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리글리 필드의 괴물(1)
[(Photo) LA 다저스 Hyun―Ki Koo, 메이저리그 사상 16번째 ‘무보살 삼중살’ 달성의 순간]
└ 나 야구 잘 모르는데 와이프 따라 야구장 갔다가 이거 봤거든? 그땐 사람들 뭐 이리 오버하나 했는데 이거 대단한 거였네. 퍼펙트게임보다 훨씬 적잖아?
└ X발 이걸 직관으로 봤는데 감상이 고작 그거야? 마지막으로 나온 게 2009년인데? 나는 X발 시즌권이 있는데도 잔디 깎는다고 집에서 TV로 봤는데?
└ 저런 새끼도 결혼을 하는데······.
└ 근데 나는 솔직히 Park이 이걸 달성 못 했다는 게 의외였어. 얘가 유격수 관련 기록은 죄다 갈아치우다 보니 당연히 이것도 하고 간 줄 알았다고 해야 하나?
└ Park은 진짜 짧고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고 간 선수였지. 삼중살의 첫 아웃카운트가 되는 직선타를 세 번이나 잡아내긴 했는데, 전부 다른 야수들과 합작했었어. 물론 그것도 대단한 거지만!
└ 너네 지금 이 새끼를 빨아주는 거야? 진심으로? 남의 대가리를 찍어서 뇌진탕을 만들고 정강이뼈를 쪼개버리는, 로버트 켈리에 버금가는 싸이코패스를?
└ 저런, 화가 많이 났구나? 물론 보 파커가 Koo의 정강이를 향해 대놓고 슬라이딩을 한 것과, 카일 캠프가 Koo의 얼굴을 걷어차려고 했던 것에도 화를 냈겠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너를 더러운 파퀴벌레 놈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어.
└ 화가 안 나게 생겼어? 파드리스는 주전 선수 중 3명이 장기 부상을 당했는데? 그중 한 명은 우리 팜에서 손꼽히는 좌완 유망주랑 지금 더블 A에서 날아다니는 우완 유망주까지 보내면서 받아온 선수인데?
└ 너네 그 선수들 다 있을 때부터 12연패 중이었잖아. 어디서 약을 팔아? 그리고 에드윈이 너네 팀에 계속 있었어도 그렇게 잘했을까? 느그 더블 A 감독 ‘포크볼은 일본 투수들이 남긴 환상’이라는 개소리나 지껄이는 사짜 아닌가?
└ 나도 Koo가 대단하다는 건 동의하긴 하는데, 이번 벤치 클리어링이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다는 것에도 동의해. 메이저리그의 어린 팬들이 이 싸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어?
└ 남의 얼굴에 무기를 들이미는 놈한테는 철퇴를 내리찍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
무보살 삼중살.
행운과 슈퍼 플레이가 더해져야만 나올 수 있는 꿈의 플레이가 나왔지만, 야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원인은 해당 경기에서 발발한, 집단 난투극에 가까운 벤치 클리어링.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파드리스의 몇몇 선수들은 시즌 아웃은 물론 앞으로의 선수 생명까지 불확실한 상태에 놓였으니까.
그러나 다저스와 파드리스와의 사무국이 새로운 입장을 내놓으면서 여론은 한쪽으로 쏠렸다.
[MLB 사무국, “LAD―SD 벤치 클리어링 발생 직전 SD 보 파커의 인종차별 발언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사실을 참작해 징계 기간을 조절할 것.”]
└ Koo더러 싸이코패스라던 파퀴벌레 놈들 다 죽었냐? 그랬어야 할 텐데. 내 손에 걸리면 편하게는 못 죽을 거니까!
└ 이 기자님은 혹시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 게 아닐까? 이미 새로운 결과가 발표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이런 기사를 쓰지?
└ 언제 나왔대? 또 나만 몰랐고 사람들 다 알지?
└ Koo는 5경기에서 3경기로, R.H.는 3경기에서 2경기로 각각 줄었어. 보 파커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5경기가 추가되긴 했는데, 뭐······ 알지?
