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38화 (38/200)

38.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5)

제 1회 LA 다저스배 토론대회.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자리를 빛내는 가운데.

이번 대회의 주제는 바로―

“클레망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저녁도 제대로 못 먹은 채 원정팀 라커룸에서 클레망의 소식을 기다리던 선수들.

자기 전 룸서비스로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러 몇몇 선수들이 모였다.

“팀 스피릿이지. 여기서 한 베이스라도 더 가야 팀이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본능에 새겨진 거야.”

전날 등판해 시즌 2승을 수확한 제리 헤이즈택의 의견.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니가 말하니까 뭔가 짜증나.”

“어제 니가 1회에 홈런만 안 맞았어도 우리가 더 편하게 이겼을 텐데 그건 니 본능에 없었나 보지?”

“지난주에 걸음마 뗀 우리 조카가 할 만한 대답이네.”

말투, 얼굴, 표정. 모든 것이 재수 없었기에 만장일치로 무시당했다.

물론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우아하게 커피잔을 기울였다.

“이해해. 원래 옳은 말이 듣기 불편한 법이야.”

“너랑 같이 있으면 불편하긴 한데.”

“등판 5분 전에 똥이나 마려웠으면 좋겠다.”

“여자한테 차였으면 좋겠다.”

“차일 여자는 있대?”

“너 이 개―”

급발진하는 제리를 무시하며, 지난 시즌 막 루키 딱지를 뗀 외야수 말릭이 의견을 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어? 돈이지 돈. 클레망 정도면 인센티브 계약도 무시 못 할 거 아냐?”

사실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철딱서니가 없는 발언에 선수들이 야유를 보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클레망이 하늘에서 울겠다. 자기가 돈 때문에 부상이나 당하는 등신으로 보이냐고.”

“클레망 죽었어? 진작 좀 알려주지.”

“애초에 클레망 정도 몸값이면 몸 아껴서 연장계약 노리는 게 훨씬 이득이잖아.”

“그리고 클레망 에이전트 호구라서 인센티브도 별거 없을 거야.”

내가 덧붙인 마지막 말에 말릭이 화들짝 놀랐다.

“뭐?! 클레망이 나보고 자기 에이전시로 옮기라고 그랬는데······!”

“너도 호구처럼 보였나 보지.”

“원래 호구가 같은 호구는 기가 막히게 알아보잖아.”

당장 클레망을 찾아가 담판을 짓겠다며 날뛰는 말릭을 진정시키며, 셋업맨 고든 로스가 말했다.

“베테랑으로서의 책임감 때문 아닐까? 가장 경력이 긴 자신이 솔선수범하면서 기강을 잡는 거지.”

고든은 자신에게 메이저리그 선발투수가 될 재능이 없단 걸 일찌감치 깨닫고, 불펜 전향을 자청해 일찍 자리를 잡은 현실주의자.

역시 본인 성격에 맞게 재미대가리 없는 의견이었다.

“재미없어.”

“소름 돋아.”

“애초에 클레망이 벤치 클리어링 때 말고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야수조에서 그나마 기강 잡는 베테랑은 루카스 정도지.”

고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야수 놈들 개념이 없는 게 그래서였구나? 우린 헛짓거리하면 로버트한테 바로 털리는데.”

“뭐라는 거야.”

“투수 망신 다 시키네. 다음부터 쟤 부르지 마.”

“안 불렀는데 온 거야. 너처럼.”

다음으로 손을 든 건 주전 포수 헨리였다.

“전성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시즌 20도루씩 해대는 거포 유격수였는데, 지금 모습에 만족이나 하겠어?”

헨리는 애스트로스와 장기계약을 맺었지만, 단장이 교체되고 팀이 리빌딩에 들어가자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하는 게 참 삐딱하다.

“말을 꼭 그렇게 해야 돼?”

“지금이 어때서? 작년에도 홈런 잘만 치던데.”

“사람으로서의 감정은 미닛메이드 파크 홈플레이트 밑에 묻어두고 왔나 보지?”

“저 새끼는 미국 사회가 총기를 전면 규제했다면 하루에 20번쯤 빈볼 사인을 보냈을걸?”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안녕, 친구들. 마실 것 좀 가져왔어.”

얼마 전 토론토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베테랑 불펜 앤서니 아우젤로.

와인 병과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는 게, 꼭 회식에서 여기저기 잔 들고 옮겨 다니는 아저씨 같았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베테랑들이랑 얘기 좀 하다가 일찍 파하는 분위기길래. 다들 여기 있을 거라길래 잠깐 와봤지.”

사람이 꽉 찬 침대에 엉덩이를 들이밀어 자리를 만들면서, 앤서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채드윅은? 너네랑 비슷한 연배 아닌가?”

“불렀는데 안 오더라고요.”

앤서니가 입맛을 다셨다.

“실책한 거 계속 신경 쓰면 슬럼프 오래갈 텐데······.”

