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이무기와 용 (2) (406/481)

<162화> 이무기와 용 (2)2021.11.16.

잔치가 끝나고, 사절단을 먼저 중원으로 돌려보낸 뒤 천천히 진행할까도 생각했던 특수 연계 임무까지 손에 넣은 천화는 즉시 호수로 달려가지 않았다. 어차피 사절단이야 단철우가 서신을 적어줄 때까지 하염없이 이곳에서 대기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그와 말을 맞추고 여유있게 시간을 끌기로 한 것이다. 대신, 빙궁의 한가운데에서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시작했다.

16586684274296.jpg“자, 안 쓰는 물건은 뭐든지 받습니다! 골라, 골라~.”

우습게도 천화가 하는 행동은 엿장수와 같은 것이었다. 단철우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들을 제외하고 남아있는 물건들을 빙궁의 주민들에게 팔아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16586684274302.jpg“엄마, 나 저거! 저거 먹고 싶어!!”

판매 물품은 대부분 간식거리들이다. 재료들을 가지고 와 직접 조리하여 판매한다면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저잣거리에서 판매하는 군것질거리들을 모조리 쓸어담아 소지품창에 넣어둔 것이다. 당장 먹을 것도 부족한 곳에서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것이 다소 이질적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예린과 언중걸이 사절단장으로서의 체면을 이야기하며 만류하는 것도 가뿐히 뿌리치고,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물건을 받고 그것들을 나누어주었다.

16586684274296.jpg‘가치라는 건 상대적인 거니까.’

당연하게도 가치 판단은 천화의 마음대로였다. 북해에서의 가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손에 쥐는 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천화였기에 기존의 지식들을 이용해, 또 정보창의 설명을 통해 물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어떤 것은 한 개, 어떤 것은 두 개. 그것을 단철우가 고깝게 여기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차피 주민들은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는 것이고, 천화는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으니까. 기존의 좋은 인상 덕분인지, 오히려 천화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처럼 고마워할 뿐이었다. 아예 궁도 몇몇을 붙여서 줄을 세우고 그가 음식을 판매하는 것을 돕게 지시하기까지 했다.

16586684274296.jpg‘쓸 만한 것들이 제법 모였군.’

그렇게 모은 물품 중에는 중원에서 제법 비싸게 팔아먹거나 특수한 약을 만들 때 필요한 약초들도 제법 있었다. 눈 속에서만 피어나거나 그때가 가장 약효가 좋은 약초들도 있었고, 만년한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한기를 머금은 금속이나 암석, 영물의 내단 따위까지도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개중에는 이번 임무에서 요긴하게 쓰일 만한 물건들도 제법 있었다. 호수의 영물을 낚아낼 미끼가 될 만한 음기를 품은 벌레나 나무열매 따위였다.

16586684274296.jpg“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천화는 설영, 세주연과 함께 잠시 빙궁을 벗어날 것을 알렸다.

16586684274323.jpg“잠시만요. 저도 함께 가게 해주세요.”

어차피 단철우의 서신을 받을 때까지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그들이었으니, 천화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예린이 함께 나설 것을 자청했다.

16586684274296.jpg“함께요? 저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천화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설산파의 장문령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나예린을 굳이 데리고 가야 할까? 아니, 그 전에 나예린은 왜 자신과 함께 빙궁을 나서겠다고 하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따로 자신을 감시하라는 백연 대사의 명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초원에서도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났던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

16586684274323.jpg“……찾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북해의 어딘가에 있을 텐데, 위치는 모르고요. 지시하시는 것은 모두 따를 테니,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운이 좋게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절대 개별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머리를 숙여 부탁하는 그 모습에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동생의 병을 호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겠지. 아무래도 설산파가 있는 초원과 북해의 경계보다는 북해 내부에 음기를 머금은 무언가가 있을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데리고 가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물론 만약의 상황에서는 가용 전력이 많을수록 좋을 테지만, 게다가 절정 고수인 그녀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굳이 자신이 하는 일을 노출 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6586684274296.jpg“미안하지만…….”

16586684274346.jpg“공자! 함께 가요. 네?”

16586684274296.jpg‘이런…….’

그렇기에 천화는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세주연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설산파에서 그녀에 대해 설명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눈치가 없는 바보는 아니었기에 세주연과 설영은 그녀의 말 할 수 없는 사정이 무엇인지는 알아차렸고, 천화를 조르며 눈빛 공격을 시전했다.

