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33화 (33/200)

33. 개막전(3)

다음날 오전.

나는 원정팀 전용 훈련 시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먹고 하자. 뷔페! 뷔페!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어!]

‘여긴 금강산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야.’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잖아!]

‘알아. 너 빡치라고 하는 소리야.’

그렇게 박도현과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기다리던 사람이 훈련장에 도착했다.

“Hey, Koo.”

“좋은 아침입니다, 코치님!”

다저스의 수비 보조 코치.

전날 밤에 미리 부탁했던 대로 개인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패넌트레이스 동안 무리한 훈련은 피해야 하니 고작 30분 정도지만.

“몸은 다 풀었지? 바로 가자.”

“예!”

공간이 좁은 관계로, 대략 30미터 거리에서의 땅볼 타구 처리 훈련.

초반 몇 개는 워밍업을 위한 느린 타구.

딱!

‘이 정도 타구는 문제없어. 제대로 그립이 잡혀.’

[맞아. 느린 땅볼도 은근히 까다로운 건데 너 그건 처리 잘하더라.]

느린 땅볼이 까다로운 건 타구를 마중 나가야 하기 때문인데, 발이 빠른 나로선 오히려 수월한 편.

시프트 때문에 뒤로 훌쩍 물러나 있지 않은 이상 처리할 자신이 있다.

“더 빠르게 간다!”

따악!

이번엔 보통 수준의 속도로 땅볼 타구가 날아왔다.

어제 클레망이 조언했던 대로 오른손에 포심 그립을 쥔 다음, 공을 가둔다는 느낌으로 덮어봤는데.

“윽!”

타구 자체의 힘 때문일까.

엄지 관절 부분의 뼈에 약간의 충격이 느껴졌다.

“왜왜왜! Koo, 괜찮아?! 문제 있어?!”

“괜찮습니다!”

다행히 금방 충격이 가라앉았고, 손을 털어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원래 저렇게 오버하는 양반이었나.

[야, 유진도 나간 마당에 너까지 다치면 진짜 비상이야. 트리플 A 유격수까지 끌어다 써야 할걸?]

‘아, 그러네.’

스프링캠프 때 현재 트리플 A 주전 유격수를 직접 봤는데, 걔는 타격이 좀 심각하더라.

모르긴 몰라도 카일은커녕 채드윅도 못 밀어냈을 거다.

“부상 조심해! 다시 간다!”

따악!

다시 날아오는 타구.

조금 전에는 완성된 그립에 억지로 공을 끼우려고 하니 손가락이 아팠던 거였고.

이번에는 손가락을 포심 그립 형태로 벌리기만 한 상태에서 글러브에 담긴 타구를 덮어보았다.

‘지금!’

손바닥 근육을 움직여 실밥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 상태에서 손가락에 힘을 줘서 공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뭐라고 말 못 하겠지만, 손에 잡히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딸깍, 하고 감겨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코스 섞어서 우선 열 개만 더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그렇게 한 차례 훈련을 진행하고 나서.

코치님도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까 손가락 아프다 그럴 때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손가락을 왜 그렇게 벌려?”

메이저리그 레벨쯤 오면 수비 기술에 관해 선수가 도움을 요청할 일은 없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평소 실책을 유발하던 문제부터, 전날 클레망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니 코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효과가 있다면 상관없긴 한데······ 직접 해보니까 어때?”

잠깐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나쁘지는 않은데, 실전에서 당장 써먹긴 힘들 것 같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포구는 분명 장점이 있다.

그립을 더 정확하게 잡을 수 있고, 그만큼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 또한 존재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손가락에 부상을 입을 것 같아요.”

이 방식대로 포구하면 안정성과 속도는 늘겠지만, 역시 문제는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빠른 타구.

성급히 공에 손을 덮었다가 관절 부위의 튀어나온 뼈를 부딪치면 부상당할 위험이 있다.

그밖에도 생채기나 손톱 부상 등 자잘한 부상에 대한 위험도 있고.

내 설명을 듣고 나서, 코치님은 오늘 훈련은 이만 끝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냥 훈련이라면 모를까, 부상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감독님과 논의를 먼저 해야지.”