└ 엌ㅋㅋㅋ 걔 이미 턱뼈 골절로 60일 IL이잖앜ㅋㅋㅋ
└ 파드리스 구단주가 언플하는 거 봤냐? 동업자 정신이 없는 잔혹한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좀먹을 것이다, 이 X랄을 하던데 역풍 제대로 맞을 듯 ㅋㅋㅋ
└ 카일 그 새끼도 다저스가 트레이드해놓고 시즌 아웃 만들었다면서 날뛰던데, 남의 덕아웃에서 성질 못 이겨서 배트 들고 다 때려 부수는 거 케이블 카메라에 다 잡혔거든?
└ 혼자 잘 걷던데? 기껏해야 실금 정도 갔겠네. 그보다 갑자기 어깨 붙잡고 주저앉기까지 하던데, 시즌 아웃은 이거 때문 아냐?
└ (사진) Koo가 싸이코패스라고? 나 아까 병원에서 Koo랑 마주쳤는데, 내가 흥분해서 막 달려드는 것도 다 받아주고 모자에 사인까지 해줬는데? 이런 싸이코 봤어?
└ 와, 씨. 부럽다. 나도 어디 한 군데 아팠어야 하는데!
└ 병원은 왜? 무슨 일 있어?
└ 고혈압이 좀 있어. 무보살 삼중살도 직관하고 Koo를 만나 사인까지 받으면서 악화된 것 같긴 한데, 뭐 나쁘지 않아. 오늘 다저스가 파드리스를 스윕하면서 16연패를 선사할 텐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 * *
당시 2루심의 증언으로 상대의 인종차별 발언이 밝혀지면서, 출장정지 징계는 3경기로 줄었다.
파드리스와의 남은 2경기부터 원정 6연전의 첫 경기까지 결장하는 일정.
출장정지 첫날은 팬 사인회 행사도 나가고, 주차장 근처에서 선수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팬들에게 일일이 팬서비스를 해주면서 보냈다.
“Koo! 주먹 쓰는 법은 로버트한테 배운 건가요?!”
“2대 헤드기어 컬렉터의 칭호를 물려받을 선수가 누구일지 늘 궁금했는데, 그게 Koo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진짜 멋있었어요! 특히 점핑 스매시로 ‘Ttukbaegi’를 깨버리는 게!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웠냐고요? 엄마한테요!”
무보살 삼중살이라는 대기록을 언급하는 팬은 거의 없고, 주먹 솜씨만 칭찬받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3차전을 10대 2로 가져오면서, 두 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으로 승리했기에 더더욱 그랬고.
그리고 4차전이 열리는 날이자, 경기 종료 후 다시 원정길에 오르는 날.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LA의 한 병원을 찾았다.
“뭐야. 이놈이 여기 왜 왔어?”
병상에 누워 있던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주루 도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던 파드리스의 베테랑, 피터 콜린스.
“어제 말했잖아.”
“그래서 뭐. 미리 들었으면 왜 왔는지 물어보는 것도 안 되냐?”
전날 밤, 벤에게서 연락이 왔다.
샌디에이고의 지정 병원으로 이관되기 전 함께 병문안을 가지 않겠냐고.
갑자기 왜 그런 제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정당한 플레의 결과이니,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이 아예 안 쓰일 순 없지. 나이도 있는 양반인데 선수 생명과도 직결되는 부상 아닌가.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따라가겠노라고 답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저스도 개판 다 됐네. 출장정지 당했다고 낮 경기에 한가롭게 싸돌아다니는 거 보니.”
다친 본인도 딱히 반가운 방문은 아니었는지, 사적으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곧장 이죽거리기부터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벤이야 이미 한 번 코뼈가 주저앉은 적이 있으니 IL에 안 올렸음에도 휴식을 보장받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한텐 든든한 방패가 있다.
“구단한테 허락받았는데요.”
혹시 피터를 찾아가 봐도 되겠냐고 감독님께 상의했더니,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면 그러라면서 동의를 얻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어린 편에 속하는 내가 이번 일로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해주신 거겠지.
피터는 내 쪽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사과 안 할 거라면서.”
“사과하러 온 거 아닌데요.”
병원 로비의 스타벅스에서 사 온 라떼를 꺼내 내밀었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던 다저스 열혈팬을 만나 팬서비스를 해주느라 좀 식긴 했는데, 그 정도는 양해하겠지.
“커피 주러 온 거거든요.”
정당한 플레이였으니 사과는 없을 거라고 이미 기자들한테 못을 박았다.
그걸 못 받아들이고 나한테 원망을 쏟아낸다면 이 정도 선수였구나, 하고 마음 편히 돌아갔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고.
