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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이걸 설계를 당하네 (1) (429/481)

<185화> 이걸 설계를 당하네 (1)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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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86124601.jpg‘이거 참 감격스럽구만.’

무상천검. 과거 천화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그의 독문무공이었다. 또한 무공이지만 무공이 아니기도 했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경지를 순서대로 나열하고 묘리를 응축시킨 해설집과도 같달까. 검치 강무가 그러했던 것처럼, 초식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것은 삼류부터 화경, 그 너머의 경지까지의 핵심이 담긴 무리의 총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완전히 체득해낸다면 그 다음에는 더 이상 무공이나 초식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경지가 된다.

16586686124601.jpg‘무초식. 이걸 완성하면 초식이 없이도 모든 걸 할 수 있지.’

천화가 천마와 무림맹주를 동시에 상대하고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바로 그때처럼.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독문무공까지 회복하자 천화는 진심으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을 얻은 것만으로도 천하에 천화를 맞상대할 수 있는 무인의 숫자는 일백을 넘지 않을 터였다. 그나마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테고, 천하십대고수들 중 일부만이 달성했다는 화경의 경지에 오른다면 적어도 일대일로는 천화를 넘어설 이가 없겠지. 그렇기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화경의 경지로 가는 것도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설영과 해남파 무인들을 움직였다.

16586686124601.jpg“가자.”

제법 길었던 겨울 동안 머물렀던 복주를 떠나, 남해도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6586686124621.jpg“천화, 정말 그냥 가도 괜찮겠어?”

복주를 떠난 천화는 그대로 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가로로 긴 형태를 띠고 있는 광동성의 끝자락까지만 도착하면 해남파가 있는 남해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기에 곧장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16586686124601.jpg“괜찮아. 그쪽도 지금쯤 엄청 바쁠 거거든.”

설영은 강현이 있는, 지금쯤 꽤나 많이 바뀌고 정비되어 있을 천무문에 잠시 들러보지 않아도 괜찮은지를 물었지만, 천화는 가볍게 대꾸했다. 벌써 그곳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와 정신이 없을 테니까.

16586686124601.jpg‘그 녀석이라면 잘 가르칠 수 있겠지.’

천무문은 기본을 쌓기에 그 어떤 문파보다도 훌륭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독문 무공을 꽁꽁 숨기고 저 혼자 강해질 생각을 하기보다 누구든 천무십이검을 제대로 익혀 다시금 천무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라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겠지. 그렇기에 천화는 진왕에게 그곳을 이용하도록 언질을 주었다. 차후 그의 수족이 될 이들을 그곳에서 수련시키라 일러준 것이다. 천무문이라면 새로 정비하며 자리를 잡으려 한다지만 정파든 사파든 이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을 만한 곳이었고, 수련 방식 또한 특별한 것이 없으니 누군가 관심을 가진다 해도 금방 식어버릴 터였다.

16586686124601.jpg‘천무십이검은 무공이 아닌 무인을 만드는 검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기본기의 중요성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하다못해 천무문에서 기본을 익히고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히더라도 기본기가 다르니, 상승의 영역으로 갔을 때 배우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혹여 그중 검치와 같은 천재가 있어 오의라도 깨닫는다면? 그때는 진짜 절대고수가 탄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천화가 직접 추천을 한 곳이기에 진왕도 긍정적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고, 지금쯤이면 아마 일반 문도로 위장을 한 이들이 뒤섞여 들어갔을 터였다. 천무문의 이름값이 높지 않으니 어쩌면 대부분이 진왕의 휘하일 수도 있겠지.

16586686124601.jpg‘잘만 해낸다면 문파의 부흥은 일도 아니지.’

어쨌든 강현이라면 잘 가르칠 테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본인도 얻는 것이 있을 테니 일석이조였다. 잘만 해낸다면 진왕이 황실무고에 잔뜩 쌓여있는 영약 중 몇 알이라도 내어줄 테니,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때문에 천화는 걱정하지 않고 광동성을 향해 이동했다.

