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44화 (44/200)

44. 돌아오다(4)

[Live] LA Dodgers 0 : 0 Washington Nationals

└ 경기 시작한다! 이 시간쯤 오면 국민의례가 끝나 있더라고.

└ 오늘 라인업 벌써 나왔어? 어, 지금 나오네.

└ 다저스는······ 뭐 평소대로네. 오늘은 Koo가 나올 차례구나.

└ 잠깐, 평소대로라고? 오늘 다저스 주전 유격수가 복귀하는 날 아니었어?

└ 너 메이저리그 본 지 얼마 안 됐지?

└ 일단 이것부터 보고 와라. [(링크) 본헤드 플레이 이후 동료에게 화풀이하는 야구 선수.AVI]

└ 시간 남으면 이것도 읽고 와라. [(링크) 카일 캠프 망언 모음집.List]

└ 오케이, 다 보고 왔어. 그래서 저 유격수가 왜 아직도 방출 안 되고 다저스에 있는 건데?

└ 수비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 트레이드로 팔아먹으면 제법 쏠쏠할걸?

└ 그렇게 수비를 잘해? 그럼 차라리 지금 번갈아 나오는 유격수 중 한 명을 팔고 카일을 백업으로 쓰면 되잖아.

└ 미쳤냐? 연봉을 주전급으로 받아 처먹고 있는데.

└ Koo가 수비만 제대로 터져 주면 진짜 한동안은 유격수 걱정은 할 필요 없을 텐데······.

└ Park의 빈자리를 Koo가 채워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늘에서 Park도 기뻐하겠지?

└ 아······.

└ Park은 또 누군데? 다저스에서 누구 죽었어?

└ 너는 될 수 있으면 말하지 마라. 나 고혈압 있거든? 요새 다저스 잘나가서 좀 살만한데 다시 병원 보내지 말고.

* * *

1회 초 다저스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났다.

“내가······ 내가 삼구삼진이라니!”

징징거리던 말릭은 루카스에게 뒷목을 붙잡혀 그라운드로 질질 끌려갔다.

덕아웃에서 계속 관찰해봤는데, 오늘 상대 선발 컨디션이 꽤 좋아 보이긴 했다.

포심과 커터를 섞어 던지는데, 다저스의 노련한 타자들도 쉽게 대처를 못 하더라고.

물론 타격은 그때 가서 생각해봐도 되는 일.

오늘도 유격수로서 내야 수비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신시내티 레즈가 나한테만 타구를 보내는 작전이 보기 좋게 실패하면서, 비슷한 작전을 쓰는 팀은 사라졌다.

사실 그 작전이 조금 허술한 면은 있었지.

이닝마다 타구의 패턴을 다르게 가져가면서 상대 야수들을 혼란시켰다면 차라리 더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딱―!

물론 그렇다고 우타자가 당겨치기를 굳이 주저하지는 않았다.

내야수 키를 넘기지 못하더라도, 타구 방향이 내 쪽을 향한다면 실책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겠지.

하지만 계산은 어디까지나 계산일 뿐이다.

쐐애애액!

팡!

“아웃!”

아예 손가락을 벌린 상태에서 포구에 들어가는 새로운 핸들링 방식.

여기에 ‘손은 눈보다 빠르다’의 정확도 보정.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어느 정도 까다로운 땅볼 타구라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나이스 플레이, Koo! 원 아웃!”

“원 아웃!”

내야수들의 콜에 화답하면서 시프트 사인에 따라 이동했다.

당겨치기 비율이 높은 우타자.

그러면서도 뜬공 비율이 훨씬 높은 타자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긴장을 조금 풀어줘야겠어.’

개막 원정 9연전에서 체력적 문제에 부딪혔던 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수비 상황에서 몸을 긴장시켰기 때문.

꾸준한 기회가 약속된 이상, 이제는 데이터상 내 쪽으로 타구가 올 확률이 적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따아악!

“아웃!”

예상이 들어맞았다.

2―1의 카운트에서 좌익수 말릭이 타구를 잡아내며 투 아웃.

“투 아웃! 투 아웃!”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시 이동했다.

다음 타자는 중심 타선답게 균형 잡힌 타구를 양산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외야 중앙으로 많이 보내는 편.

2루 베이스 쪽에 약간 치우친 곳에 자리를 잡고, 투수의 와인드업을 지켜봤다.

‘릴랙스, 릴랙스.’

어차피 어디로든 타구를 날릴 수 있는 타자.

긴장을 풀지는 않되, 첫 타자를 맞을 때처럼 온 신경을 기울이진 않도록.

그렇게 맞이한 2―0의 카운트.

노리던 공이 왔는지 타자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갔다.

따악!

약간 먹히긴 했지만 그래도 힘이 실린 땅볼 타구.

기본 수비 위치였다면 내가 쉽게 잡아낼 수 있었겠지만, 어차피 시프트는 만능이 아니다.

