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108화 (108/200)

108. 마운드(3)

2037시즌이 끝을 향해 달려가며, 내년을 바라보는 팀과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는 팀이 나뉘어가는 메이저리그.

한 해의 야구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듯, 세 가지의 뉴스가 야구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는데.

이걸 주목받는 순서에 따라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앤드류 매닝, 2037시즌 첫 30―30 클럽 가입!]

올스타 내셔널리그 팀 주장을 맡기도 했던 브레이브스의 외야수 앤드류 매닝.

40개가 넘는 홈런을 쳐냈지만, 도루가 26개에 불과해 30―30은 어려울 거란 예측이 많았는데.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3연전에서 도루 4개를 추가하며 기어이 대기록을 달성했다.

[본인 말로는 신의 도움 덕분이었다고는 하는데…….]

‘상대 투수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 아냐.’

이 소식은 저 멀리 한국에서까지 대서특필되었는데.

앤드류 매닝의 시즌 30호 도루를 허용한 투수가 바로 김희영이었기 때문이다.

[현기야, 제발 홈런 좀 뻥뻥 날려줘. 나 지금 한국에서 여기저기 박제되고 난리도 아니다…….]

김희영은 내가 얼른 30―30을 달성해서 한국 팬들의 시선을 가져가달라며 우는 소리를 했다.

최선을 다하겠다느니, 뭐 이런 입에 발린 말로 넘어가긴 했는데, 사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친다는 보장은 없지.

도루는 루상에 나가기만 하면 시도는 해볼 수 있는데, 홈런은 투수가 아예 승부를 피해버리면 칠 방법이 없으니.

[A.D. 존슨, 2경기 연속 조기 강판! 내년을 바라보는 컵스의 에이스, 이대로 시즌 마감하나?]

두 번째 뉴스는 투수에 관한 소식.

이번 시즌 내내 본인의 별명 Ace & Dominant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페이스를 선보인 A.D. 존슨이었지만.

시즌 끝에 다다른 지금, 몇 경기 말아먹으면서 완벽한 시즌을 보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제리랑 맞붙었을 때 후유증이겠지?]

‘어째 있는 힘 없는 힘 죄다 끌어모아 쓰는 것 같더라.’

각각 9회까지 퍼펙트와 노히터를 이어간, 올 시즌 최고의 투수전을 예약한 거나 마찬가지인 그 경기.

한 경기에서 130개가 넘는 공을 던진 A.D.는 로테이션을 한 번 걸렀고, 그 후 쭉 내리막길을 탔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고. 본인의 압도적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컵스의 포스트시즌이 좌절됐으니 동기부여도 부족하겠지.

[이러면 올해 사이 영 상은 제리가 타는 건가?]

‘그건 확신 못 하겠다.’

비록 연속 경기 퀄리티스타트 기록은 끝났지만,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며 ERA 1점대의 압도적 시즌을 보내는 제리지만.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연속 이달의 투수로 선정된 A.D.의 꾸준한 활약도 무시할 순 없거든.

아무튼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자가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지금, 제리의 시즌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끝나지 않았으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 소식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내야수 카일 캠프, 오랜 재활 마치고 소속팀으로 복귀 신고]

이번 시즌 내내 장기부상으로 드러누워 먹튀짓을 하면서.

파드리스 단장과 감독의 모가지를 동시에 날리는 데 공헌한 카일 캠프가 복귀한다는 소식.

인종차별 발언이나 이기적인 행동 등등 구설수가 워낙 많은 선수다 보니, 반응도 조롱과 욕이 대부분이었지.

트레이드되기 전 소속팀 다저스와의 난투극이 재조명된 건 덤이고.

[지금 와서 복귀한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새끼 내가 아웃시킨 거라고 믿는 놈들이 있어.’

얼굴로 날아오는 발목을 붙잡고, 정강이를 아작내는 장면이 워낙 강렬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 새끼 부축도 없이 잘만 걸어다녔거든.

재활을 완전히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어깨 관절을 혹사했다가 탈이 난 거라고 그쪽에서도 보도문 뿌렸더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귀 이후에도 잠시 벤치를 지켰던 카일이지만.