16586686124601.jpg“그 녀석은 뭐하려나?”

16586686124621.jpg“그 녀석? 누구?”

배를 통해 이동하는 것이 좀 더 빠르긴 하겠지만, 그럴 경우 현재 해남파를 차지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발각되기 쉬웠기에 육로로 이동 중이던 천화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16586686124601.jpg“봉곤이. 그 녀석 사문으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어?”

황산검호 임봉곤. 비무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이름 없던 문파인 황산파의 명예를 드높인 그가 광동성에 있었으니까. 금무성이 여러 사업으로 바삐 움직이고, 천화와 설영이 북해에 다녀오는 동안, 두각을 드러낸 후기지수답게 많은 이들의 초청을 받으며 사문을 위한 인맥 쌓기에 열중하던 녀석은 한 달쯤 있다가 다시 사문으로 돌아갔었다.

16586686124621.jpg“그때 듣기로 황산파가 가는 길에 있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남해도를 가려면 뱃길을 이용할 게 아닌 이상, 광주를 거쳐 빙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 황산파가 위치한 황산이 그 길목에 있었기에 잠깐 인사라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해남파가 있는 남해도는 광동성의 끝자락에 붙어있으니 잘만 하면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개방이나 하오문을 이용해 정보를 캐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춘삼을 부르기엔 너무 멀고, 하오문을 이용하자니 정보가 역으로 새어나갈 수 있었다. 추가연이 직접 움직여준다면 이쪽의 정보는 은폐하고 상대의 정보만 가져다주겠지만, 아직 하오문 자체와는 관계가 깊지 않으니 저들로서도 눈알을 굴려댈 테니까.

16586686124601.jpg“좋아. 여기부터는 따로 움직이지.”

사실 딱히 방문한다 해서 뭔가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황산파 정도의 수준으로는 가지고 있는 정보도 많지 않을 수 있었기에 천화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결정을 내렸다. 해남파 무인들을 먼저 보낸다. 어차피 그들이 함께 움직일 경우, 개방이든 하오문이든 해남파의 정보통이든 누군가의 눈과 귀에 걸려들 확률이 높았기에 해남파 무인들은 산개하여 남해도 입구 부근에서 다시 만나고, 천화와 설영은 따로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천화와 설영이 시선을 모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개방이든, 하오문이든, 해남파든 나름대로 강호의 신성으로 떠오른 천화와 설영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이, 해남파 무인들이 남해도 인근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아직 해남파를 접수한 이들을 상대할 방법을 고민 중이던 천화였지만, 그 순간 떠올린 재미난 방법에 만족했다. 즉시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해남파 무인들에게 작전을 전달하고, 자신은 설영, 흑우, 은룡과 함께 일단 황산파를 향해 이동했다.

16586686124601.jpg“저기가 황산인가?”

황산파가 위치한 황산에 도착하기까지는 꼬박 닷새가 걸렸다. 그동안 해남파 무인들이 어디까지 이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들이기에 고작 며칠을 더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물론 당장 남해도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는 이들이라면 천화로서도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설사 해남파 수복을 도와주더라도 나중에 또 성급하게 일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느니 그냥 멸문을 시켜버리는 게 낫다. 지금의 해남파는 그대로 놓아두면 차후 마교에 호응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으니까. 잔인하다면 잔인한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기 위해 자신이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 만약 사고 소식이라도 들린다면 남해도까지 갈 것도 없이 그대로 북진하여 사천당가나 찾아가리라 생각하며 황산을 올랐다. 그 중턱에 위치한 황산파를 찾았다.

16586686124601.jpg“오? 돈 좀 벌었다 이거지?”

그리고 잠시 후, 낮지 않은 산세를 평지처럼 우직하게 걸어 올라간 흑우의 등 위에서 천화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파에서 유일하게 고수라 부를 만한 후기지수인 임봉곤에게 구리문을 모아 간신히 비무대회에 출전시켰던 황산파이니까. 그런데 지금 천화가 마주한 황산파의 정문은 꽤나 커다랬고, 담도 높이 솟아있었다. 딱 봐도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문과 담벼락이다. 게다가 그 뒤로 얼핏 보이는 전각들 또한 새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들이었기에, 돈을 꽤나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6586686124601.jpg“무리를 좀 한 것 같은데?”

