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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 당문의 시험 (1) (446/481)

<202화> 당문의 시험 (1)2022.02.17.

16586687792806.jpg“후. 이제 좀 속이 풀리네.”

얼핏 봐서는 누가 악당인지 모를 모습이었다. 십여 명의 무인들이 넝마가 된 모습으로 땅에 머리를 박고 있고, 그 옆에서는 진땀을 흘리며 팔을 이어붙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한 시진 가량을 힘을 내어 버텨준 덕분에 모든 접합이 끝날 수 있었다.

16586687792806.jpg“다 됐나?”

16586687792813.jpg“예. 다만 이제 절대 안정을 취해야…….”

당장 이전처럼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의술이 상당했는지 벌써 둘 다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있을 정도였다.

16586687792806.jpg“안정은 개뿔.”

빠악!! 하지만 그걸 온전히 기다려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천화는 치료가 끝났다는 확인을 하자마자 의술을 펼친 놈의 대가리를 후려깠다.

16586687792806.jpg‘살려서 끌고 가겠다는 의도였겠지.’

이 정도의 의술을 지닌 놈이 여기까지 온 이유야 간단했으니까.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괴롭힌 뒤, 목숨을 붙여 끌고 가려는 의도였겠지. 당가놈들 하는 꼬라지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니, 아마 확실할 터였다.

16586687792806.jpg“친구들은 맞았는데 너만 안 맞으면 미안할 거 아냐?”

16586687792813.jpg“아, 아니. 하나도 안 미안……. 컥!!”

놈을 마저 삼복구타봉법으로 다져준 천화는,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막 치료를 마친 둘은 천화에게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화의 무력에 대한 공포였다. 다시 싸워도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대적 강함에 대한 공포.

16586687792806.jpg“너넨 왜 눈깔을 그렇게 떠?”

뻐억!! 그런 놈들에게 천화는 해죽으로 만든 타구봉을 선사했다. 머리통이 깨지도록 후려쳐버린 것이다. 설마하니 이제 막 팔을 접합한 병자를 팰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16586687792806.jpg“팔만 안 패면 되는 거 아냐? 그럼 수하들이 처맞는데 너네만 멀쩡하려고 그랬냐?”

퍼버버버버벅!!! 천화의 타구봉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기묘할 만큼 팔에 충격이 전해지지 않도록 뼈만 골라서 때렸고, 당문악과 당효용의 몸에 제대로 공포를 심어주기 시작했다.

16586687792806.jpg“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16586687805732.jpg‘저 악마 같은 새끼가?’

그렇게 신나게 남은 둘마저 곤죽을 만들어 놓은 천화가 가뿐하게 몸을 돌렸다. 아직까지 대가리를 박고 있는 사천당가의 무인들에게. 인질은 필요하지만 이만큼 많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름 정예라고는 하나, 별로 효용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16586687792806.jpg“굳이 여럿을 데려갈 필요는 없으니까 너희는 가봐도 좋다.”

16586687792813.jpg“저, 정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계였기에 가만히 있어도 부들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묻자, 천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들이 먼저 풀려날 경우, 사천당문에서 뭔가 수작을 부리고 천화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들이 수작을 부릴수록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커질 테니까.

16586687792806.jpg“그래. 단.”

대신,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16586687792806.jpg“가진 거 다 내놔.”

수중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놓고 가라는 것이다. 녹림도 가진 것을 몽땅 털어가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들이 가진 물건들 중에는 오직 당가의 인물들에게만 소지가 허용된 독문 암기와 독들도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라도 입을 열었다가는 다시 매타작이 시작될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16586687792806.jpg“왜, 싫어? 싫으면…….”

16586687792813.jpg“아닙니다. 드리겠습니다!”

16586687792806.jpg“그래? 그럼 내놔봐. 싫으면 말라고 하려 했는데, 그렇다면 받아줘야지.”

16586687805732.jpg‘이 새끼가?’

순간 모두의 눈에 같은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다. 당문악과 당효용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 또한 그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 자위하며 소지품을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16586687792806.jpg“털어서 나오면 하나에 백 대다.”

16586687792813.jpg“어이쿠! 옷 속에 깊숙이 있어서 몰랐네?”

16586687792813.jpg“이 친구야, 이걸 깜박하지 않았나.”

마지막 천화의 한마디에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을 내어놓고서 부리나케 사라졌다. 건진 것은 옷 한 벌뿐이지만 내공을 금제하지는 않았으니 길가다 산적을 만나 객사하는 일은 없겠지.

16586687792806.jpg“하. 나도 참 많이 착해졌단 말이야. 옛날 같았으면 빤스 한 장도 안 남기고 싹 벗겨서 보냈을 텐데.”

