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117화 (117/200)

117. 가을맞이(3)

2020년대 이후, 단장의 권한이 막강한 팀이 여러 해 동안 우승반지를 차지하면서부터, 소위 ‘프런트 야구’를 표방하는 팀이 늘었고.

직장 내 알력 다툼이 대개 그렇듯, 승기를 잡은 쪽이 점점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일부 팀에서는 투수 교체를 포함한 선수 기용마저도 프런트가 고용한 ‘분석가들’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데이터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봤자 결국 플레이하는 건 선수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교감하려는 선수는 많아도, 분석가들한테 그렇게 하려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도 결국 자기들을 결과를 위한 도구 취급하는 사람들인데, 누가 먼저 다가가고 싶겠어.

아무튼 현장의 역할을 분석가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프런트와 감독이 다시 어느 정도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는 형태로 갈등이 봉합되었지만.

일부 팀에서는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어, 선수를 기용하는 데 있어 직감과 데이터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택하곤 하는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시 그중 하나였다.

‘8회 말까지 투구 수 90개. 구속도 경기 초반과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니. 계속 올려도 이상하진 않지.’

근데 이게 또, 같은 선수로서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 라는 거다.

예를 들어, 8회 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올렸던 포수 헨리는 3구 만에 내야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덕아웃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쟤는 다음 이닝 때 바꾸겠던데?”

똑같이 공 세 개로 내야 플라이를 잡아내더라도, 철저한 계산으로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 뒤 타자에게 선택을 강요한 끝에 아웃이라는 결과를 끌어낸 것과.

터무니없는 코스로 공 두 개를 던지다 선구안이 별로인 타자가 휘두른 눈먼 배트에 맞아 만들어진 아웃카운트는 분명히 다르니까.

이런 식으로, 직접 상대하는 선수로서는 흔들림의 징조를 조금 더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지만.

덕아웃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코칭스태프들이 ‘지금 안 바꾸면 X 될 것 같은데’라는 직감을 믿고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는 거지.

[9회 말 다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카디널스가 8회 말까지 마운드를 책임졌던 선발 투수를 기어이 9회에도 올렸습니다. 다만 팀의 마무리 제레미 폴센을 포함해 두 명의 투수가 준비는 이어가고 있네요.]

여기서 끊어야 할지, 계속 가야 할지. 코칭스태프들 짱구 굴러가는 소리가 이쪽 덕아웃까지 들려왔는데.

카디널스는 결국 교체를 미루는 것을 선택했다.

아까 카메라가 슬쩍 비춘 상대 덕아웃의 광경을 보고 추측하건대, 오늘 경기가 가을야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투수 본인이 간절하게 어필했고.

여기에 데이터상으로는 문제없다는 코칭스태프들의 판단이 더해져 이런 선택을 했으리라 본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우리 타자들을 완벽하게 제압한다면, 남은 시리즈에서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올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속셈도 한 스푼 첨가하고.

따아악―!

근데, 그렇게 데이터 좋아하는 양반들이 상대 팀 데이터는 왜 체크 안 했나 몰라.

우리 팀에는 평소엔 장기부상의 여파로 골골대면서도, 클러치 상황에선 거의 필승 카드나 다름없는 대타 자원이 있는데.

“yeahhh!!! 역시 9회의 남자 벤 리히터!”

“벤이 내야 안타라니! 이제 쌕쌕이로 전직하려는 거야?!”

투수 타석에 대타로 투입된 벤 리히터는, 덩칫값을 제대로 하며 빗맞았음에도 힘이 실린 땅볼 타구를 만들어냈고.

상대 3루수가 어찌저찌 포구는 했지만 그대로 넘어져 땅바닥을 구르는 사이 여유롭게 1루에 안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젠 바꾸겠지?]

‘글쎄. 난 반반으로 본다.’

야구와 포커의 공통점은, 한 번 카드를 내고 나서 승부에서 발을 빼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포커에서야 당연히 그전에 낸 판돈이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완봉승을 거뒀을 때의 분위기 반전과 마무리 투수의 어깨를 희생해야 하겠지.

