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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검치의 무공 (1) (418/481)

<174화> 검치의 무공 (1)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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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는 빨라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거리였지만, 천화와 설영은 고작 보름 남짓 만에 복건성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기존에도 체력이 대단했지만, 설빙화를 먹어치우며 200레벨에 도달한 덕분인 듯싶었다. 새로 개화한 능력과 별개로 100레벨 마다 큰 능력치의 상승효과가 붙기 때문이다.

16586685442429.jpg“여기 바다가 있단 말이지?”

급히 달리기는 했어도 꼬박꼬박 마을에 들러 휴식을 취했기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넘쳤다. 더구나 바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설영이 사뭇 설레는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 중원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평생 동안 바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허다했다. 현대처럼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상인이나 무인이 아니고서야 태어난 성을 벗어나는 일도 극히 드물었으니까.

16586685442433.jpg“응. 아직 멀긴 했지만 이대로 쭉 가다 보면 나오겠지.”

그래 봤자 이제 막 복건성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니 바다가 보이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설영은 어린아이처럼 쫑알쫑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바닷물이 정말 짠가에서부터 정말 끝이 안 보일 만큼 넓은가에 이르기까지, 잔뜩 설레어 있는 것이 느껴질 만큼 귀여운 반응에 천화도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16586685442438.jpg“멈춰라! 계집을 내놓……. 컥!”

그 모습에 홀린 산적들이 나섰다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말았지만, 제 업보이니 어쩌겠나? 혈마검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까닭인지 설영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한층 화사해졌고, 더 이상 인피면구 따위로 굳이 변장을 하지도 않았기에 거추장스러운 일들이 종종 생겨났다. 하지만 천화는 굳이 변장을 권유하지 않았다. 단지 기분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러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낫기 때문이다. 이미 비무대회를 통해 기존 무림이화라는 이름을 갈아치울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드러낸 설영이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명성을 더 쌓으면 적어도 잔챙이들은 나서지 않을 테니까. 덕분에 그들의 행적이 알려지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천화가 얻으려는 것은 남이 쉽게 가로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6586685442433.jpg“흠,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천화는 정말 바다를 보러가듯 계속해서 복건성을 가로질러 갔다. 그렇게 민청현에 이르자, 천화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잣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16586685442429.jpg“대체 뭘 찾는 거야?”

16586685442433.jpg“잠깐만 있어봐. 분명 여기 있을 텐데.”

숙소도 정하지 않고 저잣거리를 훑어대는 모습을 보자 설영이 의문을 표했지만, 천화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을 뿐이었다.

16586685442433.jpg“찾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반짝 빛냈다.

16586685442429.jpg“응?”

16586685442438.jpg“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절대고수였던 검치 강무님의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 단돈 은자 세 냥에 천무문의 제자가 되어보세요!”

천화의 시선을 따라가자 이상한 인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무문의 제자쯤 되는 것 같은데,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팔듯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6586685442429.jpg“검치 강무라고?”

게다가 입에 담는 것 역시 뜻밖의 인물이었다. 검치 강무. 오래전 십대고수 중 하나로 불리던 절대고수의 이름이 아니던가? 강호에 대한 견문이 짧은 설영이지만 그에게 그런 사문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그런 절대고수를 배출한 문파가 이처럼 삼류문파도 하지 않을 호객행위 따위를 한다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그런 이에게 천화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6586685442429.jpg“천화, 저거 진짜야?”

거기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설영이 묻자 천화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16586685442433.jpg“맞아. 그리고 그가 남긴 최후의 무공과 심득을 가지고 있지.”

16586685442429.jpg“에엑?”

그게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일이다. 절대고수가 최후에 남긴 무공과 심득이라니? 무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만한 것이 아닌가? 헌데 그런 것을 고작 은자 몇 냥에 팔아치운다고? 설령 천화가 이야기한 최후의 무공과 심득은 전하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검치라는 절대고수를 배출한 문파의 제자가 되는 비용으로 고작 은자 세 냥이라면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이니까.

16586685442438.jpg“크흠! 지금부터 파격가입니다! 두 냥! 은자 두 냥으로 고수가 되어보세요!!”

심지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은자 두 냥으로 값을 낮추기까지 했다. 물론 그때까지 신청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6586685442438.jpg“검치의 무공이라, 재미있군.”

16586685442438.jpg“어서 오……!”

그때, 누군가 호객 행위를 하던 이의 앞으로 나섰다. 차림을 보아하니 이 근처의 문파원은 아니다. 아무래도 복건성 역시 귀주성처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또 인근에 복주라는 커다란 도시가 있는 까닭에 유동인구가 제법 많다 보니 지나가던 무림인이 흥미를 보인 것이다.

