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천재 타자-150화 (150/200)

< 150. 두 번째 개막전(4) >

[LA 다저스, 개막전부터 10대 0 셧아웃!]

[‘7이닝 무실점’ 제리 헤이즈택, ‘멀티 홈런’ 구현기··· 대형 연장계약 듀오 나란히 대활약, “이 맛에 돈 쓴다!”]

[명실상부 에이스로서의 첫 경기 성공적으로 마친 제리 헤이즈택, “클라라와 샬럿,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오늘 경기를 바치고 싶다.”]

[다저스 오브라이언 감독, “샬럿은 작년에 태어난 제리의 조카 이름이다. 그 친구는 가끔 흥분하면 꼭 필요한 설명을 빼먹을 때가 있으니 양해 바란다.”]

[파드리스 신임 감독 제임스 스탈링,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았던 선수들에게 칭찬을 보내고 싶다. 집중력 있는 플레이가 이어진다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2타수 2안타 2홈런 2볼넷’ Koo, 파드리스와의 뜻밖의 인연 털어놓다! “지난 시즌 피터 콜린스와 따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들었던 격려와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파드리스 캡틴 피터 콜린스, “내가 그랬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 * *

기나긴 겨울을 견디고, 시범경기로 갈증을 채우던 야구팬들에게 마침내 찾아온 개막전이라는 단비.

티켓팅에 실패한 팬들은 눈물을 삼키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 중계를 틀었지만.

시차로 인해 경기 시작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응원팀이 초반부터 탈탈 털리며 볼 맛이 뚝 떨어지는 등 피치 못할 사유로 다른 팀 경기로 채널을 돌리는 팬들도 적지 않았고.

[다저스 경기 아직 안 끝났냐?]

그런 팬들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팀이 바로 다저스였다.

[솔직히 4억 유격수가 나온다는데 우리 팀 경기 보는 게 대수임?]

└ 맞아. 나도 궁금해서 못 견디겠더라. 우리 팀이야 어차피 질 게 뻔한데 어디 4억 달러짜리 타자님 방망이 솜씨나 보자고.

└ 무슨 개막전부터 그리 초 치는 소리나 하냐? 너희 팀은 어딘데 그래?

└ 돛대부터 조종간까지 죄다 뽑아다가 팔아먹고 몸뚱이만 덜렁 남은 해적선에서 비상탈출 좀 했다. 불만 있냐?

└ 아······. 힘내······.

└ 그, 작년에 파이리츠에서 괜찮게 던지던 휴이 킴이 우리한테 왔거든? 오늘 나올지도 모르니까 구경 한번 해볼래?

이번 오프 시즌 동안 대형 계약을 맺은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두 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경기.

자기 팀에 대한 기대감이 아예 없거나, 특정 팀을 응원하기보다는 흥밋거리를 찾아 이 팀 저 팀 기웃거리는 팬들의 시선 역시 자연스레 이쪽으로 쏠렸다.

이렇듯 사람들이 다저스 경기를 튼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그들 대부분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면서,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구현기를 지켜봤다는 것.

표면적인 이유는 왕관을 쓴 만큼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속으로는 영영 못 먹게 되어버린 저 포도가 사실은 엄청나게 시큼할 거라고 투덜대는 여우 한 마리를 품은 채로.

[Koo, 파드리스와의 개막전에서 멀티 홈런 ‘쾅!’ 4억 유격수의 묵직한 한 방 선보이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구현기는 2타수 2안타 2홈런 2볼넷이라는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불순한 생각을 품고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은근슬쩍 팔짱을 풀고 딴청을 피웠으며.

헛스윙이나 파울이 나오기라도 하면 쏟아지는 조롱들을 신고하기 바빴던 다저스 팬들은, 그들의 본거지인 팬 포럼으로 돌아가 프런트의 안목을 칭송하며 축배의 잔을 나눴다.

[(속보) Koo, 이번 시즌 324홈런 페이스]

└ 좀 보수적으로 잡았네

└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보수가 다 얼어 죽었냐?

└ 파드리스 팬 한 명 검거했습니다. 빨리빨리 신고들 넣으세요.

