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아빠와 나(1)
남들 앞에서 신상 다 까는 직업 특성상, 어느 정도 어그로꾼들이 달라붙는 건 감수하고 있다.
그나마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도 넘는 발언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나도 그런 건 에이전트에 대응을 위임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지.
[세상 떠난 메이저리거 동생, 갑작스러운 미국 유학… 그 진위는?]
[미국에서 세금 냈으니 한국은 나 몰라라? 故 박도현 가족, 미국으로 터 옮기나]
[살기 각박해지는 요즘, 유명인사 가족도 사회 환원에 관심 기울일 필요]
진짜 문제는, 어쩔 땐 이런 식으로 가족한테까지 불똥이 튈 때도 있다는 거다.
원정 9연전을 마치고 찾아온 휴식일.
낮 동안 내내 과제를 끝내느라 바빴다던 박도아를 집에 불러 꼬치꼬치 캐물었다.
“진짜 문제없는 거지? 숨기는 거 아니고?”
“그렇다니까, 오빠.”
사춘기 시절, 오빠 박도현이 메이저리그에서 스타덤에 올랐던 박도아 역시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오빠 돈 잘 버니까 니가 돈 좀 쓰라는 건 귀여운 수준에. 유명인 가족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훈계를 듣거나, DM으로 아무 맥락 없는 욕설이나 성희롱이 날아오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나 지금은 SNS도 안 하고. 그런 기사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한국인 학생들이 가끔 오빠 사인 받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거 빼곤 아무 문제 없어.”
박도현이 몇 번이나 경고하고 심지어 고소까지 진행했는데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박도아는 아예 SNS 계정을 삭제해버렸다.
“가게 SNS는? 거기는 어쩔 수 없이 열어둬야 하잖아.”
“뭐 실망이다 어쩌다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상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더라.”
“그래도 부모님 기분 상하실까 걱정되긴 하네. 특히 아저씨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는데…….”
“오히려 열심히 배우고 오라고, 돈쭐내줘야겠다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데? 그리고 아빠 탈모는 스트레스랑은 상관없어.”
“그건 좀 위험한 발언 같은데…….”
박도아에게 확답을 듣고 나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조회수 장사나 하려는 저질 언론이 대부분이고. 시간은 좀 걸려도 소탕할 수는 있다.
그리고 에이전시에서도 이미 반박 보도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일단 지켜보는 게 낫겠지.
“오랜만에 오빠 쉬는 날인데 이런 얘기나 하고 있어야 돼?”
불만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박도아.
하긴 얘가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으로서 자기 미래를 위해 혼자 유학까지 왔는데.
내가 너무 옛날 모습만 생각하고 과보호하는 건지도 모른다.
[맞아. 얼른 피자나 시키란 말이야.]
근데 너는 아니지 이 자식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 가족 얘기인데 무슨 남 일처럼 말하고 있어.
너 같은 놈한테 시켜줄 피자는 없다.
* * *
[故 박도현 선수 관계자, “박도현 선수 동생은 현재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며 학업에 매진 중이다. 이런 호화 유학이 세상에 어딨나.”]
내가 박도아와 함께 집에 틀어박혀 휴일을 보내는 동안.
상황을 파악한 데릭은, 애쉬튼 베이스볼 에이전시의 한국 지부를 닦달해서 온갖 정정 보도를 쏟아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소동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동안.
휴식일을 보내고 다저 스타디움으로 복귀하자마자 나는 곤욕 아닌 곤욕을 치렀다.
“Hey, Koo. 너도 이제 드디어 여자를 알게 된 거야?”
어제 나와 박도아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온라인상을 돌아다녔다.
딱히 파파라치가 붙은 건 아니었고. 그냥 박도아네 기숙사를 오갈 때 내가 태워다 줬으니까.
“Koo! 어제 여자랑 데이트했다는 거 진짜예요?!”
“어째 니가 연애를 안 하는 게 이상하다 했어. 내 주변만 해도 너 만나보고 싶다는 애들 많았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벽에 몰아붙이더니 진실을 요구하는 선수들.
