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1화 (1/200)

귀신 들린 천재 타자 ⓒ김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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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놈의 메이저리그

“너 박도현이랑 친하지?”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같은 리틀 야구단에서 시작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함께 나왔으니 비교당할 일도 그만큼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중간한 선수도 아니었다.

고교시절 제구 되는 150km/h를 던지는 원탑 좌완으로 손꼽히던 투수 유망주였고.

수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최종적으로는 다저스와 15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으니까.

그런데 얘는, 박도현은.

그냥 인종 자체가 달랐다.

[고교 통산 ‘5할 타자’ 박도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러브콜 쏟아져]

[박도현, LA 다저스와 300만 달러에 계약··· 함께 계약한 구현기 2배 금액으로 역대 고교생 최고액 갱신]

[고졸 루키 박도현,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연일 맹타··· 메이저 승격은 시간 문제?]

첫해 스프링캠프에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더니, 루키리그를 건너뛰고 싱글 A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박도현, 하이싱글 A 건너뛰고 더블 A 털사 드릴러스행··· 싱글 A 감독 ‘가르칠 게 없다’]

[(속보) 박도현 더블 A서 전격 콜업··· ‘출장정지’ 카일 캠프 공백 메울 듯]

마이너리그를 박살 낸 끝에, 입단 첫해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았고.

이듬해 4월, 수비 원툴이라는 평가를 듣던 주전 유격수를 3루로 밀어내며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유격수 40―40, RoY·MVP 동시수상··· 우리는 Park의 시대에 살고 있다]

“Koo, 저기 있잖아······ 너 Park이랑 친하지?”

만남을 주선해 달라, 오프 시즌에 같이 훈련하고 싶다, 너네 에이전시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냐······.

마이너리그 애들이 그러는 거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당장 나도 함께 구르는 처지에서 그 절박함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니,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며 넘기곤 했지.

[메이리그는 지금 ‘Park’ 신드롬··· ‘절친’ 구현기는 아직도 마이너리그 신세]

[그레이트레이크스 룬스 구현기, 확장 로스터에도 콜업 좌절··· 박도현은 포스트시즌 견인 중]

박도현의 LA 다저스가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들어가던 2031년 가을.

하이싱글 A에서 시즌을 마치고 휴식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귀국 전날, 에이전트에게서 기자회견 요청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메이저리거도 아닌데 무슨 기자회견인지 의아해하며 입국장에 마련된 간이 회장에 앉은 순간.

“박도현 선수가 최근 다저스의 가을 야구를 이끌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 미국에 남아 있는 박도현 대신 불려왔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부터,

굳이 정중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저스가 꼭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답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기자가 곧바로 추가 질문을 했다.

“앞으로 이어질 포스트시즌에서 박도현 선수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구체적으로는 어떻게요?”

“공수 양면으로요.”

기자들 사이에서 잠깐 술렁임이 일었다.

“만약에 박도현 선수를 투수로서 상대해야 한다, 그러면 이길 자신이 있으신가요?”

“자신 없다고 대답하는 투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투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박도현 선수를 잡아낼 수 있는 필승 전략, 뭐 이런게 있단 말씀입니까?”

“저는 포수 사인대로 던지는 입장이어서요.”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기자회견은 이어졌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수준도 그렇고 대우도 그렇고, 차이가 심하다고 하는데요. 구현기 선수가 보시기엔 어떤 것 같나요?”

“제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차이는 모르겠는데······ 마이너리그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낼 만합니다.”

“그럼 마이너리그에 계속 머물러도 상관없다, 뭐 이런 건가요?”

“메이저에 올리고 말고는 구단이 결정할 일이라서요. 제가 잘하면 더 있고 싶어도 못 있겠죠.”

“본인이 박도현 선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한 가지만 말씀해주시죠..”

“마운드에서 시속 95마일짜리 공을 던질 줄 압니다. 도현이는 그걸 못 해요.”

“그럼 반대로 본인이 박도현 선수보다 부족한 점은?”

“40홈런에 40도루를 할 수 없습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도 타격을 해야 하는데, 타자가 마운드에 설 일은 없으니 부적절한 비교 아닙니까?”

