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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화 괴이 (2) (474/481)


<254화> 괴이 (2)
2022.06.19.



“방주께서는 요양 중이시라 제가 대신 왔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헤헤.”

천화가 연통을 보낸 지 고작 하루 만에 중원의 모든 정보를 책임지는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개방 방주는 지난 정사대전에서 상처를 입어 요양 중인 탓에 다음 대의 방주가 될 후개가 대신 방문을 했지만, 그 또한 아는 얼굴이었다.

춘삼.

북해에서 돌아오는 천화에게 수작질을 부렸다가 된통 당했던 녀석이다.

원래의 후개는 진걸이라는 놈이었지만, 천화와 연이 닿은 덕분에 춘삼으로 후개가 갈아치워진 것이다.

마침 타구봉법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삼복구타봉법까지 익히고 있었으니 방주 역시 그를 썩 마음에 들어 했다.

더불어 개방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정의파라 불리는, 거지답지 않게 무림 문파 행세를 하려는 놈들이 득세를 했지만 이번 정사대전에서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고 춘삼이 두각을 나타내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메말라가던 정보도 다시 풍성해졌으니 천화로서는 나쁠 것 없었다.

그들과 하오문의 정보를 합친다면, 최근에 일어난 변화와 수상한 낌새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듯싶었다.


“……이것들이 모두 괴이의 짓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정사대전보다, 마교보다 위험한 것이 이들이 될 수 있습니다.”

천화는 먼저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전부 들어보았다.

만약 자신이 먼저 괴이라든지 하는 말들을 꺼낼 경우, 그들이 임의로 선별하여 정보를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딱히 감추려 하기 때문이라기보다,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고 정보를 다루는 일에서 편견은 가장 무서운 독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이 내놓은 방대한 정보를 모두 들은 뒤, 천화는 비로소 괴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과 공유했다.

그들이 털어놓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이 상황을 조합하여 유의미한 의문들을 찾아냈다.

실종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의 행동이 이상해지거나 외부 활동이 뜸해진 자, 금지(禁地)가 된 땅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들이 가진 방대한 정보와 천화의 지식과 추측이 만나 수많은 가설을 만들어 내었다.


“후우. 일단 셋은 알겠는데, 하나는 뭔지 모르겠군.”

거기에 마천의까지 이용하자 놈들의 특성과 방향을 짚어낼 수 있었다.

마천의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방향뿐인 줄로만 알았지만, 고인물의 관찰력을 이용해 바늘 끝이 붉게 물든 길이에 따라 거리까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다만 흡혈귀 이외에 다른 둘은 대충 가늠이 되는데, 나머지 하나가 어떤 특성을 가진 괴이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변수였다.


‘그거야 직접 가면 되겠지.’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무엇이든 해결이 되리라.

그렇게 괴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선제 타격하여 박멸시키기 위한 준비가 착실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천화의 이름 아래, 각 지방을 대표하는 문파의 수장들이 정파와 사파를 가릴 것 없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잡음도 발생하지 않았다.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 천화의 눈밖에 나는 순간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모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내 그들을 한데 모은 자리에서, 천화가 먼저 말을 건네자 웅성거리며 무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었다.

온통 뒤섞이는 바람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대충 알겠다.


“조용.”

“…….”

다시 내뱉은 한마디에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지고, 천화는 준비해두었던 자루를 끌고 왔다.

바로 기연 동굴에서 생포한 흡혈귀가 들어있는 자루였다.


“모두 이걸 봐주십시오.”

“사람?”

“누구지? 마교도인가?”

혹시나 개수작을 부릴까, 재갈을 물리고 설영이 혈마기로 힘을 억누르고 있었기에 발작하지는 못했지만 그 특성과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푸확!

그때, 천화가 단칼에 놈의 목을 잘라냈다.


“헉?”

이것을 왜 자신들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설마 천화가 이곳으로 자신들을 불러모은 이유가, 자신에게 복종하라는 충성 서약을 받기 위함이라도 되는 것일까?

순간 장내에 싸늘하고 당황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무슨 생각을 할지 뻔했지만, 천화는 태연하게 발치로 굴러간 놈의 머리통을 주워다가 다시 목에 붙여주었다.


“어?”

“저게 살아?”

“다시 움직인다!”

흡혈귀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다.

