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6화 (6/200)

6. 라이브 배팅(1)

제리 헤이즈택.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나와는 입단 동기이자 메이저리그 동기. 애리조나 가을리그까지 함께 다녀왔다.

최대 98마일에 달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정통파 투수.

지난 시즌 에이스의 기복이 심해지면서 무주공산이 된 1선발 자리를 노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할 이 자식이 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저놈의 휴지는 대체 왜 가져온 거지.

“이거 받아, Koo.”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큼지막한 휴지 세트를 내 품에 떠민다.

“너희 나라에서는 친구가 사는 곳을 방문할 때 Toilet paper를 선물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어, 그래······ 잘 쓸게.”

함께 따라온 구단 직원에게 휴지를 맡기며 박도현에게 눈치를 줬다.

‘니가 알려줬냐?’

[집 살 때였나? 한국엔 집들이라는 게 있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거 같은데······.]

참 한결같이 섬세하고 사려 깊은 놈이다.

키가 거의 2미터 가까이 되는 인자강 주제에.

“크흠. 크흠.”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을 홀겨보며 헛기침을 하는 훌리안 코치님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대놓고 물어봤다.

“너 로버트 훈련하는 데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냐? 여긴 왜 왔어? 휴지 주러?”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치렁치렁한 머리를 쓸어넘기는 제리를 보니 조금 불안해졌다.

저 자식이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땐, 보통 헛소리가 따라오니까.

아니나 다를까.

“타자 전향 같은 무모한 짓은 그만둬. 너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다저스의 동료 중 내 결정에 반기를 든 건 카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와는 달리 딱히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카일이야 원래 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내 사정을 물어보지도 않고 SNS에 입부터 터니까 ‘뭐야 저 새끼’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제리는 마이너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인연이 있으니, 내 결정이 더 서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직접 와서 설득하려는 성의가 보이기도 하고.

그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뭐라고?”

근데 이게 방금 타격 훈련을 마치고 난 뒤, 에이전시가 선임해준 타격 인스트럭터와 함께 있는 와중에 할 말일까.

훌리안 코치님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지던 순간.

[돌발 미션 발생!]

[당신의 친구는 불확실한 길을 택하려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상대로 타석에 서서, 감히 남의 장래에 훈수나 두려는 건방진 태도를 친절하게 박살내줍시다!

미션: 3타석 상대하여 출루 혹은 안타 기록

보상: 1,000포인트

실패 시: 100포인트 차감, 제리 헤이즈택의 신뢰 하락]

“다짜고짜 찾아오더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갑작스레 떠오른 안내 문구에 정신이 팔린 사이, 훌리안 코치님이 급발진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평생 마운드에만 서온 Koo를 타자로 바꾸는 건 너무 무모한 시도입니다. 로페즈 코치님도······.”

“나를 코치라고 부르지 마라. 네놈을 가르친 기억도 가르칠 예정도 없으니까.”

“······로페즈 씨.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게다가 필요한 신체 능력도 루틴도 천지 차이인데,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할 겁니까?”

“부상 당하지 않을 몸을 만들어주는 건 내 책임이고, 직접 뛰면서 부상을 피해야 하는 건 Koo의 책임이다. 네가 끼어들 자격은 없어.”

“저에겐 친구로서 위험한 길을 가려는 Koo를 말려야 할 책임이 있죠.”

둘이 입씨름을 하거나 말거나.

‘돌발 미션’인지 뭔지 하는 안내 문구를 천천히 정독하며 박도현을 흘겨봤다.

‘뭐냐, 이거. 여기 이 설명 설마 니가 쓰는 거냐? 묘하게 싸가지가 없는 게 꼭 너 같은데.’

[개소리하지 마. 내 소관 아니거든?]

투덜거리면서도 박도현은 돌발 미션이란 게 무엇인지 알려줬다.

[계약자의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거야. 실패 시 페널티는 있지만, 거절에 따른 페널티는 없으니까 스스로 판단하면 돼.]

