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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독인지로 (2) (450/481)

<206화> 독인지로 (2)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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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88053453.jpg“험험.”

16586688053458.jpg“저리 안 가?”

잠시 알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천화의 실수 때문에 약간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16586688053453.jpg‘아니, 창피한 건 나라고!’

물론 원치 않게 알몸 구경을 한 설영도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몸을 보인 천화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온몸의 털이 홀라 녹아내린 상태가 아니었나? 민둥민둥한 모습을 보이는 건 남자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잠시 데면데면한 시간을 보냈다. 똑똑

16586688053468.jpg“천화님, 준비되셨습니까?”

그런 그들의 어색한 시간을 깨준 것은 당문의 식솔이었다. 천화가 어색한 자리를 얼른 벗어나기 위해 당문에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독인지로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혀 얼른 이 자리를 피하려는 것이다. 독인지로는 입장 제한이 1인이었으니까.

16586688053453.jpg‘행동제약이 사라지긴 했지만, 둘 이상이 들어갈 만한 공간도 아니긴 하지.’

행동 제약이 사라진 만큼 둘이 동시에 입장을 하는 것도 허용이 될지는 몰랐지만, 의미 없는 일이다. 둘이 함께 움직이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으니까.

16586688053453.jpg“다녀올게?”

16586688053458.jpg“……조심해.”

그 인도에 따라 전각을 벗어나려 하는 천화에게 그래도 배웅의 인사는 해주는 설영이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남긴 했지만, 천화가 가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16586688053453.jpg“가뿐하게 끝내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구.”

그런 설영에게 천화도 씨익 미소를 지어 화답했다. 그리고 안내받아 이동한 곳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가주만이 머무는 전각이었다. 그 큰 전각에 가주 혼자서 지낸다는 것을 다른 이들은 그저 일종의 과시라고 생각했지만, 천화는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알고 있었다. 바로 독인지로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16586688053468.jpg“여기입니다. 안에서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정확히는 독인지로라 불리는 던전 위에 전각을 지어 가주가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숨겨오던 것인 만큼 외인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테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어떤 물건이니만큼 천화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내도 전각의 앞까지만이다. 안에서 가주가 직접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오는 것 역시 감시를 할 터였다. 천화가 몰래 무언가를 숨겨 가져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16586688061455.jpg“왔군. 이쪽으로 오게.”

그래서인지 독왕의 표정은 차가웠다. 이미 천독단을 두 알이나 빼앗기고, 천독수라는 고수를 잃었으며 가문의 정예들이 망신까지 당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문의 일원이 아닌 이가 독인지로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 터였다. 독인지로는 오직 당문의 후예 중에서도 정통성을 지닌 일부만이 도전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끼이익- 쿠웅! 천화를 안내한 독왕은 곧 기관을 조작해 숨겨진 문을 열었다.

16586688061455.jpg“내려가게. 이 아래 길을 따라 쭉 이동한 뒤, 마지막 장소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챙겨서 나오면 시험에 통과한 것일세. 만약 시험에 통과한다면…… 당문은 더 이상 자네를 적대하는 일이 없을 걸세. 또한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힘이 닿는 데까지 들어주도록 하지.”

싸늘한 말투와는 정반대의 보상들을 늘어놓으며 마지막 안내를 했다. 이 아래부터는 함께 들어갈 수 없으니까.

16586688053453.jpg“까짓 거, 금방 끝내고 돌아오죠.”

16586688061455.jpg“……그럴 수 있길 바라지.”

하지만 천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문의 의도가 어떻든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풀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천화의 죽음을 9할 이상 확신할 만큼 독인지로는 위험한 길이었지만, 그것 또한 문제는 아니다.

16586688053453.jpg‘마! 스피드런이라고 들어봤나!’

독인지로는 고인물들에게 공략이 완료된 것을 넘어 스피드런이라 불리는, 누가 더 빠르게 공략을 완료하느냐를 겨루는 일종의 시합이었다. 정식으로 시스템이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공략 시간을 재고 그것을 공유하며 나름대로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즐긴 것이다. 이것은 주로 던전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독인지로는 그중에서도 고인물이라 불리던 상위권들의 전유물과 같았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고, 동시에 여건만 맞으면 꽤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6586688053453.jpg“그럼 이따 뵙죠.”

의뭉스런 미소를 지은 천화가 독왕에게 인사를 건네며 지하로 내려갔다. [독인지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곧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인시켜주는 알림이 나타났다.

16586688053453.jpg“그럼 달려보실까~?”