말로 백번을 해봤자 믿지 않을 테니, 이 괴이한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게끔 해준 것이다.


“지금 중원 곳곳에 이런 괴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산 자의 육신을 탐하거나 역병 같은 힘으로 전염시켜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힘을 가진 놈들이죠. 제가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은 것은 이 괴이들을 처단하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보셨다시피,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괴물들이기에 먼 걸음을 부탁드린 것입니다.”

꼴깍

모두가 숨을 죽였다. 괴이라 불린 저 놈을 어떻게 죽여야 할 것인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저 특이한 육체가 가진 강함도 두려운데, 만약 무공이라도 익히고 있다면 어떻겠나?

좀 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개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무력으로 따지자면 대충 일류에서 절정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보다 약한 무인들은 이들의 제물이자 하수인이 될 뿐이니, 가능한 한 대결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보신 바와 같이 목을 잘라도 살지만, 약점은 있습니다. 일단 심장을 찌르거나 터트리면 죽일 수 있고, 바로 이렇게…….”

부욱

천화가 가볍게 검을 뻗어 허공을 그었다.

특별히 마련된 대형 천막을 찢고도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먹구름을 힘으로 흩어버리고 따스한 햇빛을 불러들였다.


“햇빛에 노출시켜 태워 죽일 수도 있죠.”

“키야아아아아악!!!!”

치이이이이익!!

그 햇빛에 닿자 흡혈귀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슬쩍 팔 한쪽만 햇빛에 노출시켜 시험해본 결과, 햇빛에 닿으면 재가 되어버리는 특성 또한 유효함을 확인한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입은 상처는 다시 그늘로 들어오거나 밤이 되어도 쉬이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흡혈귀들을 상대하는데 꽤나 유용할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언젠가부터 저 하늘에 깔린 먹구름이 햇빛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히 막을 수는 없기에 먹구름이 끼어있어도 낮이라면 능력이 약해지고 재생 능력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강력한 놈들이기에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저런……!”

“정말 사람이 아니었군.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참고로 이놈들에게 물리면 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충분히 제압하고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모은 상태에서만 상대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동료나 사형제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

이제야 비로소 모두가 긴장하고, 일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신기한 괴물을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젠 저들과 자신들이 직접 싸워야 하고, 자칫하면 저런 괴물로 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괴물은, 저 한 종류뿐입니까?”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천화가 처음 괴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괴물들이 중원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예상컨대, 크게 나누어본다면 네 가지 종류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그 수하격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주도적인 것은 넷 정도일 것 같군요.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조금 전 그놈과 같은 종족뿐이지만, 나머지 셋 중 둘은 예상되는 바가 있습니다. 그에 따른 대비책도 있으니 공유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부터, 이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 타격할 것입니다.”

“그럼 나머지 한 종류는 어떻게 합니까?”

“그놈들은 제가 직접 맡을 것입니다.”

그 말에 같은 의문을 품던 모두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자타공인 천하제일인이자 현경의 고수인 그가 나선다면 상대가 누구이든 상대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걱정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었다.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들처럼, 천화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주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되겠군.’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천화가 머릿속으로 세운 계획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저 주의를 주기 위해 그들을 모이게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타격대를, 별동대를 조직하여 4대 재앙이라 불리는 놈들을 처리할 작정이었다.

무인이 아닌, 고인물의 방식으로.

놈들이 갑자기 장르를 바꿔온다면, 이쪽도 그에 맞춰줘야 하지 않겠나?

사냥이 아닌 ‘공략’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편성을 꾸리고, 명령을 하달했다.

꼭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4대 재앙이라 불리는 놈들 정도는 충분히 무림의 힘으로도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무인들은 각자의 지방으로 흩어지거나, 정예들을 불러모았고, 천화가 짜준 대로 조를 이루어 중원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하오문과 개방의 도움을 받아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선제공격을 시도했다.


 

@

천화의 판단에 따라 각 문파들은 몇 개의 조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개방과 당문, 남궁세가, 하북팽가, 진주언가가 하나의 조를 이루는 식이다.

꼭 오대세가라서 하나로 묶은 것은 아니었고, 상대할 적의 특성에 맞춘 조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상대의 정체가 천화의 짐작과 맞아떨어질 때에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대응 방법 또한 이미 일러주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괴이가 무엇인지도.