주전 유격수를 몇 번이고 갈아치울 정도로 수준 미달인 내야 수비에 고통받았던 파드리스 감독대행은, 끝내 카일을 출전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노리고 한 거면 대박이다, 진짜.’

그 복귀전 상대는, 마지막 원정 시리즈에 돌입한 다저스였다.

* * *

이번 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추락에 다저스와의 난투극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같은 지구 팀 하나를 담가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야구 외의 수단을 경기장에 끌어들인 거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지.

상대 쪽에서 인종차별 발언과 스파이크를 들이대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다저스를 옹호하는 여론이 많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그랬다면 애초에 그렇게 싸움이 격해지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난투극으로 인해 주축 선수가 대거 이탈한 이후.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29연패를 당하며 감독이 잘리고, 감독대행을 맡게 된 파드리스 벤치 코치.

어떻게든 팀을 굴리기 위해 애쓰던 그는 한 가지 방침을 내놓았다.

“앞으로 우리 파드리스는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합니다.”

지금까지의 평가를 전부 백지로 돌리고, 전 포지션에서 돌림판을 돌리기 시작한 것.

팀 분위기를 주도하던 선수들이 죄다 드러누웠기에 가능했던 극약 처방이다.

[정답은 플래툰이었나? 몰락하던 파드리스, 파죽의 7연승!]

단기적인 효과는 충분했다.

어차피 더 떨어질 데도 없었고, 선수들도 불만을 제기하기 힘들었으니.

그러나 무한 경쟁이 충격 요법으로는 효과가 있어도, 한 시즌 내내 이어가는 건 무리다.

꾸준히 출장하지 못하면서 경기 감각이 무뎌지고, 무엇보다 팀원들끼리 서로를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니까.

메이저리그에서의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파드리스 감독대행은 다시 정상적 운용으로 되돌릴 타이밍을 놓쳤고.

그 결과는 뭐…… 리빌딩 팀인 로키스조차 제치지 못한 지금의 순위를 보면 알 만하지.

“그거 알아, Koo?”

“뭘요?”

“카일 있잖아. 복귀하자마자 정신 못 차리고 루키 유격수한테 훈수 두면서 거들먹거렸다는데.”

원정 숙소에서 펫코 파크로 향하는 버스 안.

발은 엄청 넓고 그에 못지않게 입도 싼 R.H.가 귀띔했다.

“그럴 것 같긴 했어요. 그놈 성질머리 보면 뻔하잖아요.”

“그치.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루키 놈이 카일을 들이받았다는 거야. 당신이 우리 팀에서 한 게 뭐냐고.”

“허업!”

“진짜 그랬다고요?! 루키가 7년 차 메이저리거한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동료들이 끼어들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

박도현도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MSG를 너무 넣었네. 상식적으로 그랬으면 지금쯤 그 루키는 마이너에 가 있을 텐데, 그런 소식 없었잖아.]

‘글쎄, 2037년에 메이저리그 팀이 29연패를 하는 건 말이 되고?’

[음…….]

“진짜야. 파드리스 지금 개판이래. 내년엔 선수단이고 프런트고 싹 다 갈릴지도 모른다고 난리랬어.”

이해야 못 하겠지만, 사실이면 우리는 좋지.

어차피 같은 메이저리그라도 팀마다 분위기는 가지각색이다.

물론 우리 팀에서 루키가 고참한테 들이받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다저스에서 그랬으면 로버트한테 반쯤 죽었지.]

‘로버트는 무슨, 랜디 선에서 끝나고 다시는 다저 스타디움에 발도 못 들일걸.’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웃어넘겼지만.

경기 전 인터뷰를 하면서,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Koo. 오늘 복귀전을 치를 카일 캠프가 당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더군요. 경기장에서 야구가 아닌 주먹을 자랑하는 선수와 싸우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욕먹고 빡쳐 있지라도 않았으면, 괜히 가만히 있던 나한테 화풀이할 이유가 없으니까.

올해야 이번 3연전이 마지막이라지만 내년에도 자주 볼 텐데 어쩌려고 그러냐.

아니면 또 트레이드해달라고 시위하는 건가.

