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We are the Champion(1)
[LA 다저스 구현기, 자택 근처에서 일반인 여성과의 밀회 장면 포착! (Photo)]
└ 아니 인생 지 혼자 사나? 그냥 차 안에 있는 모습 찍은 건데 무슨 멜로영화 스틸컷인 줄;;
└ ㄹㅇ 옆에 가로등 조명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듯
└ 여자 얼굴 잘 안 보이긴 한데 일단 피지컬부터 넘사넹
[‘열애설’ 구현기의 반쪽은 누구? 네티즌 ‘갑론을박’]
└ 아니 누군지 벌써 나왔음? 사진 퍼진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 일반인이라 신상 언급하기 좀 그런데…… 선수 가족임. 올해 좀 떠들썩했던 사람 있잖아.
└ 올해 떠들썩했던 거? 대선 얘기임?
└ 너는 어지간하면 컴퓨터 켜지 마라
└ 구현기가 대선후보랑 사귀었겠니?
[Koo, 시원스레 열애 인정! 전날엔 역전포 “쾅” 오늘은 여성팬 가슴에 대못을 “쾅”]
└ 기자 라임 좀 치는데? 래퍼 지망생이었나?
└ 보니까 여자 기자인 것 같은데, 본인이 느낀 실망감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도 되는 건가?
└ 근데 생각보다 놀랍지는 않다. 이미 같이 찍힌 사진이 퍼졌을 때 예방주사를 맞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 Koo라면 연애한다고 해서 야구에 소홀해지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야구 바보가 여기 말고 어딜 가겠어.
└ 정답! 리글리 필드!
└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고 끼어들어, 이 컵빠 새끼야.
[“Park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겐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당당하게 맞선 Koo, “우리는 부끄러움 없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관계에서 내가 부끄러운 건 하이스쿨 졸업 이후 첫 연애라는 것뿐이다.”]
└ 기자 이 XX놈이 돌았나? 선 제대로 넘네?
└ 이 기레기 놈 전부터 거슬렸는데, 다저스에서 앞으로 블랙리스트 올린단다.
└ 근데 그 나이에 하이스쿨 이후 첫 연애라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맞긴 해.
└ 저 핫가이가 저 정도로 쑥맥이었다고? 미래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진실을 묻어둔 건 아닐까?
└ 아마 진짜일 거야. 나는 Koo랑 싱글 A에서 아주 잠깐 같이 뛰었던 사람인데, 진짜 야구밖에 모르는 놈이었으니까. 한번은 어쩌다 한번 Koo가 펍에서 한잔하는 자리에 따라왔는데, 제법 반반한 동네 여자가 치근덕대더군. 근데 그놈은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으로 출구를 가리키더라니까!
‘아니, 그건 그냥 그때 영어 잘 몰라서 그랬던 건데…….’
[한국에서 하던 대로 대뜸 가운뎃손가락부터 안 올린 게 용하다.]
예상은 했었지만,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기사들.
어쩌다 보니 마이너 시절 흑역사까지도 실시간으로 폭로되고 있다.
‘각오했던 것보다도 파장이 훨씬 큰데?’
오늘 오전 다저 스타디움의 출근길이 떠올라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그냥 자율 훈련을 하러 갔을 뿐인데, 무슨 청문회 수준으로 기자들이 쫙 깔려 있어서 빠져나오는 데 한참 걸렸다.
물론 기자들이 나한테 달라붙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
일반인인 도아한테 취재하겠답시고 접근하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구단에서 선수 가족한테 사적으로 접근하는 놈들은 칼같이 끊어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적어도 다저 스타디움 밖에선 괜찮을 거야.]
기자들을 지나 라커룸에 입성하고 나니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니 연애하는 걸 기자들 통해서 알아야겠냐?!”
“둘이 만날 거면 들키지라도 말던가!”
“전날 우리가 사리 분별도 못 할 정도로 샴페인을 퍼먹여서 그랬나? 그럼 미안하고!”
사람 놀려먹을 구실만 생기면 집요하게 달라붙는 동료들을 피해 그라운드로 도망쳤더니.
폴투폴 러닝을 끝내고 어슬렁거리던 제리와 마주쳤다.
“축하해, Koo.”
“어, 응……. 근데 어제 잘 못 잤냐?”
“아니? 푹 잤어. 컨디션 너무 좋은걸?”
근데 왜 하룻밤 만에 사람이 동태눈깔이 됐어.
설마 내가 오랫동안 연애 안 했다고 자기랑 동류인 줄 알았던 건가.
‘괜히 다음 경기 때 영향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시즌 끝나면 박도아 친구라도 한 명 소개해 줘봐.]
