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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별호 수집 (4) (387/481)

<143화> 별호 수집 (4)2021.10.03.

제삼자의 난입.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16586683007259.jpg“황산파의 태산검호 임봉곤 소협의 승리입니다!”

16586683007265.jpg“와아아아아아아아!!!!!”

패배의 인정. 그렇기에 진행자는 곧장 임봉곤의 승리를 선언했다.

16586683007271.jpg“괜찮냐?”

16586683007276.jpg“쿨럭! 괜찮습니다. 형님.”

그와 함께 꽤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소림의 의약당이 황급히 제갈무기에게 달라붙어 상태를 살폈지만, 오히려 무당의 장문인 등 무림 명숙들은 임봉곤의 쪽으로, 정확히는 천화의 곁으로 달려와 그를 살핀 것이다.

16586683007259.jpg“다행히 큰 내상은 아니군. 며칠 요양하면 괜찮을 걸세. 흠흠, 마침 우리가 기가 막힌 요상단을 가지고 있는데…….”

다행히 제갈세가의 가주 역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인지 죽일 작정으로 후려친 것은 아니었기에 내상은 그리 깊지 않았다. 게다가 야수궁주와의 인연을 염두에 둔 것인지, 서로 앞다투어 자신들에게 좋은 요상단이 있다고 자랑을 해댔기에 약 걱정도 없을 것 같았다. 하기야, 자신들이 주최한 비무대회에서 화를 입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되니 소림에서도 요상단쯤은 얼마든지 내어줄 테지만.

16586683007286.jpg“흐흐. 사내들이 다 그렇게 치고 박고 싸우면서 크는 게지.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게!”

파앙 파앙 그때 우악스러운 손길이 임봉곤의 등짝을 후려쳤다. 세주안의 것이었다. 그와 함께 죽은피를 왈칵 토해내는 임봉곤. 언뜻 보기에는 내상을 입은 것 같지만, 오히려 응어리져 있던 죽은피가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지었다.

16586683007271.jpg“그러게 하라는 대로만 할 것이지.”

16586683007276.jpg“흐흐……. 죄송합니다. 그래도 형님 돈은 지켰습니다.”

천화의 핀잔에 임봉곤이 희미한 웃음을 지을 수 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16586683007271.jpg“그래. 수고했다.”

어쨌든 승리는 승리. 무슨 짓을 해서든 이기면 장땡이라고 가르친 천화였기에, 차마 그를 타박할 수는 없었다. 방식은 좀 달랐지만 어쨌든 승리했으니까. 이겨냈으니까. 덕분에 황산파의 명성은 드높아질 테고, 제갈세가는 완전히 체면을 구기게 될 터였다. 그로 인해 악감정을 품기야 하겠지만, 함부로 손을 쓰기도 어려울 터였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고, 임봉곤은 천화의 사람이었으니까.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일원에게는 천화가 남만야수왕의 의제이며 도왕의 은인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을 터였다. 당장 야수궁주가 비무대에 뛰어올라 손수 임봉곤을 치료해주는 모습만 보아도 그들의 관계가 제법 두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6586683007276.jpg“끄응. 그래도 다음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할 것 같군요. 누님의 경기도 지켜봐야 하는데…….”

16586683007271.jpg“걱정 말고 일단 쉬어. 너랑 달리 저쪽은 여유만만일 테니까.”

그러나 당장 평상시처럼 운신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일단 의약당으로 옮겨 진맥을 보고, 치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었고 천화는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그를 안심시켰다. 아직 설영과 자신의 비무도 남아있었지만 어느 쪽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32강의 첫 경기가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임봉곤의 승리이긴 했지만, 녀석이 다음 경기를 포기했기에 승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16586683007271.jpg‘뭐, 여기서 떨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

비무대가 정리되고, 다시 다음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본 천화는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 경기에 나서는 것은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16586683007259.jpg“대도문의 대도철협 관자림 소협! 곤륜파의 무진 도장께서는 비무대 위로 올라와주시기 바랍니다.”

무진. 능히 무당신룡과 비견될 만한 무위를 갖추었다고 천화가 평가한 그가 다음 비무자로 나선 것이다.

16586683007271.jpg‘저건 못 이기지.’

아무리 임봉곤이라도, 천화의 특훈이 있더라도 임봉곤이 무진을 이기는 것은 요원했다. 그는 방심을 하거나 오만하지도 않고, 이미 절정의 경지에 든 인물이니까.

16586683007259.jpg“승자는 무진 도장!”

곤륜파의 비밀 병기답게 일합만으로 상대를 쓰러뜨린 무진이 비무대를 내려오며 천화를 바라보았다. 천화를 알아보고 빙긋 웃으며 목례로 인사를 전했다. 천화를 형님으로 모시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무에서 손속에 사정을 둘 인물은 아니었기에, 천화는 살짝 꺼림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는 이 비무대회를 통틀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으니까.

16586683007271.jpg“슬슬 준비해야겠는데?”