멋모르는 루키 시절 이런 도발을 들었다면, 온갖 표현을 빌려다가 카일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비꼬았겠지만.

이제는 그래봤자 내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라는 걸 잘 안다.

한마디면 충분하다.

“다리는 좀 괜찮대요?”

직접 저격당한 나는 그 한마디로 넘어갔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덕아웃으로 가니 정작 다른 선수들이 더 날뛰었다.

“이 XX놈의 새끼가, 그래도 같은 팀이었던 정 때문에 오냐오냐해줬더니…….”

“쟤 이따 우리 얼굴 어떻게 보려고 저러냐?”

“뭐? 주먹을 자랑해? 그래서 지는 스파이크 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자랑하려고 그랬나?”

고작 말 한마디에 자기 일처럼 나서서 분노하는 동료들.

FA 계약까지 맺은 고참 선수가 루키한테 욕이나 얻어먹는 콩가루 팀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끈끈함이지.

물론 격한 감정은 알아서 잘 추스르겠지만, 괜히 경기 전에 힘 빼는 걸 원치는 않으니.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0홈런짜리 1할 유격수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말아요. 불쌍하잖아요.”

야구 대신 주먹으로 자랑한다고?

지는 야구로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인 줄 아나.

실력으로는 자신이 없으니까 인터뷰로 흔들어보려는 수작인 모양인데, 본인 걱정이나 해야 할 거다.

오늘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카일이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 아주 끔찍한 기억을 선사했던 투수니까.

무사 만루의 찬스에서 날린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무보살 삼중살을 허용했던 바로 그 투수.

[1회 말 파드리스의 공격입니다.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제리 헤이즈택. 이번 시즌 30경기 출전해 24승 2패, ERA 1.46의 괴물 같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죠.]

오늘 경기 파드리스가 내놓은 대체 선발을 마구 두들긴 다저스 타선은, 제리가 등판하기도 전에 이미 2점의 득점 지원을 안겨주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어떨까?]

카일의 개수작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라지만, 그것 말고도 오늘 경기는 제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다저스의 시즌 잔여 경기는 오늘을 포함해 6경기.

그 안에 지구 선두 경쟁의 결과가 나온다면, 제리의 다음 등판은 포스트시즌 첫 경기로 미뤄진다.

즉, 오늘이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스트라이크!”

뭐, 그런데.

제리가 초구를 던지는 걸 보니, 내가 좀 전까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싶다.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제리는 오늘이 마치 평범한 하루에 불과하다는 듯, 무심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기나긴 162경기, 자신이 등판하는 30여 경기, 그중 하나일 뿐, 전혀 특별할 게 없다는 것처럼.

삼자범퇴로 이닝이 깔끔하게 끝나자, 파드리스 선수들은 숨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수비에 들어가야 했고.

따아아악―!

이미 오늘 경기에서 패배를 상상할 수 없게 된 다저스 타자들의 방망이에는 자비가 없었다.

하위 타선부터 출발해 제리의 자동 삼진 하나를 깔고 갔음에도 한 점을 추가해 3대 0을 만들었고.

[장기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첫 선발 출장 중인 카일 캠프입니다. 이번 시즌 타율 0.138에 홈런은 아직 없습니다. 이번 시즌 다저스와의 악연을 청산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2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제리는 오늘 파드리스의 6번 유격수로 출장한 카일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지난번 맞대결에서는 제리가 모질게 굴지를 못했지.

아무리 평소 사이가 안 좋았어도 같은 팀이었는데. 오해를 살까 걱정했는지 몸쪽 공에도 좀 소극적이었고.

“타임!”

카일은 어떻게든 제리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긁어보겠다는 듯 깔짝거렸다.

괜히 타임을 요청하거나, 공 하나를 보더니 파악이 끝났다는 듯 끄덕이거나 하면서.

그러나 제리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다.

심지어 지난번보다 앙금이 더 쌓였을 텐데도.

그냥 발악을 하는구나, 라고 말하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 구 한 구 스트라이크를 쌓아간 끝에.

“스트라이크 아웃!”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커터를 의식한 듯한 스윙을 멀찍이 비껴가며 헛스윙 삼진.

