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이걸 설계를 당하네 (4)2022.01.16.
“이놈들을 모조리 다 잡아들여라!!”
도방과 결탁했던 포두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나간 지 약 이 각여. 지부대인이 헐레벌떡 도방으로 튀어왔고, 그 뒤를 엄청난 숫자의 관군들이 뒤따랐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관군을 모은 뒤 그들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곳은 제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광주 한복판인 데다 다른 것도 아닌 도방과 얽힌 일이기에, 혹여 천화가 암행감찰단 따위가 아닌지 바짝 긴장을 한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고작 포두만 결탁한 정도가 아닐 테니까. 찔리는 것이 있기에 빠르게 달려왔고, 민감하게 대처했다. 혹여 자신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날세라 관군들을 움직여 모질게 그들을 잡아들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 제가 철저히 조사하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러고는 천화에게 찰싹 달라붙어 시중을 들듯 그의 눈치를 살폈다. 천화의 한마디에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든든하네요.”
물론 천화도 굳이 부패한 관리라며 그를 잡아들이거나 문제를 삼을 생각은 없었다. 권한과 명분은 물론 힘까지 갖추고 있으니 즉결심판을 한다한들 누가 막을 수 있지도 않겠지만, 뭐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돌아간단 말인가? 잘만 써먹으면 오히려 녀석을 통해 잔뜩 이득만 취할 수 있을 텐데.
“그럼 이놈들의 처분은 지부대인께서 책임지고 제대로 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이곳은 제가 직접 수색하도록 하죠.”
“물론입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때문에 천화는 적당히 지부대인을 추켜세워준 후에, 그들의 창고를 털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챙기는지 알 수 없도록 지부대인을 비롯한 모든 인원들을 물리고 설영과 단둘이 창고에 들어가 그들이 모아놓은 것들을 살폈다.
“이게 다 돈이라고?”
함께 안으로 들어간 설영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지 않은 방을 가득 채운 은자와 금자들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으니까. 그뿐이 아니다. 노름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손님들이 돈을 빌리면서 맡겨놓은 진귀한 물건들도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그중에는 질 좋은 무구들도 있었고, 귀한 약초나 영약 따위도 있었으며, 금자나 은자로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부피가 커서 한 장의 종이로 대신한 전표들도 수백 권의 책을 이을 만큼 많았다.
“어디 보자…….”
그것만 하더라도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천화가 이곳을 차지하겠다 이야기했을 때 지부대인조차 아쉬운 기색을 표한 것이 당연했다. 이 안에 가득 차 있는 물건들의 액수는 거의 성 하나를 움직일 만큼 거대했던 것이다. 광주는 광동성에서도 가장 큰 곳일 뿐 아니라, 육로와 뱃길을 잇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으니까.
“여기 어디 있을 텐데?”
그러나 그조차 천화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챙기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그가 찾는 것은 따로 있던 것이다.
“크, 이거지.”
끼이익- 이미 비밀통로와 창고를 찾아내는 데 이골이 난 천화였기에, 그들이 숨겨놓은 금고를 찾아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그 안에 들은 것은 몇 권의 책과 수북한 전표들이었다. 그러나 그 전표 안의 숫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뭐긴, 수금 기록이지.”
보통 전표는 딱 떨어지는 금액으로 발행되기 마련이다. 금자 백 냥, 이백 냥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천화가 발견한 전표 다발 속에는 구리문 한 닢까지 적확히 적힌 이상한 전표들이 가득했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전표의 발행인이 전장도, 도방도 아닌 다른 곳이라는 것.
“해남파?”
전표의 발행처는 해남파 한 곳뿐이었다. 장부 속 내용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표들과 일치하는 금액을 해남파에서 가져갔고, 그 대신 이 전표를 보내왔음이 적혀있었다. 이곳이 해남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체 왜 이런 수고를 감수해가며 장부를 만들고 전표를 발행한 것일까? 설영은 의아해했지만 천화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돈세탁. 해남파와 이곳 사업체들 간의 연결고리를 언제든 끊을 수 있도록 돈세탁을 하기 위함이었다. 광주에서 벌어들이는 사업을 이곳에서 총괄적으로 지휘를 하고 수금했으며, 그렇게 수금된 돈은 다시 해남파에 전표를 받고 빌려주는 식으로 돈세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놓고 전달하지 않고 전표까지 발행한 이유는 간단했다. 불법적인 돈들이 다수 섞여있었으니까. 도방도 그렇지만 고리대금업 등 일반 정파 계열의 문파들에서는 하지 않는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며 광주를, 광동성을 자신들의 수중에 넣으려 하고 있었기에 이런 수고를 벌인 것이다. 혹여 들통이 나더라도 언제든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말이다. 명색이 명문 정파이며 구파일방에 근접한 명성을 가진 해남파가 고리대금업이나 도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남파가 조금만 더 자리를 잡았다면 못 먹을 뻔했지.’
만약 해남파가 조금 더 성장을 했다면, 아예 작정을 하고 광동성을 집어삼키려 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터였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역시 이런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 중 일부는 분명 음지에서 이 같은 사업체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좀 더 성실했고 세력이 많았다.
