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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화 중요 분기 임무 (1) (471/481)


<251화> 중요 분기 임무 (1)
2022.06.12.


[별호 : 무신을 획득하셨습니다.]

[별호 : 천하제일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천하제일인!

무공을 익힌 무림과 세외의 수많은 이들 중 단 한 명의 최강자를 가리키는 칭호였지만, 천화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천하제일인 정도야 이미 진작에 얻어본 것이었으니까.

천하제일인을 넘어 고금제일인의 칭호까지 얻어본 그였기에 오히려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직 그때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물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모습에는 그 외의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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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나 너에게 고백할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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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고, 고백?”

천화의 말에 설영이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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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게. 음. 아직 마음의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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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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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말해. 해도 돼.”

무엇을 상상한 것인지 볼이 발그레해진 모습이었고 눈은 초롱초롱했다.

그 안에서 어떤 기대감을 읽은 천화 역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안하게도 그녀가 원하는 말은 해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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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곧 사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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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좋…… 뭐? 어딜 가는데?”

뜬금없는 천화의 말에, 순간 멍해진 설영이 되물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이렇게 일을 잔뜩 벌려놓고서. 모든 것을 이루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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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왔던 곳이라고 해야 하나?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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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갈래. 난, 네 호위 무사잖아?”

힘없는 천화의 말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설영이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이미 천화를 제외하면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최소 십대고수의 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무위를 갖춘 그녀였지만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천화와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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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그럴 수는 없어.”

하지만 천화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설영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무신지로에서 마지막에 보았던 시스템의 알림 중 ‘보상 강화’라는 부분을 이용해 설영도 함께 이동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었다.

자신과 함께 이 세계를 떠난다고 설영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쩌면 모든 내공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었고, 새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돕는다 해도, 주민등록조차 할 수 없는 무연고 무국적의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무신지로를 통해 자신이 벌어들였던 돈이라면 제법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 수도 없으니까.

그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기에, 함께 갈 수 있다 해도 설영을 데려가는 것은 그녀에게 못할 짓이었다.

아쉽지만, 슬프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을 영유하도록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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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기가 어디길래? 네가 도망가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아? 나도 화경의 고수라구!”

그 말을 곡해한 것인지 설영의 눈초리가 매서워졌지만, 눈동자는 울고 있었다.

천화가 저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 자신은 갈 수 없는 곳일지 모른다는 예감을 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감정까지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화경의 고수였으니까. 천화의 감정이 어설프게나마 읽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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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 되겠어? 우리 북해에도 다녀왔잖아? 남만에도, 대막에도 갔었는데 왜? 환경이나 다른 건 아무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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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그럴 수 없어. 믿을 수 없겠지만, 내 마음대로 누군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를 테면 우화등선 같은 거야. 나도 알 수 없는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겠지. 그 시기는 나도 짐작만 할 뿐, 언제일지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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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에 올라서 그런 거야? 그런 거면 그냥 무공을 버려! 그러면 되잖아. 내가 호위 무사 계속해줄 테니까…….”

설영의 감정이 격해졌다.

그동안 크게 내색해오지 않던 둘이지만, 이별을 앞둔 순간에서도 그럴 수는 없었다.

설영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천화도 애써 마음의 벽을 쳤다.

여기서 더 마음을 주었다가는 둘 다 망가지고 말 테니까.

차라리,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서로 끝내는 편이 좋을 터였다.

아예 지금 이곳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 머물다 돌아가는 방법도 생각해본 천화였다.

[중요 분기 임무 ‘황위 쟁탈’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때, 절묘하게도 새로운 알림이 나타났다.

그가 해놓은 안배에 따라 마지막 중요 분기 임무가 완료된 것이다.

마교의 개파식에 사자로 방문하는 조건으로 소림에서 내놓은 대환단을 신의에게 보내 경왕을 치유시키고, 그들의 존재를 진왕에게 알려 황위에 관심없는 진왕 대신 황태자로 세우는 것. 그것이 천화의 마지막 안배였던 것이다.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기에는 진왕의 힘이 조금 모자랐지만 신의가 그 힘을 보태주었다.

민왕이 자신의 동생인 경왕에게 한 패악질을 알고 있기에, 정사대전으로 파탄이 난 민생을 전혀 돌보지 않고 이용만 하려 든 민왕에 반감을 가진 신의였기에 자신의 구명해준 전대의 고수들을 모아 경왕에게 힘을 빌려준 것이다.

황궁의 비밀 호위나 금의위, 동창이 나섰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집안싸움이라면 그들도 나서지 않을 터였기에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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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아무래도 지금 떠나게 될 것 같네.”

언제 시야가 암전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갈지 알 수 없었다.

황위 쟁탈이 마지막 남은 중요 분기 임무였으니까.

천화가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모를 말을 건넸고, 설영이 와락 품으로 안겨들었다.

마지막 인사의 입맞춤을 나누었다.

천화의 몸이 흐릿해질 때까지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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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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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를 약 일각여.

격정적인 입맞춤을 나누던 두 사람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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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직 아닌가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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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설마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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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아냐. 진짜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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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이다. 이쯤 되면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이라도 함께 보내려 할 만하지만, 이성에게 면역이 약한 두 사람이기에 아직 조금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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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긴 한데…… 왜지?’

어쨌든 조금은 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뭔가 더 남은 것이 있던가?

잠시 갸웃거리던 천화는 일단 복잡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와락 설영을 다시 껴안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잠시만이라도 이 시간과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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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대전이 종결되고 약 한 달여의 시간.

