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1화 탐식의 왕 (4) (481/481)


<261화> 탐식의 왕 (4)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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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영의 영혼이 잡아먹히고, 몸의 제어권을 빼앗기려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하얗고 빨간 두 가지 빛이 동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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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쀼웃!!!!”

흰 빛은 설영의 품안에 있던 은룡의 것이었다.

신수 고유의 권능인 정화의 빛을 전력으로 내뿜으며 놈에게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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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구를 노리는 것이냐!!]

 
붉은 빛은 혈마검이 일으킨 것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이들의 피와 한을 머금은 혈마검이 설영을 지키기 위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둘 다 마계의 왕인 그에게는 손색이 있는 상대였지만,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하나로 뭉쳐 저항하자 영혼 지배의 힘도 더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살짝 풀릴 뻔했던 설영의 눈에 다시 정광이 돌아왔고, 설영은 즉시 혈마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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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감히 인계의 미물들 따위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지만 놈도 당장은 설영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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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베었는데……?!”

설영이 무심결에 휘두른 검격은 단순히 파괴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룡의 덕분인지 알 수 없으나, 순수하게 자연지기를 머금고 휘두른 그 일격에는 강력한 제마의 힘이 담겨 있었다.

혈마검이 가진 본연의 능력이 드러난 것이다.

그 탓에 혈마검에 베인 녀석이 비틀비틀 밀려났다.

혈마검에 적중당하고도 두 쪽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놈의 본체 역시 범상한 힘을 가진 게 아니라는 뜻이었지만, 그는 본체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서둘러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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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그런 놈을 쫓아 천화가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일천 개의 강기검이 일어나 주변의 잔당들을 쓸어버렸다.

새로운 숙주를 찾을 때마다 원래의 힘을 회복한다면, 숙주가 될 만한 놈을 모두 없애버리면 그만이 아닌가?

태양궁의 무인들도 만만치가 않아 그들을 모두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천화에게도 꽤 버거운 일이었지만 정신을 쥐어짜냈다.

탐식의 왕을 최대한 묶어두는 것에 집중하며 강기검과 금강동인들을 이용해 숙주가 될 만한 존재들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분전 중인 마라혈교의 교인들에게도 절대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멀리 달아나라는 명령을 전해둔 상태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결착을 짓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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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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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징그럽게.”

그렇게 잔뜩 수세에 몰린 탐식의 왕이 돌연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뭔가 찜찜한 웃음이었기에 긴장하며 살폈지만 이렇다 할 무언가는 감지되지 않았다.

슬슬 태양궁의 무인들도 그 수가 한자리에 가까워진다.

더 이상 놈이 몸을 옮겨 다닐 만한 숙주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가 있어 저런 웃음을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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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멍청한 놈이구나. 모든 숙주를 없애면 내가 사라질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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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맞는지 틀린지 확인해보면 되겠지? 천하의 탐식의 왕이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쫄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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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럼 다시 묻지.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을 모두 죽이면 숙주가 전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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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순간 천화의 인상이 구겨졌다.

또 뭔가 숨겨놓은 것이 있는 건가?

하지만 기감을 아무리 넓히고 집중을 해보아도 감각에 잡히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믿고 저놈은 저런 여유를 부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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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둔한 머리를 가진 놈을 취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힘만은 인정하마. 자, 이제 내 것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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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접근하게 놓아두……?”

그제야 천화도 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화 자신. 놈이 노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취함으로써 천하제일인을 제거함과 동시에, 현경 수준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얻겠다는 것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

천화는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자연지기를 일으키며 놈을 주시했지만, 그 순간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입자 같은 것들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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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것은 파리 떼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파리들이 태어나 솟아오르더니 천화의 몸을 휘감았다.

콰앙!!

즉시 힘을 내뿜어 파리 떼를 몽땅 태워버렸지만 소용없었다.

그것들은 평범한 파리 떼가 아니었고, 시신조차 좀비 파리가 되어 천화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려, 탐식의 왕이 그들과 위치를 바꾸었다.

천화의 몸에 달라붙어 영혼 지배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하얀 빛무리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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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기억의 파편들이 주마등처럼 주변을 스쳐갔다.

가장 최근의 기억들부터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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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인가?’

때문에 천화는 정신세계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탐식의 왕이 자신에게 영혼 지배의 술법을 사용했다는 것까지는 기억을 하기에, 이 안에서 놈을 꺾는다면 역으로 놈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더 많은 기억들이 스쳐가는 동안에도 놈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사대전을 비롯해 마교의 개파식에 참석했던 일, 대막에 조사단으로 파견된 일, 사천당가에 쳐들어간 일, 해남파를 구원하고 해적들을 소탕했던 일, 빙궁을 방문하고 야수궁을 방문했던 일, 은룡과 흑우를 만났던 일, 그리고 설영을 만났던 일까지.