16586686124621.jpg“그때 꽤 많이 벌었잖아? 비무대회 이후에 명성도 올라갔을 텐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천화의 짧은 감상에 설영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광동성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없다. 일부 대문파가 있긴 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광동성의 크기를 생각하면, 무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그런 와중에 임봉곤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황산파가 있으니,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줄을 서지 않았겠나?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제법 적당해 보이는 규모였다. 임봉곤이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며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을 모두 사문에 보냈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6586686124601.jpg“저 자재들, 꽤 비싼 거야. 그리고 전각 하나 짓는 데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거든. 이 정도면 그때 번 돈으로도 빠듯할 것 같은데.”

하지만 천화는 비교적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었다. 무신지로에서 개인 취향에 맞는 장원을 꾸미는 것이 한때 유행이 되어, 그 역시 돈지랄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그때 번 돈을 모조리 털어넣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모자랐을 수도 있겠지. 문파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저 건물을 짓고 외관을 꾸미는 것에만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제자들의 무복도 맞춰줘야 하고, 식사도 영양가 있게 제공해줘야 하며, 경우에 따라 영약도 사다 먹이고……. 제대로 한번 운영해보려면 돈 들어갈 곳은 넘쳐나는 것이다.

16586686132571.jpg“혹시, 입문을 위해 찾아오셨습니까?”

그렇기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안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정문으로 뛰어왔다. 살짝 열린 정문 틈으로 그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16586686124621.jpg“아, 그건 아닙니다. 이곳의 제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16586686132571.jpg“아……. 그러시군요. 허면 누구를……?”

설영이 대꾸하자 노골적인 실망의 기색이 어렸다. 이만한 문파라면 제자 한 명이 아쉬운 수준이 아닐 텐데, 대체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일까? 당연히 설영을 봤다면 그 외모에 홀리는 것이 당연할진데 스님이나 도사도 아닌 이가 딴 생각부터 하고, 또 실망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16586686124621.jpg“저희는 비무대회에 함께 나갔던 이들입니다. 이쪽은 천화, 저는 설영이라고 합니다. 임봉곤 소협을 만날 수 있을까요?”

16586686132571.jpg“예? 진룡무쌍과 무정검화이시라고요?! 어, 어……. 사형은 지금 여기 계시지 않은데……. 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니,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16586686124601.jpg“……?”

임봉곤이 이곳에 없다니? 어디 외유라도 나갔단 말인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일단 안내를 하니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저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기다리면 금방 돌아올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16586686124601.jpg“응?”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빈 연무장. 새것인 티가 확 나는 건물들과 달리 음산하리만치 조용한 전각들에서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16586686124601.jpg“사람이 너무 없는데? 뭐지? 다들 단체로 어디 나간 건가?”

기감을 넓혀 확인하니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황산파 안에는 지금 고작해야 스물 정도의 인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단체로 어디 놀러나간 것일까? 아니면 그새 다른 문파와 시비가 붙어 전쟁이라도 치르나? 아니면 함정? 여러 생각들이 교차할 때쯤, 안에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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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86132571.jpg“새로운 제자인가?”

수척한 얼굴. 근심 가득한 표정. 잘나가는 문파의 일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의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16586686124601.jpg“아닙니다. 지나가던 중인데, 임봉곤을 만나러 왔습니다.”

허나 천화가 부정하자 금세 말라버린 꽃처럼 시들해졌다.

16586686124601.jpg‘대체 뭔 일이 있던 거야?’

무신지로에서는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순박하고 열정적으로 맥을 이어가던 문파였기에 궁금증은 커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이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문파 꼴은 또 왜 이 모양이고? 잠시 후, 처음 그들을 안내했던 이가 중년인에게 그들을 소개하고 임봉곤을 만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 이유들이 흘러나왔다. 아주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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