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59화 (59/200)

59. 잘··· 지내지?(1) (무료 마지막입니다.)

[개막 이후 한 달, 오프시즌 트레이드의 무게추 점검]

지난 오프시즌, 메이저리그 각 팀은 전력 보강이나 로스터 정리를 위해 영입 및 방출, 트레이드 등의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한 선수들의 근황을 알아보는 동시에, 현시점에서 어느 팀이 이득을 봤는지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

○ LA 다저스 ↔ 토론토 블루제이스

다저스의 블루제이스 간의 트레이드는 이번 시즌 흔치 않은 윈윈 트레이드로 꼽힙니다.

각 팀의 메인 칩으로 건너간 선수들이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죠.

다저스에서 뛰던 유진 리빙스턴은 블루제이스 내야진의 구멍을 막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주전 2루수로서 타율 0.287의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는 중입니다. 다저스의 내야 풀이 워낙 튼튼하고, 또 올 시즌 종료 후 FA가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 풀리지 않았을 선수죠.

반대급부로 블루제이스에서 다저스로 향한 우완 불펜 앤서니 아우젤로는 ERA만 놓고 보면 4.72로 조금 아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선수의 진가는 이닝 소화력에서 나오죠. 4월 한 달간 17과 2/3이닝을 소화했는데,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게 아닌 순수 중간계투 자원 중에서는 가장 많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전 야수를 얻은 블루제이스가 이득을 봤다고 평가하고 싶지만, 최종 평가는 이 둘과 함께 팀을 옮긴 유망주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느냐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겠습니다.

* * *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인터리그 매치업.

평소처럼 다저 스타디움으로 출근해 식당으로 향했더니, 한 테이블에 여러 선수들이 뭉쳐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무슨 얘길 그렇게 해요?”

“아, Koo.”

웬일로 일찍 나온 R.H.가 앤서니를 가리키며 실실 웃는다.

“앤서니가 어제 인터넷에서 무슨 글을 읽었는데, 자기랑 유진이 트레이드된 게 다저스한테 손해라나 뭐라나.”

개막 직전 앤서니와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유틸리티 플레이어 유진 리빙스턴.

2루수 포지션에 정착하면서 자신감도 붙고. 무엇보다 FA로이드를 제대로 빨았는지 시즌 초 상당히 출발이 좋더라.

주전 야수와 불펜 투수, 포지션을 놓고 보면 이쪽이 무게감이 떨어지긴 하니까 그 글이 아예 틀린 건 아니지만.

“무슨 그런 야알못이 다 있대요. 앤서니, 그 친구 만나면 삼진 좀 먹여줘야겠어요.”

“그치?”

이럴 땐 무조건 동료 편을 드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선수의 가치는 보직이나 성적만으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허구한 날 멀티 이닝을 먹어주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젊은 투수들의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잘 다독여주고 있으니까.

“서운한 감정은 토론토에 전부 내려놓고 왔지만, 그래도 다저스가 나 때문에 손해 봤다는데 가만있을 순 없지.”

진짜 안 좋게 헤어졌다면 저런 소리도 안 했을 거다.

실제로 잠시 후, 앤서니는 원정팀 선수들을 찾아가 박장대소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 쪽으로도 한 명의 블루제이스 선수가 방문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이적 후 처음으로 다저 스타디움에 돌아온 유진이었다.

“유진, 요새 거기서 날아다닌다며? 얼굴이 확 폈네.”

“배에 인격이 푸짐하게 붙은 거 보니까 토론토는 밥이 좀 잘 나오나 봐?”

여전히 사람 자체가 담백하긴 한데. 얼굴은 확실히 밝아졌다. 체중도 좀 늘린 것 같고.

차라리 계속 데리고 있는 게 나았다면서 프런트를 욕하는 팬들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하는데.

[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팀이 있다는 게 영 근거 없는 말인 줄 알았거든. 근데 쟤 보니까 아닌 것 같네.]

다저스에 계속 있었다면 절대 지금 같은 성적은 안 나왔을 거다.

여기서는 상황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옮겨 다녔지만, 자기 자리가 있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 효과가 또 은근히 크니까.

게다가 다저스에는 평소 으쌰으쌰하고 경기 끝나면 자연스럽게 모이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 이게 안 맞는 사람한테는 또 곤혹스럽고 그러지.

“어······ Koo. 잘 지냈지?”

“그래. 반갑다.”