이 세계로 넘어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지나가고 더 거슬러 올라가 다른 세계의 일들이 떠올랐다.

무신지로에서 모든 중요 분기 임무를 마치고 고금제일인이 되었던 일, 무신지로에서 벌어들인 재화를 환전하여 가족들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었던 일, 무신지로의 고인물이 되기 위해 개고생을 했던 일 등등.

무신지로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일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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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의 얼굴과 이름이 희미해진 것이다.

친구들의 이름은? 출신 학교는? 군대는?

모든 것이 흐릿했다.

설마 영혼 지배에 당했기 때문일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든 천화는 어떻게든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억은 흐릿해져만 갔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것은 무신지로에서의 일들만은 여전히 생생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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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지?’

무신지로를 플레이했던 시기를 지나 과거로 침잠해 들어갈수록 기억은 더욱 단편적이었고, 그것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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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 세계에 기어코 돌아가려 했던 거지?’

이곳에 온 순간부터 강하게 들었던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조차 제 것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김치찌개가 그리워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니까?

정말 그런 것일까?

마치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기억은 계속해서 흘러, 가장 처음의 기억까지 거슬러올라갔다.

파앗-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아기 시절? 아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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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네. 우리의 욕심이 자네를 이곳까지 이끌었어.”

하얀 도포에 긴 수염. 어딘지 익숙한 모습을 한 노인들이 그들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움직여보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리를 내어보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노인들의 말을 듣는 것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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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는 살아있는 존재에게 깃들어 영원히 살아가는 괴물이지. 그렇기에 영혼을 가진 이들은 절대 놈을 죽일 수 없다네. 놈을 죽이는 순간, 그 자신이 곧 놈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렇기에 우리 신선들조차 그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네.”

그 상태에서 신선들은 탐식의 왕의 정체에 대해 들려주었다.

대상의 영혼에 깃들어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누구도 그를 죽일 수 없으며, 죽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곧 그가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신선들조차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고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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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 자네라는 존재를 빚어낸 걸세. 자네가 가진 기억과 경험들은 모두 우리가 가진 선기를 이용해 천기를 빚어 만들어낸 것들이지. 그 여파로 우리는 신선의 힘과 지위를 잃겠지만, 자네의 슬픔과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

그리고 다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천화라는 존재 자체가, 그들이 천기를 빚어 만들어낸 가짜라는 말이었으니까.

무신지로도, 그가 살던 세계도, 그가 보고 듣고 행했다 생각한 모든 경험과 지식들이 그저 천기의 일부일 뿐, 거짓이었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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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나면, 우리가 부여한 자네의 육신은 사라질 것이네. 마지막 한 자락의 힘을 남겨 그대가 뜻하는 세상에서 원하는 삶을 누리며 살게끔 안배를 해두었으나, 충분하다 할 수는 없겠지. 역할을 다한 천기의 소멸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순리이니, 마지막 작별의 시간조차 충분치 못할 것이네. 정말 미안하네.”

그리고, 탐식의 왕을 처치하는 순간 그의 몸이 흩어져 다시 천기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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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모든 이야기를 들은 천화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평소대로라면 이게 무슨 개소리이고 개짓거리냐며 한바탕 난동을 피워야겠지만,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에 가만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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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부탁하네. 놈을 물리치고 비틀린 질서와 순리를 바로잡아주게.”

그 말을 끝으로 막대한 선기가 천화의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더불어 봉인되어 있던 기억들 역시 함께 흘러들어왔다.

신선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탐식의 왕이 천화의 지배에 실패했습니다.]

[천화는 영혼 지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 다시 한 번 영혼 지배에 실패한 탐식의 왕이 비틀거리며 눈앞을 날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혼 지배에 실패한 반작용이 꽤나 강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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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혹여 천화가 어찌 되었을까 놀란 설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떨리는 목소리에 천화가 가만히 설영을 돌아보았다.

만약 여기서 탐식의 왕을 처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정해진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지 못한 천기는 흩어질까, 유지가 될까?

잠시 고민이 들었다.

이대로 설영과 함께 먼 어딘가로 향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중원인들 따위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놈도 자신을 감히 어찌 하지는 못할 테니, 적당히 천수를 누리며 사는 것쯤은 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은 설영을 보며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꾸직

무명검을 쓸 것도 없다. 비실대며 날아가는 탐식의 왕을 움켜쥔 천화가 손에 힘을 가하자 약간의 반발과 함께 그대로 터져나가버렸다.

