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115화 (115/200)

115. 가을맞이(1)

시즌 최종전이 끝난 직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관심이 쏟아졌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기사가 나와 있을 정도,

과장 하나 안 보태고, 팀에 처음 복귀해 스프링캠프에서 타격 훈련을 소화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그때 MLB 공식 사이트에 얼굴 걸렸는데 말이지.

“어쩌면 다저스는 내심 당신이 기록 달성에 실패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군요.”

디비전시리즈 직전의 아주 짧은 휴식 기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 중 적당한 자리를 고르고 또 고르느라 정신이 없던 에이전트 데릭은 그렇게 말했다.

“포스트시즌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시달릴 일도 없었을 테고. 또…… 돈 이야기를 할 때도 고개를 덜 숙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를 만나러 오는 김에, 다저스 단장이랑도 미팅을 하고 왔다는 데릭.

돈 이야기 하니까 이걸 또 안 물어볼 수 없다.

“슬슬 스토브리그도 머지않았는데, 혹시 그…… 다저스 쪽에서 연장계약 얘기는 없던가요?”

클레망이나 제리처럼 원클럽맨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LA에 집도 샀으니. 괜찮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미리미리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10년 2억 5천만 달러를 제시하길래 커피만 마시고 나왔는데, 원하신다면 다시 가서 얘기해볼까요?”

“얼굴에 뿌리고 오지 않은 게 용하시네요.”

괜찮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말이다.

다저스 빠돌이 박도현이 역대급 호구 장기계약을 맺어주니까 나도 같은 호구로 보이나.

[다들 감각이 맛이 갔어. 몇천억 원 얘기하면서 호구니 뭐니…….]

‘닥쳐 이 호구야. 3년 연속 40―40 기록한 유격수한테 3억 달러가 말이 돼?’

어차피 돈 얘기는 다음 시즌이 끝나면 실컷 할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조급할 필요 없고.

당장 코앞에 닥친 포스트시즌에만 집중하자는 데릭.

“마음 편히 임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당신이 포스트시즌에서 지금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다저스는 연봉조정에서 결코 섭섭한 금액을 제시하지 못할 테니까요.”

투수건 타자건, 일단 단기전에 돌입하고 나면 집중력이 엄청나게 예민해진다.

타자로서는 처음 포스트시즌을 맞이하는 내가, 다른 타자들만큼 날카롭게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걱정할 수도 있겠지.

“잘해야죠. 무조건.”

근데, 적어도 그런 걱정은 안 한다.

이번에 기깔난 재능이 하나 들어왔거든.

* * *

[A등급 재능 ‘가을남자’를 획득하셨습니다.]

30―30을 달성하고 받은 뽑기권으로 뽑은 재능.

포스트시즌을 앞둔 지금, 무척 유용해 보이는 재능 이름에 눈을 크게 뜨던 그 순간.

카드가 조각조각 찢어지며, 이미 내가 갖고 있던 재능과 융합해 새로운 재능으로 탈바꿈했다.

[S등급 재능 ‘미스터 옥토버’를 획득하셨습니다.]

[미스터 옥토버(S등급) ― 한정형]

○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를 때 평소보다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를 때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새로운 재능으로 융합됐다는 건, 내가 원래부터 비슷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뜻.

투수로 뛸 때 포스트시즌을 치렀던 경험이 떠올랐다.

제리와 마리오, 아드리안 등등.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투수들 중, 포스트시즌 첫 등판에서 5이닝 이상 버텼던 건 나밖에 없었지.

‘그땐 뭐 평소랑 다를 것도 없는데 왜들 저러나 했었는데…….’

[사실 그렇게 태평한 소리가 나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투수 시절의 나한테는 오히려 자꾸 예민해지는 신경을 최대한 무디게 만들면서, 평소처럼 투구하는 게 목표였다.

원래 투수라는 인종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우니까.

그래서 이번 재능이 더 반갑게 다가왔다.

타자로서 단기전에 임하는 낯선 감각을 보조해줄 재능이 필요했으니.

새로운 재능을 사용해볼 첫 무대는 디비전시리즈 1차전.

정규시즌 승률이 더 높은 팀이 홈 어드밴티지를 갖는 룰에 따라, 다저스 선수단은 카디널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으로 이동했다.

* * *

[MLB.com NL 디비전시리즈 승부예측,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48표 VS LA 다저스 30표]

디비전시리즈 1차전이 열리기 전, 선수단 미팅 시간.

1차전 선발 투수 제리를 포함해 모든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감독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바로 전문가랍시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양반들을 엿먹이는 거지.”

시리즈를 앞두고 양 팀 감독과 주장을 불러다 예고편을 녹화하는 자리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떴다.