‘게임 초반 경험치 이벤트 같은 거네.’

[이거 나름 신이 내려주는 건데 꼭 그렇게 싼티나게 얘기해야 돼······?]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말싸움이 점점 격해진다.

“Koo가 어떤 각오로 이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뻔한 말로 일침이나 하니까 자네가 뭐라도 된 것 같나?”

“뭐라고요?”

“자네 타자로서의 Koo를 상대해본 적도 없지? Koo는 마운드에 선 자네를 만나면 박살내버리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역시 베테랑 코치.

무작정 화내는 것처럼 보여도, 은근슬쩍 나와 맞상대를 성립시키려는 쪽으로 대화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제리가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그런 데 홀랑 넘어가는 놈은 아니란 거지.

“상대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다만 제 공을 못 받아치면 타자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뭐?”

“저는 두 달 가까이 공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던지는 공조차 쳐내지 못하면 그걸 타자라고 부를 수 있나요?”

훌리안 코치님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제리가 지금 상태에서 던지는 공을 지금 내 실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겠지.

분위기가 자존심 싸움처럼 흘러가는데, 혹여 내가 지기라도 하면 자신감이 떨어질까 걱정도 될 테고.

그러니까 이럴 땐 문제를 좀 단순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리 말이 맞습니다, 코치님.”

본인은 숨기려는 모양인데, 도통 숨겨지지가 않는 뿌듯한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던 제리의 표정은.

“어떤 투수든 지금 시기엔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 못합니다. 지금 제리랑 상대하더라도 저한테 딱히 도움은 안 될 거예요.”

이어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약하다고? 내 공이?”

“미안해, 제리. 훌리안 코치님이 조금 흥분한 것 같아. 다 아니까 자존심 상할 필요 없어. 나도 지난 시즌까진 투수였는걸.”

“Koo, 너 지금······.”

“코치님, 지금 제리에게 메이저 투수의 공을 기대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저도 마이너 때 오프 시즌에 Park과 라이브 피칭 내기를 했다가 탈탈 털렸죠. 10타석 내기로 8타수 4안타 2홈런이었던가?”

[야, 내가 언제 너랑······.]

‘아 좀 싸물어.’

제리는 남의 말에 휘둘리는 편은 아니지만, 신뢰하는 사람의 말에는 조금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원정 때 밀 머니를 걸고 벌어지는 내기판에서도 사소한 블러핑에 탈탈 털리곤 했지.

그러니까 지금 내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거고.

성큼성큼 다가온 제리가 내 어깨를 틀어쥐며 나를 내려다봤다.

덩치 산만한 놈이 이러니까 제법 위협적이다.

“10타석, 좋지. 안타 한 번이라도 쳐내면 네가 이기는 거다.”

넘어왔다.

행여 물릴세라 재빨리 못부터 박았다.

“오케이! 땡큐! 사딸라!”

“······어? 뭐라고? Four Dollars?”

“아냐, 아냐. 몸 풀어야지? 포수 불러올게.”

“너네 코치님 저기 가서 뭐 하는 거야?”

“저거 그냥 나 라이브 배팅 때 쓰는 거, 촬영 장비 좀 보고 있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이건 훈련이 아니라 승부······.”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우리나라 군대에서 전해진 말이야.”

그렇게 휩쓸리듯 마운드 위로 올라간 제리가 얼빠진 표정으로 몸을 풀기 시작하자.

띠링!

[돌발 미션의 조건과 보상, 페널티가 변경됩니다.]

[미션: 10타석 상대하여 안타 기록

보상: 700포인트

실패 시 페널티: 300포인트 차감, 제리 헤이즈택의 신뢰도 대폭 하락]

조금 전 나왔던 돌발 미션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미션이 쉬워진 만큼 보상은 줄고 페널티는 커졌지만, 바뀐 난이도를 생각하면 확실하게 이득이다.