예측이 빗나갔으면 빗나간 대로 어떻게든 막아내는 게 선수의 몫.

팍! 팍! 팍! 팍!

죽어라 뛰어 간신히 막 튀어 오르는 타구 근처에 도착했고.

팔을 쭉 뻗어 글러브 안에 간신히 담아냈다.

발이 빠른 타자라면 아슬아슬했겠지만, 저 타자의 주력은 평균에 조금 못 미친다.

“아웃!”

1루를 지나쳐 속도를 줄이던 타자가 내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헬멧을 벗어 슬쩍 들어 올린다.

좋은 수비에 대한 존중의 표현.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이저리그에서 호수비를 기록했습니다.]

[3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포인트: 2320]

호수비도, 포인트도 다 좋지만.

가장 큰 수확은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만 집중해도, 방금 같은 타구는 잡아낼 수 있었어.’

이런 식으로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주전으로 뛰면서도 충분히 체력 안배를 해낼 수 있겠지.

덕아웃으로 돌아가 하이파이브를 나누다, 덕아웃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카일 앞에 도착했다.

짜증, 두려움, 불안. 여러 감정이 섞인 듯한 복잡한 표정. 굳이 요약하자면 똥 씹은 표정 정도가 아닐까.

표정 관리 좀 하지. 슬슬 덕아웃에 카메라 비출 때 됐는데.

“카일! 잘 돌아왔어!”

활짝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권하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받아준다.

감독님 태도 보니까, 다저스에 그리 오래 있을 것 같지도 않던데.

앉아서 편하게 쉬다 갔으면 좋겠네.

* * *

3회 초 선두 타자로 나간 첫 타석은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커터를 너무 의식했던 걸까. 게스 히팅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멀찍이 벗어나는 체인지업을 때려버렸지.

결국 커터는 보지도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대신 수비에서는 여전히 실책 없이 무난한 모습을 보여줬다.

“숏(유격수)!”

조지의 콜과 사인을 확인하고 재빨리 2루 커버에 들어갔다.

베이스를 밟아 주자를 아웃시키고, 곧바로 1루에 송구하면서 타자 주자까지 아웃.

더블 플레이로 이닝 종료.

“Koo, 잘했다.”

공수 교대 시간에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조지의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

“반응 속도도 빨랐고, 주자 슬라이딩 피하면서 정확하게 송구하는 것도 좋았어.”

“감사합니다.”

직접 경기를 뛰어보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서로 역할이 겹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나, 받아버릴 기세로 달려오는 주자한테 겁먹지 않고 송구하는 법 등등.

지금까지는 그런 것들을 순조롭게 익혀가는 중이다.

경기 흐름은 순조롭지 못하지만.

[이번 이닝까지 안타가 안 나오면 슬슬 분위기 넘어갈 것 같은데······.]

박도현은 자기가 하는 말이 나한테밖에 안 들리는 걸 아니까, 이런 말도 거침없이 한다.

‘노히트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노히트를 당할 수야 없지.’

5회 초 공격을 앞둔 지금, 스코어는 0대 0.

그러나 상대 선발은 볼넷만 하나 내줬을 뿐, 다저스 타자들에게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팀 선발 마리오도 당장은 안타 두 개만을 허용하며 호투하고 있지만, 좋은 흐름은 아니지.

내가 투수인데, 죽어라 던져서 무실점으로 막고 있는데 타자 놈들이 상대 타자한테 노히트로 막힌다?

초조해지기 이전에 속이 터져서 페이스가 흔들릴 거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안타는 아니지만, 선두 타자 루카스가 오늘 다저스의 두 번째 출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곧장 1루에서 성큼성큼 거리를 벌렸다.

“세이프!” “세이프!”

투수의 연속 견제구.

나이가 들어 전성기만큼은 못하다고 해도, 한때 별명이 ‘플로리다 특급열차’였을 정도로 도루를 자신 있어 하는 선수.

도루에는 물론 빠른 다리도 중요하지만, 투수가 투구에 들어가는 타이밍을 읽어내는 게 훨씬 중요했고―

“세이프!”

클레망의 헛스윙에 힘입어 2루를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개자식들아!!! 노히······ 아니 그거 중에 도루를 해?!”

“어디 깨지기만 해봐!! 니들 대가리로 깨버릴 줄 알아!!!”

워싱턴 팬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번트 대는 것도 아니고 도루 가지고 너무 뭐라 그러시네.

“스트라이크 아웃!”

클레망은 그대로 삼진 아웃.

대기 타석을 벗어나 타석으로 향했다.

“Koo!!! Koo!!! Koo!!! Koo!!!”

LA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크기는 작지만, 그래도 내 귀에 분명하게 들려오는 Koo 콜.

“커터가 밋밋해지긴 했어. 아주 조금이지만.”

