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방해꾼들 (2)2021.10.24.
북해로 떠나는 것은 닷새 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출발해서 후딱 다녀오고 싶지만, 아무래도 인원이 제법 있다 보니 준비할 것들이 많았기에 준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형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기는 했는데……. 이 많은 걸 다 어쩌시려고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천화 역시 준비를 했다. 사절단이 이동하는 동안 필요한 물품들과 북해빙궁에 전달할 갖가지 선물들은 정파 연합에서 준비한다고 했지만, 그가 보기에 그것보다는 다른 물품이 더 큰 호응을 얻을 터였다. 때문에 금무성에게 부탁해 수십 수레나 되는 물품들을 구했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만금상단의 이름과 금무성의 수완 덕분에 크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겠지.’
그 비장의 물품들을 천화가 은밀한 장소에서 금무성에게 넘겨받았다. 사절단이 내미는 것은 선물이지만, 천화가 챙긴 것은 흥정의 소재였기에 북해에서 교환 가능한 것들이 제법 될 터였다. 그것이 물건이든 정보든. 이왕이면 대막으로 향하기를 바랐지만, 이왕 북해로 가게 되었다면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을 최대로 뽑아먹을 참이었다.
“이거? 이렇게 해야지.”
금무성이 질이 좋은 놈들로 구해줬기에 그 값도 상당할 테지만, 만금상단의 차원에서 야수궁과의 교역을 열어준 보답으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연히 그걸로 끝이 아니라 남만과의 교역에서 나오는 수익금의 일부는 따로 배당을 받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천화가 말 한마디로 남만과의 교역을 열어주었듯이, 반대로 닫히게 할 수도 있을 테니 섣부른 장난질은 치지 못하겠지. 그럴 만한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천화로서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만금상단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천화에 대한 투자였으니까. 천화는 부담을 가지는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수레들을 모조리 소지품창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허? 어떻게 하신 겁니까?”
소지품창으로 수레까지 한 번에 들어가버리자, 지켜보던 금무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제법 견문이 넓은 그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일이었으니까.
“혹시 선술을 익히신 겁니까?”
“응? 선술?”
하지만 곧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스템 보정으로 설영 역시 소지품창을 이용하는 것을 봤지만 어째서인지 이해를 했었는데, 금무성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선술. 선인들의 술법. 실제 진법만 하더라도 구조물의 배치 따위로 마법과 같은 힘을 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공을 태워 불을 일으키거나, 기문둔갑을 이용해 불가사의한 술법을 일으키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혹시 흑우도 환상수인 겁니까? 비정상적인 힘과 체력을 가지고 있다 싶더니…….”
환상수는 무슨. 그냥 이놈은 영물 주제에 공청석유를 처먹어서 그런 건데.
“환상수라니……. 어, 음.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비슷하다고 해두지.”
나아가 금무성은, 허공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흑우를 환상수라 부르기까지 했다. 천화로서도 무신지로에서 본 적 없는, 설정상의 개념만 존재하던 이름이었다. 선인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선술로 빚어낸 생물이라던가, 다른 세상에서 불러온 환수라던가? 뭔가 좀 많이 나간 느낌이지만, 적당한 오해로 무마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럼 부디 다시 만날 날까지 보중하십시오.”
놀라고 감탄하는 것도 잠시, 금무성은 천화가 수레를 모두 챙기는 것을 확인하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후기지수 비무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그이기에 인룡단에는 들지 못했다. 물론 그 정도의 배경이라면 별개로 신청을 해서 가입하고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남만야수궁과의 교역 건으로 너무 바빠진 탓에 그럴 짬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대신 천화가 돌아오면 거하게 술을 사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무당과의 조율은 대충 끝이 났다지만, 남만과의 교역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려면 준비하고 계획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
“자, 그럼 슬슬 가볼까?”
그렇게 준비를 마친 천화는 설영과 함께 사절단이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이동했다. 숭산에는 차마 흑우를 들이지 못했지만, 이제는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기에 당당히 꺼내 타고서. 이미 말을 준비해주겠다는 말에 대신 돈으로 달라는 답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제 출발해도 되는 건가요?”
“그러시죠.”
잠시 후, 사절단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일각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다들 채비를 마치고 천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누가 설산파 아니랄까 봐 냉기 풀풀 날리는 나예린의 말에 천화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선두에 섰다. 북해로 향하는 사절단 행렬의 가장 앞에서, 모두를 이끌고 출발했다.
“잠깐만요.”
“엥?”
아니, 그러려고 했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그들의 행렬을 막아서는 여인이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무슨 일이시죠?”
갑작스레 행렬을 막아선 여인을 향해 나예린이 먼저 나섰다.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에 기세까지 은근히 피워올리는 것이, 어지간한 인물이라면 찔끔 겁을 먹고 알아서 물러날 판이다.