아쉽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님은 먼저 돌아가고, 훈련장 정리를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핸들링이 더 숙달되면 이 방식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글러브로 공을 완전히 받아내서 움직임을 죽이면, 오른손으로 빠르게 덮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것도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건 마찬가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미뤄둔 채, 다시 하루를 시작할 준비에 들어갔다.

* * *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연패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건 에이스가 무너지더라도 자기 피칭을 해나갈 수 있는 튼튼한 선발진.

그리고 선수단의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분위기를 잡아줄 베테랑의 존재.

다저스의 2선발 제리와 베테랑 야수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오늘의 선발 투수 제리 헤이즈택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7회 말 2개의 아웃카운트를 남긴 지금 투구 수는 92개.]

[결정구로 꾸준히 사용해온 커터가 오늘도 빛났습니다. 물론 어제에 이어 선발 유격수로 출장한 클레망 파로의 든든한 수비도 한몫했죠.]

[타석에서는 전날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던 R.H.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오늘 경기에선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4번 타자의 역할을 톡톡히 보여줬죠. 이제 다저스의 두 번째 투수 고든 로스의 피칭을 지켜보시죠!]

전날 등판 기회가 없었던 고든이 8회 말까지 마운드를 지켰고.

마무리 투수 새뮤얼 브라운이 3점의 리드를 지켜내면서, 개막 시리즈 2차전은 다저스의 3대 0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내가 활약할 기회는 없었다.

“전날 팀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기록한 Koo를 라인업에서 제외한 이유가 있나요?”

경기 후 승장 인터뷰.

한 기자가 던진 질문을 감독님은 차분하게 받아냈다.

“현재 Koo의 수비 능력을 고려했을 때, 선발 야수 자원으로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출전 기회 자체는 꾸준히 줄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에서 왜 대타로도 기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시즌 초반에는 다양한 선수를 시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클러치 상황에서의 반복적인 대타 기용은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고요.”

본인이 말씀하신 대로, 오늘 경기에서는 백업 포수 제롬과 백업 외야수 메이슨이 기회를 받았다.

둘 다 좋은 결과는 만들지 못했지만, 오브라이언 감독님은 고작 한두 타석 가지고 그 선수의 쓰임새를 판단하는 감독이 아니다.

초반 성적이 조금 주춤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분간은 백업 선수들을 뜨문뜨문 기용하겠지.

[오늘의 할 일(2/3)]

[현재 포인트: 9,970]

훈련으로만 20포인트를 채우면서 이제 남은 포인트는 고작 30.

세 번째 재능을 뽑는 건 다음날로 미뤄졌다.

* * *

개막 3연전의 우열을 가릴 마지막 경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관중석에서는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다.

“헤이! 타자들! 오늘 자이언츠 투수 놈 신선하던데 즙 한 방울 남김없이 쥐어짜 버리라고!”

“랍스터마냥 파란 피 흐르는 놈들한테 초장부터 접히고 들어가는 거 아니지?!”

덕아웃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살벌한 소리에 선수들도 조금은 긴장한 듯했다.

물론 다저스가 이기든 지든 욕먹을 일이 없는 박도현은 태평했지만.

[헐. 저 얘기 들으니까 랍스터 먹고 싶다.]

‘오늘 점심에 나왔잖아.’

[여기 건 거의 바다향 고무야. 못 먹어 그건. 랍스터 맛집은 역시 다저 스타디움이지!]

랍스터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뭔 헛소리야.

지가 다저스 빠돌이니까 괜히 여기 게 맛없게 느껴지는 거지.

그래도 옆에서 쫑알대는 애가 있으니까 긴장은 덜 하게 된다.

“플레이 볼!”

오늘 라인업은 전날과 조금 달라졌다.

우선 선발 유격수로 채드윅이 나섰고, 클레망은 1루수로 돌아갔다.

클레망의 나이와 부상 이력을 고려하면, 유격수 수비는 거의 양분하는 식으로 가지 않을까.

또 앞선 두 경기에서 1루수로 나섰던 랜디가 좌익수로 이동했고, 말릭은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내가 벤치를 지키고 있는 건 똑같지만.

