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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너, 나랑 사업 하나 같이하자 (4) (380/481)

<136화> 너, 나랑 사업 하나 같이하자 (4)2021.09.16.

1658668212302.jpg“어? 어?? 어, 없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천화를 발견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임봉곤은 불현듯 무엇이 떠올랐는지 제 몸을 더듬었다. 그리고 파리해진 안색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없어진 것이다. 조금 전까지 품에 넣어두었던 배첩이. 몇 번을 다시 더듬고 섶을 펄럭거려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오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한 건가? 그럴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1658668212302.jpg‘내가 배첩을 꺼낸 것이라고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기억을 되짚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품 속에 넣어두었다. 천화가 시킨 대로 배첩을 사고 판다는 암상인에게 접근하여 적당히 흥정을 벌이고 돌아선 이후까지만 해도 분명 자신의 품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기에 당장 그 자리에서 옷을 전부 벗어 탈탈 털어보기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1658668212302.jpg“허어……. 낙양에 가면 눈 뜨고도 코가 베인다더니, 낙양만이 아니었구나!”

만약 아무런 예고 없이 닥친 일이었다면 정말로 좌절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임봉곤이 허탈해하면서도 간신히 마음을 추스를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천화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까지 예고를 했으니까. 천화와 금무성이 배첩을 건 술래잡기를 진행하는 사이, 시선이 팔린 이들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을 것이고, 배첩을 내보인 임봉곤은 필시 그 대상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1658668212302.jpg“이렇게 되면 누님을 믿어볼 수밖에 없겠구나.”

누가, 언제 훔쳐갔는지도 모르니 찾으러 가거나 뒤쫓을 방도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을 지켜보던 설영의 모습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천화가 제안했던 ‘진짜 사업’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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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86682123043.jpg‘진짜 나타났어.’

천화의 말에 따라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임봉곤을 따라붙던 설영의 눈이 반짝였다. 천화가 예상한 대로, 암상인과 접촉 이후 미행이 붙더니 술래잡기로 시끄러운 틈을 타 행인인 척 슬쩍 그와 부딪혀 지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빠르게 임봉곤의 품으로 손을 넣었다가 빼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임봉곤 역시 일류급의 고수였지만, 산에만 처박혀 있다 첫 출도를 한 것이기에 척 보기에도 어수룩함이 넘쳐흘렀다. 천화가 임봉곤을 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천화나 설영이 연기를 한다 해도 과연 그런 순박함이 묻어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오히려 경계하고 접근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16586682123043.jpg‘능숙하군. 무공은 약한 것 같은데 많이 해먹은 솜씨야.’

상대는 무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계심이 더 옅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임봉곤은 혼란한 틈에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절정 고수인 데다 똑바로 그를 주시하고 있던 설영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놈의 손에 임봉곤의 것으로 보이는 배첩이 들려있는 것을. 그 즉시 설영은 위치를 바꾸었다. 더 이상 임봉곤을 따라갈 이유가 없었기에 미행의 대상을 바꾸어 소매치기를 한 자에게 따라붙었다. 두리번두리번 몇 번이나 의미 없이 길을 굽이굽이 돌아간 녀석은 어느 골목에 이르러 주변을 살폈다. 설영은 천화의 당부대로 그를 즉시 제압하는 대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에게 가는지. 그리고 그 목적지가 조금 전 임봉곤이 다녀왔던 암상인의 거처라는 것을 확인했다.

16586682123043.jpg‘시작해볼까?’

이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소매치기가 은밀히 담을 넘었다. 암상인이 있는 전각으로 통하는 뒷길을 이용해 소리를 죽이고 접근한 그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목소리를 내었다.

1658668212307.jpg“어르신, 다녀왔습니다.”

1658668212307.jpg“물건은? 손에 넣었나?”