16586685442438.jpg“하지만 진위 여부 정도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그분께 사문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니, 역시 이걸로 확인을 해야겠군. 나와 비무를 해서 승리한다면 내 기꺼이 제자로 들어가지. 입문비도 세 냥이 아니라 서른 냥을 내겠네.”

그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검을 들어보였다. 비무를 벌어 자신을 꺾는다면 제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월 세 냥이 아닌 서른 냥을 내겠다고까지 약조했다.

16586685442433.jpg“고약한 장난이네.”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니다. 기감을 넓혀 살펴보니 상대는 적어도 일류 고수쯤은 되었으니까. 반면 무공을 팔겠다고 호객행위를 하던 이는 높게 잡아야 이류 정도였다. 실력 차이가 현격한데 이런 조건을 건다? 애초에 상대의 말을 거짓이라고 단정하고 벌이는 고약한 장난질에 불과했다. 어쩌면 검치를 진심으로 존경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입가에 걸린 비릿한 웃음이 대충 상황을 짐작케 해주었다.

16586685442438.jpg“에구, 또 저러네.”

16586685442438.jpg“쯧쯧. 어쩌려고 저러는 겐지…….”

곧 주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무공을 팔던 이는, 머뭇거리면서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86685455226.jpg“좋습니다. 다만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내공은 사용하지 않고 겨루면 어떻겠습니까?”

16586685442438.jpg“그러시지.”

자칫 크게 몸이 상할 것을 우려한 것일까? 내공을 금제하고 겨루자는 이야기에, 시비를 건 자도 흔쾌히 수락했다. 아무리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명백한 실력차가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른 냥이라는 소리에 눈이 멀어 요행을 바라는 모양이지만, 결코 봐줄 생각이 없었다.

16586685455226.jpg“혹여나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끌어올릴 수도 있으니, 아예 점혈로 제약을 겁시다. 거기 그쪽분도 무인이신 것 같은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16586685442438.jpg“그럽시다.”

하지만 진지한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예 주변에서 구경하던 무인 중 하나를 가리켜 도움을 구한 뒤, 자신이 먼저 점혈을 당해 내공을 제약시켰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다시 내공이 흐르겠지만, 적어도 이각 이상은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터였다.

16586685442438.jpg“흥. 잘나신 검치의 후예께서 얼마나 잘 싸울지 한번 보지.”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한다. 먼저 시비를 건 주제에 상대가 당당히 맞선 것이 오히려 자존심 상하는지, 무인은 자세를 잡고 검끝을 겨누었다. 사실 그 정도 무위의 차이라면 설렁설렁해도 낙승이겠지만 방심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듯, 제대로 곤죽을 만들어주겠다는 듯 집중하는 것이다.

16586685455226.jpg“그럼, 오시죠.”

16586685442438.jpg“건방진!”

이어 상대가 한마디를 던지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선공을 양보한다는 것은 보통 고수가 하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얕본다는 소리였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 하나 부러뜨리든 잘라내든 박살을 내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16586685442429.jpg“어?”

그 순간, 느릿하게 움직이는 자칭 검치의 후예의 모습에 설영이 깜짝 놀랐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절정 고수인 천화와 설영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간단한 동작 속에 얼마나 심오한 무리가 깃들어있는지를. 막고, 피하고, 벤다. 아주 간단한 기본 동작이었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 승부가 갈렸다.

16586685442438.jpg“이런 말도 안 되는……!”

승자는 놀랍게도 검치의 후예였다. 마치 실력을 숨긴 고수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고작 세 합 만에 상대의 목에 검날을 가져다 댄 것이다. 고수가 하수에게 삼 초식을 양보하는 것을 생각할 때, 누가 더 고수인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16586685442438.jpg“또 한 명이 걸려들었네.”

16586685442438.jpg“하여간 저 실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뒤늦게 들려온 주변의 말소리가 한 번 더 설영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다른 이들이 걱정하던 것은 검치의 후예가 아니라 상대였던 것이다.

16586685455226.jpg“자, 그럼 입문비를 내야지. 제자야?”

씨익 그리고 늘상 있던 일인 듯, 자연스럽게 돈을 뜯어냈다.

16586685442438.jpg“무위를 속인 건가!”

16586685455226.jpg“어허! 어디 사부님한테 버릇없이!”

빠악! 승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상대가 소리를 높이자, 검면으로 머리를 세게 때리며 벌써부터 사부 행세를 하기까지 했다.

16586685442433.jpg“뭐, 지면 입문하기로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16586685442429.jpg“그럼 저 사람이?”

16586685442433.jpg“응. 천무문주야. 이름은 거창하지만 제자는 아마 없거나 열 명이 채 안 될걸? 저렇게 받은 제자들도 결국 돈 받고 풀어주니까.”