“저도 끼워주세요.”
“끼워달라니, 그게 무슨…….”
하지만 상대 여인도 지지 않고 나섰다. 나예린의 기세를 느끼지 못한 것일까? 일말의 위축도 없이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이게 무슨 행렬인 줄은 알고 그러시는 건가요?”
“네. 정파 연합이라던가요? 맞죠?”
“맞긴 한데, 불가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파 연합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행렬이죠. 외인을, 그리고 무인도 아닌 이를 멋대로 참여시킬 수 없습니다.”
“저도 무인이에요!”
나예린이 다시 한 번 단호한 거절의 말을 내뱉자, 상대도 발끈해서 소리를 쳤다. 자신도 무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무인의 모습은 아니다. 아무리 여성이라지만 보통 무인이라면 설영이나 나예린처럼 움직임이 편한 무복을 입기 마련인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폭이 넓은 치마 차림이었으니까. 그나마 여인의 키가 상당히 컸기에 바닥에 끌리지 않는 것이지, 조금만 작았어도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바닥 청소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딱히 기감을 넓혀 봐도 내공을 익힌 무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나예린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나 낄 수 있는 행렬이 아닙니다. 물러나세요. 계속 버티신다면 정파 연합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당연히 차가운 말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검이라도 뽑아들 기세. 그러자 상대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했다.
“저는 아무나가 아니라…….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결심했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제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어요. 적어도 그 뒤에 있는 분들보다는 제가 나을걸요?”
“그게 무슨…….”
“그거 재미있겠군요.”
이상한 떼를 쓰는 여인을 보며 나예린이 짜증스럽게 답을 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천화가 아니다. 여인에게 무시를 받은 무인들 중 하나였다.
“실력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인이라면 권사인 것 같은데, 제가 차이를 보여드리죠.”
나선 이는 오대세가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주언가의 후기지수 언중걸이었다. 언가권이라는 권법을 사용하는 권사이자 일류급의 고수인 그가 나선 것이다. 비무대회에서는 실력이 부족하여 16강에서 패배하고 말았지만,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나예린을 의식하며 앞으로 나섰다. 여인과 주먹다짐을 하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나, 상대가 권사인 것 같으니 이참에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보려는 것이다.
“그럼 저 곰…… 아니, 사람을 꺾으면 저도 끼워주시는 거죠?”
그러자 여인도 반색하며 나섰다. 언중걸의 자존심을 긁는 이야기였지만,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조건을 건 것이다. 하지만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이야기가 다르…….”
“좋습니다.”
나예린이 그것과는 별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천화가 나섰다.
“천화 소협?”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나예린이 천화를 째려봤지만 상관없다. 이미 백연 대사에게 이번 사절단의 전권을 위임받은 그가 아니던가? 그러니 천화가 된다면 되는 거다. 천화는 나예린을 대신해 그것을 약속했고, 자존심이 상한 언중걸은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모두가 물러나며, 크지는 않지만 비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여인이라고 봐주지 않겠소. 힘의 차이를 느끼거든 항복하시오.”
언중걸이 먼저 분위기를 바꾸었다.. 살기마저 머금었기에, 무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위협적인 기세였다.
“오세요.”
허나 상대 여인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역으로 그를 도발했다. 굳이 선공을 취할 필요도 없다는 듯 상체만 조금 낮출 뿐, 딱히 움직일 생각도 없어보였다.
“……후회하지 마시오.”
이대로 눈싸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언중걸이 먼저 움직였다. 권기까지 끌어올리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기운을 머금은 주먹을 거침없이 내질렀다. 뻐억!!! 그 순간, 둔탁한 타격음이 주위를 흔들었다.
“이게 무슨?!”
일격. 단 일격 만에 떨어져나간 것이다. 여인이 아닌 언중걸이 말이다. 그러면서 부딪힌 팔을 부여잡는 것이, 상당한 고통이 동반된 모양이었다. 반면 여인의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준비운동도 되지 않았다는 듯, 오히려 팔을 붕붕 돌리다가 상태가 좋지 않은 언중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벌써 끝난 건가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언중걸이 분노했다.
“무히히힝!!”
비웃는 듯한 흑우의 웃음소리도 그의 분노를 자극했다.
“닥쳐라!!”
언중걸은 진득한 살기와 함께 권기까지 피워올렸다. 자신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권기라면 다를 것이다. 상승의 무공일수록 내공을 이용한 초식의 위력이 급증하니까. 언가권을 극성으로 발휘한다면 상대가 다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창피만 당하고 물러설 수는 없으니까.
“제대로 상대해주마!”
조금 전에는 방심해서 그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끌어올렸다. 권기를 두른 주먹을 휘두르며 여인에게 쏘아져나갔다.
“흐음. 길게 끌 필요는 없겠죠?”
“!!”