애초에 실력이 없는 선수는 여기까지 올 수도 없다.

뭐 하나 되는 게 없이 꼬라박고만 있으니까 자꾸 조급해지는 거지.

분위기가 처지려는 걸 느꼈는지 앤서니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너네 아까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베테랑들 뒷담화?”

앤서니가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조금 전 토론대회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줬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앤서니는.

“뭘 그런 당연한 거 가지고 고민하고 있어? 그야 야구를 X나 좋아해서지.”

“아······.” “음······.”

뻔하디뻔한 대답에 다들 반응이 애매했다.

베테랑의 말이 아니었다면 다들 모진 비난을 쏟아냈겠지.

[야, 나는 저게 정답이라고 본다.]

한마디도 안 보태고 먹는 데만 열중하던 박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야구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하는 거지. 나는 그랬어. 플레이 하나하나 성공할 때마다 너무 짜릿해서 중독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공이랑 방망이 가지고 하는 이 단순한 게임이, 사람을 진짜 미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도 타자 전향까지 해가면서 죽어라 매달리는 거지.

“Koo. 아까부터 남의 말에 토만 달고. 너는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맞아. 아주 신선하면서 타당한 이유를 준비해왔겠지? 정말 기대된다.”

시시콜콜한 얘기에 열을 올리던 선수들의 시선이 나한테 향한다.

하고 싶은 말? 있지 그럼.

“내 방에서 나가, 이 인간들아.”

어디 남의 방에 쳐들어와서 다친 사람 얘기로 분위기 띄우고 있어.

침대에 퍼질러 누워 있는 놈들을 발로 쭉쭉 밀어냈다.

“간다, 가. 치사해서 진짜.”

“와인 남은 건 내 방에 가서 마실래?”

“그래도 돼요?”

왁자지껄하던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룸서비스를 불러 청소를 부탁한 다음, 의자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감독님이 나를 따로 부르지 않았어.’

감독님 스타일상, 백업 선수의 선발 출장 전날에는 마음의 준비를 위해 미리 알려주는 편이다.

파드리스와의 3차전에서 첫 선발 출장했을 때도 그랬지.

클레망이 출전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아직은 나보다는 채드윅을 믿어보겠다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잠은 잘만 쏟아졌다.

* * *

다음 날 아침.

‘오늘의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하는 첫 버스에 올라탔는데.

“······어, 안녕. Koo.”

“안녕.”

전날 클레망과 교체 투입된 채드윅이 벌써 올라타 있었다.

“항상 이 시간에 가는 거야?”

“어, 뭐. 요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끊겼다.

[원래 말수가 적은 친군가?]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나랑 할 말이 뭐가 있겠어.’

[왜, 할 말이야 많지.]

‘생각을 좀 해봐라. 넌 카일한테 막 말 걸고 그랬냐?’

[어. 그게 왜?]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금 채드윅과 나는 한정된 자리를 두고 서로 밀어내야 하는 상황.

덕아웃에서 어색한 티를 내는 건 곤란하지만, 둘만 있을 땐 자기 할 거 하는 게 상책이다.

“이따 보자.”

“어, 그래.”

구장에 도착해서 곧바로 자기 갈 길로 헤어졌고.

웨이트 룸으로 가서 10km를 뛰고 10포인트를 획득했다.

[오늘의 할 일(1/3)]

[1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포인트: 150]

‘재능 하나 뽑고 나니까 포인트가 너무 휑하다.’

[재능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야구의 신의 깊은 뜻이 아닐까?]

‘야구의 신은 그렇게 속이 깊은데 니 머릿속은 왜 그리 얄팍하냐?’

그렇게 떠들면서 다음 훈련을 소화하러 이동하는데.

[무슨 소리 안 들려?]

‘소리?’

귀를 기울여보니, 작게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작은 북 같은 걸 반복해서 두드리는 소리 같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 났나 싶어 소리를 쫓아가 보니.

쿵! 쿵! 쿵! 쿵!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개자식아!”

혼자 절규하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채드윅을 발견했다.

[뭐야?! 쟤 갑자기 왜 저래?!]

‘감독님이 뭐라고 통보를 했겠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충 짐작은 간다.

저쪽 계단을 올라가면 원정팀 코칭스태프가 사용하는 공간이 나온다.

아마도 저기 불려가서, 앞으로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식으로 통보를 받았겠지.

백업 선수에게도 시즌 초에 제법 기회를 주는 게 감독님 스타일이지만.

자기 플레이가 안 된다고 맨날 죽상이나 짓고 있는 선수를 쓰고 싶어 할 감독이 어디 있을까.

[저대로 둬도 돼?]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야.’

어차피 채드윅도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어른이다.

저러다 아프면 그만할 거고. 내가 뭐라 참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

[돌발 미션 발생!]

[슬럼프에 좌절하는 동료를 발견했습니다. 동료의 고통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선수에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요?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줍시다!