안내 문구를 확인한 박도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야?! 이거 내용 바뀔 수도 있는 거였어?!]

니가 모르면 어떡하냐.

물론 나도 알고 한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미션이 주어진다길래, 상황이 바뀌면 미션도 바뀌는 거 아닌가 싶어서 시도해본 것뿐이야.’

물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해본 거다.

딱히 미션이 바뀌지 않더라도 상대하는 타석이 많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으니까.

‘너는 그래도 쟤랑 좀 상대해봤잖아. 무슨 꿀팁 이런 거 없어?’

라이브 배팅은 스프링캠프에서도 하지만, 그 전에 기량 점검 차원에서 따로 만나 미리 해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도현은 루키 시절부터 여러 투수들한테 불려 다녔고, 제리도 그중 하나다.

[음, 제리가 지금 상태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나도 모르긴 하는데······.]

팡! 파앙!

천천히 연습구의 피치를 올리는 제리를 쳐다보며 박도현이 중얼거렸다.

[결정구는 커터거든. 쟤 컨디션이 웬만큼 똥망이지 않는 한 그건 알고도 거의 못 칠 거야.]

* * *

“플레이 볼!”

평소 내가 타석에서 대처하는 걸 가까이서 보겠다며 주심을 자처하는 훌리안 코치님이지만.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관찰해볼 게 있다면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레슨 시간이 다 되도록 찾아오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로 온 수비 인스트럭터가 뜬금없이 구심을 맡게 됐다.

몸을 풀 때까지만 해도 어리벙벙해 보이더니, 막상 마운드에 서니 표정이 진지해진다.

이제는 내게 재능이 있고 없고를 평가할 위치가 아니라, 볼넷이라도 내주면 개망신이라는 걸 깨달아서겠지.

게다가 나는 좌타자, 제리는 우투수.

투수의 릴리즈 포인트가 타자의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투수 시절의 나는 초구 변화구로 재미를 많이 봤지만, 제리는 존 안팎의 차이는 있지만 포심을 선호했다.

뭐가 더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자신 있는 구종과 스타일의 차이.

다만 좌타자 몸쪽으로 던지기는 부담스러울 테니 바깥쪽 코스를 의식하고 대응하기로 했다.

후우웅!

예상대로 포심 패스트볼의 궤적으로 들어오는 공.

그러나 방망이를 내밀지는 않았다.

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정타가 안 나오는 코스니까. 굳이 저 코스에 타이밍을 맞출 필요도 없다.

“스트라이크!”

내가 보기엔 약간 긴가민가하지만, 이 정도 코스는 이 주심에게 스트라이크.

그 사실을 머릿속에 새기며,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2구는 서클 체인지업.’

지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제리로서는 빠른 승부를 보고 싶을 테니, 좌타자 상대로 성적이 좋았던 구종을 선택하지 않을까.

수많은 헛스윙을 끌어냈던 위력이 과연 지금 컨디션으로 나올지 궁금해하면서, 와인드업을 하는 제리의 손끝을 주시했는데.

‘이런 미친!’

몸쪽을 파고드는 공에 나오려던 스윙을 간신히 멈췄다.

“스윙 아닙니까?”

제리가 어필했지만, 이 자리엔 체크스윙을 판별할 3루심이 없다.

그나마 가까이 앉아 있던 훌리안 코치님이 오른손 주먹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스윙 사인.

“좀 애매하다 싶으면 그냥 스윙으로 쳐. 10타석이나 상대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아쉬웠다.

내가 만성적으로 염치 결핍증을 앓고 있거든.

아무튼.

‘미친놈이네 이거.’

회복기 직후 첫 피칭에서 좌타자 몸쪽 슬라이더를 던져?

평소 성격이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위협구는 아니고, 제구에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것 같은데.

이 정도는 해야 메이저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다 이거지.

‘아무튼 투 스트라이크.’

