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사대재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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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사대재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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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사대재앙 (1)
2022.06.21.
“허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요?”
“사람이 아니라 괴이라 하지 않소. 말조심하시오. 그들을 사람처럼 대했다가는 제자들이 크게 상할 수도 있는 일이니.”
무당, 청성, 화산, 점창, 공동.
이제는 구파가 아닌 팔파가 되어버린 이들 중 다섯과 술법과 진법에 능한 제갈세가, 모산파의 고수들이 한데 모인 조가 향한 곳은 정사대전의 종착지였던 사천과 호북 사이, 중경이었다.
그곳에서 죽은 이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접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말도 안 되는 뜬소문으로 치부했겠지만 천화는 이것을 중대한 정보로 보았다.
애초에 탐식의 왕이라는 자의 앞에 붙은 말 자체가 ‘살아있는 자들을 탐하는’이었으니까.
이런 수식어가 붙을 만한 것들은 오히려 떠올리기가 쉽다.
판타지에서는 흔히 언데드라 불리는 것들.
육신은 되살아났으나 이지를 상실한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의 시신 중 유력한 주요 문파의 제자들의 것은 회수가 되었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통에, 연고가 없는 이들의 시체는 일단 모아두었던 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정사대전이 한 달 가까이 지났건만, 북해빙궁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썩지 않게 유지를 했을 뿐 처분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썩은 몸을 이끌고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주의를 주시오. 설령 아는 얼굴이 있더라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도록. 그들의 목을 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성불할 수 있게 돕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오.”
그 방식이 좀비인지, 스켈레톤인지 그보다 상위의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언데드라 하면 무지막지한 물량 공세부터 떠올릴 수 있기에, 천화가 유독 이쪽으로 많은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더불어 구파 아니 팔파의 구성 문파들은 도가 쪽의 성향을 지니고 있으니 약간의 제마 능력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그들이 순리를 거슬러 되살아난 이들을 상대한다면 제법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엇? 저기! 움직이는 자들이 보입니다!”
“시체 썩는 악취가 여기까지 느껴지는군.”
“허어……. 정말 저들이 사람이 아니라니. 괴이한 일이오.”
“잡설은 그만하시오. 즉시 전투를 준비해야겠소.”
그렇게 모인 고수가 수천이었다.
다른 쪽은 비교적 고수들을 추려서 움직였지만, 이곳은 마침 여러 문파들이 모이기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상대해야하는 것은 수많은 정사대전 희생자의 시신이기에 일류에 발을 걸쳤다 하는 이들은 모조리 끌어모은 것이다.
이곳 전장에서는 초인들 간의 대결도 중요하지만 잔챙이들을 처리해줄 인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진하라!”
되살아난 망령들을 발견한 이들이 각지 문파에 따라 검진을 펼쳤다. 그들 사이사이를 모래알처럼 소속 없는 무인들이 메워나갔고, 제법 탄탄한 진형을 갖추게 되었다.
“돌격!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역천의 술법을 행한 괴이들을 다시 죽음으로 돌려보내라!”
“저들은 인간이 아니다! 사람들을 해치는 괴이일 뿐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전력으로 해치워라!!”
“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두 세력이 부딪혔다.
“크워어어!!!!”
하지만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인들의 육신을 가진 좀비며 구울이었기에 놈들의 육체 능력은 최소 일류 이상의 것이었으며 시체에서 뿜어지는 시독 또한 제법 위험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거기다 육신을 가지지 못한 원혼들까지 합류했다.
일반적인 검으로는 벨 수조차 없어 검기를 끌어내지 않는다면 일말의 타격도 입힐 수 없는 검은 악령들이 허공을 날아 짓쳐들었다.
“불덩이?!”
화르르륵!!
뿐만 아니라 그 악령들은 술법과도 같은 사악한 힘까지 사용했다. 허공에서 불을 만들어 뿜어내고, 괴이들을 강화시켰으며 당황하고 겁먹은 무인들의 정신을 쪼아댔다.
일부 심약한 자들의 몸을 빼앗아 아군을 공격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마의 진언을 읊으시오!”
“수둔의 술!”
“캬학!!!”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 또한 있었다.
제마의 진언을 읊으니 악령들이 고통스러워했고, 부적이 붙자 기겁을 하며 몸에서 빠져나갔다.
또한 날아드는 불덩이는 물의 술법을 이용한 모산파의 고수들이 상쇄시켰고, 일부는 검기나 검강에 베여 소멸해버렸다.