‘이제 신입생인 애 학교생활 망칠 일 있냐?’
두 시간 정도 가볍게 훈련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서 빈둥대며 기사를 체크하는 중.
보통은 클럽하우스에서 함께 다른 팀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고 가는 게 관례지만, 여자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하니 프리패스로 보내주더라.
물론 지금 도아는 내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전날 밤새 레포트를 완성한 뒤 토론 수업 두 개를 연달아 듣고 장렬히 전사했지.
[그러고 보니, 박도아랑 사귄다는 건 왜 지금 공개한 거야? 원래는 진짜로 포스트시즌까지 다 끝내고 밝히려고 했다며.]
연애 사실 공개는 피할 수 없는 숙제나 마찬가지였는데, 에이전시와 도아 본인과의 협의를 통해 그 시점을 약간 앞당겼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공개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가 생각보다 일찍 해결됐기 때문이다.
박도현네 가족들에 대한 악의적인 저격 기사를 양산하며 도아에게 스트레스를 줬던 기자 놈이 검거된 것.
[前 스포츠 기자, 온라인서 여론조작 시도하다 덜미… 일반인 신상정보 유출 의혹도]
└ 이사람 ㅅㅍㅊㅁㅎ ㅇㅈㅅ 기자라던데. 일반인한테 손대는 건 ㄹㅇ 선 넘은 건데 꼴 좋네.
└ 누구임? 스포츠문화 홈페이지 들어가봤는데 ㅇㅈㅅ이란 사람은 없던데?
└ 이사람 이미 예저녁에 짤림 ㅋㅋㅋ LA 파견 나가서 개소리했다가 다저스한테 입구컷 당해서 ㅋㅋㅋ (링크)
└ 엌ㅋㅋㅋㅋ
사실 나한테 별로 좋은 감정 없는 기자들이 많아서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워낙 집요하게 물어뜯다 보니 나오긴 나오더라.
이번 시즌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직전, 나한테 박도현 운운하는 저질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개망신당한 뒤 구단에 찍혀 밥줄까지 끊겼던 이재상 기자.
물론 기사에는 ‘모 언론인’ 정도로만 언급됐는데, 이미 악질 기레기라는 낙인과 함께 신상이 쫙 퍼졌다.
뭐 본인이야 언론 탄압이니 뭐니 길길이 날뛰긴 했는데, 회사에서 짤린 마당에 더는 언론인도 아닐뿐더러.
나머진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들이 대응할 테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고.
시범 케이스로 조져지는 걸 봤으니, 이제 다른 기자들도 함부로 허튼수작을 부리긴 어려울 거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크리스토퍼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해서.’
[아. 그랬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전 유격수 크리스토퍼 엘리엇.
계약금을 왕창 깎아가면서까지 함께하려던 다저스에게 일방적으로 트레이드당한 뒤 악질 다저스 안티로 돌아선 놈이지만, 묘하게 나한테는 친절했는데.
알고 보니 교통사고로 나랑 박도현의 영혼이 뒤바뀌었다는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고 있어서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힐 거,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타이밍에 밝히는 게 좋잖아?’
[인생 겁나 계산적으로 사는 새끼…….]
일단 오늘 경기에서 브레이브스가 이기면, 어느 팀이 챔피언십시리즈로 올라오든 5경기로 풀 세트를 치르게 되니 체력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속셈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를 엿먹이고 싶은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고.
‘아니 사람 말을 들어 처먹질 않잖아.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나=박도현’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는 놈한테, 그 여동생과의 열애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경기가 시작되는 오후 4시까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려봤지만, 평소 귀찮을 정도로 SNS 메시지를 보내오는 놈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도 딱히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고, 그대로 시작된 필리스 대 브레이브스의 NLDS 4차전.
“흐아아아암. 오빠 안녕. 경기 시작했어?”
“응. 지금 막 국민의례 끝났어.”
낮잠에서 깨어난 도아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는데.
1회 말 필리스의 수비에서부터 크리스토퍼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쟤 왜 저걸 지켜만 봐?”
물론 절대로 처리하기 쉬운 타구는 아닌데, 적어도 주자 1, 2루 상황이라면 잡아보려고 시도는 해 봤어야 할 타구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크리스토퍼.
적어도 저게 필리스 팬들이 작년 골드 글러브 유격수한테 기대하는 모습은 아닐 거다.
“스트라이크 아웃!”
2회 초 공격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스윙으로 한가운데 변화구를 파울로 만들더니, 맥없는 루킹 삼진으로 물러나질 않나.
[이 타구는 유격수 정면…… 아앗! 크리스토퍼 엘리엇이 공을 한 번에 빼지 못했습니다! 타자 주자 세이프! 3루 주자 홈인하면서 스코어 3대 0! 필리스 입장에선 하필이면 또 주자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네요!]