‘역시 큰 도둑놈들일수록 성실한 법이라니까.’
한 곳으로 돈을 모으는 대신 여러 곳에 분산시킨 뒤 점조직처럼 운영하여 돈을 받았고, 중간에서 속가라는 장치를 사용하면서 유사시에는 해당 속가 문파의 잘못으로 꼬리를 자르는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본의 명성과 영향력 때문에 뒷말이 나오지 않았고 믿을 만한 속가 문파를 통해서만 그런 것들을 운영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잔꾀를 부리다 제가 당한 셈이지.’
반면 해남파는 잘못 광동성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가는 주위의 견제를 받을 것을 우려했다. 일단은 속가 문파 따위를 내세우지 않고 직접 사업체만 운영을 하려다가 천화에게 딱 걸린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법적으로 따지자면 충분히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천화의 손에 쥐어진 전표들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관에서 그것을 압수할 테니 미리 포섭해둔 이들에게 일정한 돈을 찔러주고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아니면 애초에 찾지 못한 척 돌아가면 해남파에서 그것을 회수하거나 처리하면 그만이고. 헌데 지금 그것들을 손에 넣은 것은 천화였다. 덕분에 해남파는 스스로도 가늠하기 어려운 빚을 떠안게 되었다.
“이제 어쩔 셈이야?”
“기다려야지.”
“기다린다고?”
“그래. 아쉬운 놈들이 먼저 찾아오지 않겠어?”
그것들을 모조리 소지품창에 넣은 천화는 굳이 무리를 하지 않았다. 천화가 그들이 발행한 전표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알아서 손을 뻗어올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것이 포섭이든,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고 없던 일로 만들려는 것이든 뭔가 반응이 있겠지. 때문에 천화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큼 소지품창에 가득 쌓인 돈덩이들을 챙긴 채 한동안 객잔에 머물렀다.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지부대인이 관련자들을 알아서 잡아들이고 난리를 피우는 동안,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기다렸다. 심심하면 압수한 물품 속에 들어있는 영약이나 까먹으면서. 이미 경지에 오른 천화였기에, 이제 다음 단계인 화경에 오르기 위해서는 내공보다 다른 것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사탕 까먹듯 간식삼아 먹어치웠다. 그런 천화의 예상대로, 정확히 닷새가 지나자 해남파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해남파에서 오셨다고요?”
“예. 장문인께서 천화 대협을 모시고 싶어 하십니다. 누추하지만 잠시 짬을 내어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남해도로의 초대. 정중하게 장문인의 직인까지 찍어 서찰을 보낸 것이, 꽤나 성의가 느껴졌지만 그 숨은 의도야 뻔한 것이었다. 회유하거나, 처리하거나. 천화가 그 막대한 금액이 적힌 전표를 손에 넣었으니 어느 쪽이든 하지 않으면 해남파의 재정이 크게 휘청거릴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이번 사건에 휘말리지 않은 사업체들이 꾸준히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지만, 정작 가장 돈이 되는 사업들은 지부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돈을 굴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좋습니다. 가죠.”
“정말이십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해남파가 성세를 누리고 있다던데, 이참에 인연을 맺어두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속내를 간파하고 있었지만, 천화는 기꺼이 그들의 초대에 응했다. 어차피 그곳으로 향할 참이었는데, 공식적으로 초대를 해주기까지 하니 수고를 더는 셈이니까.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 이미 배는 준비해두었습니다.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 시원한 허락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전령으로 온 무인은 살짝 놀라는 모습이었지만, 준비는 확실했다. 설득하든 어쩌든 천화를 데려올 목적으로 이미 배까지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딴생각 못하게 하겠다 이거지?’
천화는 당연히 그 속에 담긴 의미도 알고 있었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 중간에 딴 길로 새거나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있으니 바다로 떨어뜨려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여차하면 배 위에서 슥삭 해치워버리고 바다에 버리면 증거도 남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러죠. 갑시다.”
하지만 천화에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은룡과 흑우가 함께 있으니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놓은들 자신을 어찌할 수 없으며, 해남파 전원이 덤빈다 하더라도 이제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설영이야 조금 위태로울 수도 있을 테지만, 그녀 역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어지간한 고수가 나서지 않고서야, 작정하고 몸을 빼내려 한다면 설영을 막아설 수조차 없을 터였다. 그렇게 천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 동안 광주의 소란은 지부대인이 눈치를 보며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나머지 일들이야 해남파를 정리하면 알아서 따라올 것들이기에 차후 지분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면 그만이었다.
‘지금 가진 전표만 내밀어도 광동성 전역에 있는 사업체들을 모조리 인수할 수 있을 테니까. 흐흐흐!’
“오르시지요. 곧 배가 출발할 겁니다.”