아예 대놓고 장타를 얻어맞았다면 포기도 쉽겠지만, 표면상으로는 3루수의 아쉬운 플레이로 나온 내야 안타.

혹시 상대 타자의 노림수가 적중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야수들의 집중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뭐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선택을 합리화할 거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이거지.

“엥? 쟤네 지금 진심이야?”

“여기서 투수가 아니라 3루수를 바꾼다고?”

바로 저렇게.

문책성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상대의 갑작스러운 교체에 당황하는 동료들을 지나쳐,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마운드를 슬쩍 보니, 배터리끼리 뭔가 주절주절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하지?]

‘신경 꺼. 어차피 알맹이 있는 얘기는 아닐 거니까.’

저기서 포수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정해져 있다.

방금 그건 3루수가 뻘짓해서 놓친 거다. 네 포심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이번 타자한테 안타 맞았던 건 변화구로 카운트 잡으려다 당한 거니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자 등등등.

어차피 투수 자신감 회복이 목적이니까, 듣기 좋은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는 거다.

‘근데 지금은 그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포수가 의도한 대로 자신감이 충전되어 봤자,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페이스가 돌아오지는 않고.

반대로 방금 안타가 정말로 야수들 때문에 나왔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면, 삼진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자꾸 힘이 들어갈 거다.

어느 쪽이든 투수한테는 악재나 마찬가지였고.

“베이스 온 볼스!”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코너웍에 집착하며 던진 네 개의 포심이 연달아 빠져나갔는데, 선구안이 좋은 조지는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스트레이트 볼넷.

“투수 교체하겠습니다.”

결국 한발 늦게 마운드를 교체하는 카디널스.

처음 안타를 맞자마자 바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원래 한 번 넣은 판돈을 되찾는 방법은 승부에서 이기는 것뿐.

카디널스는 그 승부에서 졌고, 이젠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상위 타선을 상대하는 것으로.

[카디널스의 마무리 투수, 제레미 폴센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올해 정규시즌 ERA 2.46에 38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블론세이브는 고작 4개. 다만 커리어 통산 포스트시즌 등판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마운드의 주인은 바뀌었고, 이제 막 TV 중계를 켠 사람이라면 가족한테 우환이라도 생겼나 걱정할 법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발 투수한테 볼일은 없다.

새로 올라온 투수를 보며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

‘저놈이 나를 거를까, 말까?’

제레미 폴센은 롱릴리프에서 셋업맨, 프라이머리 셋업맨, 그리고 마무리까지.

순수 중간계투의 전형적인 출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올해로 3번째의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있는 좌완 파워 피처.

포심, 커터, 슬라이더 중에서 좌타자 상대로는 커터를 결정구로 던지며, 제법 잘 먹히는지 좌타자한테 피안타율이 2할 2푼인가 그럴 거다.

“볼!”

초구는 바깥쪽 애매한 코스에 틀어박히는 포심.

포수는 주심한테 들어온 거 맞느냐고 묻고, 투수는 고개를 치켜들어 괜히 하늘을 한 번 쳐다본다.

어디서 약을 팔아. 다저스 투수들도 비슷한 코스에 똑같은 판정을 받았는데.

어쨌든 배터리의 의향은 알겠다.

‘거르진 않겠다 이거지.’

아무리 내가 클러치 상황에 강하다지만, 굳이 오늘 타격감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좌타자이기까지 한 나를 거르고 우타자인 켄과 무사 만루에서 승부할 필요까진 없다고 봤겠지.

만약 다음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는다면, 결정구로 쓰는 커터로 카운트 싸움의 우위를 점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몸으로 말해요’가 다음 공은 몸쪽으로 온다는 강렬한 직감을 보내왔고.

“볼!”

배트를 멈추는 데 그리 큰 힘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척하며 몸쪽으로 꺾이는 게 아닌, 몸쪽으로 들어오려다 더 깊게 들어오며, 포수가 몸을 던지게 만드는 공.

투수는 다시 공을 건네받더니, 투구에 들어가기 전 멈칫하며 땀을 찍어냈다.

‘멘탈 터졌네.’

포스트시즌 첫 등판이라는 것 자체가 투수로서는 엄청난 부담인데, 심지어 무사 1, 2루의 위기 상황.