다른 선수들을 지나쳐 내 쪽으로 다가온 유진과 악수를 나눴다.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아마 내 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너네 왜 그렇게 어색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궁금한 거 없어?]

‘그냥 좀 그래. 너는 몰라.’

구단이 애초에 트레이드 생각이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유진이 빠져나간 자리를 내가 채운 셈.

서로를 밀어낸 끝에 팀이 갈린 모양새인데 속이 영 편할 리가 있나.

아무리 가서 잘 풀렸다고는 해도, 막상 얼굴을 보니 나도 심경이 복잡하다.

“슬슬 가 봐야겠다. 다들 오늘 잘해보자.”

“그래, 유진! 이따 간단하게 밥이라도 먹자고!”

“이기는 쪽이 밥값 내는 거다! 지면 기분 더러울 거니까!”

그렇게 유진이 원정팀 덕아웃으로 돌아간 후.

선수들의 시선이 제리 쪽으로 쏠렸다.

“오늘 이기면 밥값은 제리가 내는 거다.”

“오케이! 땡큐!”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본인은 당연히 반발했지만, 랜디는 제리의 오른손을 가리키며 가차 없이 단언했다.

“너 이번 시리즈에 못 나오잖아. 그럼 우리한테 동기부여라도 해줘야지.”

로키스와의 원정 시리즈 도중, 불펜 피칭을 하던 제리는 중지 끝에 물집이 생겼다.

크기도 작고 처치도 금방 했지만, 감독님은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건너뛸 것을 권유했다.

어차피 시즌 초반이기도 하니 안전하게 가자는 거겠지.

“너네 이번 시즌 내 성적 알지? 나를 깍듯이 모셔도 모자랄 판에 등판 한 번 건너뛴다고 대우를 이렇게 해?”

“웃기고 있네. 지난번에 Koo가 무보살 삼중살 안 했으면 또 멘탈 터져서 몇 경기 말아먹었을 거면서.”

“만약 퍼펙트게임 중이었으면 롤렉스 하나쯤 맞춰줘야 할 만한 수비였지.”

“퍼펙트게임 중에 삼중살이 왜 나와 미친놈아!”

긴장감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는 동료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몸을 풀러 갔다.

시즌 초반 인터리그라는 게 원래 그렇다.

아직까지는 순위 경쟁에 신경 쓸 타이밍도 아니고. 이번에 경기 치르고 나면 한 몇 년은 만날 일 없으니까. 그나마 부담이 좀 덜하지.

물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라이벌전, 다저스로서는 LA 에인절스와의 ‘프리웨이 시리즈’ 같은 예외도 있지만. 오늘 경기는 그런 것도 아니지.

모처럼 예전 동료도 만났고. 하루 푹 쉬어서 컨디션도 끌어올렸겠다. 다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첫 경기.

그러나 이때는 아직 몰랐다.

어떤 경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특별해질 수도 있다는 걸.

* * *

“플레이 볼!”

심판의 선언과 함께 블루제이스의 첫 타자가 타석으로 향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선발 로테이션은 1선발―3선발―4선발.

2선발 제리가 잠시 이탈했지만, 하루의 휴식일 덕분에 나머지 투수들을 그대로 당겨 쓸 수 있게 됐다.

오늘의 선발 투수는 출장정지에서 복귀한 다저스의 에이스, 로버트 켈리.

최근 몇 경기에서 부진했었고, 그래서 블루제이스 타자들도 기세 좋게 이른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렀지만.

“아웃!”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무래도 리그가 다르다 보니, 로버트의 아주 오래된 징크스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나 보다.

‘출장정지에서 돌아오고 나면 엄청나게 잘 던졌지.’

누군가는 단순한 휴식의 효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또 누군가는 남을 두들겨 패면서 자신감을 얻는다는 비난을 보내기도 하는데.

솔직히 나도 후자 쪽에 슬쩍 마음이 기우는 건, 파드리스와의 초대형 벤클로 퇴장당하고 나서 상쾌한 표정을 지었던 게 워낙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서겠지.

첫 수비를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끝내고 공수 교대에 들어갔다.

이번 시리즈 블루제이스의 로테이션은 3선발―4선발―5선발 순. 다저스 쪽에 조금 더 유리하다.

그래도 한 구단의 3선발을 차지했다는 건, 이 투수를 쉽게 무너트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따아아아악―!