└ 솔직히 Koo가 저렇게 미쳤는데 우리라고 좀 미치면 어때?

개막전을 대승으로 장식하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팬 포럼을 떠들썩하게 달구던 다저스 팬들이었지만.

뜬금없이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글 하나가 메인에 올라왔다.

[오늘 경기는 정말 모든 게 완벽했어. 다만 찾아볼 수 없었던 게 두 가지 있었지.]

1. 올해 시범경기에서 4경기 무실점 기록한 ‘투수’ Koo

2. 카일 캠프

└ 엌ㅋㅋㅋㅋㅋㅋㅋ

└ 카일 그 자식 울겠다. 자기 이름 맨날 검색한다고 지 입으로 말했던 놈인데.

└ 양심이 있으면 그 새끼가 여기에 오겠냐? 지가 다저스한테 끼친 민폐가 얼만데.

└ 있을 것 같음?

└ 아니;

이미 두 자릿수 점수 차를 기록한 경기 후반, 양 팀의 주전 선수들이 대거 교체되는 와중에도 끝내 벤치만 달궜던 카일 캠프를 비웃는 와중에.

[근데 Koo가 마운드에 안 올라간 건 나도 좀 의외긴 해. 상황이 딱 맞았잖아?]

└ 물론 가비지 이닝만 맡기기는 좀 아쉽지. 포스트시즌에서도 잘 던졌고.

└ 그렇다고 진짜 시범경기 때처럼 빡센 상황에 올리기도 그렇잖아?

과연 오브라이언 감독이 ‘투수’ 구현기를 어느 상황에 써먹으려는 건지, 그 의중을 두고 갑론을박하던 팬들.

[SD 0 : 5 LAD]

그리고 다음날.

카일 캠프는 여전히 벤치에만 앉아 있었고.

구현기는 경기 후반 안타를 치고 나서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큰 점수 차로 승리를 가져온 2차전에서도. 게시물에서 언급된 두 가지는 끝내 찾아볼 수 없었다.

* * *

파드리스와의 개막 3연전 마지막 경기.

다저스는 앞선 1차전과 2차전에서 모두 승리를 가져오며 개막 2연승을 질주했고, 자연스럽게 파드리스는 2연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축 처진 가운데.

경기를 앞두고 발표된 선발 라인업에서, 파드리스 타선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어제 안타 친 선수도 뺐는데? 설마 진짜 태도만 보고 결정한 건가?]

아직은 시즌 초반이니 주전이니 후보니 나누는 것도 민망하긴 하지만, 어쨌든 경력이나 연봉 면에서 앞서 있던 선수 여럿을 벤치에 앉힌 파드리스.

‘아마 진짜일걸. 작년에 허수아비 감독 데려다가 그렇게 꼬라박았는데, 올해는 감독한테 권한을 줬겠지.’

이름을 일일이 늘어놓지만 않았을 뿐, 경기 후반 집중력을 잃어버렸던 선수들을 에둘러 비판했던 파드리스의 새 감독 제임스 스탈링.

지도자로 나름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고, 함께해온 선수들에게 평판도 좋았던 저 양반이 유독 강조하는 게 투지랑 팀 스피릿인데.

그러니까 연봉으로 얼마가 나가든, 투지도 팀 스피릿도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카일이 벤치만 달구는 건 당연한 거다.

‘근데 사실 카일도 기회를 영영 못 받진 않을 거야. 지금 쟤네 유격수 수비가 워낙 개판이라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2경기 4실책은 선 넘긴 했지. 시범경기도 아니고.]

그렇게 박도현과 떠들면서 클럽하우스를 거닐던 도중.

전날 선발 등판해서 가볍게 노디시전을 기록한 다니엘과 마주쳤다.

아슬아슬하게 승리투수를 놓치고 난 다음 날이면 늘 그랬듯, 썩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표정으로.

“오, 이게 누구야. 경기 초반에 삼진만 두 번 당하더니 나 내려가자마자 바로 홈런 날려버린 2번 타자 Koo 아냐?”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짚이는 거라곤 다니엘이 5회 초를 마치고 내려간 직후, 5회 말 공격에서 타자들이 우르르 3점을 얻어낸 것밖에 없는데.