[모든 중요 분기 임무를 완료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모든 중요 분기 임무를 완료하셨습니다.]

[업적 ‘무신지로를 완수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모든 중요 분기 임무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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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존재의 소멸.

그것을 느낀 설영이 천화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

이 따스함을 느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천화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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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무 이상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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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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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다행이야……. 근데 이긴 사람 표정이 왜 그래?”

깊이 안도하던 설영이 문득 천화의 슬픈 표정을 보고 물었다.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뱉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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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이제 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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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벌써? 안 돼! 그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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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혼자 잘할 수 있잖아? 이 녀석하고 약속했다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로.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이제 이 녀석의 한도 풀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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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혈마검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자 녀석도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무명검으로 겁박하긴 했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적지 않았기에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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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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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쀼우우…….”

이어 역소환을 해두었던 흑우도 스스로 아공간을 열고 나와 은룡과 함께 배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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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출. 흑우, 은룡.”

이대로 자신이 사라져버리면 그 둘 또한 사라질 수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둘을 해방시켜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휘청

바로 그때, 천화를 안고 있던 설영의 몸이 휘청거렸다.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천화의 몸을 지나쳐 바닥에 쓰러질 듯 휘청거린 것이다.

정말로, 천화가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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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설영이 천화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아두기 위해 눈물로 가득 찬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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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지만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게.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화는 헛된 희망을 주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어디서든 그들을 지켜보겠노라고도 약속했다.

마지막 보상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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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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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천화의 몸이 하얀 빛무리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천기의 일부가 되어, 빛의 씨앗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보상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1. 소원 빌기(보상 강화)]

남은 것은 오직 천화의 정신뿐.

그에게 신선들이 남긴, 마지막 천기의 조각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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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겠다. 내 소원은…….”

 

@

천화와 탐식의 왕이 사라진지 3년 후.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무림은 다시 잘 일어났다.

천화가 대막으로 떠나기 전 주고 간 [괴이대백과] 덕분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틈틈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몬스터들을 적고 정리해둔 그 책을 필사하여 널리 뿌린 덕분에, 무림은 효과적으로 남아있는 괴이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정리가 끝났을 때 설영은 무림의 왕으로 등극했다.

아무리 무림과 관이 서로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공식적으로 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황제가 된 경왕이 설영을 인정하며 잡음을 없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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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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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즉위식에, 무림의 모든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정파인들은 물론, 박대 받던 사파인들과, 십만대산으로 쫓겨갔던 마교인들까지.

정과 사, 마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섞여 자리를 잡았다.

그 중심에 설치된 단상 위에 설영이 올랐고, 그 주변으로 도왕과 검귀, 고불, 해남파의 문주, 야수왕, 북해빙궁주가 시립했다.

한편에서는 성대한 즉위식을 준비해준 만금상단의 가주 금무성이 나예린, 임봉곤과 함께 따스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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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림공적으로 불리던 혈마의 후예입니다.”

모두 설영이, 사악한 방법을 이용해 무공을 연성하지 않는다면 무공이나 세력 때문에 죄인 취급을 하지 않겠다는 공표를 한 덕분이었다.

그 덕에 천마와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십마, 백팔마인의 상당수를 잃은 채 척박한 십만대산에 머물던 마교도들이 산에서 내려왔고 청해성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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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무림의 왕으로 불리고 있죠.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에 따른 대가는 치러야 하겠지만, 그것이 낙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모두 박대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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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 괴이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정파도, 사파도, 마교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똑같이 무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사랑하는 이들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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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치가 다른 어떤 이유로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 무림은 평등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지킨, 그리고 그가 지킨 이 무림의 평화를 해치려 하는 자들은 제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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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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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설영 만세!!”

설영의 연설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천화에게 이어받은, 무신의 칭호와 함께 그녀의 이름이 높이 울려퍼졌다.

그 환호와 함께, 설영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딘가에서 천화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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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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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야!!!”

어느 한적한 마을에 여인들의 째진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비명 소리에 반응해 거리를 지나던 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상황을 파악한 주변 사내들이 팔뚝만한 몽둥이를 들고 얼른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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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마가 어디 길거리에서 여인들을 희롱하느냐!!”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리는 작은 속옷만 덜렁 입고서 나타난 괴인을 향해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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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또 다 벗겨 놨어?! 잠깐만, 그게 아니라……!”

색마 괴인이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지만, 통할 리가 없다.

변태 색마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길거리에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겠나?

손사래를 칠 때마다 속옷이 덜렁거리자 잔뜩 화가 난 사내들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색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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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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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난 변태가 아니라니까!!”

고인물이, 무림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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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무림에 가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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