그렇게 남겨진 독과 암기, 그리고 무기들까지 모조리 챙기며 늘어놓는 천화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이게 착해진 거라고? 차라리 사천당문이 부처라고 하지?

16586687792813.jpg“이제 우릴 어쩔 셈인가.”

16586687792806.jpg“어쩌긴 뭘 어째. 약한 놈들 데리고 뭘 한다고. 너네는 그냥 마패 같은 거야. 네놈들을 매달고 다니면 적어도 귀찮은 짓은 안하겠지.”

또 타구봉을 들어올릴까 싶어 어이없는 표정을 애써 감춘 당효용이 묻자 천화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그게 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미 당문의 자랑하는 독들도 몇 가지나 듣지 않는 것을 확인했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사천당문으로 향하는 동안 딱히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어 보이니, 가문에 피해는 덜 갈 것 같았다.

16586687792813.jpg‘괴물 같은 놈…….’

이 괴물을 모르고 건드렸다면 당문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텐데 말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두 사람의 얼굴이 꽤나 팔려 있다는 것이다. 분명 알아보는 이들이 생길 테고, 구하려 들든 그들이 다칠까 봐 지켜만 보든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얼굴을 붉혔지만 눈빛은 착 가라앉았다. 지금은 수모를 겪지만, 갚아주면 그만이니까. 가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천화가 무슨 무공을 익혔든 무슨 이상한 수를 써서 독이 통하지 않았든 절대 멀쩡히 살아나갈 수 없을 테니까.

16586687792806.jpg“어디 보자. 그럼 자리가 없으니까, 넌 뛰어오면 되겠네.”

16586687792813.jpg“예? 아, 예.”

두 놈이 눈알을 굴리는 동안, 천화는 사천당문을 향해 다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두 놈의 치료를 맡은 녀석은 사실 굳이 데려갈 필요가 없었지만, 도중에 놈의 팔 상태를 봐주어야 할 테니 알아서 쫓아오도록 했다. 녀석까지 데려가기에는 자리가 부족했으니까.

16586687792806.jpg“잘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이 녀석이 꽤 빠르거든.”

16586687792813.jpg“예. 헌데 이 두 분은 왜……?”

그렇게 천화와 설영이 흑우에 올라타 떠나려 하자 녀석이 의문을 표했다. 천화와 설영은 흑우의 등 위에 타있는데 왜 당문악과 당효용은 땅에 있는 것일까? 그것도 내공이 제한된 채로? 설마 바닥에 질질 끌고 가려는 것일까? 그랬다가는 간신히 붙여놓은 팔들이 다시 찢어질 수도 있을 텐데?

16586687792806.jpg“걱정 마. 바닥에 질질 끌고 가지는 않을 테니까.”

16586687792813.jpg“예? 그럼……?”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보고 천화가 뒤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다행히 바닥에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16586687792806.jpg“아주 색다른 경험이 될 거야. 날아서 갈 테니까. 가자, 흑우!”

16586687816892.jpg“무우우우우!!!”

16586687792813.jpg“크아아아아악!!!!”

그 순간, 흑우가 출발했다.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자, 밧줄에 매인 당문악과 당효용의 몸이 연처럼 펄럭거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흑우에 매달린 채 날아서 딸려가기 시작했다.

16586687816911.jpg

  @

16586687805732.jpg“…….”

16586687805732.jpg“…….”

천화와 설영이 들어선 이후, 사천 땅에 정적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들의 기행에 웅성거림이 생겨났지만, 점점 그들에게 잡혀가는 것이 누구인지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괜히 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구경하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중에 그 뒷감당을 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실제로 천화 일행을 감시하던 당문의 고수들이 황급히 그 뒤를 쫓으며 엄포를 놓고 수습을 했기에 소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문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16586687792806.jpg‘하오문과 개방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 입 싼 놈들이라면 당장 정보를 알리고, 팔아먹었을 터였다. 벌써 당문악과 당효용에 대한 이야기는 쭉 돌았을 테고, 사천당문과 천화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쏟아지고 있겠지. 아마 대부분이 천화를 불리하게 바라보고 있겠지만, 만약 천화가 살아남았을 경우에 대한 계산도 하고 있을 터였다. 과연 천화가 그 계산대로 움직여줄지는 알 수 없지만.

16586687792813.jpg“……이쪽입니다.”

16586687792806.jpg“그래? 정말 이쪽이란 말이지?”