“31경기에서 1.45의 ERA를 기록한 선발투수와 30―30을 기록한 유격수가 우리 팀에 있는데, 승부예측에서 카디널스를 고른 사람들을 과연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지 기자와 해설위원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양반들이 근거랍시고 내놓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즌이 끝나기 직전까지 지구 선두 싸움을 하면서 주전 라인업을 총동원했던 다저스와는 달리.

비교적 빠르게 지구 우승을 확정한 카디널스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선발진의 무게감 역시 카디널스 쪽이 약간은 더 높다는 평가.

제리 헤이즈택이라는 압도적인 에이스 카드가 있지만,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서 제리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는 데다.

휴스턴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아이작 란드리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선발투수는 단기전에 내보내기는 불안하다나.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의외로 포스트시즌에서는 침묵할 수 있다 이거지.’

이런 불신의 시선, 타자로서 개막 로스터에 올랐을 때 질리도록 받았었는데. 엄청 오랜만이다.

함부로 입 놀린 사람들 야알못으로 만드는 게 그렇게 꿀잼이었는데.

“플레이 볼!”

카디널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

다저스가 올해 몬스터 시즌을 보낸 제리 헤이즈택을 1차전 선발로 올리리란 걸 알면서도, 제리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이 시원찮았다는 데 걸어보고 싶었던 건지.

똑같이 팀의 에이스를 마운드에 올린 카디널스.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 이해는 가지?]

‘그럼. 같은 에이스라면 아무래도 홈팀한테 조금 더 유리하니까.’

카디널스의 에이스는, 패스트볼의 구위로 찍어 누르는 전형적인 파워 피처.

다저스의 다른 투수랑 비교하자면 이번 시즌 4선발로 시작했다가 불펜으로 강등된 마리오 로드리고랑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제구도 더 괜찮고 이닝 소화력도 더 뛰어난, 상휘 호환이라고 봐야지.

“스트라이크 아웃!”

리드오프 조지는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번 시즌 존 밖으로 벗어나는 공에 대한 스윙 비율이 22%에 불과할 정도의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석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조지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공의 위력이 강하다는 거겠지.

“K―K―K!!! K―K―K!!!”

연속 삼진을 바라는 카디널스 팬들의 흥겨운 응원이 쏟아진다.

저 투수가 이번 시즌 탈삼진이 220개인가 그랬던데, 컵스의 에이스 A.D.존슨과 제리의 뒤를 이어 3위였다.

그래서인가, 표정은 어떻게 잘 숨겼는데.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는 동작에서 넘치는 자신감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투수는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공을 선택하기 마련이고.

‘바깥쪽 꽉 차는 포심.’

어차피 경기 초반, 확실한 노림수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갔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시즌 내내 몸쪽 코스에 강점을 보였다는 걸 알 테니. 선택지를 좁혔던 건데.

막상 투구에 들어가고 보니, ‘몸으로 말해요’가 몸쪽으로 들어온다는 강렬한 직감을 전해온다.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평소엔 대충 이쪽으로 오겠구나, 하는 막연한 직감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야 할지 자동으로 머릿속에 입력되는 느낌.

따아아아아아악―!

구종과 코스에 대한 확신을 갖고 풀파워로 돌린 데다, ‘미스터 옥토버’의 신체 능력 향상 보정이 더해지니.

이게 안 넘어가고 배겨?

[시속 98마일(약 158km/h)이 넘었는데, 초구에 넘어가 버리네.]

‘힘 빡 주고 던진 것 같긴 해. 아직도 손이 저릿저릿하니까.’

옳다구나 하고 가볍게 휘둘렀으면 구위에 밀려 뜬공이나 파울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건 내 입장이고.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을 의도한 코스대로 정확히 던졌는데도, 초구에 홈런을 맞아버렸다?

명색이 한 팀의 에이스니까 와르르 무너지진 않겠지만, 멘탈에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상처에 미리미리 소금을 뿌려둬야지.’

[뭔 짓거리를 하려고 그리 험악한 소릴…….]

덕아웃에 들어가기 전, 대기 타석으로 막 나가려던 R.H.를 붙잡고 잠시 뭐라 주절거렸다.

버선발로 마중 나온 타격 코치한테도.

뭐라 그랬는지는 말할 것도 없지.

“쟤 방금 공 제대로 힘줘서 던진 거였거든요? 지금 뭔가 읽어낸 척하는 거니까 고개만 끄덕여주세요.”

“OK.”

카메라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걸 되뇌면서, 확실하게 표정 연기를 했다.

투수 놈한테 이 표정이 어떤 메시지처럼 다가오도록.

나는 타석에 들어가기 전부터 너에 대해 뭔가를 읽어냈다. 뭔지 알 건 없고 아무튼 읽었다. 못 믿겠음 아까 그거 계속 던져보던가, 라고.