클레망이 팁을 남겨주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전 타석에서 커터를 봤어야 비교를 하든 말든 할 텐데.

말이 씨가 된 걸까, 내셔널스 배터리가 초구로 커터를 선물했다.

팡!

“볼!”

‘이게 밋밋해진 거라고?’

무브먼트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제리가 던지는 커터 수준.

A등급 재능 ‘몸으로 말해요’로 강화된 선구안으로도 배트를 내밀 뻔했다.

로테이션상 이 투수가 4선발로 알고 있는데.

이런 결정구가 있으면서 도대체 왜 상위 선발로 올라가질 못하는 걸까.

“볼!”

“볼!”

왜 못 올라가는지 바로 알아냈다.

우리 팀 5선발 아드리안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하다.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거나 해서 긴장이 되면 제구가 흔들리는 타입.

“스트라이크!”

그러면서도 이런 날카로운 보더라인 투구를 해내는 걸 보면, 참 종잡을 수 없는 투수다.

아무튼 3―1, 여전히 타자의 카운트.

투수가 5구째를 던졌다.

쐐애애액!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본인의 결정구뿐.

커터에 무게를 두고 스윙에 들어갔고, 내 예상이 맞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움직임이 덜하지만 실투라기엔 꽤나 괜찮은 공.

움직임이 덜할 뿐 몸쪽에 꽉 차게 들어와서 범타를 만들기 좋았지만.

구종과 타이밍, 코스를 읽어낸데다 ‘몸으로 말해요’의 보정까지 받고 있으니―

따아아아악―!

1루수 옆을 빠져나가 라인을 타고 흐르는 장타 코스.

배트를 집어던지며 스프린트에 들어갔다.

“루카스! 홈! 호옴!”

“나이스!!! 선취점이다!!!”

2루에 절반쯤 왔을 때, 이미 루카스는 홈을 밟았고.

슬쩍 타구를 쳐다보니 파울 지역까지 굴러간 공을 우익수가 쫓아가고 있었다.

판단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3루까지 간다.’

촤아아악!

3루수가 뒤늦게 태그를 시도하긴 했지만, 3루심의 판정은 단호했다.

“세이프!”

노히트노런을 무산시키는 1타점 적시 3루타.

어째 이번 시즌에만 기록을 두 번이나 깨트렸네.

“그 타구로 3루까지 갈 생각을 했어?!”

“이 레코드 브레이커 같으니라고!!!”

덕아웃을 향해 씩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혔는지, 홈팬들의 야유가 거세진다.

흥분은 잠시, 다시 숨을 고르면서 주자 역할에 몰입했다.

그때 홈스틸 보상이 꽤나 쏠쏠하던데, 투수 멘탈 나간 것 같으면 리드폭이나 벌려 볼까.

따아아아아악―!

멘탈이 좀 세게 나갔나 보네.

홈은 그냥 편하게 밟기로 했다.

* * *

[LAD vs WAS 1차전 MVP, Hyun―Ki Koo]

MVP 인터뷰에서 이 선수를 만나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다. 오늘 4타수 1안타에 그쳤음에도 시즌 타율 0.371로 절정의 타격감을 뽐내는 Hyun―Ki Koo.

노히트노런을 당하며 끌려가던 경기에서 결승 3루타를 때려내면서 경기의 판도를 바꿨다.

그가 지난 시즌까지 투수였다는 사실은 사실 굉장히 놀랍지만, 그 사실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Koo의 타자 전향이 실패할 거라고 예측하면서 사짜 딱지를 발행받았고, 앞으로 그걸 얼굴에 붙이고 다닐 예정이다.

심지어 그는 주로 유격수로 출장하며 이런 성적을 내고 있다. Koo가 빅리그 내야수로 자리잡기 위해 최소 1년의 담금질이 필요하다던 모 야구 프로그램의 수비 전문 패널이 떠오른다.

조만간 그의 얼굴에도 큼지막한 딱지가 붙을 예정이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꾸준히 시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기존 주전 유격수 카일 캠프의 복귀에도 Koo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본다.

오늘 캠프는 경기 후반 덕아웃 밖에서 배트를 돌리며 출전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지만, 수비로 먹고사는 그에게 대타 기회를 줄 감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오늘 Koo의 MVP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Q. 주전 유격수 카일 캠프가 오늘 부상에서 복귀했다. 앞으로 주전 경쟁을 하게 될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A. 우리는 포지션 경쟁자이기 이전에 팀 동료다. 각자 주어진 역할과 기회를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팀의 성적이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Q. 그런데 오늘 카일과 동료들이 덕아웃에서 약간 서먹해 보이는 모습이 송출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카일이 돌아오면서 팀을 떠난 누군가가 있기에 분위기가 밝아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가 새로운 팀에서 많은 기회를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Q. 주전 경쟁 과정에서 다른 포지션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자신은 있나?

A. 내야 포지션이라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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