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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무상천검 (3) (428/481)

<184화> 무상천검 (3)2022.01.06.

진왕의 결정은 천화에게도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민왕이든 현왕이든 자신의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번 옥에 갇혔던 것처럼, 국법을 들먹거리며 자신을 잡아두려 한다면 선택을 해야 할 테니까. 순순히 잡혀주든, 아니면 그들에게 반기를 들든 말이다. 허나 반기를 들기 위해서는 무엇으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적어도, 아직은 그런 힘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왕은 훌륭한 방파제가 되어줄 터였다. 조금의 시간만 벌어준다면, 자신은 예전의 무위를 되찾고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

16586686068156.jpg‘나도 처음에는 민왕의 짓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무신지로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현왕의 짓으로 보는 게 맞겠지.’

처음부터 추측이라고 이야기했듯, 천화도 아직 마교와 결탁한 이들이 현왕파라고 단정짓지 못했다. 그러나 무신지로에서의 일을 생각할 때, 그럴 가능성이 높기에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이었다. 무신지로에서는 결국 황위에 오른 것이 민왕이었으니까. 그때도 그가 마교와 결탁하여 안정적으로 황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마교는 천화와 고인물들에게 탈탈 털리고 다니느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황실 따위에 빌려줄 힘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어쨌든 마교 역시 목표는 천하가 아닌 중원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파와 천화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민왕이 황제가 된 이후에도 딱히 마교가 관과 손을 잡는 일 따위는 없었다. 토사구팽일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민왕은 무림인들에게 썩 호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이후 무림인들을 탄압하려다가 부딪히기도 했을 만큼. 결국 정파뿐 아니라 모든 사파와 마교에 대한 탄압 정책을 펼치다가 천화를 비롯한 고인물들과 부딪혀 힘을 잃고 말았다. 그 탓에 외척 세력의 힘을 앞세운 현왕에게 제거 당했지만, 그것은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역사였다. 마교가 개입한 흔적 따위는 없었다. 당장 천화 역시도 무신지로에서는 황실의 일에 마교가 개입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것으로 볼 때, 원래 마교의 힘을 이용해 황제가 되려했던 것은 현왕파였고, 결국 힘을 빌릴 수 없게 되자 일단 민왕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자신들의 힘으로 차후 황위를 쟁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16586686068156.jpg‘마교 입장에서도 현왕파와 손을 잡는 게 더 매력적이었을 테고.’

마교의 입장에서 생각하더라도, 보다 많은 숫자의 관리들과 연결이 되어있는 현왕 쪽에 붙어야 얻어낼 것이 더 많았을 테고 말이다.

16586686068166.jpg“자네들과 같은 이들이 내 곁에 있어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네만.”

16586686068156.jpg“죄송합니다. 저는 무림인입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어 진왕은 천화와 설영에게 영입을 제안했지만,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누구를 황제의 자리로 앉히느냐 따위는 천화의 관심에 없었으니까. 그저 자신이 무신지로에서의 힘을 되찾을 때까지 다른 왕야들을 견제하고, 방해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16586686068166.jpg“아쉽군. 허면 저 해적들을 물리치는 것은 계속해서 도와줄 수 있겠나? 곧 폐하께서 내려주신 해군 병력이 도착할 걸세.”

천화의 대답에 진왕은 아쉬워하면서도 집착하지 않았다. 무림인들 역시 황제의 백성이기는 하지만, 그 뜻을 강제할 수는 없으니까. 하다못해 천화가 강압적인 태도에 반감을 품고 다른 왕야들의 쪽에 붙는다면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라도 그와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해적 소탕을 도와줄 것을 부탁할 뿐이다. 자신의 결심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백성들부터 구하고 볼 일이니까. 그의 말처럼 곧 대규모의 해군이 이리로 도착할 테니, 천화가 도와준다면 남은 해적들도 무사히 퇴치할 수 있을 터였다.

16586686068156.jpg“물론입니다.”

그 제안은 천화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30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는, 그리고 날이 풀리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물 생각이었으니까.

16586686068156.jpg“받아주십시오. 저들의 위협으로부터 저하를 지켜줄 것입니다.”

16586686068166.jpg“정말, 이 귀한 것을 내게 주겠단 말인가?”