‘이렇게 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알아서 무너져주면 나야 땡큐고.’

[X나 사악한 새끼네 진짜…….]

내가 표정 변화가 딱히 없는 편이라 그런가, 진중하고 성실한 이미지가 씌워진 것 같더라고.

이왕이면 나한테 유리하게 써먹겠다는 건데, 뭐 어떠냐.

* * *

[NLDS 1차전, LAD 4 : 0 STL]

[1회에만 3실점, 이후엔 정상 가동… 카디널스의 에이스, 초반이 아쉬웠다]

[8이닝 7K 3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2037시즌의 제리 헤이즈택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여전했다!]

[1회 초 투런포 “쾅” 데일리 MVP 클레망 파로, 후배에게 공을 넘기다! “Koo의 솔로포 이후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카디널스 감독, “우리의 에이스는 최선을 다했다. 본인 말로는 경기 초반에 생각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지나간 경기는 잊고 남은 경기에 집중할 것.”]

[LA 다저스 감독, “Koo를 비롯한 선수들이 상대 투수의 공략법을 찾아내준 덕이 컸다. 그게 뭐냐고? 우리는 다음 시즌에도 그를 상대해야 하는데 밝힐 수 있을 리가.”]

상대 투수는 머릿속이 복잡한 듯 어처구니없는 볼 배합을 이어가다가 1회에만 3점을 내줬다.

3회까지 힘겹게 막아내고 나서야 본인이 낚였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

투구 수는 늘어났지, 점수도 내줄 만큼 내줬지.

“고마워, 친구들. 누가 진짜 에이스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투수인지 저 친구한테 알려줘서.”

“뭐래, 찐따야. 가서 일찍 잠이나 자.”

“뜨끈하게 목욕도 하고, 어깨도 확실하게 풀라고.”

“술과 커피는 입에도 댈 생각하지 말고.”

올 한 해 연속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가는 동안 별 우여곡절을 다 겪었던 제리도, 예전과는 달리 포스트시즌에서도 제 모습을 유지해줬고.

물론 성격이 더 찐따 같아지긴 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2차전 선발투수로는 아이작 란드리가 등판할 예정입니다.”

정규시즌에서의 로테이션대로라면 로버트가 등판할 차례였지만.

기자들도, 전문가들도, 심지어 선수들마저도 해당 로테이션을 그대로 이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타이밍이든, 제가 필요할 때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역시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불펜행을 자처했다는 걸 밝혔고.

전날 카디널스의 패배로 더욱 독기가 오른 부시 스타디움에서의 2차전이 밝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트레이드 마감 전 트레이드로 데려온 아이작 란드리.

백업 포수에 유망주 두 명까지 보내면서, 너무 비싼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팬들도 있었지만.

아이작의 진가는 포스트시즌에서 드러났다.

“스트라이크 아웃!!”

선발 자원이 풍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풀리지 않았을 선수.

확실하게 계산이 서는 선발 투수는 포스트시즌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다.

그야말로 고비용 고효율.

“스트라이크 아웃!!!”

1이닝 3K를 포함해,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남은 이닝을 필승조가 빈틈없이 틀어막으며, 전날과 마찬가지로 카디널스 타자들이 한 점도 얻어내지 못하는 사이.

[R.H. 데이의 스윙! 이 타구는! 1루수 키를 훌쩍 넘겼습니다! 우익수가 타구를 마중 나가는 사이 2루에 있던 Koo는 3루를 돌았고! 우익수는 홈 승부를 포기!]

[Koo가 도루로 2루에 나가고, 클린업 트리오의 안타로 홈에 파고드는 모습을 이번 시즌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포스트시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디널스 배터리도 그걸 아는지 견제구를 다섯 개나 던졌는데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나는 볼넷 하나, 안타 하나로 두 개의 출루를 만들었고, 두 번 모두 도루를 성공했으며. 이는 고스란히 2점의 득점으로 이어졌다.

‘미스터 옥토버’의 신체 능력 향상이 도루에서도 아낌없이 발휘되더라고.

[NLDS 2차전, LAD 2 : 0 STL]

[두 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묶인 위기의 카디널스! 다저스 투수들의 위기 관리 능력인가, 카디널스 타자들의 결정력 부족인가?]

[LA 다저스 아이작 란드리, 7.1이닝 무실점 호투! 다저스 팬 포럼, “역대급 혜자 영입, 마이크 올리버 단장 아주 칭찬한다.”]

[LA 다저스 감독, “3차전 선발투수는 다니엘 슈미트. 긴 이닝을 소화하지는 않을 것이며, 1, 2차전에서 아낀 불펜들을 총동원할 것.”]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차전 선발 등판했던 잭을 제외한 모든 투수가 불펜에서 대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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