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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도왕 손무양 (2) (368/481)

<124화> 도왕 손무양 (2)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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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노침화독의 정화.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그저 손무양이 수없이 구했던 영약과 해약들처럼 독을 일시적으로 해독시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은룡이 사용하는 정화의 빛은 천화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16586681309822.jpg‘이건 완치다.’

단지 혈액에 녹아있는 독뿐 아니라 혈맥에 스며든 독들까지 모조리 정화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황금잉어가 의미 없어질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황금잉어는 그 자체로 훌륭한 보양식이 될 테니까. 독이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 투병하며 몸속에 쌓인 노폐물과 탁기가 상당할 테니, 그것을 정화하는 의미로라도 분명 효능은 발휘할 터였다.

16586681309827.jpg“이게 어찌된 일인가?”

은룡이 뿜어낸 심상치 않은 빛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손무양은 짐짓 표정을 굳히며 천화에게 되물었다.

16586681309832.jpg“삐유우우…….”

기운이 많이 빠졌는지 졸린 듯 눈을 껌벅거리며 천화의 품에 몸을 파묻는 은룡과 천화를 몇 번이나 번갈아보며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역시도 방금의 빛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리라는 직감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16586681309822.jpg“말씀드리는 게 늦었군요. 이 아이는 평범한 영물이 아닙니다. 신수라 불리는, 한 단계 높은 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조금 전 보셨던 그 빛입니다. 독을 비롯한 모든 부정적 효과를 제거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아마 부인께서도…….”

16586681309827.jpg“!!”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무양이 부인의 맥을 짚어냈다. 익숙하게 내공을 흘려 몸 안의 기운과 상태를 점검했다.

16586681309827.jpg“이게 대체…….”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처음에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도왕이라는 칭호와 어울리지 않는 투명한 눈물이 닭똥처럼 떨어져내렸다. 지금까지 어떤 약을 먹였을 때보다 빠르고 확실한 차도를 보인 것이다. 힘겹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뀌었고, 안색도 눈에 띄게 좋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16586681309822.jpg“정확한 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완치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쿠웅! 그 순간 방 전체가 크게 울렸다. 손무양이 천화를 향해 머리를 박은 까닭이었다. 손무양은 도왕이라는 거대한 명성을 가진 이였지만 동시에 한 여인의 남편이었으니까. 아내를 살려준 은인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16586681309822.jpg“그래도 일단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으니, 쉬실 수 있게 저희는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16586681309827.jpg“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방바닥을 적시며 바닥에서 머리를 떼지 못하고 있는 손무양을 뒤로하고 천화와 설영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잠시 피해주는 것이다.

16586681314074.jpg“그 도인의 말을 믿으신 보람이 있네요. 상공.”

16586681309822.jpg“……?”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던 천화의 귀에 손무양의 부인, 부여담의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손무양과의 대화에서 전해들었던, 그 정체불명의 도인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16586681314074.jpg[무한 동호에 사는 영물인 황금잉어를 구한다면 아내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황금잉어를 고아 먹여야만 낫는다는 것이 아니라 황금잉어를 구하는 것까지에 그치는 것이다. 이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통째로 푹 고아먹이라고 했다는 것이지, 엄밀히 따지면 황금잉어를 먹어서 낫는다는 표현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만약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을 내다본 것이라면?

16586681309822.jpg‘설마. 그럴 리가 없지.’

천화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왕 손무양이 황금잉어를 구하던 것은 무신지로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는 자신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은룡을 가지지 못했으니, 거기까지 내다보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조금은, 마음 한구석에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신지로에서도 소위 ‘천기’를 읽는 특별한 이들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개방된 상단전을 술법 등으로 발전시킨 이들 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었다.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것과 같지만 꽤나 적중률이 높은 것이었기에, 천기를 읽을 줄 아는 이들은 아주 특별한 존재로 취급을 받았었다. 그 자체로 가히 신선이라 불러 마땅한 능력이었으니까. 때문에 찝찝한 기분은 남아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또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민을 해봐야 소용없다. 천화는 설영과 은룡, 흑우를 남겨두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고, 정성을 들여 황금잉어를 고아내었다. 그리고 몇 시진이 지난 후, 푹 고아진 황금잉어를 떠내 부여담에게 가져다주었다.