1회 초 마운드에 오른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

예전부터 어지간한 선발 투수 이름은 다 파악하는 편인데, 솔직히 이름값이 그리 센 투수는 아니다.

“루카스! 한 방 날려줘!”

“‘웰컴 투 내셔널리그’ 한번 보여줘야지!”

다저스와 자이언츠 모두 오늘 경기 선발로 새로 영입한 투수를 내세웠다.

둘 다 가성비 FA로 데려온 투수들이지만, 그래도 연봉만 놓고 보면 우리 선발이 조금 위다.

따악―!

원래 타자와 투수의 맞대결에서 유리한 건 투수라고 하지만, 그건 둘의 기량이 비슷할 때의 이야기.

다저스의 강타선은 전날 자이언츠 투수들을 실컷 두들기며 개막전의 악몽을 잊었고.

초반 제구 난조를 보이는 상대 투수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나이스! 나이스! 정신 못 차릴 때 한 10점 내자!”

“여긴 안타가 무한으로 나오나?! 배 터지겠어!!”

딱!

그러나 7번 타자 채드윅이 병살타를 때리며, 다저스의 1회 초 공격은 선취 2점에 만족해야 했다.

“괜찮아, 채드윅. 자신 있게 가자구.”

원정팬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감독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돌아오는 채드윅을 다독였다.

사실 감독님 스타일상, 병살 한두 번 때린다고 라인업에서 제외하진 않을 거다.

어차피 타격 생산성보다는 수비 때문에 쓰는 선수니까.

“아웃!”

다저스의 1회 말 수비.

선발 투수 다니엘 슈미트는 두 명의 주자를 내보냈지만, 두 개의 삼진과 유격수 땅볼로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감독님은 흡족한 표정으로 채드윅에게 박수를 보냈지만.

“아웃!”

두 번째 타석에서 투수 앞 땅볼.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세 번째 타석은 헛스윙 삼구삼진.

“아웃!” “아웃!”

네 번째 타석에서 다시 병살타를 때리고 나자, 그땐 감독님도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겨 치는 타격을 구사하는데도 타구가 전혀 안 뜬다는 건 타이밍이 계속 흐트러진다는 뜻이니까.

“세이프!”

게다가 타석에서의 부진 탓에 멘탈이 흔들렸는지, 실책을 범하며 4점의 점수 차이를 3점으로 좁히기까지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행히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며 추가 실점은 막았지만, 곧바로 덕아웃 밖으로 나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3번부터 시작하는 8회 초 공격. 7번 타자 채드윅의 타석에 대타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채드윅의 바로 앞 순번에서 공격이 끝났다.

‘다음 이닝에 대타로 나가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들어가려던 철나.

“Koo! 이번 이닝부터 유격수 수비를 봐줘야겠다.”

다저스의 세 번째 투수가 올라온 8회 말.

지금 상황에서는 채드윅에게서 좋은 수비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3점이라는 작은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은 내게 유격수 대수비를 지시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삼진과 뜬공으로 아웃카운트 두 개를 무난하게 처리한 가운데, 투수가 다시 와인드업을 했고.

딱!

내 쪽으로 치우친 빠른 타구가 날아왔다.

타구 위치는 잘 파악했지만, 마음이 급했던 걸까.

그립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던진 송구가 격한 움직임을 동반했고.

“아웃!”

1루심의 판정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루수 클레망이 잘 잡아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첫 유격수 출장부터 실책을 기록할 뻔했다.

“아······ 죄송해요, 클레망.”

“아냐, 아냐! 잘했어, Koo!”

아쉬운 수비가 나오긴 했지만, 유격수 포지션으로 들어간 나는 당장 다음 이닝 첫 타자로 나가야 한다.

내가 지난 이닝 수비 때문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는지, 자이언츠의 다섯 번째 투수는 카운트를 잡기 위한 공을 던졌고.

따악!

바깥쪽 존을 통과하는 그 공을 가볍게 밀어쳐서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포인트: 10,010]

세 번째 재능을 뽑을 수 있는 포인트가 다 모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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