하지만 천화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니까. 자신도 무신지로에서 한번 당해봤던 일이니까. 덕분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덕분에 참 많이 배웠다. 나중에 고인물 플레이라 불리는 무공 없이 싸우기를 할 때도 그랬고, 무엇보다 독보적인 랭킹 1위를 찍을 수 있게 해준 독문무공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까.

16586685442433.jpg“아, 잠깐만. 저기요!”

고개를 끄덕이며 억울한 표정으로 전낭을 끄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천화가, 설영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번쩍 손을 들었다. 앞으로 나서며 그에게 도전했다.

16586685442433.jpg“여기 한 명 더 있습니다!”

16586685455226.jpg“허허허! 제가 인복이 많은가 봅니다.”

상대는 이미 자신의 승리를 예견한 듯이 웃어보였지만, 천화 역시 지지 않고 마주 웃었다.

16586685442433.jpg“저는 지면 금자 서른 냥을 내죠!”

16586685455226.jpg“그, 금자 서른 냥!”

16586685442433.jpg“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사악한 미소를 입에 걸며 한발 나아간 제안을 했다.

16586685442433.jpg“제가 이기면 제가 스승이 되는 겁니다.”

16586685455226.jpg“스승이라니, 어찌 그런……!”

만약 자신이 승리한다면 그가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문파의 문주가 다른 이의 제자가 된다? 당연히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그도 인상을 찡그렸다.

16586685442433.jpg“싫으면 말고요.”

그래서 천화도 금자 서른 냥이라는 거액을 내건 것이다. 그가 거부할 수 없도록.

16586685455226.jpg“아니,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크흠. 돈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신 듯하여 받아들이겠습니다.”

16586685442438.jpg“이봐, 강현! 이번에 이기면 외상 값 갚을 거지?”

16586685442438.jpg“이번에 술 좋은 놈 들어왔어! 우리 가게에도 꼭 들르라구!”

천무문주는 돈 욕심이 많은 자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관리에는 영 소질이 없어 늘 탕진해버리고 말긴 하지만. 천화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천무문주는 짐짓 주변의 눈치를 보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몇 번이고 승리를 거둔 것을 보았기 때문인지, 주변 상인들도 당연히 그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6586685442433.jpg‘하지만 어림도 없지. 일부러 져서 제자가 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돈 내기에서 질 수야 없으니까. 굳이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

그런 소란 따위는 개의치 않고 천화가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 그들을 도와주었던 무인에게 똑같이 점혈을 당해 내공을 금제한 뒤, 천무문주 강현의 앞에 섰다.

16586685442433.jpg“시작할까요?”

16586685455226.jpg“오시오.”

강현이 검을 들어올린다.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빈틈이란 것이 사라졌다. 무공을 숨긴 것일까? 아니다. 강현의 무공수위는 이류가 맞았다. 다만, 그의 자세와 동작이 완벽할 뿐이었다. 자세와 동작만.

16586685442433.jpg‘내공만 빼고 싸우면 천하에 손꼽힐 정도이긴 하지. 결국 그 뿐이지만.’

천화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먼저 덤벼들었다. 굳이 선공을 양보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까. 스르륵- 천화의 움직임에 따라 강현의 검도 천천히 움직였다. 고수일수록 그런 작은 움직임에 현혹되는 법이지만, 천화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유인이라 속임수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16586685455226.jpg“!!”

채앵! 언제나 처음은 이거였다. 기이한 각도에서 날아오는 검, 그리고 당연히 쳐내거나 막아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리를 꿰뚫는 흘려내기. 하지만 똑같이 힘을 푼 것은 천화도 마찬가지였다.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자세를 유지하며 그대로 검식을 변화시켰다. 까앙 까앙 깡 깡 순식간에 다섯 합을 겨루었다. 서로가 초식이라고 할 것 없는 기본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휘두르고, 멈추고, 꺾으며 검을 겨루었지만 땀이 흥건하게 젖은 쪽은 강현이었다. 공방이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 일방적인 수세였으니까. 반면 천화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공격을 때려붓고 있었다.

16586685455226.jpg“너는, 대체, 누구, 큭!”

그조차 전력은 아니었다는 듯, 점점 천화의 검이 무거워졌다. 강하고 빠르게 요혈들을 베어낼 듯 압박하며 일방적으로 강현을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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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다른 것은 몰라도 내공을 제외한 칼싸움에서는 자신이 있던 그였기에 두 눈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6586685442433.jpg“나? 네 스승님이시다!”

하지만 천화는 더없이 여유롭게 그를 몰아붙였다. 완전히 압도하여 그를 무릎 꿇렸다.

16586685442433.jpg“이제 천무문은 제 겁니다.”

전대의 절대고수, 검치의 사문을 통째로 제 손 안에 넣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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