16586681309822.jpg“뜨거우니 천천히 드십시오. 드시고 나면 기운을 제법 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16586681314074.jpg“감사합니다.”

천화의 배려에 부여담이 살풋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저 퍼석하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을 뿐인데도 벌써 못난 기색이 많이 지워져 있었다. 그녀가 본래 얼마나 뛰어난 미모와 매력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6586681314074.jpg“상공.”

16586681309827.jpg“흠흠. 자네들, 잠시 시간이 괜찮은가?”

16586681309822.jpg“예? 그건 갑자기 왜…….”

16586681309827.jpg“따라 나오게.”

부여담이 슬쩍 눈치를 주자, 그녀가 먹는 모습을 아기 바라보듯 쳐다보고 있던 손무양이 간신히 눈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천화와 설영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16586681309827.jpg“검을 들게.”

이유는 뻔하다. 무공을 손봐주려 하는 것이다. 당장 그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16586681309822.jpg‘귀찮은데…….’

그 말에 설영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히 천화는 살짝 귀찮았다. 고금제일인의 칭호까지 받았던 천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장 무공과 무공 숙련도, 내공이 부족할 뿐이지 무공 자체에 대해서는 그에게 배울 것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르쳐줄 게 있다면 모를까.

16586681309827.jpg“자네들도 보았다시피 내가 가진 것이 없네. 보답할 길이라고는 이것밖에 없군. 자네들의 무공을 손봐주겠네. 아, 물론 고작 이것으로 은혜를 대신할 생각은 없네. 자네들에게는 내 평생 은혜를 갚을 것이야. 그녀는 내게 목숨 같은 사람이니.”

예상대로 손무양은 마당에 서서 자신의 독문병기인 진천도(振天刀)를 들어올렸다. 당장 무엇이라도 보답하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겠다는 것이다. 천화는 귀찮아했지만, 이는 실상 무인들에게 천금을 주고도 얻기 어려운 기회였다. 도왕이라면 천하십대고수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니까. 초극을 넘어 화경을 바라보는, 결국 나중에는 화경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마는 초인이었으니, 그와 검을 섞는 것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은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자신이 부족한 점을 짚어낼 수 있겠지. 허나 지금 손무양은 지도 대련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일일이 짚어주며 지도해주는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내공만 충분하다면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무공이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설영이 눈을 반짝거렸다.

16586681309827.jpg“누가 먼저 나서겠나?”

손무양의 제안에 설영이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절정의 경지를 목전에 둔, 한 명의 뛰어난 무인인 그녀였기에 손무양과 겨뤄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16586681319033.jpg“제가, 먼저 해도 괜찮겠습니까?”

천화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부푼 마음으로 검을 들고 나섰다.

16586681309827.jpg“정말, 그대로 괜찮은 겐가?”

16586681319033.jpg“예?”

허나 손무양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화에게로, 정확히는 천화의 허리춤에 매인 혈마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16586681309827.jpg“저걸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말일세.”

16586681319033.jpg“그건…….”

그 말에 천화와 설영 모두가 당황하고 긴장했다. 설마 혈마검을 알아본 것일까? 소지한 것만으로 무림공적이 되고 마는 혈마검이기에, 혹여 손무양이 태도를 달리할까 두려운 것이다. 제 아무리 천화라 할지라도 지금의 수준에서 손무양과 진심으로 맞붙는다면 필패할 것이 확정적이었다.

16586681309827.jpg“긴장할 것 없네. 자네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 내게는 그저 아내를 살려준 은인들일 뿐일세. 그러니…… 통제할 수 있다면 혈마화를 해도 좋네.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대련을 펼칠 수 있을 테니, 배울 점도 많겠지.”

그는 확실히 혈마검의 정체를, 설영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아내를 살릴 유일한 방법인 황금잉어를 천화가 가지고 있었기에 모르는 척을 한 것뿐이다.

16586681309822.jpg‘과연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만.’

그 말에 설영은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천화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허리춤에 매인 혈마검을 풀어 설영에게 던졌다.

16586681309822.jpg“들었지? 전력을 다해도 괜찮을 거야. 도왕이라는 이름이 허투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말에 이번에는 손무양이 흠칫 놀랐다. 자신이 도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했단 말인가? 은근한 경계심이 올라왔지만, 곧 가라앉혔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기꺼이 반겼을 터였다.