16586686068156.jpg“예. 저보다는 저하께서 뜻을 펼치시는데 필요한 물건일 듯싶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천화가 큰 결단을 내렸다. 복마검을 진왕에게 진상한 것이다. 원래는 고불에게 주려 했던 것이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진왕에게 주어 그를 보호하는 데 쓰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천화나 설영에게는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앞으로 마교에게 습격 받을 가능성이 높은 진왕에게는 더 없이 필요하고 귀중한 물건일 테니까. 그리고 진왕이 버텨주어야 자신도 활동을 하기가 편해진다. 무신지로 때의 무공을 회복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한 걸음. 화경의 경지까지만 오르더라도 감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존재는 없을 터였다. 화경까지만 올라도 일단 천하십대고수들과 같은 반열에 드는 것이고, 그 힘은 누구보다 천화 자신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16586686068166.jpg“이런 귀한 검을 받았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자, 이걸 받게.”

그런 천화의 의도가 어떠하든 진왕은 진심으로 천화에게 감사했다. 자신과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마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간자를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복마검까지 주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증표를 꺼내 천화에게 넘겨주었다.

16586686068166.jpg“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자네를 대할 때 나를 보듯 할 것일세.”

그것은 진왕의 인장이었다. 무림 문파로 따지면 장문령부와 같다고나 할까. 마패처럼 생긴 작은 패에 불과했지만, 이것에 대해 아는 이들은 천화를 대할 때 진왕을 대하듯 할 터였다. 이걸 사용하는 순간 천화는 진왕의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지만, 동시에 역모를 제외한 대부분의 죄에 대한 면책권까지 갖게 되니 무조건 이득이었다.

16586686068156.jpg“감사합니다.”

천화도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진왕은 복마검을 은령에게 넘겼다. 고작해야 일류급의 무공 수위를 갖춘 자신이 사용하기보다, 초절정의 경지를 눈앞에 둔 은령이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왕만 무사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기에 천화도 상관하지 않았다. 다시 해적들과 싸울 채비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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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86068166.jpg“이제 떠나는 겐가? 좀 더 함께한다면 좋겠지만, 그동안 해준 일들이 있으니 내 잡을 수 없군.”

진왕과의 만남 이후, 천화는 복주에서 다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진왕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해군 병력이 복주를 비롯한 주변 도시들에 포진했고, 먹을 것도 부족한 추운 겨울 바다라는 터전을 잃어버릴 뻔한 백성들을 구제했다. 어선들을 호위하고, 구휼미를 풀었으며 틈틈이 주변 해적들이 머무는 섬들을 습격하여 해적의 수를 줄여나간 것이다. 그 속에서 천화와 해남파 무인들이 크게 활약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추운 겨울 바다는 그들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고, 그들은 해적들의 악몽이 되어 명성을 날렸다. 사실 해남파 무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칫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명성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무려 왕야가 함께하는 데다 천화 역시 함께였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혀 위축되는 것 없이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앞장섰다. 그 시간을 함께하며 진왕은 천화에게 호형호제를 허락했다.

16586686068156.jpg“예, 형님. 다시 뵙는 날까지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진왕이 말뿐인 변화를 꾀했다면 천화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 몰랐다. 허나, 그는 몸소 자신의 의지를 증명해냈다. 절정의 벽을 허문 것이다. 자칫 임독이맥의 타동에 실패하여 백치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에도, 벽을 넘어서고 자신의 힘부터 길렀다. 왕야답게 어릴 적부터 먹어온 영약의 기운이 충분했다지만, 가진 것이 많은 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다행히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진왕은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지만 절정 고수가 되었다. 말뿐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16586686068156.jpg‘내가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잘 해내시겠지.’

진심으로 진왕을 인정했기에 천화도 의형제의 연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몇 가지 선물을 남기고서 복주를 떠났다.

16586686068156.jpg‘잘만 써먹는다면 자리를 잡기는 충분할 거야.’

선물은 다름 아닌 정보였다. 힘을 가지기로 마음먹었으나 아직은 기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그가 단시간에, 그리고 은밀히 힘을 기르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정보들. 또 곧이어 닥칠 미래에 대한 조언들이었다. 자신이 뒤바꿔놓은 일들 때문에 미래가 조금은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왕의 총기라면 능히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무신지로에서처럼 존재감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

16586686068156.jpg‘운이 따라준다면 황제의 자리까지 넘볼 수도 있을 테고.’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만약 힘을 회복한 뒤 그가 원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터였다. 천화가 기억하기로도 민왕과 현왕은 모두 군주감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런 자들이 황제가 되어 이상한 짓을 하는 것보다는 진왕이 황제가 되는 편이 무림을 위해서도, 백성들을 위해서도 훨씬 나을 터였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예전의 경지를 되찾는다면 진왕이 아닌 그 누구라도 황제의 자리에 앉힐 만한 힘이 천화에게는 있었다.