게다가 초구부터 판정의 도움을 받지 못했으니, 가뜩이나 제구가 까다로운 커터가 말을 듣지 않았던 거지.

[예전 포스트시즌 때 제리가 난타당했던 것도 지금이랑 비슷한 상황 아닌가?]

‘그치. 그때 너 비행기 안에서 굳이굳이 담요 들추고 아 유 크라잉? 이 X랄했잖아.’

[아니, 그땐 내가 영어가 서툴러서 그랬던 거고…….]

조용히 다시 덮어줄 생각은 안 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인성에 하자 있다는 거 드러낸 건데.

아무튼, 결정구로 커터를 던지는 투수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멘탈이 연쇄적으로 갈려 나가기가 쉽다는 것.

원래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기가 가장 믿을 수 있는 공마저 제대로 컨트롤이 안 되니 수습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베테랑이었으면 투구 수 늘어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바깥쪽을 공략해가며 차근차근 영점을 잡았겠지.’

근데 저 투수는 올해 고작 풀타임 3년 차.

게다가 바깥쪽 존은 짜디짠 주심.

포수가 잠시 마운드에 다녀오긴 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던 듯 계속 머뭇거리던 투수는,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쐐애애액!

내가 커터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 기도하듯, 비슷한 코스로 포심을 던지는 것.

따아아아아아아아악―!

빠져도 상관없다는 각오 없이 던지는 몸쪽 패스트볼은, 나에게 그냥 배팅볼이나 다름없다는 데이터가 분명 있었을 텐데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외야수들이 담장 쪽으로 달려갔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벽에 기댄 채 고개를 떨구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Koo!!! Koo!!! Koo!!! Koo!!!”

“끝내기야!!! 끝내기라고!!! X발 다저스의 유격수가 끝내기 홈런을 쳤다고!!!”

“우리는 간다, 새대가리 놈들아!!! 어디로?! 챔피언십으로!!!”

포스트시즌에서는 지급되는 포인트가 더욱 후한 듯, 끝내기 홈런 한 방에 500포인트가 지급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경기가 끝난 그 순간, 그라운드로 뛰쳐나온 선수들에게서 음료수 폭격이 쏟아지는 바람에, 그걸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내내 끌려가던 경기에서 홈런 한 방으로 3대 2 역전승.

컨텐더 팀이 목숨 걸고 홈런 타자를 끌어모으는 이유를 증명한 경기였다.

* * *

포스트시즌의 다음 단계 진출이 확정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통과 의례, 샴페인 파티.

9회에 주자들이 나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준비했는지 조금 미지근했고 뚜껑은 전부 닫혀 있었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끝내기를 치고도 그냥 넘어가려던 건 아니겠지?!”

“야! Koo 도망 못 가게 팔다리 다 잡아! 묶을 거 있으면 좀 가져오고!”

“콩팥이 제 역할을 못 할 때까지 처먹일 테다!!!”

다저스의 열세를 점쳤던 전문가들에게 또다시 한 방 먹이게 된 기쁨이 어지간히도 컸던 걸까.

다들 눈이 뒤집힌 게, 저것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샴페인 디스펜서지.

“그러고 보니 필리스랑 브레이브스는 어떻게 됐대?”

“필리스가 이겼어! 이제 2대 1이야!”

“그럼 내일은 브레이브스가 이겼으면 좋겠네! 모레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어! 어차피 우리가 씹어먹을 거니까!!”

솔직히 아예 상관없는 건 아니지.

필리스가 이기면 우리가 필라델피아로 가야 하는데.

게다가 거기 가면 크리스토퍼가 능글맞게 웃으며 개소리 지껄일 텐데, 생각만 해도…… 어우, 깝깝해.

[고생했다. 들어가자마자 스트레칭만 하고 바로 자라.]

‘그래야지. 오늘은 도아도 레포트 쓰느라 바쁘니까.’

[뭐야. 안 바빴으면 뭐 하려고.]

‘어, 차 왔다. 얼른 가봐야지.’

[이 새끼가 이제 그냥 사람 말을 무시하네?]