미션: 채드윅 마틴이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격려

보상: 채드윅 마틴이 오늘 경기에서 실책을 저지르지 않을 시 500포인트, 안타 하나를 칠 때마다 100포인트

실패 시 페널티: 실책 1회당 50포인트]

“뭐여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한 돌발 미션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아, Koo······!”

채드윅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껄끄럽기 그지없는 상황.

야구의 신이라는 양반, 오지랖 하나는 엄청나게 넓은가 보네.

* * *

“자, 여기.”

“어······ 고마워, Koo.”

웨이트 룸에서 얼린 찜질팩을 하나 받아다 줬다.

채드윅이 붓기를 식히는 동안 나란히 앉아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야, 너 이 분위기 어쩔 건데? 격려는 고사하고 무슨 말이라도 꺼낼 수 있겠어?]

‘다 방법이 있지.’

경기에 주전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포인트 수급이 정체된 현 상황.

패널티가 좀 빡세긴 해도 어떻게든 성공해야만 한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슬슬 진정됐겠다 싶을 때 말을 걸었다.

“채드윅. 너 혹시 다른 팀원들한테 Park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뭐야, 내가 왜?!]

박도현의 말은 무시하면서 채드윅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 아니, 그······ 아무도 먼저 말 안 꺼내고, 내가 물어보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

괜찮은 판단이다.

솔직히 내 눈에야 박도현이 멀쩡히 뽈뽈거리는 게 보이니까 괜찮은데, 다른 팀원은 그게 또 아니니까.

괜히 궁금하답시고 말을 꺼내면 팀 분위기나 해치겠지.

목소리를 살짝 낮추면서 채드윅에게 다가갔다.

“이건 비밀인데, Park이 수비 잘하는 건 알지? 근데 루키 때도 그러진 않았단 말이야.”

[야, 너 설마······!]

“Park이 로버트 경기에서 컨디션이 되게 안 좋은 날이 있었거든? 그때 한 이닝에 실책을 두 번 했었어.”

“어?! Park이 그랬다고?!”

“그럼. 그때 경기 끝나고 로버트가 뭐라고 했냐면······.”

[야!!! 야!!!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니가 날 팔아?!]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을 무시하면서 채드윅에게 박도현의 흑역사 보따리를 풀었다.

이게 다 함께 명예의 전당에 가기 위한 큰 그림이다, 친구야.

“Park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혼잣말하는 채드윅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작게 말했다.

“채드윅, 이건 그냥 내 생각이고, 니가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니까 미리 사과부터 할게.”

“어? 뭐, 뭔데?”

“너 혹시······ 니가 Park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뭐 이런 생각하는 거 아니지?”

채드윅의 몸이 움찔한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줄이야.

[어? 나? 내가 왜? 내가 아니라 카일······ 아니지, 클레망인가?]

박도현이 죽은 지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앞서 5년간의 활약이 남긴, ‘다저스 유격수 박도현’의 그림자가 너무 컸다.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어도 되는가, 이런 생각에나 빠져 있는데 경기에 어떻게 집중을 하겠어.

“채드윅. Park은 이미 이 세상에 없어.”

[나 여깄어.]

‘닥쳐.’

채드윅과 눈을 마주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는 Park이 아니라 카일 캠프야.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자리를 채우는 게 아니야.”

“그럼······ 우린 뭘 해야 하는데?”

“밀어내는 거지. 내가 이 자리에 더 어울린다, 나를 써야 하지 않겠냐, 감독님한테 시위를 해야 한다고.”

물론 너도 내가 밀어내야 할 대상이지만.

굳이 그걸 입에 꺼내서 분위기를 깨트릴 만큼 멍청하진 않다.

“내가······ 다저스의 유격수······.”

채드윅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아이스팩에 얼굴을 파묻었다.

혼자 있게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

[저걸로 될까?]

‘몰라. 나머진 알아서 하겠지. 실책 4번 해도 150포인트 이상 깎이진 않을 거 아냐.’

[포인트 마이너스도 되는데.]

‘진짜?!’

마이너스 포인트를 정말로 기록하는 건가, 긴장에 휩싸인 채 맞이한 경기 시간.

클레망 대신 선발 유격수로 출장한 채드윅은, 덕아웃에 앉아 있던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 클레망······.”

LA로 돌아가는 대신 선수단과 함께하겠다고 자청한 클레망에게 무언가 조언을 청해 듣던 채드윅은.

따아아악―!

2회 초 1사 주자 1, 3루 상황, 본인의 시즌 첫 안타를 큼지막한 2루타로 장식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듯 포효하는 채드윅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경쟁자 기량 올려줘서 어쩌느니 하지 않았냐?]

‘기분 너무 좋은데? 와······ 공짜 100포인트다······.’

깊은 뜻을 가진 야구의 신님.

그 뜻을 저한테도 좀 베풀어주시지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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