그때, 자기 라커룸을 뒤적이던 로버트가 한마디 툭 던졌다.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이 둔한 놈들아. 그 여자 Park 여동생이잖아.”
“……어?”
내 옆구리를 간질이던 R.H.의 손이 툭 떨어진다.
R.H.뿐 아니라 박도현의 가족들과 만나본 적 있던 선수들이 전부 멍하니 입을 벌린다.
‘진짜로 못 알아봤네, 이 인간들.’
뭐라 그럴 만한 건 아니지.
박도아가 마지막으로 다저 스타디움에 방문한 게 한 3년 전인가 그럴 텐데. 그땐 누가 봐도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심지어 지금은 이적한 어떤 선수는 초등학생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큰 곤경에 처하기도 했었고.
“너네 진짜 몰랐냐? 잘하는 짓이다. R.H.랑 헨리, 너네는 Park 동생이랑 사진까지 찍어 놓고 그새 까먹어?”
“아니, 그게…….”
“진짜 맞아? Park이 여동생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슬쩍 빠져나온 건 좋은데.
[너는 또 왜 그렇게 꽁해 있냐?]
‘아니, 뭐.’
박도현 동생이랑은 데이트하는 사이가 아닐 거라고 딱 잡아 말하는 게 조금 그렇다고 해야 하나.
물론 데이트는 아니지만. 그렇게 불릴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런 가능성을 아예 일축하는 것도 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박도현한테 들키면 극혐하겠지.
“아, 사진 찾았다. 이거 봐요. 이때랑 지금이랑 인상이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핸드폰을 뒤적이던 헨리가 기어이 예전에 찍은 사진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 그러네. 이목구비는 비슷한데 키가 커지니까 인상이 확 달라진다.”
“로버트가 눈썰미가 좋은 거지! 보통 사람은 알아보지도 못하겠구만!”
“그보다 진짜 이 여자가 Park 동생이라면, 설마 미성년…….”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요. 올해 성인 됐으니까.”
그렇게 박도아에 대한 화제로 라커룸이 시끌벅적해진 가운데.
조금 늦게 도착한 제리가 나를 발견하더니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어, Koo! 사진 봤다. 너 Park 동생이랑 데이트했더라? 미국엔 언제 왔대?”
그러자, 3년 전 박도아의 사진을 치켜든 헨리를 비롯해.
박도아를 알아보지 못했던 선수들의 표정이 싹 굳는다.
“알아봤냐, 제리?”
“어? 당연하지. 여러 번 왔었잖아. 헨리 너도 당연히 알아봤…….”
“뭐래. 평소에 여자 생각밖에 안 하니까 금방 알아봤겠지.”
“눈썰미 좋다고 자랑하는 거야? 눈치는 겁나게 없으면서.”
“살기가 싫다. 내가 제리보다 모자란 게 있다는 거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억울하게 욕만 먹는 제리.
저대로 냅두면 또 혼자 며칠은 꽁해 있겠지.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무슨 상관이야. Park의 동생한테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안 그래?”
나름 에이스의 품격을 지켜주기 위해, 제리가 팀 안에서 동네북 취급을 받는다는 걸 남한테 밝힌 적은 거의 없는데.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십중팔구는 도대체 왜들 그러냐고 되물을 거다.
“역시 Koo는 태도부터 달라. 다저스의 야구가 무엇인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네.”
이러니까 그런다.
편 좀 들어줬다고 울상을 싹 지우고는 콧대 높이는 꼬라지 좀 보라지.
[꼬라지를 보라지? 오, 라임 죽인다.]
‘너까지 감당하긴 힘드니까 제발 닥치고 있어.’
진실을 요구하는 건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경기 시작 전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어 거의 취조에 가깝게 질문을 쏟아냈다.
“Koo!!!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낸 그 여성분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누가 미국이 개인주의 사회라고 그랬어.
사람이 여자랑 같은 차에서 한번 내렸다고 이렇게나 물어뜯는데.