말릭의 리드오프 홈런으로, 시작부터 승부의 추가 살짝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이달의 신인으로 선정된 이후 한동안 침묵하다가 처음으로 터뜨린 홈런.

“악! 으헉! 좀! 그만! 방금 감정 실은 사람 있지?!”

헬멧과 등짝 위로 무수한 손바닥 세례가 쏟아진 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말릭이 귀띔했다.

“투심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뭔가 좀 밋밋하다고 해야 하나?”

투수를 하다 보면, 가장 자주 쓰는 구종이 손에 잘 안 감길 때가 있다.

그게 포심에 비해 제구가 까다로운 투심이라면 더 타격이 크지.

더구나 얼마 전, 다저스 타자 전체가 수준급의 투심에 농락당하면서도, 어쨌든 그 공을 여러 번 컨택하며 어느 정도 타이밍은 익혀둔 상태였으니.

따아악―!

따악―!

연달아 추가타가 터지면서, 1회부터 2대 0으로 앞서나간 가운데.

2사 주자 2루. 득점권에 나가 있는 상태에서 첫 타석을 맞이하게 됐다.

상대 투수의 투구 수는 어느덧 27개.

지친 기색이 역력한 투수는 포수의 사인에 여러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부를 길게 가져가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 코스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투심이 올 확률이 높다는 계산 아래 초구를 맞이하는데.

쐐애애액!

예상보다 조금 낮게 들어왔지만, 대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저리가 났던 A.D. 존슨의 투심보다 훨씬 정직한, 그냥 조금 느린 포심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

자연스럽게 스윙 궤적을 조금 수정했고.

따아아악―!

임기응변으로 스윙을 수정했는데도, 2루까지 여유롭게 들어갈 만한 장타가 터졌다.

3대 0으로 한 걸음 더 앞서가는 1타점 적시 2루타.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치겠는데?’

만약 비슷한 공이 계속 들어온다면, 조금 벗어난다고 해도 안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한 명의 투수를 ‘밥’으로 삼을 기회였다.

* * *

2회 초 수비.

로버트가 두 명의 타자를 가볍게 돌려세우자 다저스 팬들은 분위기를 제대로 탔다.

오늘은 우리 에이스가 긁히는 날이라느니, 퍼펙트를 돌려받을 시간이라느니. 관중석에서 설레발을 치는 게 그라운드까지 들려왔는데.

따아악―!

너무 이른 설레발은 6번 타자 유진 리빙스턴의 안타와 함께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야! 가서 잘하라고 우리가 얼마나 응원했는데!”

“우리한테까지 잘할 필요는 없잖아! 퍼펙트 돌려줘!”

친정팀의 에이스에게 첫 안타를 뺏어낸 유진을 향해 장난스러운 비난이 쏟아졌다.

1루수 랜디도 씩 웃으며 유진의 엉덩이를 툭 치며 뭐라 말을 걸었고. 유진도 뭐라 받아친다.

지난번 컵스전의 나처럼 9회에 안타를 쳐냈으면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겠지.

“아웃!”

후속타 불발로 득점 없이 끝난 블루제이스의 2회 초 공격.

다저스의 2회 말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9번 타자 투수 로버트가 자동 삼진으로 내려온 뒤, 말릭과 조지가 연달아 뜬공으로 물러났으니까.

그러나 로버트가 3회 초를 다시 삼자범퇴로 막아낸 후.

3회 말 공격에서 다저스 타선은 다시 한번 상대 선발을 두들겨 팼다.

따아악―!

따아아아악―!

연달아 안타를 허용하며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겨우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았지만, 주자는 만루.

타석에는 ‘NL 최고의 7번 타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어낸 내가 들어오고 있고.

상대 코칭스태프는 마운드를 방문해 심판이 경고할 때까지 대화를 나눴지만, 끝내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네가 싼 똥이다. 악으로 깡으로 치워라.’

지금 다저 스타디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 중에서, 이러한 블루제이스의 의중을 읽어내지 못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투수는 못 알아먹은 모양이다.

초구와 2구를 연달아 터무니없는 코스로 던지더니, 조급해졌는지 갑자기 태세 전환을 시전해 한가운데로 쑤셔박는 3구.

그것도 아까 안타를 맞은 밋밋한 투심을.

‘모르면 맞아야지.’

따아아아아아악―!

1차전의 향방을 사실상 확정 짓는 그랜드슬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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