피터는 커피를 받아 가더니 종이컵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이거 우유 들어간 거야? 일반 라떼?”
“네. 좋아한다면서요.”
“나 유당불내증 있는데? 그래서 맨날 아몬드 우유로 바꿨잖아.”
나와 피터의 시선이 동시에 벤을 향했다.
분명 평소랑 똑같은 무표정인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걸 보니 슬슬 감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몰랐어.”
“아니, 내가 너랑 알고 지낸 게 몇 년짼데 아직도 그걸······.”
“새로 사 올게.”
“아니 미친놈아. 야! 야!”
1인실에 둘만 남겨둔 채 벤은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가해자······는 아니지만. 부상의 원인이 된 선수랑 단둘이 남겨놓는다고?
“저런 정신머리로 대체 결혼은 어떻게 한 거야?”
“그러게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뭔가 부상은 어느 정도인지, 통증은 괜찮은지, 그런 게 궁금하긴 했는데. 이렇게 둘만 남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
박도현은 지 일 아니라고 과일 바구니에서 파인애플 꺼내다가 처먹고 있다.
“야.”
그때, 피터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이제 우리 둘만 있는데, 진짜 사과 안 할 거야?”
무슨 심정으로 물어보는 건지 가늠하기 힘든 말투였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사과하라고 엉엉 울면 어떡하나 걱정하긴 했는데. 그에 못지않게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고 있고. 빨리 나으라고 응원도 할 거지만, 그래도 사과는 안 해요.”
규정 위반이나 노골적인 비매너 플레이를 했다면 당연히 사과를 했을 거다.
이 사건을 머릿속에 새기면서 두고두고 반성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졌겠지.
하지만 내 정당한 플레이로 누군가가 부상당했다고 해서 그 사실에 일일이 괴로워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다.
그러니 벤치 클리어링으로 남의 턱을 아작내고 정강이를 찍어버린 것도 미안해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나를 만만하게 보고, 야구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억누르려는 시도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래, 니 똥 굵다. 너 다 해먹어.”
코웃음을 치며 침대를 일으키는 피터의 태도는, 오히려 조금 안도한 것 같았다.
그 질문 이후로는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카일이 파드리스 이적 이후 저지른 만행도 듣고. 벤이 다저스 이적 이후 몰래 계산했던 썰도 풀면서.
“아, 그거. 아마 그 신인 친구가 진짜 계산하게 될까 봐 걱정해서 그랬을 거야.”
기존의 베테랑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이후 생긴 파드리스의 악습에는 나나 박도현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러니까 12연패를 당하지. 벤클로 대거 아웃된 게 오히려 다행일 지경이다.
“너네 다음 일정은 어디냐?”
“이따 컵스로 출발해서, 로키스. 그리고 다시 홈으로 와서 3경기 하고 다시 떠나요.”
“컵스? 어우, 소름 끼쳐.”
내 대답을 듣더니 피터가 갑자기 팔뚝을 문지른다.
“거기 에이스랑 경기 잡혀 있으면 고생 좀 할 거다. 내가 보기에 우리 타자들 타격감 무너진 게 그 경기 이후부터 같아.”
제리가 5승 무패 ERA 1.59를 찍고도 이달의 투수에서 낙마하게 만든 컵스의 에이스, A.D. 존슨.
따로 사유가 없다면 로테이션상으로는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때 우리 노히터 당할 뻔했잖아. 카일 그 자식이 친 내야 안타 아니었으면······ 어우, 끔찍해.”
어지간히도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
물론 나는 대타 홈런으로 퍼펙트도 깨트려봤지만, 그걸 말해봤자 속만 긁을 테니 입 다물고 있었다.
“나 왔어.”
병실에 커피 캐리어를 든 곰 한 마리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
침대 상체를 일으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얘기?”
“뭐 별거 아니고. 니 정신머리 빠졌다는 얘기하고 있었지.”
“너무해······.”
* * *
나와 벤이 병원에서 나와 다시 클럽하우스로 복귀하는 사이, 다저스는 시리즈 첫 경기부터 그랬듯 파드리스를 압도하고 있었고.
기어이 파드리스의 연패를 16경기로 늘리면서 시카고행 전용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컵스의 에이스는.
“저거 사람이 칠 수 있는 거 맞지?”
[아마도?]
피터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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