“그 여자는 Park의 여동생입니다. 이미 제가 사는 집에서 여러 번 머무른 적이 있고요. 집주인이 저로 바뀌고 나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어제는 둘 다 시간이 남아서 제가 불렀습니다.”
박도현의 동생 박도아가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나와 종종 만난다는 것.
아직 퍼지지만 않았을 뿐 어차피 시간문제였을 거다.
세상에 눈썰미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제리도 알아본 걸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어차피 밝혀져 봤자 가십거리 쫓아다니는 타블로이드지만 날뛸 뿐, 금방 잠잠해질 거라는 계산으로 그냥 밝혀버린 건데.
의외로 그날 인터뷰 이후 박도아에 관한 질문으로 귀찮게 구는 기자들은 싹 사라졌다.
[이게 다 내 덕분이다. 너도 알지?]
거들먹거리는 게 짜증 나긴 한데. 솔직히 박도현이 억제기 역할을 해준 건 어느 정도 팩트이긴 하지.
과장 좀 보태서 박도현과 그 가족을 건드리는 사람은 LA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시기가 있었으니까.
이제 신경 쓸 것도 사라졌겠다.
포스트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한 경기 한 경기 승수를 쌓아가며 지구 우승을 가져오는 것만 남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더라.
* * *
“스트라이크 아웃!”
3대 2로 뒤진 9회 말 투아웃,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타석에 나갔지만. 삼진을 당하며 경기 종료.
이미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로키스를 상대로 2연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두 경기 모두 득점권 찬스를 여러 번 놓치면서 흐름을 빼앗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부분에서는 나도 할 말이 없고.
각각 4타수 1안타씩을 기록했는데, 안타가 전부 주자 없는 상황에서만 나왔으니.
[LA 다저스, 콜로라도 로키스 상대로 2연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1게임 차이로 지구 선두 다시 빼앗겨]
갈 길이 바쁜데 뜻밖의 팀에게 덜미를 잡히며 주춤하게 된 다저스.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다음날 경기에 대한 안내사항을 전달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박도현이 한마디 툭 던졌다.
[요새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냐?]
요즘 경기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도현한테도 보이는 모양이다.
최근 5경기에서 장타가 안 나오다 보니, 당연히 홈런도 27개에서 멈춰 있는 데다.
실책도 하나 늘고, 도루 실패도 두 개 기록했으니까.
[너 우리 가족 때문에 그러는 거지?]
박도아의 유학에 관련된 악의적 기사 유포.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우선 기사가 몇 개 나오다 말 거란 예상과는 달리 교묘하게 논점을 바꿔가며 계속 쏟아지고 있다.
마치 악의를 갖고 기사를 대량 유포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게다가 일부 이슈 유튜버들이 그런 기사를 무분별하게 인용하며, 박도아를 마치 죽은 오빠 재산으로 유학 생활을 즐기는 허영꾼처럼 묘사하고 있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박도현이나 그 가족에 대한 악플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선 에이전시에서 대응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수가 많지 않았기에 겸사겸사 처리할 수 있었던 것.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에이전시에서도 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찾아올 거다.
[박도아도 괜찮다고 했잖아. 가게 찾아오는 미친놈들은 경찰 부르면 그만이고.]
심지어 어떤 단체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딸 유학 보낼 돈이 있으면 사회에 환원하라면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건 선 넘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오히려 그 단체의 사이트가 테러를 당하는 등 역풍을 맞았지만.
자기 아들 유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놈들을 보는 박도현의 부모님 심정은 도대체 어떨까.
[야구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연애도 안 한다던 놈이. 지금 니 꼴을 봐라. 제대로 집중하고 있나.]
“……알았다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는 건 알지만, 당장 내 마음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다.
명함집을 뒤져 번호 하나를 찾아낸 뒤 전화를 걸었다.
전에 직접 걸었을 때는 번호가 바뀌어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비서를 통해서.
[누구한테 전화하냐?]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 만한 사람은, 지금 와서는 한 명밖에 없으니까.
앞으로 평생 내 쪽에서 아쉬운 소리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던 그 사람.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