택한 것이다. 만약 돌아가거나 그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들도 즉시 행동을 취할 테지만, 잡혀있는 것이라면 망설이게 될 테니까. 상대가 누구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몰라 조급한 것은 저쪽이지만 천화에게도 약간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16586680633653.jpg“운휘. 잠깐 손 좀 줘볼래?”

16586680633692.jpg“네? 네. 여기.”

그렇게 번 시간 동안 천화는 운휘에게 제대로 무공을 전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추가 보상이야 얻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그러기엔 운휘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가만히 내미는 운휘의 손목을 잡고 내공을 흘려넣었다. 어떤 내공심법을 익혔는지, 또 어떤 체질을 지녔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16586680633653.jpg“와, 진짜 운빨좆망겜.”

16586680633692.jpg“네?”

그렇게 상태를 확인한 천화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자 운휘가 깜짝 놀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혹시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 안 되는데.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어머니는 보필해야하는데…….

16586680633653.jpg“아니야. 문제없어. 그냥…… 기대 이상이랄까?”

순간 근심이 드리우는 운휘의 표정을 확인한 천화는 그제야 표정을 풀며 녀석을 안심시켰다. 기대 이상 정도가 아니다. 운휘의 체질은 극상이라 칭해 마땅한 수준이었다.

16586680633653.jpg‘영통이라니.’

내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체질 정도가 아니다. 상단전이 열려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고 가끔 귀신을 보는 정도겠지만, 무인이라면 새로운 공능을 얻을 수 있는 진귀한 체질인 것이다. 일명 신령지체. 타고나기를 상단전이 열린 채로 태어나고, 임독이맥이 뚫려있는 이 신체는 무엇보다 비형칠검을 익히기에 제격이었다. 오성도 뛰어나서, 만약 수치화한다면 여유 능력치로 오성 수치를 집중적으로 올린 천화보다도 높은 수치일 것이 분명했다.

16586680633653.jpg“따로 비급으로 적어주기도 할 테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16586680633692.jpg“네!”

거기다 의욕적이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가 없다. 이런 재능을 썩히는 것은 너무도 아까운 일이기에, 천화는 본격적으로 운휘에게 비형칠검과 그에 걸맞은 내공심법을 함께 전수하기 시작했다. 천화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무신지로에조차 존재하지 않던 검귀라 불리게 될 무인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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