그러자 전각 안에서도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들렸다. 배첩은 상당히 귀중하고도 값어치 나가는 물품이었으니까. 단순히 금자 몇십 냥짜리이기만 하다면 그가 이렇게 애를 태우며 기다리지 않았을 터였다. 시세는 형성되었지만 공급이 없어, 얼마든 될 수 있는 물건이 바로 배첩이었으니까. 반면 수요야 차고 넘친다.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는 상가에게 팔아먹어도 좋고, 실력은 있으나 명성이 부족한 무인 또는 문파에 팔아먹어도 좋다. 혹은 그저 소장용으로 배첩을 가지고 싶어 하는 관리에게 팔아먹어도 좋겠지. 어느 쪽이든 돈도 돈이지만 그들과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금자 따위를 받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유력한 인사와 이런 식으로 연을 맺어둔다면 나중에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암상인은 얼른 문을 젖히고 그를 곁으로 불러들였다. 새로 획득한 배첩을 받아들었다.

16586682123043.jpg“이건 내가 가져가지.”

휘익-

16586682127443.jpg“?!”

허나 그때, 그들 사이에 난입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복면을 쓴 설영이었다. 설영은 암상인이 받으려던 배첩을 낚아채었고,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던 두 놈은 크게 놀랐다.

1658668212307.jpg“웬 놈이냐!”

1658668212307.jpg“차핫!”

그리고 둘은 즉시 반응했다. 암상인 호통을 치듯 적반하장으로 설영에게 소리를 질렀고, 소매치기는 알량한 수법으로 옆구리를 찔러갔다.

1658668212307.jpg“컥!”

그러나 통할 리가 없다. 설영은 무려 절정 고수였으니까. 고작 남의 것이나 훔치는 잔챙이 따위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설영은 검을 뽑지도 않고 놈의 가슴을 걷어찼다. 날아가며 혼절해버린 놈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일을 지시한 암상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1658668212307.jpg“다, 당신은 누구요!”

설영이 범상치 않은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부하들이 알아차리고 달려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함일까. 살기를 내뿜은 것도 아니건만 암상인은 몸을 쭈뼛거리며 물러섰다. 그래도 강단은 제법 있는 놈인지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

16586682123043.jpg“남의 것을 훔쳤으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지.”

1658668212307.jpg“그게 무슨 말이오? 남의 것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구려.”

목소리를 변조한 설영이 은근하게 이야기했지만 놈은 뻔뻔하게도 시치미를 떼었다. 자신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16586682123043.jpg“그래? 그럼 확인해보면 알겠지. 이 배첩에 어떤 표식이 있지? 이것이 네 것이라면 그 정도쯤은 알 것 아닌가?”

흠칫 그러나 설영의 다음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어수룩한 놈이 눈앞의 복면인이었던가? 아니면 놈을 미끼로 자신을 노린 것인가? 미리 자신이 사람을 부려 훔쳐낼 것을 알고 배첩에 표시를 해두었다면 빼도 박도 못한다. 이렇게 되면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이 복면인을 포섭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배첩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1658668212307.jpg“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만……!”

수하들을 불러 처리한다? 그것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암상인으로서 쌓아온 감이 조금 전부터, 이자에게는 절대 덤벼선 안 된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위험 속에서 살아온 인물답게 눈치가 빨랐다.

1658668212307.jpg“목숨만 살려주시면 시키시는 일을 뭐든 다 하겠습니다!”

바로 납작 엎드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수하들을 불러 싸워본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미 장원 주변에는 수하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설사 비밀통로를 따라왔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설영이 더 월등한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는 수밖에. 배첩이든 뭐든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16586682123043.jpg‘진짜 이게 되네.’

상대가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나오자 정작 설영이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설영의 무위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고분고분하게 나오는 녀석을 바라보자 살짝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름대로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일 생각까지 하고 담을 넘었으니까.

16586682123043.jpg“그래? 그럼 다 내놔.”

1658668212307.jpg“……예?”

어차피 남의 것을 빼앗고 등쳐먹는 놈들이니 사정을 보아줄 필요는 없다.

16586682123043.jpg“금고에 있는 거 몽땅.”