바로 다음 수비에서는 추가 실점의 빌미가 되는 실책을 저지르는 등, 경기 내내 엑스맨 역할을 제대로 한 끝에.
[아, 5회 초 공격에서 필리스가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오늘 경기 내내 컨디션 저하를 보였던 유격수 크리스토퍼 엘리엇의 타석에서 대타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내야 유틸리티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오늘 경기에서의 역할을 마무리했고.
정규시즌 내내 주전 유격수가 고정되는 바람에 유격수 수비를 소화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교체 선수는, 크리스토퍼가 내야진에 뚫어놓은 구멍을 더 넓히면서.
가뜩이나 포스트시즌이라 예민해진 투수들의 멘탈을 개박살내고 말았다.
[PHI 1 : 6 ATL]
“크리스토퍼 저 인간 이상한 약이라도 빨았나? 아니면 꼭 먹어야 하는 약을 안 먹어서 저러나?”
경기 내내 졸전을 선보인 필리스를 향한 도아의 한줄평.
솔직히 나도 상상 이상의 결과에 당혹스러웠다.
바로 전날 경기까지만 해도 멀티 히트까지 치면서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인간이 하룻밤 사이 저렇게 됐다는 게.
[? ― 크리스토퍼 엘리엇]
경기가 끝나고 한참 뒤, 크리스토퍼에게서 메시지가 와서 확인해보니 물음표 하나만 찍혀 있었다.
‘개무서운데? 차단할까?’
[이거 차단했다간 직접 찾아오는 거 아니냐?]
어쨌든, 필리스가 4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무대를 옮기게 된 두 팀.
이동일을 겸한 하루의 휴일, 팀에서 홈런도 가장 많이 쳤고 발도 가장 넓은 R.H.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Koo.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 전에 필리스가 LA로 왔을 때 둘이 따로 식사한 적 있잖아. 그때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예? 그게 무슨…….”
[아니, 필리스에 있는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크리스토퍼 그놈이 맛이 좀 간 것 같대. 무슨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도 않고 Koo가 어쩌니, Park이 어쩌니 중얼거리기만 한다나?]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살면 저런 꼬라지가 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아무튼, 시티즌스 뱅크 파크로 돌아온 크리스토퍼는 처음 소식을 접했던 애틀란타에서보다는 그래도 좀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다.
실책도 안 저지르고.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는 뜬공으로 희생플라이 타점도 하나 올리는 등. 그래도 공수 양면에서 구멍은 안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감각을 날카롭게 끌어올리는 포스트시즌에서, 팀의 중심 타자가 그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곤란했고.
[ATL 4 : 3 PHI]
정말이지 한끗 차이로 5차전에서 승리를 차지하면서.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내셔널리그의 챔피언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
[?? ― 크리스토퍼 엘리엇]
그리고 그날 밤, 크리스토퍼가 내게 보내온 메시지였다.
‘얘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설마 하루 지날 때마다 물음표가 하나씩 늘어나는 시스템은 아니겠지?]
결국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미안하지만 차단하기로 했다
나중에 월드시리즈까지 끝나고 나서 보든가 하자고.
* * *
[MLB.com,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승부예측 발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6표 VS LA 다저스 49표]
지난 디비전시리즈 때와는 달리,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표 차이로 지지를 받게 된 다저스였다.
이유야 뭐 뻔했지. 체력 이슈나, 정규시즌 때의 상대전적 등등.
“야구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고민하는 다수의 패널을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번에는 전문가 자격이 없다느니 하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감독님은 손바닥 뒤집듯 태세전환을 시전했고.
“크리스토퍼 그놈 디비전시리즈 치르기 전에 인터뷰했던 거 기억하는 사람!”
“다저스가 올라오면 월드시리즈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겠다던 그거?!”
“그건 우리가 할 말 아닌가?! 크리스토퍼 그놈 하는 꼬라지 보니까 필리스 올라왔으면 개꿀이겠던데!”
“이번 포스트시즌은 11연승으로 깔끔하게 끝내자고!”
다저스 선수들도 신나게 기세를 끌어올렸다.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필라델피아로 이동할 필요 없이, LA에 계속 머무르며 다음 시리즈를 준비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얻었으니까.
게다가 1차전 선발로 이번 시즌 극강의 컨디션을 선보였던 제리가 등판할 예정이기도 했고.
그렇게 기세등등한 다저스 선수들이 홈에서 브레이브스를 맞이해 치른 1차전.
[ATL 5 : 4 LAD]
다저스는 거짓말처럼 패배를 당했다.
11연승은 무슨. 설레발칠 때부터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