기존의 무공과 상식을 벗어난 놈들의 힘은 실로 위협적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를 당황시킬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것들이다.
이미 천화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들을 풀어 설명해준 후였기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했다.
“큭! 조심해라! 상처를 입으면 피부가 썩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놈들은 제법 잘 버텼다.
다른 세계에서 좀비, 구울, 스펙터라 불리는 괴물들뿐 아니라, 데스 나이트라 불리는 놈들까지 있는 탓이었다.
생전의 검술까지 기억하는 죽음의 전사들.
놈들은 초절정에 달하는 무위를 선보였고, 그들이 내뿜는 검은 기운은 맞닿는 상대의 피부를 썩게 만들고 힘을 위축시켰다.
“흐흐흐. 제물들이 넘쳐나는구나!!!”
그러나 그들도 가장 위험한 존재는 아니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죽음의 기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철장(鐵杖)을 휘두르는 해골 괴물이었다.
놈이 철장을 휘두를 때마다 무인들이 저주에 걸려 비틀거렸고, 놈들에 의해 희생당한 무인들의 시신이 괴물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다.
검기, 검강 따위를 날려 요격해 보려 해도 소용없다. 놈의 주변으로 둘러쳐진 호신강기 같은 기운이 모든 힘을 무력화시켰으니까.
“무신의 말대로군.”
“저놈은 내가 맡겠소. 그동안 그 ‘구슬’을 찾아주시오.”
그러나 그 또한 천화의 예상범주 내였다.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리치’라 불리는 존재.
자신의 영혼을 담은 그릇인 ‘라이프 배슬’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무한히 되살아나기에, 모르고 맞붙는다면 설령 더 강한 힘을 가졌다 해도 고전할 수밖에 없는 그 존재에 대해서도 천화가 미리 언질을 해둔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두 화경의 고수가 비로소 움직였다.
한 명은 리치의 시선을 뺏고, 다른 한 명은 기감을 확장하여 놈의 그릇인 ‘라이프 배슬’이라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모르고 싸운다면 이길 수 없는 상대겠지만, 알고 싸운다면 누구보다 쉬운 상대가 바로 리치라는 천화의 조언을 떠올리며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
아미, 종남, 곤륜.
팔대문파 중 세 곳을 하나로 모은 세 번째 조는 전투력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약했다.
나름대로 최절정, 초절정의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화경의 고수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천화가 이들을 한 조로 묶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 자리를 메울 인물들이 추가로 합류를 했기 때문이다.
“저쪽입니다. 본거지를 제대로 찾은 것 같네요.”
“모두 준비하시오.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놈들이니 단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오.”
바로 설영과 도왕이었다.
추가로 도왕의 제자인 검귀까지 합세를 했으니 그들의 전력은 결코 다른 곳에 비해 약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어쨌든 화경의 고수가 둘씩인 것은 같았고, 특히 설영은 천하제일인인 천화의 다음으로 꼽히는 고수였으니까.
같은 화경의 고수 중에도 격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누구도 자신들이 위태롭다 여기지 않았다.
다만 도주에 특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이기에 긴장하고 정신을 집중할 뿐이었다.
“햇빛에 약한 것을 알고 대수림에 숨다니, 참으로 영악한 놈들이구려.”
그들이 쫓는 것은 귀주의 기연 동굴에서 보았던 흡혈귀 무리였다. 그보다 훨씬 커다란 무리를 이루고 있는, 임무창이 ‘4대 재앙’이라 일컫는 흡혈귀들의 우두머리와 그 휘하 흡혈귀들을 사냥하기 위해 청해의 대수림을 찾은 것이다.
낮에도 그늘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수림이기에 흡혈귀들이 몸을 숨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여기, 죽은 동물의 시신이 있습니다! 피가 빨려 죽은 모습이고, 말씀하신 대로 이빨 자국이 선명하군요.”
또한 먹잇감으로 삼을 만한 산짐승들도 많았다.
인간의 피를 가장 좋아하지만, 흡혈귀들은 짐승의 피도 마다하지 않기에 몸을 숨기고 힘을 기르는 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놈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지만, 그래도 설영은 자신이 있었다.
혈마기와 비슷한 기운을 사용하는 놈들이기에 일정 반경 내에서는 굳이 혈마검의 감지 능력에 도움 받지 않더라도 선명히 놈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갑시다. 해가 지기 전까지 단숨에 몰아쳐야 해요.”
점점 감지되는 기운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설영이 일행의 걸음을 재촉했다.