결정구가 들어올 타이밍이다. 구종은 커터.

어차피 기회는 많고, 이번에는 헛스윙이 되더라도 무조건 끝까지 배트를 돌리기로 했다.

타석에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불펜과 피칭캠으로 봤던 궤적을 떠올리며 타석에 섰고.

쐐애액!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코스로 오는 저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변할 거라고 믿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아, 알아도 못 친다는 게 이거구나.’

배트 바로 앞에서 예상보다 훨씬 훅 꺾이는 공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 *

‘난리도 아니구만.’

훌리안 로페즈는 부쩍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제자가 타석에서 털리는 걸 지켜보는 게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었다.

타석에서의 모든 장면은 녹화되고 있지만, 영상에는 담기지 않는 것도 있으니.

예를 들면, 무의식중에 나오는 짜증의 표현이라던가.

첫 타석은 삼구삼진.

두 번째 타석은 2구 만에 땅볼 아웃.

그리고 세 번째 타석인 지금, 원 볼 투 스트라이크로 몰려 있다.

질 수도 있다는, 아니 질 확률이 더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무기력하게 밀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틱!

“아웃!”

커터를 의식한 듯한 스윙 궤적이었지만, 정작 들어온 공은 바깥쪽 체인지업.

연습이니만큼, 빗맞은 타구가 위로 튀자마자 포수가 공을 잡기도 전부터 주심이 아웃을 선언했다.

이것으로 쓰리아웃.

‘게스 히팅에 실패라도 했나?’

몇몇 타자들의 경우 확신에 가까운 노림수가 빗나갔을 때 멘탈에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런 놈들은 멍하니 서서 공을 지켜보거나, 맥없는 스윙을 가져가면서 보는 사람들의 복장을 터트린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치는 족족 타이밍이 묘하게 어그러지고 있다.

‘역시 아직은 무리였나?’

투수의 페이스에 제대로 말리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그래도 타석에서 저따위로밖에 못하는 건 혼내야겠지.

“뭐야? 지금 뭐해?”

훈련 프로그램에 뭘 추가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투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구현기가 배트를 챙겨 타석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휴식 시간은 몇 분으로 할까? 5분? 10분?”

구현기의 지적을 듣고 나서야 아주 기본적인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스프링캠프 때처럼 로테이션을 도는 것도 아니고, 10타석을 쉬지 않고 상대하는 라이브 배팅은 없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투수의 호기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쉬긴 뭘 쉬어? 그냥 이대로 가자고.”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저 새끼가 지금······.’

상대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 10타석이라는 기회부터가 엄청난 핸디캡이다.

타석에 3번 정도만 서도 상대 투수의 타이밍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히니까.

그런데 그걸 휴식도 없이 연속으로 10타석을 상대하겠다고?

웬만큼 얕보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소리다.

게다가.

‘저놈, 내가 타이밍을 봐서 멈출 거란 걸 알고 한 거겠지.’

안 그러면 오프 시즌 기간의 투수가 미친 짓거리를 하는 걸 방치하는 미친놈이 되고 말 테니까.

만약 자신이 계속 까먹고 있었더라도 본업이 트레이너인 주심이 지적했겠지.

에이전시에서 고용한 투수처럼 중간에 한 번 끊어줘야 할 거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타자의 멘탈을 흔들려는 수작일 테고.

‘어떡할 거냐? 저놈의 개수작에 넘어갈 거냐?’

훌리안은 자신의 제자를 흘낏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큼성큼 타석으로 돌아가더니 장갑을 고쳐 끼는 내내 투수를 신경질적으로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텄네, 텄어.’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훌리안은 수첩에 미리 적어둔 메모들보다 훨씬 큰 글씨로 ‘멘탈 단련 필요’라고 적었다.

그래서 그는 놓칠 수밖에 없었다.

루틴을 실행하는 척 얼굴을 문지르던 구현기의 입가에 아주 살짝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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