16586686068156.jpg“가자.”

그렇게, 천화는 진왕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관청을 빠져나왔다. 설영과 해남파의 무인들과 함께 이동할 채비를 마쳤다.

16586686068156.jpg‘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군.’

길을 떠나기 앞서 돌아본 해남파 무인들은 이전과 달리 크게 성장한 상태였다. 경지를 넘은 자도 있었고,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자도 있었다. 천화와 함께 해적들을 소탕하고 다닌 두 달여의 시간 동안 그들의 무공 역시 크게 성장한 것이다. 물론 누구보다 큰 성장을 맛본 것은 다름 아닌 천화였다. [30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고대하던 300레벨을 달성했으니까. 299레벨과 300레벨은 고작 1레벨의 차이이지만, 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300레벨 특전이 부여됩니다.]

16586686068156.jpg‘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것도 상당한 강화효과를 얻는 일이었지만, 역시 핵심은 특전이다. 300레벨을 달성하며 얻은 특전은 100레벨과 200레벨 때 얻은 특전과 같지만 달랐다. 기존의 무공을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조금 다른 방식의 진화였으니까. [보유하고 있는 무공들을 조합하여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 새로 획득하는 무공의 숙련도는 기존 무공들의 숙련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무공 조합. 또는 무공 창조라 불리는 기능이다. 기존의 무공을 조합하여 새로운 무공으로 진화시키는 것. 앞선 특전들과 달리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기능이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조합만 하면 뚝딱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조합하고자 하는 무공을 직접 펼쳐 보임으로써 새로 창조될 무공에 담길 오의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16586686068156.jpg‘무공 창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단순히 상상력의 영역이 아니라 근거가 있어야 했고, 그것을 자신이 이미 깨우치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더 어려웠다. 이미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상태에서 더 낮게 시작하는 무공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런 까닭에 만드는 이에 따라서는 기존의 무공보다 못한 것이 나오기도 했고, 제대로 된 초상승의 무공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만들며 연구를 하기도 했다. 가끔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300레벨이 되자마자 이 기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한참을 더 레벨 업을 하거나 경지를 끌어올린 뒤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다못해 그다음 경지에 대한 실마리라도 얻은 상태여야 그럴싸한 무공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천화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한번 걸어본 길이고, 조합해낼 무공에 대한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몸과 영혼이 기억하고 있었다.

16586686068156.jpg“무공 조합.”

길을 떠나기 전, 천화는 잠시 짬을 내어 무공 조합을 시도했다. 어차피 작업은 금방 끝날 테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으니까. [조합하실 무공을 선택해 주십시오.]

16586686068156.jpg“천화만변무상심법, 무형신보, 천무십이검.”

100레벨과 200레벨 특전으로 얻었던 내공심법과 보법을 넣고, 마지막으로 천무십이검을 추가했다. 용호십삼검이나 칠보무적권 등 다른 무공을 추가하기 위한 숫자 제한 같은 것은 없지만, 굳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가 가려는 더 높은 길, 더 높은 경지에서는 초식이 크게 의미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경지가 낮은 무공을 잘못 섞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게 튀어나올 수 있었다. [새로 창안하실 무공을 펼쳐주십시오.] [사용자의 움직임과 심득을 종합하여 새로운 무공이 탄생합니다.] 검무. 무명검을 쥔 천화가 한바탕 춤을 추었다. 주위를 잊은 채 무아의 지경에 들어섰다. 굳이 내공을 폭사시키지도 않았고, 어설픈 자들이 본다면 망나니의 칼춤처럼 보일 수도 있는 움직임일 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의 묘리가 알알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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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86068156.jpg“후우우우…….”

그 한바탕 춤이 끝났을 때, 천화의 전신은 흠뻑 젖어 있었다. [세상에 나타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무공입니다.] [창안한 무공의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16586686068156.jpg“무상천검.”

  [독문무공 ‘무상천검’을 습득하셨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했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독문무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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