다시 한 경기가 더 지나가고, 이번에는 설영의 차례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천화는 임봉곤의 승리는 물론, 무진의 승리와 그 다음 경기의 승자를 모두 맞추었다. 이번에도 역시 설영의 승리에 전 재산을 걸었다.

16586683011552.jpg“응. 다녀올게.”

그런 천화를 질렸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설영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확인하고 비무대로 올랐다. 무정검희. 그것보다 그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던 탓에 아직 새로운 별호가 붙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비무에서 승리하고 나면 없는 말이라도 만들어서 새로운 별호를 붙이리라. 상대가 다름 아닌 오대세가 중 가장 강력한 패력을 자랑한다는 하북팽가의 소가주였으니까.

16586683011556.jpg“조심하시오. 내 도는 여자라고 봐주지 않소.”

16586683011552.jpg“걱정마세요. 이건 무인 간의 대결이니까요.”

그렇게 비무대 위에 오른 두 사람. 제갈무기의 패배가 충격이었는지, 팽무혁은 시작부터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며 경고했다. 함께 어울리기는 했지만, 내심 무공이 약한 제갈무기를 무시하던 그였으니 같은 꼴을 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전력으로 기세를 뿜어냈고, 선공을 취하는 것에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16586683011566.jpg“잠깐.”

그때, 누군가 비무에 끼어들었다.

16586683011566.jpg“그래도 여러 강호 명숙과 무인들이 지켜보는 자리인데, 자신의 얼굴을 걸고 거루는 것이 맞지 않겠소?”

다름 아닌 백연이었다. 소림 방장이자 주최자인 그가 비무를 잠시 멈추고 설영에게 권유를 한 것이다. 말이 권유지, 사실상 지시였다. 설영이 인피면구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것을 벗어 보이라는 것이었기에 설영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마음을 굳혔다.

16586683011552.jpg“그러죠.”

어차피 그녀의 본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굴 가죽을 뜯어내자, 다소 밋밋하게 생긴 얼굴 대신 천하절색의 미모가 나타났다.

16586683007259.jpg“헉? 저런 미모라니!”

16586683007259.jpg“와……. 이거 무림이화가 아니라 삼화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16586683007259.jpg“이화? 허허. 댈 걸 대게! 저 정도면 이화보다 훨씬 낫지!”

그 자체로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았기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감탄하고 환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상대인 팽무혁조차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였다. 사람을 홀릴 만한 미모이긴 했지만, 어쨌든 쓰러뜨려야 할 상대이니까.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도를 들어올렸다.

16586683007259.jpg“크흠, 그럼 시작하십시오!”

16586683011556.jpg“맹호박식!”

놈이 사용하는 것은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였다. 가주만 익힐 수 있는 보다 상승의 무공으로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가 있긴 하지만, 오호단문도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면 제 위력을 낼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북팽가의 기반이 되는 무공이었다. 저것 역시 직계가 아니고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이기도 했고. 제대로 익혀내면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동시에 짓쳐드는 것처럼 엄청난 위압감과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패도적인 도법. 그러나 설영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손에 쥔 것이 혈마검이 아님에도 그저 마실 나가듯 살랑거리며 가볍게 걸음을 뗄 뿐이었다. 그리고 천화 쪽을 쓱 돌아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16586683007271.jpg‘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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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그 순간, 팽무혁의 도와 설영의 검이 부딪혔다. 천화는 굳이 힘자랑하는 놈과 겨루어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지만, 설영 역시 임봉곤처럼 조금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16586683007271.jpg‘쯧쯧. 어린 것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나 때는 말이야……!’

그 모습에 천화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짧게 혀를 차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의 공략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타박하기에는 이미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으니까.

16586683011556.jpg“큭?!”

내기가 충돌하는 굉음이 지나간 자리에 똑바로 서있는 것은 역시 설영이었다. 일류와 절정. 오호단문도와 혈마검법. 이건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비무였으니까. 더구나 진천십팔도까지 익히며 패력의 오의를 깨우치고 있는 설영이었다. 하북팽가라 하면 타고난 천생신력이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근육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16586683011556.jpg“이게 무슨?!”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팽무혁의 반응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도 아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무명의 여인에게 자신이 힘에서 밀릴 것이라고 어찌 생각을 했겠나? 그것이 근력이 아닌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북팽가의 도는 근력과 더불어 내공의 폭발적인 힘을 이용해 파괴력 있는 도초를 펼치는 무공을 자랑했으니까.

16586683007259.jpg“오호단문도가 힘에서 밀리다니?!”

16586683007259.jpg“저건 대체 무슨 무공이지?”

이렇게 되자 당황하는 것은 팽무혁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관중들 또한 크게 술렁거렸다. 파괴력이라면 그 어떤 무공과 견주더라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팽가가 아닌가? 그런 그들이 낭패를 보는 꼴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팽무혁의 성취가 생각보다 낮았던 것일까, 아니면 설영의 무가 높은 것일까?

16586683007259.jpg“크흠!!!”