복귀 첫 타석부터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린 카일이 배트를 박살 냈지만, 관심을 주는 다저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에이스의 위력적인 피칭과 빈틈없는 수비, 그리고 연달아 방망이에서 불을 뿜어내는 타자들.

스코어 9대 0으로 멀찍이 도망간 7회 말 2사에서 제리는 덕아웃의 교체 판단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Koo.”

다저스의 두 번째 투수 조쉬 먼로가 이닝을 끝낸 뒤, 공수 교대 타이밍.

감독님이 넌지시 나를 불렀다.

“내가 왜 불렀는지 자네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준비는 되어 있나?”

만약 8회까지 큰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지고 있다면, 9회에 마운드에 올라갈 기회를 주겠다는 것.

“물론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마음의 준비는 끝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능하면 다저 스타디움에서 기회를 주고 싶었어.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야구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잖아?”

홈에 있을 때 상황이 안 됐는데 어떡하나. 잔여 경기가 전부 원정인데.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홈이랑 원정 따져가며 공을 던졌다고.

“아웃!”

양 팀 모두 추가 득점 없이, 9회 초 다저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공격이 끝났고.

경기의 승패를 직감한 듯, 홈팬과 원정팬 나눌 것 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어……?”

전광판의 글자를 확인한 사람들이 멈춰 서면서 출구 앞에서 정체가 생겨났다.

[Pitcher: Hyun―Ki Koo]

유격수였던 내가 투수로 포지션을 이동했다는 공지.

관중들이건 기자들이건, ‘이게 맞나’ 싶었는지 처음엔 별 리액션이 없었지만.

내가 마운드에 올라 연습구를 던지기 시작하자 현실을 깨달은 듯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그렇지! 왜 이런 경기가 안 나오나 했어!!”

“우리 유격수는 투수 출신이다, 이 꼴찌 놈들아!!”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경기에서 뜻밖의 볼거리를 접한 다저스 팬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X발 왼손도 아니고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겠단 거야 지금?! 우리가 X으로 보여?!”

이번 시즌의 암흑기를 견뎌오며 펫코 파크까지 행차한 열성 홈팬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아이고야, 기자분들도 바쁘시네.]

‘사전에 공개 안 했으니, 부랴부랴 기사 쓰느라 정신없겠지.’

프레스석의 기자들은 카메라와 노트북을 오가며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그러나 이 모든 반응의 공통점은, 진지한 등판이라기보다는 팬서비스 차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는 거다.

투수로서 쓰던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이라 더 그렇겠지.

심지어 글러브도 쓰던 걸 그대로 끼고 나왔으니까. 애초에 올라운드용이긴 하지만.

‘표정 살벌한 거 보소.’

똑같이 큰 점수 차이라도 이기고 있을 때는 야수 등판이 적은 이유다.

괜히 상대를 자극했다가 끈질기게 접근하는 타자들 때문에 경기가 길어지거나, 투수를 다시 올리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지금도 마치 시범경기에서 처음 대주자로 출전했을 때처럼 반응이 격렬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상대도 파드리스였네. 인연이 참 깊다.

[지금 기분은 어때?]

연습구를 마치고, 타석에 들어간 타자를 바라보며 투구판을 밟고 선 순간.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이 떨어지기 직전, 박도현은 그렇게 물었다.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긴장과 흥분으로 돌아버릴 지경이지.

다시 여기 서서 타자와 마주 보는 그날을 내가 얼마나 오래 꿈꿔왔는데.

그러나 만약 사고 전이었더라도, 이따위 정신 상태로 공을 던졌다가는 제멋대로 날아갔을 거다.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투수 구현기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지금부터 던지는 모든 공은, 내 야구 인생에 있어 보너스 스테이지다.

쐐애애액!

하체에서부터 끌어올린 힘이 손끝을 빠져나가는 공에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동작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우완투수로서의 메이저리그 첫 공이 타자를 향해 날아갔다.

부웅!

“스트라이크!”

존 하단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커브볼에. 아마도 패스트볼을 생각하고 있었을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았고.

바로 다음 순간, 관중석 여기저기서 경악 어린 비명이 쏟아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