샴페인 파티에, 데일리 MVP 인터뷰에, 한국 언론 상대 인터뷰까지.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을 다저 스타디움에 머무르다가 겨우겨우 빠져나왔더니.

에이전시 로고가 새겨진 차 한 대가 선수용 출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빠, 고생했어!”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나서 신나게 차를 몰고 돌아가면 빼도 박도 못하고 음주운전이니.

가족과 함께 돌아가거나 에이전시에서 차를 보내는 게 보통인데.

오늘 마중 나온 사람은, 애쉬튼 베이스볼 에이전시와 제휴를 맺은 개인 가이드이자 도아의 대학 선배였다.

“구현기 선수 집 먼저 들러서 내려드리면 되겠죠?”

“아, 네. 부탁드릴게요.”

이미 안면도 있고. 포스트시즌 홈 경기 예매는 전부 성공했다고 하니. 경기도 볼 겸 해서 나랑 도아를 데려다주기로 에이전시와 이야기가 된 것.

자칭 다저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이 여자는, 친한 동생이랑 야구도 보고 돈까지 버는 최고의 기회라면서 곧장 수락했다고 하는데.

“구현기 선수, 번번이 죄송하지만 혹시 오늘도 운전하면서 울어도 괜찮을까요?”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저를 태우고 다닐 때마다 왜 자꾸 우시는 거예요?”

[아니 애초에 허락은 왜 받는 거야?]

열렬한 야구팬들이 대체로 그렇듯,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가이드는 내버려 두고.

도아의 손을 잡은 채, 끝내기 홈런에 대한 감상을 흥분한 채 떠들어 대는 걸 가만히 들어줬다.

[도착하면 불러라…….]

본인 동생이랑 내가 조금만 들러붙어도 질색팔색을 하며 도망가는 박도현은 아예 차 트렁크로 기어들어가더니, 도착할 때까지 안 나오더라.

아무튼.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대문 앞에 차가 멈추었고.

“갈게. 내일 보자.”

“응. 내일도 훈련은 나가는 거지?”

“그치. 자율 출근이라서 그냥 오전에 잠깐…….”

한 손에 짐을 챙겨 들고, 다른 한 손은 도아의 손을 부여잡은 채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번쩍!

한순간 차창 너머에서 쏟아진 빛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가로수 뒤편에서 불쑥 튀어나와 있는 렌즈.

거참, 직업 정신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오늘 같은 날 야구도 못 보고 이런 데서 고생하시네.

“오빠, 저거는 혹시…….”

“파파라치야. 전에 얘기했던 그…….”

“아.”

마주 잡고 있지 않은 반대편 손이 아주 잠깐 달싹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손에 든 짐을 전부 내려놓고, 도아의 가녀린 몸을 가볍게 안으면서 입을 맞췄다.

떨림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길 바라면서.

“괜찮아. 내가 너 책임질게.”

메이저리거의, 특히나 가십거리가 넘쳐나는 LA에서 뛰는 선수의 여자친구.

갓 스물이 된 여자애한테는 버거운 관심이 쏟아질지도 모르겠지만.

절대로 떠나지 않고 항상 옆에 있겠다는 각오를 담아 그렇게 말했고.

“응, 믿을게.”

내 소중한 사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 * *

멀어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다가, 뒤를 돌아보니.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도현과,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는 파파라치가 있었다.

[궨췌네~ 눼게 눼 췌궴젤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좀 전에 내가 한 말을 따라 하는 박도현을 가볍게 무시하고.

가로수 뒤편에 서 있는 파파라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아, Koo. 수고는요. 이게 제 일인데요.”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현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곧이어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를 남기고 파파라치는 돌아가 버렸다.

[진짜 사진만 딱 찍고 집에 가는 거야? 일 참 편하겠다.]

‘저 사람 몸값 엄청 비쌀걸? 지금 같은 밤에도 구도 잡는 게 예술이라 부르는 게 값이래.’

파파라치가 사생활 침해의 주범 취급받던 것도 다 옛날 일이다.

스타들이랑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 지가 언젠데.

아마 내일, 아니 오늘 아침이 밝아오기 전부터 지금 찍은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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