익숙한 알림에 만족한 천화가 본격적으로 내공을 일으켰다. 발을 통통 튀기며 달릴 준비를 하더니, 단거리 선수처럼 자세를 낮추고 양 손가락을 땅에 짚었다.

16586688053453.jpg“준비……. 시작!”

타다다다다닷-!! 만약 독왕이나 원로원의 노인들이 보면 경악을 할 만한 일이었다. 아니, 천화가 죽으러 달려간다고 비웃을 만한 일이었다. 저 앞에 펼쳐진 것이 무엇인 줄 알고 전력질주를 한단 말인가? 자신들조차, 역대 가주들조차 이곳에 도전했다가 큰 상처를 입고 물러난 것이 몇 번인데? 진법으로도 유명한 사천당문의 힘이 총동원되었음에도 몇 년이 걸려 겨우 파훼해낸 절진이 몇 개나 겹겹이 펼쳐져 있었고, 보고도 피할 수 없는 절묘하기 짝이 없는 독과 암기의 연쇄가 기다리고 있음이다. 하지만 천화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속도를 줄였다가는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을 짚어내지 못할 수 있었다.

16586688053453.jpg“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상한 노랫가락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기억하기 쉽도록 운율에 맞춰 독인지로의 파훼법을 노래처럼 만들어둔 것이다. 가사에 맞춰 특정 위치에서 웅크렸다 튕겨져나는가 하면, 춤도 경공도 아닌 무언가를 펼치며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특정한 위치를 밟으며 나아가자 희뿌옇게 시야를 가리려던 안개가 사라졌고, 그 안에 숨겨 날아오던 철창들이 눈에 들어왔다.

16586688053453.jpg“위, 아래, 위위, 아래.”

단순 투척용으로 날아들고 있지만, 능히 유일 등급쯤은 매겨줄 수 있을 만한 무지막지한 놈이다. 천화는 그것을 허리를 튕기고 허리를 젖혀 피해냈다. 설영이 보았다면 저질이라며 힐난했을 법한 동작이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 푸슈슛- 이어 날아드는 화살들. 정확히 양 어깨를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촉이 신비한 푸른빛으로 번들거렸다.

16586688053453.jpg“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하지만 천화는 이번에도 기묘한 자세로 그것들을 피해냈다. 좌우 어깨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시간차로 날아든 화살들을 피해낸 것이다. 물론 지금 천화의 몸뚱아리라면 어지간한 화살 따위는 무시해도 저절로 튕겨나가고 말겠지만, 이곳의 제작자는 그런 도전자의 오만함까지 꿰뚫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파훼하는 전용 화살인 것이다. 몸뚱아리의 강도나 호신강기 따위를 믿었다가는 어깨가 꿰뚫려 더는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겠지. 이것도 다 고인물들이 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정보였다.

16586688053453.jpg“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

다시 엉뚱하게 상체를 숙이며 팔이 빠진 흉내를 내는 천화. 그런 그의 머리 위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철침들이 지나갔다. 그 끝이 번들거리는 것만 보아도 극독이 발라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연쇄 함정이었다. 만약 처음에 생문을 밟아 진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들을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피해내야 했겠지. 이 함정들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펼쳐지는 진법의 생문을 찾아내야 했을 테고.

16586688053453.jpg“뭐, 그런 걸 일부러 하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고인물들이 그것을 증명해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과하는 것은 너무 쉬우니 스스로 제약을 걸고 통과를 하는 것이다. 천화는 굳이 거기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현경에 오른 뒤 딱 한 가지는 해보았다. 아무런 공략 없이 그저 우직하게 힘으로 박살내며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통로는 자칫 너무 강한 힘을 가하면 파괴되어 무너져내리도록 설계가 된 만큼, 최소한의 힘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해내고 말았지. 전혀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현경의 장점을 대부분 봉인 당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이 독인지로가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16586688053453.jpg“여기서 스쿼트, 여기서는 버핏 테스트……!”

이후로 천화의 기행은 계속되었다. 마치 운동 게임을 하듯, 나아가던 중간 중간 운동 자세를 취했고 그때마다 살벌한 소리를 내는 암기들이 그의 곁을 지나쳤다. 그것이 무려 일각이나 이어졌다.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고 있다지만 천화가 무형신보를 펼치고 있음을 생각하면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독인지로는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의아할 만큼 꽤나 긴 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끝이 슬슬 보일 때가 되었다.

16586688053453.jpg‘이게 진짜지.’