그렇게 사천당문이 있는 성도에 들어선 천화는 속도를 줄이고 느긋하게 걸었다. 연처럼, 종이인형처럼 펄럭거리며 따라오던 당문악과 당효종도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씻지 못하고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까닭에 개방이 형님 할 만큼 거지꼴을 하고 있긴 했지만, 녹의‘였던’ 옷차림이 그들의 소속을 말해주고 있었다. 성도는 크기도 컸지만 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안내를 맡기자 당가의 정문으로 천화를 안내했다. 하지만 천화는 그들이 안내하는 길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뻔하다 못해 투명한 속내가 들여다보였으니까.

16586687792806.jpg“어라? 들어오라고 열어둔 건가?”

당문의 장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들의 도착을 전해들었는지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올 줄 알았다는 듯, 어디 한번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라는 듯.

16586687792806.jpg‘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그들이 안내한 곳은 정문이 맞았다. 다만, 당가는 가문의 인원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정문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가의 정문으로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 그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니까. 이곳은 오직 당가의 인물들만 알고 있는 온갖 함정과 독, 진법 따위가 겹겹이 둘러진 사문(死門)인 것이다.

16586687792806.jpg“야, 나와.”

1658668781989.jpg“……예?”

16586687792806.jpg“뭐해? 들어가. 너네 집이잖아?”

밧줄에 묶여 터벅터벅 따라오던 당문악을 앞으로 불렀다. 뭔가 수상하니 네가 먼저 들어가보라는 것이다.

16586687792806.jpg“뭐해? 들어가. 너네 집이잖아?”

천화가 그곳으로 당문악을 밀어넣었다. 눈을 감고도 드나들 수 있는 그였기에 순간 이채를 띄었지만, 다음 순간 천화가 그의 혈도 중 한 곳을 짚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1658668781989.jpg“……윽?”

비틀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충 방향은 잡을 수 있지만 코끼리코를 몇 바퀴나 돈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원하는 곳에 정확히 발을 짚을 수 없게 되었다.

16586687792806.jpg“안 가냐? 집에 가기 싫어?”

이래서는 제 아무리 당문악이라 해도 함정과 진법을 피할 수 없다. 독인이 되었으니 어지간한 독과 상처에는 무신경하게 반응할 수 있는 그였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고수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더 강력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16586687792813.jpg“멈추시오!”

그런 놈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일까? 안보는 척 몰래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당가의 인물들이 앞으로 나섰다. 생문의 경로를 따라 나서지만 꽤나 다급해 보이는 것이, 자신들의 진법에 소가주가 당할까 어지간히도 염려스러운 모양이다.

16586687792806.jpg“왜, 들어오라고 열어 놓은 것 아니었나?”

16586687792813.jpg“……손님을 맞이하는 문은 따로 있소. 이쪽으로 오시오.”

소가주의 상태를 슬쩍 살핀 그들은 얼른 정문을 닫고 다른 길로 천화를 인도했다. 본래 손님들을 받는 쪽문이다. 이곳에도 몇 가지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만, 이미 정문의 함정이 들통난 까닭인지 감히 함부로 천화에게 수작을 부리지는 못했다. 자칫하면 소가주와 천독수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16586687792813.jpg“금방 가주께서 나오실 겁니다.”

16586687792806.jpg“손님 대접이 영 꽝이구만.”

그렇게 당문의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터에 천화를 가만히 세워두고 무인들이 사라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것만으로 상당한 공포를 느낄 터였다. 다른 곳도 아닌 당문이니까. 이 아래 어떤 함정이 깔려 있을지, 그를 중심으로 어떤 진법이 발동하고 암기가 쏟아질지 알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절로 심력을 갉아먹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일 뿐, 천화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천화는 오히려 핀잔을 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고, 기감을 넓혀 근처에 대기 중인 당가의 무인들을 파악했다.

16586687792806.jpg‘제법 준비했나 보네.’

일류급은 아예 모으지도 않았다. 독과 암기를 다루는 최소 절정급의 고수들이 주변에 잔뜩 포진해있었고, 자신들의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기운을 갈무리한다 한들 무공의 격차가 현격해 들통이 나고 말 테지만, 그와 별개로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 또한 천화를 압박하려는 심리전의 일환이었지만, 천화에겐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하니 심력이 소모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16586687822772.jpg“자네가 진룡무쌍이군. 비무대회 때는 고작해야 일류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잠시 후, 당가를 이끄는 가주이자 당문악의 아비인 독왕 당거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신지로에서는 종종 보았지만 이곳에서는 비무대회 때 잠시 본 것이 전부였기에, 아직은 두 눈에 오만이 깃들어있다. 괄목할 만한, 아니 그 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미친 성장을 보인 천화의 경지에 놀라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직은 눈 아래로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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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은 당문이니까. 천화가 천독수를 일검에 꺾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천화를 꿇어앉힐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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