어딘지 사악한 미소를 짓는 천화의 모습이 영 찜찜하긴 했지만, 해남파에서 온 인물은 그를 인도해 배에 태웠다. 나름대로 천화와 설영이 그들의 배에 탔다는 소문을 지울 테지만, 천화는 먼저 남해도 근처로 가있을 이들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정보를 모으고 있을 테니 천화와 설영이 남해도에 먼저 들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할 테고, 이미 그 밖의 다른 조치들도 은밀히 취해둔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천화와 설영은 뱃길을 통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은밀히 남해도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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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 말아?’
광주에서 남해도까지는 쾌속선을 타고 꼬박 하루 반나절 가량이 걸렸다. 짧다면 짧은 거리였지만 그 시간 동안 천화를 배에 태운 전령은 몇 번이고 천화를 죽일까 말까 고민했다.
“요즘 해남파 사정이 별로 안 좋은가? 손님을 초대했으면 말이야, 산해진미도 좀 내놓고. 어? 이런 거 먹어서 어디 힘이나 제대로 쓰겠어?”
설영에게 말하는 척 반찬투정을 하며 잔뜩 속을 긁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차려준 음식을 마구 흡입했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섭취한다면 내공을 끌어올리기가 힘들 뿐, 크게 이상이 없지만 다른 독과 합쳐진다면 즉사에 이를 수 있는 맹독이 되는 혼합독의 일부가 잔뜩 섞인 음식들이었다. 하지만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천화의 경지와, 진왕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설령 천화를 죽여 시체를 찾을 수 없는 바다에 버린다 하더라도, 향후 진왕 측에서 조사하기라도 한다면 곤욕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꾹 눌러참으며 그의 비위를 맞췄고, 간신히 화가 폭발하기 전 남해도에 닿았다. [독에 대한 저항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그러나 천화 역시 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다짜고짜 독을 쓴 것은 열받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은룡을 이용해 독 저항력을 키울 수 있었으니 참는 것이다.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지만 세수경을 익히고,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며 몸의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해진 천화였기에 작은 해로움까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은룡을 이용해 해독하며 신체의 독 저항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한 덕분에 이제 만독불침까지는 아니라도 백독불침, 잘하면 천독불침 정도까지는 될 것 같았다. 또한 한 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사천당가랑도 손을 잡았다 이거지? 적의 적은 동료라 이건가?’
그 독들이 사천당가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무신지로에서도 무수한 독의 위협을 받았던 천화였기에 사천당가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쯤이야 간파하고 있었다. 이 독들도 그중 하나였다.
‘아주 매를 버는구만.’
사천당가에서는 그동안 끊임없이 천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복건성에서는 진왕과 함께였기에 감히 수작을 부리지 못했지만, 은밀히 뒤따르다가 해남파가 천화와 불화를 빚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들과 손을 잡은 듯싶었다. 잠잠하다 싶더니, 다른 이의 손을 통해 천화를 해하려 한다는 것이 우습고 귀여웠다.
‘조금만 기다려라. 제대로 귀여워해 줄 테니까.’
어차피 이다음은 사천당가다. 이미 몇 차례나 악연으로 맺어진 그들이었기에 천화는 그들을 가만 둘 생각이 없었다. 차후 마교와의 싸움에서 그들의 휘하에 있는 만독문을 상대해야하니 멸문까지 시킬 것까지는 없지만, 한 번쯤 참교육을 해야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내리시지요.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러는 사이,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암초가 많아 접근하기 어려워보였지만 물길에 정통한 그들이기에 거침없이 배를 몰아 항구에 댄 것이다. 감히 해적 따위가 남해도를 침범하거나 노리지 못한 이유 중에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이 복잡한 물길과 암초도 큰 몫을 했다.
‘민심은 제법 다스린 건가?’
그렇게 배에서 내리자 해남파의 장원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 대로를 걸었다. 정통성을 가진 장문인을 해하고 힘으로 자리를 빼앗은 그들이지만, 그렇기에 민심 수습에 열을 올렸는지 남해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큰 그늘이 있지 않았다.
‘이러면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
만약 이들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주의라면 괜찮지만, 진심으로 지금의 해남파에 만족하고 있다면? 어쩌면 다시 해남파를 수복하러 오고 있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역으로 그들에게 저항하기라도 한다면, 명분도 약해질 뿐 아니라 이후 통치를 이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을 테니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하지만 표정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기 어려웠기에 천화도 판단을 미루었다. 그들의 심정이 어떠하든 놈들이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면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라고 하기는 어렵다. 무신지로에서 해남파는 마교와 결탁하긴 했지만 마공을 익히는 일은 없었으니까. 제 편의와 이익에 따라 그들과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의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해남파의 장문인인 위문호라고 합니다. 진룡무쌍 천화 소협과 무정검화 설영 소저의 명성은 익히 전해듣고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해남파. 장원의 정문이 열리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놀랍게도 해남파의 현 장문인 위문호였다. 미리 전해듣기야 했겠지만, 그가 미리 마중을 나와 천화와 설영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반갑습니다. 천화입니다.”
“설영이라고 해요.”
허나, 막상 해남파의 장원에 들어선 천화의 눈은 그를 향하지 못했다. 장원의 공터에 꿇어앉혀진 이들에게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남해도 인근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 소문주 주자엽과 수하들이 그곳에 포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