“둘 다 서로의 영역에 딱히 욕심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장은 개판이 됐고, 사회자가 황급히 중단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공중파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박도현도 못 이기면 투수 하지 말아야”··· 구현기, 친구 향한 추한 도발]

5분 남짓한 기자회견이 불러온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풀 영상이 공개되었는데도 겁 없이 악의적 짜깁기를 한 기사가 쏟아졌고.

사람들의 반응도 확연하게 나뉘었다.

[이름 따라 그레현키 그레현키 해주니까 진짜 지가 메이저 끕인 줄 아나;; 인터뷰 ㅈㄴ 막하네]

[인지도 ㅈ도 없는게 박도현 등에 빨대 처 꼽고 비교 좀 한다고 풀발하는거 역겹네 ㄹㅇ]

[아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얘가 누구임? 귀국 기자회견 할 끕이 됨?]

내 태도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과.

[아니 자기 얘기 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한테 그럼 뭐라고 함? 박도현 아자아자 파이팅 이런거나 말해주라고 부름?]

[기레기들 맥락 개무시하고 짜깁기하는 거 개 역겹던데 난 솔직히 시원했음]

[자기도 올라가기 바쁜데 아무리 친구라지만 자꾸 남이랑 비교하는 게 잘했다는 거임?]

기자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

그렇게 온라인에서 시끌시끌 인생을 낭비하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Do Hyun Park @LADParkOfficial]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저한테 직접 와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러시면 제가 현기 얼굴을 어떻게 봐요 ㅠㅠ

박도현 본인이 등장하자, 비난의 화살은 기자들 쪽으로 확 쏠렸다.

여론을 이용해서 언론을 깔아뭉갠다는 둥 박도현을 저격하는 사람들도 나왔지만, 그거야 에이전시가 알아서 처리해줄 거고.

내가 느낀 게 있다면, 결국은 ‘끕’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거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면 징징대는 거고, 누가 하면 정당한 불만 제기고 그런 거지 뭐.

학생도 아니고, 홀로 외국까지 나와서 사는 처지에 그딴 걸로 찡찡댈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내가 망하면 기뻐할 사람이 늘었다는 생각에 야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속보) LA 다저스, 선발진 공백 채우기 위해 더블 A서 구현기 긴급 콜업]

그렇게 아득바득 올라갔다.

그놈의 메이저리그.

* * *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지 4년 차.

“Koo, 혹시 Park은 함께 안 왔어요?”

나는 사인을 받으러 온 꼬마가 이런 소리를 하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왜 나랑 Park이 함께 왔을 거라고 생각해?”

“맨날 같이 다니잖아요.”

같이 다니는 걸 넘어서, 같이 살기까지 한다.

콜업 초기, 구단에서 구해준 임시 숙소에서 살다가 슬슬 집을 비워줘야 했을 때.

언제 마이너로 내려갈지 모르는 신세였기에 고민하던 내게 박도현이 같이 살자고 손을 내밀었다.

“정답이야, Kid. 네가 좋아하는 Park은 안에서 계산하고 있어.”

“제 이름은 조예요.”

“좋아, 조. 야구 하니?”

“어떻게 아셨어요?”

꼬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악수할 때 손이 온통 굳은살투성이였는데 모를 수가 있나.

“다 아는 방법이 있지. 투수?”

“맞아요.”

“그런데 왜 Park을 더 좋아해? 걔는 유격수고 투수는 난데.”

“유격수가 잘해야 투수 성적이 좋아진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얘는 투수로 대성하긴 글렀다.

야수 놈들이 실책을 하면 엉덩이를 걷어찰 생각을 해야지 샤바샤바할 생각부터 하고 있네.

“자. 니 뿡이다.”

“Nippun―Ida?”

“한국어 인사말이야. 저기 Park 나온다. 가서 해봐.”

아이와 부모가 식당 입구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마이너리그를 3년 만에 돌파하고 올라온 메이저리그.

이곳에서도 어느덧 풀타임 시즌 3년 차.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해 부상 없이 꾸준히 활약하며 올해는 3선발까지 올라갔고.

3점대 ERA에 매년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이닝도 적당히 먹어주는, 여러 구단에서 군침을 흘릴 만한 투수가 되었지만.