설영은 천화에게 배운 대로,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놈의 금고를 탈탈 털었다. 그동안 놈이 같은 방식으로 훔치고 빼앗은 배첩들부터 금고에 쌓인 금자와 전표, 기타 장부들까지. 그것들을 모조리 빼앗고서 다시 객잔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저들도 설영이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터였다. 그들의 치부를 알고있는 데다 장부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만약 배첩을 도둑맞은 이들이 범인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사생결단을 내려들지도 몰랐다. 그러면 놈들이 얼마나 깊이 숨든 발각되어 응징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일단 배첩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무림에서 제법 인정받는 인물이나 가문, 문파라는 뜻이니까. 게다가 그들의 금고에서 나온 배첩이 무려 다섯 개나 되었으니, 그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할 터였다. 아니, 알려진다면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다섯 문파 이상이겠지. 비슷한 방식으로 배첩을 잃어버렸거나, 도둑맞은 모든 이들이 의심을 하고 달려올 테니 말이다.

1658668212302.jpg“허어. 정말 이걸 다 얻어오신 겁니까?”

그런 관계로 설영도 마음놓고 그들을 털어먹었다. 어차피 놈들이 가지고 있었다 한들 좋은 곳에 쓰지는 않았을 테니까. 다시 객잔으로 돌아와 일행 모두를 방으로 불러놓고 전리품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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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봉곤의 것을 제외하고도 배첩이 다섯 개나 있었고, 금자가 수십 냥에 각종 은밀한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까지 있었다. 장부야 협박용으로 가져온 것이었지만, 써먹을 곳은 많았다. 당장 하오문에 팔아치워도 정보의 가치에 따라 제법 값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 금무성이 만금상단의 소가주이니 이것을 이용해 놈들을 압박하거나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상권의 일부를 넘겨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1658668213122.jpg“이거 처분은 맡겨도 되지?”

16586682131225.jpg“제게 맡겨주시는 겁니까?”

그것을 셈해본 천화가 금자와 은자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금무성 쪽으로 밀어주었다. 돈이야 균등하게 나누겠지만 배첩과 장부 등의 처리는 그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이왕 팔아치울 것이라면 금무성에게 처분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1658668213122.jpg“왜, 먹고 튀기라도 하게?”

16586682131225.jpg“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이 배첩을 처분하는 것이 그 자체로 구입하는 쪽과 상당한 인연을 맺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돈이나 실력은 있지만 배첩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팔아주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입는 것과 같은 일이겠죠. 그렇다보니…….”

1658668213122.jpg“시끄럽고, 알아서 처리해. 누구에게 팔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천화의 농담에 금무성이 진지하게 답변을 했다. 배첩을 판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숨기지 않고 털어놓은 것이다. 물론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천화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저것을 털어놓는다는 것부터가 금무성이 신의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가 무인에게 팔든, 수집가에게 팔든 신경 쓰지 않을 참이었다. 자신은 그저 합당한 값만 받아온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걸 누구에게 팔아서 이득을 취할지는 금무성의 역량에 달린 일일 뿐이다. 그가 성장하고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이 미래의 천화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6586682131225.jpg“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제 몫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관계가 저희 같은 상인들에게는 금자보다 더 큰 것이니까요.”

그런 천화의 화끈한 결정 때문일까? 금무성은 배첩을 판매한 값에서 자신의 몫을 배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천화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아직 무림대회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이곳에서는 더 재미를 보기 어려울 테지만, 하남성으로 향하는 접경 지역의 마을은 이곳 말고도 꽤 있었기에 기회는 많았다.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경험이 부족한 무인들이 마음을 놓고 있다가 배첩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만한 곳들이 아직 많다는 뜻이다.

1658668213122.jpg“놀면 뭐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굳이 일찌감치 숭산에 도착해 빈둥거릴 이유가 없었기에 네 사람은 하남성의 경계를 따라 이동하며 같은 사업을 계속해서 벌이기로 합의했다. 이미 여분의 배첩도 마련해두었기에 이제 천화가 누군가에게 붙잡혀 배첩을 내어주거나, 설영이 미행에 실패하여 배첩을 잃어버린다 해도 부담이 없었다. 한결 마음 편하게, 보다 능숙하게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돈과 배첩을 쓸어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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