“사람이 짐승이 되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지 모르겠소.”

“그놈이 햇빛을 받자 불타 없어진 것도 보셨지 않습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시는 겝니까?”

허나, 따르기는 해도 모두가 그 말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지만, 단지 괴이에 대한 불신만이 아니라 천화에 대한 의심도 섞여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하북팽가와 진주언가의 고수들이 불만과 의문을 제기했지만 당문과 남궁세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문파가 오히려 짝짜꿍이 맞아 은근히 천화를 의심하는 말들을 늘어놓았고, 외려 천화와 관계가 썩 좋다 할 수 없는 두 문파는 침묵하는 것이다.

당문은 이미 두 번이나 천화에게 찍혔고, 남궁세가는 가장 강력한 고수인 남궁혁건은 천화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무위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가 모든 고수들을 죽이고, 혹은 황제마저 죽이고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이런 수작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가 자신들에게 믿고 맡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을 때의 부담에 긴장했다.


“흠. 보기는 했으나 그가 힘을 쓴 것일 수도 있지 않겠소. 모두가 하늘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그 말, 책임지실 수 있겠어요? 천화 님께서 딴 맘 품는 놈들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는데…….”

“크흠. 아니, 누가 그렇댔소? 그냥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는 게지. 그보다, ‘털’을 발견하셨다고?”

하지만 그런 팽가와 언가의 투덜거림도 곧 잦아들었다.

그들과 함께 나선 후개, 춘삼의 핀잔에 입을 다문 것이다.

진짜 그가 이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늑대인간, 혹은 라이칸스로프라고 불리는 놈들.

천화가 그들에게 상대하라 지시한 괴이는 평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야수가 되어 살육을 벌이는 놈들이었다.

마침 몽고의 초원 쪽에서 다수의 말과 짐승이 사라지고, 뜯어먹히는 일이 잦고 그 주변에서 회색과 갈색의 털들이 발견된다는 소리에 천화가 놈들을 규정지은 것이다.

완전한 괴물이라면 애초부터 늑대인간의 외형을 가졌겠지만, 아직 그런 모습을 한 괴물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형상을 하고 있거나 마주친 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보았고, 놈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비책을 일러주었다.


“예. 대략 이각쯤 더 달리면 화전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두르시죠.”

후개의 인도에 다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뒤를 따라 신법을 펼쳤고, 이번 작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당문이 슬슬 준비를 시작했다.


“저기입니다.”

“모두 물러나시오.”

흡혈귀 이상의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늑대인간들.

놈들을 쉽게 공략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미리 약을 쳐두는 것이다.

흡혈귀들과 달리 늑대인간의 재생력은 일종의 세포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회복을 가속시키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몸 안에 퍼진 독이 더 빠르게 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에 대해 언질을 들었던 당문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을에 독을 풀었다.

무색무취의 합성독.

정말 놈들이 늑대인간이라면 냄새에 예민할 수 있기에 멀찍한 곳에서 아무런 색도, 향도 나지 않는 합성독을 푼 것이다.

자칫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결과가 될 수 있었지만, 당장 즉사시키는 독은 아니니 판단이 잘못된 것 같으면 치료를 해주면 되겠지. 다른 한 가지 독이 더 섞이기 전까지는 그리 치명적이라 할 수 없는 종류의 독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독을 마친 후, 일행은 모두 화전민 마을 밖에 숨어 밤을 기다렸다.

혹여나 놈들이 눈치라도 챌까 밥을 지어먹지도 못하고 건량으로 때우며 때를 기다렸다.


“아우우우우우!!!!”

잠시 후, 밤이 되어 달이 차올랐을 때, 화전민 마을 안에서 긴 늑대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안력을 돋워 내부를 살피니 정말 마을 사람들의 몸에서 회색과 갈색의 털이 돋아나며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즉시 당문의 고수들은 망설이지 않고 나머지 독을 풀었다.

하북팽가와 진주언가의 고수들이 몸을 일으켰고,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검을 빼들었다.

하지만 가장 기세를 올린 것은 다름 아닌 개방이었다.


“개새끼를 때려잡는 일에는 역시 개방만 한 곳이 없지. 가자, 거지새끼들아! 개 잡으러!”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천화가 했던 말을 제 입으로 다시 내뱉으며 타구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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