16586684274296.jpg“……알겠습니다. 함께 가죠. 단, 무조건 제 명령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16586684274323.jpg“예. 각오하고 있습니다.”

대체 뭘 각오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화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동행을 허락했다. 이번 임무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는 세주연이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졸라대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던 것이다.

16586684274296.jpg‘일단 절정 고수이긴 하니까.’

그리고 만약 영물을 회유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녀의 손이 필요해질지도 몰랐다. 아무리 남만의 것이 아니라지만 영물이니까. 율법에 얽매여 세주연이나 뒤를 따를 야수궁도들이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방어하거나 도망치는 것에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놈을 죽이고 호수의 지배권을 빼앗아오는 일은 오롯이 천화와 설영의 몫이었다. 다행히 둘의 상성은 놈과 나쁘지 않았지만, 단철우의 말에 따르면 북해빙궁의 무공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정말 단둘만 싸워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녀가 거들어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질 수 있겠지. 설산파 역시 음기를 기반으로 한 무공을 익힌다지만, 중원의 것도 섞여있기에 통할 것을 기대했다. 여차하면 시간이라도 벌어줄 수 있을 테고.

16586684274302.jpg“그럼 저도……!”

16586684274346.jpg“약한 사람은 필요 없어요.”

16586684274302.jpg“크흡.”

그렇게 결정이 나자 언중걸도 슬쩍 꼽사리를 끼려 들었지만, 세주연이 한마디로 제압했다. 세주연에게도 나가떨어진 그였으니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 절정 고수님들 노시는데 일류 따위가, 엉? 언가권이 약한 게 아니라 그가 상대적으로 약할 뿐이었지만, 어쨌든 약한 건 약한 거다. 거추장스러울 것이 뻔했기에 천화는 더 이상 의견을 받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의 안내를 받아 문제의 호수로 이동했다. @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호수는 호수라기보단 빙판이었다. 사람이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 말이나 마차가 다녀도 주저앉지 않을 만큼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었다. 크게 구멍을 뚫어 낚시를 즐기거나 투망질을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꽁꽁 얼어있는 거대한 호수인 것이다. 다만, 저 먼 곳에는 군데군데 두꺼운 얼음이 깨져있는 모습이 아마도 그들이 말한 영물의 소행인 것 같았다.

16586684274296.jpg“여기부터는 저희가 맡죠. 다른 분들은 물러나주세요.”

천화는 일단 그곳을 확인하자마자 빙궁의 무인들을 뒤로 물렸다. 어차피 그들의 힘이 영물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쓸모가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영물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줄 수도 있었기에, 소수의 인원으로 둘러보고 놈을 찾으려는 것이다.

16586684274346.jpg“공자님, 다 됐어요!”

16586684274323.jpg“갈아신었습니다.”

대신 그들에게 전해받은 징 박힌 신발로 갈아신었다. 아무래도 빙판이다 보니 중원의 신발로는 미끄러지기가 쉽고, 보법을 펼치기도 어려웠으니까.

1658668428564.jpg“무히히히!!!!”

주르르륵- 흑우는 그 미끄러지는 것이 재미가 있었는지 롱롱이와 함께 한창 달리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놀고 있었지만, 설영만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천화에게 다가왔다.

16586684285646.jpg“천화. 정말 괜찮겠어? 만약 금강토룡 같은 놈이라면…….”

16586684274296.jpg“쉽지 않겠지. 그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괜찮아.”

만약 금강토룡 때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악물이라면 과연 이런 환경에서 놈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그때야 여의주 때문에 놈을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지만, 만약 그 정도로 거대한 놈이라면, 또 물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남만에서도 놈이 계속 물속에 있었다면 잡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 그나마 천화가 자신있게 말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일단 천화를 따라 호수 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16586684274296.jpg“이 정도 구멍이라면 덩치가 어마어마하겠는데?”

놈의 공격 수단은 금강토룡 때와 같았다. 거대한 입을 벌려 두꺼운 빙판을 부수고 삼킨다는 것을 빙궁의 무인들에게 전해들었기에 설영은 기감을 넓혀 놈의 존재를 살폈고, 아예 혈마검까지 천화에게 넘겨 놈의 생명반응을 확인했다. 이미 천화는 무명검을 꺼내들기 시작했기에, 설영 자신이 혈마검을 통해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혈마신공의 성취가 모자라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혈마검과의 대화가 불가능했기에, 설영이 혈마검을 넘겨준 것이다.

16586684274346.jpg“우우, 공자님. 아이들이 슬퍼하고 있어요.”