40―40을 기록한 풀타임 첫 시즌이 커리어 로우인 유격수한테는 도저히 비빌 수가 없더라.

“애한테 참 좋은 거 알려준다.”

“크크크크.”

차로 돌아온 박도현이 기막히다는 듯 쳐다봤다.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은근슬쩍 화제를 바꿨다.

“먹을 만했냐? 니가 한번 오자고 오자고 그렇게 징징대던 곳인데.”

“아니, 맛대가리 하나도 없더라.”

“내가 그냥 집에서 피자나 시켜 먹자고 했지. 하여튼 말 참 드럽게 안 들어.”

“랜디가 분명 여기가 LA에서 제일 잘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걔는 털사 식당 감자 샐러드도 맛있다고 퍼먹는 놈이잖아. 애초에 피쉬 앤 칩스를 왜 LA에서 찾아?”

지가 오자고 했으면서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이 자식이 현재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고액 연봉자라는 걸 누가 믿을까.

내가 메이저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마친 뒤, 박도현은 서비스타임 3년을 채웠고.

다저스는 이 자식을 10년 총액 3억 달러의 장기계약으로 묶어버렸다.

갓 스물이 된 애송이한테 3억 달러를 안겨줬다가 폼이 떨어지면 어쩌냐고 여론이 난리를 쳤지만.

박도현은 이듬해부터 자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실력으로 보여줬다.

[박도현, 장기계약 직후 거주하던 집 구매··· ‘룸메이트’ 구현기는 어디로?]

6천 불의 월세를 나눠 내던 집을 박도현이 구매한 직후, 다른 사람들의 예상대로 나도 나가려고 했지만.

월세 안 내도 되니까 당분간 그냥 계속 살라는 꼬드김에 넘어가서, 결국 3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그것도 이제는 슬슬 끝이지만.

“야, 좀 전에 데릭한테 전화 왔거든. 전에 말했던 그 집 비었단다.”

“거기? 그럼 언제 나가게?”

“내일 등판일이니까, 모레 오전에 계약하고 오면 될 듯.”

올해야말로 나갈 거라고 통보했을 때, 박도현은 서운해하긴 했지만 올 게 왔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내가 연봉조정 자격을 얻는 것도 있지만.

내가 FA 자격을 취득한 이후에도 여전히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을지 불확실하기도 하니까.

다저스에는 박도현 말고도 장기계약을 맺은 동료들이 몇몇 있다.

연봉 상한선을 생각했을 때, 만약 지금만큼만 활약한다면 다른 팀으로 가게 될 확률이 좀 더 높겠지.

연봉을 양보하면서까지 원클럽맨을 고집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어쩌면 지금껏 받아온 모든 비교 중 가장 명확한 비교일지도 모르겠다.

수억 달러를 들여서라도 잡아야 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너무 명확해서 차라리 기분은 안 나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차가 교차로에 멈췄다.

원래 이 시간대였으면 슬슬 다 와 가야 할 텐데, 더럽게 느리네 진짜.

평소 거의 내가 운전하는 편이다 보니 미국 오자마자 면허부터 딴 놈이 아직도 초보운전 신세다.

“야, 야. 저 차 지금 뭐냐?”

그때, 운전석의 박도현이 내 팔을 두드리며 다급히 외쳤다.

승용차 한 대가 경찰차를 뒤에 단 채로 교차로 왼편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대 잡기 전에 술이라도 마셨는지, 차체가 아주 제멋대로 왔다 갔다 했다.

“뭐야? 저 차 왜 저래?”

박도현은 핸들을 부여잡은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신호는 아직 빨간불. 뒤에도 차가 있는 상황에서.

손쓸 틈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런 ㅆ······!”

신호고 뭐고 엑셀부터 밟으라고 외칠 시간도 없었다.

운전석 쪽 창 너머로, 눈이 풀린 채 침을 질질 흘리는 운전자의 얼굴이 언뜻 눈에 들어온 순간.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온 세상이 뒤집혔다.

* * *

[(속보) LA 다저스 박도현·구현기, 마약 운전자 사고 휘말려 중태··· 다저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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