그동안 천화와 설영 두 사람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꽁냥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화가 어디론가 증발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설영은 그것조차 기꺼이 감수했고, 천화 역시 미안한 마음이기는 했지만 더 이상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원래 감정이라는 것이 감추고 담아둘 때는 괜찮지만 한번 터트려버리면 주체할 수 없는 법이니까.

불안함이 지속되는 행복이지만, 두 사람은 연애놀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천성 끝자락에 있던 최초 무림맹 본단을 재건하여 자리를 잡고 마교가 제대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했다.

천마와 십마 모두를 잃고 다시 십만대산으로 후퇴하는 이들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고서, 무림맹이 날뛰지 못하도록 자리를 지킨 것이다.

쥐도 도망갈 구석이 없으면 고양이를 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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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을 해체시켜야 끝나는 건가? 아니면 마교가 십만대산으로 완전히 돌아가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답을 모르겠군.’

그러자 자연스레 무림맹에서 이탈하여 그들의 휘하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무리들이 생겨났고, 천화는 굳이 그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딱히 새로운 무림맹 따위를 세운 것은 아니지만, 막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세력이 형성되었다.

무림맹이라는 이름은 유지되고, 죽은 무허자를 대신하여 새로운 맹주가 선출되기도 했지만 이쯤 되면 유명무실할 뿐이다.

여전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림맹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문파는 천화의 눈치를 더 보고 있었다.

기존의 무림맹 따위는 천화 혼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어버릴 수 있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무림맹에 소속된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일원들 역시 천화의 무위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기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고.

하물며 새롭게 황위에 오른 경왕과 그를 보좌하는 것으로 알려진 진왕이 천화와 긴밀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누구도 감히 천화와 설영에게 수작을 부릴 생각 따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무림의 왕.

천화의 현재 위치는 딱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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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아쉽네. 날이 좋았으면 꽃놀이라도 가면 좋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요즘 계속 먹구름만 잔뜩이잖아? 이럴 때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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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그렇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먹구름만 잔뜩이야.”

그렇게 두 사람 덕분에 나름대로 평온한 나날들이 찾아왔지만, 최근 들어 민심은 다시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로 저 날씨 때문이다.

딱히 비가 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커먼 먹구름이 대륙 전역에 펼쳐져 있었다. 그렇기에 항간에서는 천화 때문이라는 소리도, 황제가 붕어하고 새로 황위에 오른 경왕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는 소리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야 정사대전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것을 하늘이 슬퍼하는 것이라든가, 황제의 붕어를 슬퍼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것이 지속되자 다른 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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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를 읽는 법이라도 배워둘걸 그랬나.’

하지만 하늘이 저런 걸 어쩌겠나.

무공을 펼쳐 구름을 날려버릴 수도 있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민심을 달래는 용도로는 쓸모가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놓아두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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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천화 님. 천화 님을 찾아오신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적한 시간을 보내던 중, 누군가 둘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천화에게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것이었다.

말을 전한 이는 다름 아닌 검귀 소운휘.

지난 정사대전을 통해 검귀라는 별호를 얻고, 말단이긴 하지만 십대고수에까지 이름을 올린 녀석이었지만 모두 천화의 덕분이라며 수족 역할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 마음이 갸륵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기에 천화도 받아들여 함께 지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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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누구 올 사람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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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손님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웬 누더기 도포를 입은 거지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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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면 개방도인가?”

누더기 도포를 입었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거지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하나였다.

하지만 그도 아닌지, 운휘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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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내공은 없는 것 같은데 어딘지 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무시하고 돌려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전하면 만나려 하실 것이라고 이상한 말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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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그게 뭔데?”

그 말에 천화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른 이도 아닌 운휘가 내공을 측정할 수 없었다면 정말 무공을 모르는 이거나 아득한 지경에 있다는 것인데, 현기를 느꼈다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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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중요 분기 임무랬나? 그랬습니다. 그걸 전해주러 왔다고……. 엇!”

그 말을 듣는 순간, 천화가 이형환위의 수법을 발휘해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설영 역시 익숙한 듯 그 뒤를 쫓았고, 잠시 후 운휘가 말했던 거지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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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지 못해 시무룩해 있을 줄 알았더니 기운 넘치는 것 같아 보여 좋구만.”

씨익 미소를 짓는 늙은 거지에게 천화가 즉시 달려들었다.

운휘의 말처럼 내공은 없고 묘한 현기가 느껴졌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장난처럼 내뱉는 말들이,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꿰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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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누구야. 뭘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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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이러다 대답도 하지 전에 숨 막혀 죽겠네. 이거 좀 놓아주지 않겠나?”

멱살을 잡히고도 능글맞게 대꾸하는 거지의 말에 천화도 어쩔 수 없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를 가만히 땅에 내려놓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허튼 짓을 하거나 수작을 부렸다가는 각오하라는 일종의 무력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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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흘.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기운을 다루는 것이 아주 능숙하구만. 이런이런, 그러다 눈빛으로 사람 잡겠네. 어차피 자네에게 다 말해주기 위해 온 것이니 경계할 것 없네. 크흠. 그보다 먼 길을 왔더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군. 뭐 먹을 것 좀 없겠나?”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으니 오히려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조금만 무공을 알더라도 숨이 턱 막히고 땀을 뻘뻘 흘릴 만한 압박감 속에서도 거지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천화에게 푸짐한 식사와 술까지 제공 받아 배를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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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씀해보시죠. 뭘 알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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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궁금한 것이 많을 테지.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것들은 모두 말해줄 테니 걱정 말게. 그리고 먼저 이야기하자면…… 자네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건 바로 나일세.”

시작부터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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