그 순간 여인의 주먹에서도 강대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언중걸의 그것보다 강력한 권기가 녀석의 주먹을 철퇴처럼 후려쳤다. 콰앙!!! 권기끼리의 격돌. 허나 이미 부딪히기도 전에 천화도, 설영도, 나예린도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크으으윽!”
채앵!
“당신은 누구죠?”
형편없이 튕겨져 나간 언중걸을 대신해 나예린이 검을 뽑아들고는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정파 연합의 행렬을 막아선 것부터, 실력을 숨기고 언중걸을 박살낸 것까지. 뭔가 의도가 있어서 자신들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저도 끼워주시는 거죠?”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미소를 띨 뿐이었다.
“아니오. 불가합니다. 당신처럼 수상한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죠. 정체를 밝히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쪽도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중걸도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었다. 오룡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들과 겨루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는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예린의 무위는 그와 격이 달랐다. 절정 고수. 천화와 설영을 제외한다면 비슷한 또래 중에서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한 고수가 그녀였으니까. 그런 만큼 그녀가 검을 뽑고 기세를 피워올리자 여인 또한 살짝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슬쩍 천화의 쪽을 쳐다보았다. 언중걸을 이긴다면 일행에 합류시켜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힘으로 밝히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우우웅!!! 그러는 사이에도 나예린의 무력시위는 계속되었다. 내력의 소모가 있지만 검강을 피워올리며 여인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럼 당신도 쓰러뜨리면 되나요?”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알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지만 여인은 진지했다.
“끝까지…….”
그 말을 들은 나예린의 눈빛도 돌변했다.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이 들끓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하죠.”
“소협?”
그때 천화가 나섰다. 일촉즉발이라 할 수 있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물러나세요. 어쨌든, 제가 단장이잖아요?”
“하지만……!”
정말 여인을 일행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일까? 나예린이 황당한 눈빛으로 천화를 노려보았다.
“그럼 받아주시는 건가요?”
“뭐, 못할 건 없긴 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궁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요.”
움찔 그 말에 여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천화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건드린 것이다.
‘세주연. 역시 근처에 있었네.’
처음에는 천화도 긴가민가했지만, 언중걸과 첫 격돌을 벌이는 순간 알아차렸다. 평범한 주먹질 같지만 남만야수궁도들의 대표 무공인 형의권의 묘리가 담겨있었으니까. 인피면구도 쓰고 키도 크게 위장을 하며 나름대로 감춰보려 한 것 같지만, 천화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저 키에 저 팔이면 기형이지.’
소매가 긴 옷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주먹을 부딪히는 순간 키에 맞지 않은 짧은 팔 길이가 드러나기도 했고.
“무,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색하게 발뺌하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는데 갑자기 키가 확 커서 몰라보긴 했지만, 그것도 어떻게 한 것인지 이제 대충 알 것 같았다.
“궁주님이라니요? 아시는 분인가요?”
“남만야수궁주님의 따님이십니다.”
나예린이 놀라면서도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만야수궁주의 딸이라면 언중걸을 꺾은 것도 이해가 가니까.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정신이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던 이상한 대답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만에만 있던 아가씨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아, 아니라니까요?”
그럼에도 언중걸은 여전히 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세주연은 끝까지 발뺌을 했다.
“불편하실 텐데 그냥 밝히시죠. 궁주님이 저에게 아가씨를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앗? 그럼 아빠가 저희 사이를 인정…….”
“아빠요?”
움찔 뭔가 이상한 대답이 튀어나온 것 같지만, 어쨌든 여인은 되묻는 나예린의 말에 다시 말을 삼켰다.
“흠흠,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천화의 말처럼 세주안이 동행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이미 야수궁도 중 일부가 중원에 남았다는 것을 알기에, 발각되는 즉시 남만으로 끌려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건…… 확인해보면 알겠죠.”
그때, 천화가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 바닥을 살짝 찬 것 같은데 미끄러지듯 쭉 뻗어오는 천화의 특이한 보법에 놀랐지만 즉시 반응하며 손바닥을 뻗었다. 마음에 둔 이를 향해 차마 주먹질을 할 수 없었던지, 밀쳐내는 것으로 그칠 생각인 모양이었다.
“?!”
허나 천화는 그것에 부딪혀주지 않았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탓에 이제 내력 대결이나 힘 싸움으로 가더라도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어차피 목적은 그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니까. 가볍게 파고드는가 싶더니 몸을 푹 숙이며 발차기를 날렸다. 바닥을 쓸어갔다.
“앗!”
폴짝 엄청난 도약력으로 뛰어오르는 여인. 순간적인 기습에 힘 조절이 되지 않았는지 무려 1장은 족히 될 만큼 높이 뛰어오르자,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풀거리는 품이 넓은 치마를 입은 까닭에 그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크고 우람한 무언가가 덜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