그렇게 구멍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구멍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세주연이 거의 울먹거리는 모습으로 말을 전했다. 유독 동물과의 친화력이 높은 그녀이다 보니 영물뿐 아니라 이 호수의 다른 생물들의 감정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세주연이 그 차가운 호수 물에 손을 담그자 그 주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모여들었다. 호수의 물고기들이 하소연을 하듯 그녀에게 몰려든 것이다.

16586684285664.jpg

16586684274346.jpg“으으음. 무척 포악한 녀석이라고 해요. 그리고 강력하고요. 모두 공포에 질려 있어요. 상생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폭군…….”

16586684274296.jpg“모두 물러나!”

물고기들과 대화를 하듯 손끝으로 소통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천화가 돌연 소리를 질렀다. 강제로 세주연의 몸을 끌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쿠구구구구구구-!!!

16586684274296.jpg“미끼가 필요 없군. 아니, 저 녀석들이 미끼가 된 건가?”

잠시 후, 빠르게 다가온 검은 그림자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먹어치웠다. 모여든 물고기들이 빠르게 산개해보지만 상당수가 녀석의 입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놈을 유인하기 위해 애써 미끼까지 모아왔건만, 세주연 덕분에 모여든 물고기들이 그 역할을 대신 해준 모양이었다.

16586684274346.jpg“너! 나빠!!”

그 순간, 세주연이 천화의 손길을 뿌리쳤다. 정말 화가 났는지 앙증맞은 볼을 부풀리며 놈을 향해 날아올랐다. 퍼억!!!! 제 몸집의 수십 배, 어쩌면 수백 배에 이를지 모르는 놈이었다. 직경 수십 미터는 됨직한 두께의 물뱀을 향해 날아오른 세주연의 주먹에 막대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후려쳤다.

16586684274302.jpg“키엑!!!!”

그 한 방에 물뱀의 대가리가 휘청거렸다. 소녀의 주먹질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괴력에 기우뚱 그 커다란 몸뚱이가 기울어졌다.

16586684274302.jpg“캬하하악!!!!”

허나, 빙판을 부수고 물속으로 떨어지기 전에 홱하니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연체동물의 특성상, ‘타격’에 강하기 때문이리라. 순간적인 충격에 거리긴 했지만 치명적인 타격은 되지 못했던 듯, 머리를 휘둘러 세주연을 노려갔다. 그 자그마한 몸뚱아리쯤은 한 입에 삼켜버리겠다는 듯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16586684285646.jpg“귀혈참!!”

푸확!! 그 순간, 설영이 먼저 놈에게 달려들었다. 타격이 안 된다면 베어낼 수밖에. 강기까지 끌어올린 설영의 검이 놈의 몸뚱아리를 길게 베어냈다. 아니, 금강토룡 때의 교훈이 있는 탓인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힘을 더했다. 부우우욱!!! 비늘로 뒤덮인 놈의 가죽을 갈라내며 그대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16586684274296.jpg“피해!!”

16586684285646.jpg“?!”

허나 물뱀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배 부근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지자마자 그대로 설영을 깔아뭉갤 듯, 뭉개기를 시전한 것이다. 그 거대한 몸뚱아리가 한순간 떨어져내리니,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16586684274302.jpg“피하십시오!”

16586684274302.jpg“빙백한포!!”

그때,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끼어들었다. 빙궁의 손님을 이대로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으니까. 설영을 구원하기 위해 극음의 장법인 빙백신장의 초식을 펼쳐 놈의 몸뚱아리를 후려쳤다. 중원이라면 장문인만 익힐 수 있도록 제한을 둘 만한 무공이지만, 야수궁을 비롯한 세외에서는 그런 제한을 두기보다 모두가 익히고 그중 가장 강한 자를 궁주로 세우곤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뿜어내는 한기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16586684274302.jpg“아닛?!”

허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빙백신장에 얻어맞은 부위가 하얗게 얼어붙긴 했지만 그뿐이다. 아주 약간의 들썩임을 만들며 속도를 늦추었을 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츠즈즈즛- 아니, 오히려 그들이 뿜어낸 음기가 놈에게 힘을 주었다. 상처를 후벼파기 위해 쏘아진 빙백신장의 기운을 흡수하며 물뱀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다.

16586684274296.jpg“야이 트롤들아! 빠져!!!”

그 모습에 상황을 파악한 천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설영을 구원하기 위해 비영검을 집어던졌고, 그 순간 검은 두 그림자가 떨어지는 물뱀을 향해 날아들었다.

1658668428868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