모두가 갸웃거리는 가운데, 참관을 위해 자리 잡은 내빈석의 분위기가 요상했다. 하북팽가의 가주가 황소처럼 콧김을 뿜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다른 이들은 이채를 띄고 설영을 바라보는 것이다. 과연 도왕의 가르침을 받은 이답달까. 도(刀)를 전문으로 다루면서도 도왕이라는 칭호를 빼앗긴 것도 영 마뜩찮은데, 그의 후인도 아니고 약간의 가르침을 받은 이에게 탈탈 털리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반면 다른 이들은 도왕이 명불허전이라 이야기하며 감탄하기 바쁜 상황이었다.

16586683007271.jpg‘다들 눈이 삐었구만.’

그제야 천화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영이 굳이 실력을 감추지 않고, 혈마검법을 쏟아내며 팽무혁을 찍어누르는 이유. 이는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당장 무림 명숙이자 강호의 노괴들이라 불리는 그들조차도 혈마검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설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주제에 강호공적으로 낙인찍고 대대로 박해하는 꼴이라니. 아니, 심지어 칭찬하기 바쁜 모습이라니. 우습고도 슬픈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앙! 쾅! 쾅! 쾅!! 그 분노를 담아 일격 일격을 꽂아넣었다. 상대가 고작 일류급에 불과했기에 검강까지 뽑아내지는 않았지만, 만약 비등한 경지의 상대였다면 혈마기를 진득하게 뽑아냈을지도 모를 만큼 설영의 검이 분노하고 있었다.

16586683007271.jpg[설영.]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천화가 전음을 날렸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전부다. 그녀가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사실 지금 설영이 벌이고 있는 짓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확정적으로 혈마검법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면, 그 즉시 무림공적으로 낙인 찍혀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 어쩌면 친분이 있는 야수왕이 비호를 할지도 모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남만야수궁이 혈마와 손을 잡았다는 오명을 쓸지도 모른다. 딸린 목숨이 많은 만큼 함부로 나서지 못할 확률이 컸고, 설영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천화 자신 역시 선택을 해야 할 테고. 설영의 편에 설지, 아니면 그녀를 버릴지 말이다.

16586683007271.jpg‘저쪽은 바쁘구만.’

이해하지 못할 감정은 아니었기에 착잡하게 설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바쁘게 입을 놀리는 팽가주의 모습이 보였다. 전음을 이용해 아들이자 소가주인 팽무혁에게 훈수를 두는 모양이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가 좁혀질 리 없었다. 설영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16586683011556.jpg“으득! 제대로 상대해주마!!!”

계속해서 수세에 몰리며 못난 꼴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일까? 어느 순간 팽무혁의 기세가 달라졌다. 당황과 절망이 가득하던 눈에 희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16586683007271.jpg‘혼원벽력도?’

그 모습에 천화가 인상을 썼다. 그의 주변으로 일어나는 기운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오직 팽가주만 익힐 수 있는 혼원벽력도. 미리 알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전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이내 난폭하기 짝이 없는 그 기운이 주변을 삼켰고, 막대한 기가 놈의 도신에 몰려들었다. 파르르르- 팽무혁이 쥔 도가 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도를 잃을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쑤우욱!

16586683011556.jpg“!!”

설영이 무심한 눈초리로 검을 높이 쳐들기 전까지는. 검강. 절정 고수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이 설영의 검끝에서 일어난 것이다. 혈마신공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사람을 홀리는 붉은 강기의 출현에 모두가 혈마의 이름을 외쳤겠지만, 지금은 그저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에 만족했다. 더 이상 혈마검법을 펼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는지, 기수식을 달리하고 진천십팔도 상의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16586683011556.jpg“……졌습니다.”

16586683007259.jpg“승자는 무정검희 설영 소협!”

설영의 검강이 팽무혁의 도를 내리치려는 순간, 전의를 상실한 팽무혁의 허탈한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허공에서 우뚝 서는 검. 그것은 설영이 완벽하게 검과 검강을 제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공 수위에서도, 내력의 제어능력에서도 설영이 월등히 앞선다는 증거였다.

16586683007259.jpg“검으로 펼치는 진천십팔도라니! 이 늙은이가 개안을 했소!”

16586683007259.jpg“그 나이에 벌써 절정의 벽을 허물다니. 무림에 또 다른 꽃이 피어났구려!”

승부가 갈리자마자 각 문파를 대표하는 늙은이들이 앞다투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어제의 친구였던 하북팽가의 패배를 안타까워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도왕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 고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보려는 모습뿐이었다. 그들의 문파에도 절정급의 고수는 널리고 널렸지만, 이만큼 젊은 나이에 절정의 벽을 허문 이는 드물었으니까. 또한 설영이 진천십팔도의 한자락을 검으로 펼쳐낸 것을 보았으니,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도왕의 후계자라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보아야 할 터였다. 도왕이 아내의 병을 치료하고 다시 강호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으니까. 어쩌면 간만에 검의 여제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희극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설영은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이런 자들에게 당해 그 모진 박해의 시간을 보내온 선조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지만, 적당히 그들을 상대하며 한 가지 의사를 전달했다. 기권. 더 이상 이 비무대회에서 얻을 것은 없었기에, 임봉곤에 이어 설영 또한 과감히 기권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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