16586681309827.jpg“먼저 오게.”

잡념 따위는 떨쳐버리고 가만히 기세를 드러냈다.

16586681309822.jpg‘오?’

사실 이 시기의 도왕은 전성기에 비해 실력이 많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를 쥐고 제대로 무공을 펼치지 않은 것이 벌써 몇 개월, 어쩌면 몇 년째일 테니까. 허나 그 경지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도왕이 마음먹고 기세를 드러내자 식은땀이 절로 날 만큼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이 순간 의지가 꺾일 만큼 살벌한 기운이 두 사람을 엄습했다.

16586681319033.jpg“그럼, 가겠습니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설영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보통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대련을 벌일 때, 그 수준으로 조절하여 겨루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도왕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수준을 맞춰주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도왕의 의도는 분명했다.

16586681309822.jpg‘이겨내 보라 이건가?’

앞으로 가진 실력보다 강한 상대들을 수 없이 만나게 될 설영을 단련시켜주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갈 수만 있다면, 어떤 고수와 상대하더라도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그 짓을 수없이 반복해온 천화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만, 설영에게는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16586681319033.jpg“차핫!”

처음으로 펼친 것은 귀혈참. 내공을 일시에 격발시켜 귀신같은 쾌검을 펼치고, 동시에 귀신이라도 베어 낼 수 있다는 극쾌의 검식이 도왕을 베어갔다.

16586681309827.jpg“느리군.”

쩌엉! 그러나 도왕은 제자리에 선 채로 가뿐히 그것을 받아냈다. 정직한 투로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방어가 어려운 하단을 공격했지만 도를 세워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16586681319033.jpg“잔혼비검!”

그 순간 설영의 검이 잘게 떨렸다. 영혼마저 잘게 썰어버린다는 변검이 펼쳐지며 도왕의 도를 넘어섰다. 동시에 열 곳에 달하는 요혈을 노려갔다.

16586681309827.jpg“느리다니까.”

쩌어엉!! 그러나 도왕은 여전히 가만히 선 채로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휘젓듯 도를 휘두를 뿐이었다.

16586681319033.jpg“큭?!”

하지만 그 여파는 간단하지 않았다. 정확히 검의 진체가 드러난 설영의 검이 그대로 튕겨 밀려난 것이다. 큰 허점이 드러났고, 도왕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대로 목을 벨 수도 있을 만한 경직이 일어났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예상한 바이긴 했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그 모습에 설영이 이를 악물었다. 전신 공력을 끌어내어 다시 한 번 검을 떨쳤다.

16586681319033.jpg“혈마강천!”

불그죽죽한 혈마기가 혈마검에서 새어나왔다. 혈마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혈마신공이 혈마검과 공명하며 힘을 드러낸 것이다. 혈마신공이 7성에 다다른다면 혈마검을 쥔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도 붉은 기운이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설영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 위력만은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강맹했다. 부딪히는 것만으로 상대의 내부를 진탕시키는 거칠고 아릿한 기운이 한순간 폭사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도왕의 머리를 쪼개어갔다. 까앙

16586681309827.jpg“이것뿐인가?”

그러나 도왕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고, 단지 혈마검의 기운을 버티기 위한 내력을 조금 주입했을 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 위로 가볍게 검을 들어 그대로 버텨내었다. 검기를 넘어 강기에 이르는, 절정 고수라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위력이지만, 도왕은 그조차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 중의 초인이었다.

16586681309827.jpg“그럼 다른 걸 한번 보지. 혈마화라는 것을 해보게.”

다시 도를 휘둘러 설영을 밀어낸 도왕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설영에게 혈마화를 요구했다. 일반인이 혈마검을 쥐면 폭주하여 몸이 망가지지만, 혈마의 후예가 혈마화를 하면 폭주를 할지언정 혈도가 상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16586681319033.jpg“……좋습니다. 보여 드리죠.”

16586681314074.jpg[젠장, 건방진 인간 놈이……!]

  츠츠츠츳- 혈마화를 하여 폭주하더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그 광오한 자신감에, 설영과 혈마검 모두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쨌든 혈마신공은 천하제일을 넘볼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이 아니던가? 아무리 천하십대고수라 하더라도 이처럼 무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둘이 하나로 마음을 합쳤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혈마가 인세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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