독인지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최후의 관문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16586688053453.jpg“마지막으로, 낮은 포복!”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암기가 쏟아지는 마지막 구간까지 지나자 좁은 길이 끝나고 공간이 넓어졌다. 온 시야가 환하게 밝아진 것 또한 그때였다.

16586688053468.jpg[여기까지 도달한 자가 나온 것은 오랜만이군.]

머릿속에 직접 때려박는 듯한 선명한 목소리가 천화를 맞이했다.

16586688053453.jpg“흐흐. 이것도 똑같구만.”

주변이 온통 하얀 빛으로 감싸진 어떤 공간으로 변했음을 확인한 천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굳이 따져 말하자면 심상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원한다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얼마든지 저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었다.

16586688064375.jpg“쀼웃?”

16586688053453.jpg“야, 들어가 있어.”

그때, 역소환을 해두었던 은룡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제 멋대로 튀어나왔다. 익숙한 어떤 기운을 느끼고 반응을 한 듯싶었다.

16586688053468.jpg[……수룡? 어린 녀석을 운 좋게 만났나 보군. 그 또한 인연이겠지. 하지만 시험은 시험이니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각오하거라, 인간.]

그 모습에 눈동자뿐인 녀석도 이채를 띄긴 했지만 그뿐이다. 그립고도 반가운 만남이긴 했지만, 맡겨진 임무가 우선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16586688064375.jpg“쀼우우우!”

16586688053453.jpg“괜찮으니까 들어가 있어. 어차피 저거 허깨비 같은 거니까.”

그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은룡이 뾰로통한 모습으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은룡 때문에 시험을 통과시켜주는 것은 천화 역시 원하지 않는 바였다.

16586688053468.jpg[……인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은룡을 달래 다시 역소환을 시킨 뒤 독룡을 돌아보자, 녀석도 꽤나 놀라고 있었다. 최근 이곳까지 도달한 이가 거의 없었음에도 천화가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16586688053453.jpg“됐고, 네 말은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얼른 덤벼!”

알다마다. 천화는 녀석이 이 공간을 만들어낸 존재이자 사천당문의 시조와 함께했던 존재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사념만 남아 주인의 명을 받들어 이곳을 지키고, 도전자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도. 따라서 저 녀석을 꺾어야만 비로소 독인지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최후의 관문이자 수문장이랄까? 이미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기에 천화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16586688053453.jpg‘무상천검을 얻지 못했다면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지금이라면 뭐 낙승이지.’

놈의 정체는 독룡이다. 이무기 따위가 아닌 진짜 용. 사천당문의 시조가 독사인 줄 알고 키웠는데 알고 보니 용이었다나 뭐라나 하는 비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 강함은 무지막지했다. 당장 그 비늘부터가 절정 고수급 정도로는 상처 하나 입히기 어려울 만큼 단단했으니까.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무상천검을 손에 넣은 이상 천화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심상세계였으니까.

16586688053468.jpg[건방지군. 인간 따위가 이곳에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크앙-!!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몸이 밀려나갈 것 같은 압력이 전해져온다. 놈의 말처럼 이곳은 독룡이 가장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심상 세계. 이곳은 육신의 힘에 영혼의 격이 더해지는 공간이니, 영물을 넘어 신수의 격을 갖춘 놈은 온전히 제 힘을 쓸 수 있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온전히 꺼내 쓸 수 없으니까.

16586688053453.jpg“와악!!!!!”

16586688053468.jpg[?!]

그때, 천화도 마주 고함을 내질렀다. 독룡이 내뿜던 기세의 압력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오히려 빛 속에 숨어 모습을 감추고 있던 독룡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16586688053468.jpg[너는…… 인간인 건가? 인간이 어찌……!]

16586688053453.jpg“그냥 인간이 아니라 인간님이시다. 설마 벌써 겁먹은 건 아니지? 우린 지금부터 할 일이 많다구?”

인간이라도 이 심상세계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단전이 활짝 열린 영통의 단계. 즉 화경에 이르렀다면 육신에만 의지하지 않고 의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화는 화경의 단계는 아니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6586688053453.jpg“안 오면 내가 간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의지의 힘을 내공 대신 사용할 수 있고, 그 힘을 사용할수록 좀 더 많은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상단전을 단련하기 위한 몇 안 되는 특수한 공간이자 방법이 바로 이곳에서 힘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16586688053453.jpg“흐흐흐. 화경까지 가즈아~!!!”

이미 스피드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화경에 이르기 위한 노가다 장소로서 이곳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천화는 전신에 내공을 휘돌리며 독룡을 상대로 수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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