밤이 되면 놈들의 능력이 상승할 뿐 아니라, 도주하는 것을 막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최대한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상황을 만들고, 놈들을 박멸할 필요가 있었다.
“도왕님.”
“맡겨두게.”
그렇게 놈들의 본거지에 도달한 일행은 흡혈귀들이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거대한 나무들이 완벽하게 햇빛을 차단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수림의 그늘이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었지만, 낮 시간에 활동하는 것은 부담스러운지 깨어있는 놈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후……웁.”
쐐애애액-!!
도왕의 도에서 뿜어져나온 도기가 거대한 반월 모양으로 뿌려졌다.
단 일격으로 장정 여럿이 껴안아야 겨우 둘레를 잴 수 있을 만한 거목들을 싸그리 밑동만 남기고 쓸어버린 것이다.
“캬아아아아악!!!”
쿠웅 쿠웅 쿵 쿵!!
덕분에 그늘이 사라져버렸다.
그늘을 만들어주던 거목들이 단숨에 쓰러지며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하늘에는 먹구름이 있었지만, 약속된 대로 도왕이 힘을 쓰는 순간 설영 역시 하늘로 기운을 뿜어내 구름을 흩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많은 흡혈귀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힘이 강한, 혈통이 좋은 놈들은 약화되고 화상 같은 상처를 입긴 했어도 여전히 건재했다.
“갑시다. 모두 조심하세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영이 먼저 몸을 날렸다.
혈마검과 공명하여 혈마화를 이룬 뒤, 자신의 기운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흡혈귀들을 억압하며 단숨에 몰아쳐갔다.
“우리도 가지.”
그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한 탓에 일행 중 잠시 멍해진 이들도 있었으나 곧장 따라붙었다.
정사대전 때 난입했던 수라혈마교의 공포스런 모습 따위는 이미 잊혀진 듯싶었다.
오히려 설영의 모습에서 깊은 안도감과 포근함을 느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혈마검과 약속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였다.
단순히 힘에 굴복하여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설영은 혈마검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약속했다.
제사용 검이었던 혈마검이 희대의 신검이자 마검이 되었듯이, 다시 사람들의 인식을 자신이 바꿔놓겠다고. 이번 대에 불가능하다면 다음 대, 그다음 대에 이르러서라도 시대를 바꿔보겠노라고 말이다.
자신이 아닌 세상을 바꾸고 그간 쌓여온 깊은 원한과 상처들을 하나하나 풀어내어 다시 혈마검에게 평안을 선사하겠다는 그 약속은 허황된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혈마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던 것이었다.
피와 복수로 세상을 물들인다 한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약속이, 품고 있던 열망이 혈마검을 움직였고, 지금은 완벽히 그녀와 일체화되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흡혈귀들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터트리며 누가 진짜 피의 주인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복종까지는 무리인가.’
흡혈귀보다 더 흉악한 악신 같은 모습이 아니라, 마치 세상의 어둠을 정화하는 무녀가 정화의 검무를 추듯 아름답게 힘을 뿜어내고, 또 흡수했다.
다른 이들의 피를 빨고 그 안에 담긴 생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불리는 흡혈귀들의 피는 혼탁하기는 해도 여느 영물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큰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것들을 흡수하고, 정화하고, 방출하며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흡혈귀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까지 기대했지만, 그것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흡혈귀는 특히나 계급의식이 강해서 더 높은 힘과 지위를 가진 이들에게 복종하는 특성을 보인다.
그렇기에 보통의 경우라면 지금의 설영이 조건을 충족하겠지만, 탐식의 왕이라는 자가 개입한 까닭인지 흡혈귀들이 그녀를 모시는 일은 없었다.
그럼 죽여야지.
대신 힘으로 찍어누르자 낮이라는 것과 별개로 놈들의 힘과 행동이 제약되었다.
동일 속성상에서는 51대 49도 고작 2만큼의 힘의 차이가 아니라 90대 10이 되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천화도 설영에게만은 특수한 공략 따위를 일러주지 않았다.
힘으로 찍어누르면 해결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영이 전력으로 혈마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어찌 인간 따위가 우리와 같은 피의 축복을……!”
그 모습에 흡혈귀들의 왕, 뱀파이어 로드조차 경악했다.
무림의 기준으로 자신의 무력은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설영이 휘두르는 혈마기는 이미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그런 놈들을 향해 설영이 먼저 짓쳐들었다.
누가 진짜 피의 화신인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