[얘 설마 만나는 타자들마다 죄다 이런 식으로 말 걸고 다녔나?]

‘어쩐지 말릭이랑 랜디가 좀 시무룩한 것 같더라니.’

솔직히 어제 경기에서 내가 걔네들처럼 아무것도 못 했다면 양심이라도 찔렸을 텐데.

지 승리투수 못 만들어줬다고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안녕, 2회 초까지 공 50개 넘게 던지면서 야수들 개고생시키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면서 5이닝 겨우겨우 막고 내려온 다니엘. 무슨 일 있어?”

“······아냐, 아무것도.”

괜히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은 다니엘이 울상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고작 이 정도로 찔리길 바랐나. 난 작년에 제리 퍼펙트게임 때 1점도 못 내서 연장 갈 뻔했을 때도 기 안 죽었는데.’

[그땐 분위기 봐서라도 기 좀 죽지 그랬냐?]

아무튼.

선발 로테이션에서 로버트와 아이작이 빠져나가면서 다저스는 에이스 제리를 제외한 새로운 순서를 구상해야 했고.

결국 작년 성적과 시범경기에서의 컨디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제리―다니엘―호세―아드리안―모리츠의 5인 로테이션으로 잠정 결정됐다.

2선발부터 4선발까지는 사실상 기량보다는 좌우 투수를 적절히 섞어놓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늘 선발 호세도 승운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작년,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1실점을 하고도 노디시전에 그쳤던 것만 봐도 그렇고.

물론 그때는 디백스 불펜이 좀 심각한 상태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쨌든 작년 내내 성적에 비해 승운은 그닥이었던 호세.

아니나 다를까, 3차전의 흐름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한테도, 그리고 다저스한테도.

따아아아악―!

“아웃!”

첫 번째 타석에서는 타이밍이 아주 살짝 어그러지면서 힘이 덜 실린 타구를, 작년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던 상대 중견수가 펜스에 몸을 부딪쳐 가며 잡아냈고.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두 번째 타석은, 3루 주자를 홈으로 보내기 위한 큰 타구를 만들려다가, 오늘따라 긁히는 날인 듯한 투수의 디셉션에 속아 넘어가며 헛스윙 삼진.

“타자 1루로!”

그리고 2사 2루에서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서는, 파드리스 벤치에서 1루를 채우는 선택을 하며 배트는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SD 2 : 2 LAD]

그나마 다른 선수들의 분전으로 어떻게든 점수를 짜내고, 선발 호세 역시 7이닝을 2실점으로 버텨주면서, 동점 상황에서 맞이한 8회 초 수비.

‘여기서 조쉬를 올리네.’

상대 타선에 좌타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고든 대신 좌완인 조쉬를 선택한 감독님.

그러나, 개막 3연전 스윕승이 걸려 있는 경기에서의 동점 상황은, 이제 막 2년 차를 맞이한 조쉬에게는 너무 가혹했던 걸까.

“Koo. 준비는 됐나?”

1사 주자 1, 3루.

마운드로 올라온 투수 코치는 조쉬의 어깨를 다독이는 한편, 옆에 서 있던 나를 향해 물었고.

“네. 바로 올라가도 상관없습니다.”

올해 정규시즌 투수로서의 첫 임무.

10점 차로 끝났던 개막전도, 5점 차로 끝난 어제 경기도 아닌. 역전 주자를 홈베이스 바로 앞에 둔 위기 상황에서의 등판이었지만.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 내야수 카일 캠프.

전 소속팀 다저스에서 뛸 때, 정확히 말하자면 박도현의 사망 이후 그의 이름에는 항상 ‘주전 유격수’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연봉이 많아서 방출하지도 못하고 트레이드로 보내지도 못하는, 덕아웃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존재.

개막 이후 지금까지 10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실책도 총 다섯 개나 저지른 유격수한테도 밀리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카일, 준비해라.”

“예, 예······!”

8회 초 공격, 1사 1, 3루의 기회.

여러 명의 대타 카드를 놓고 만지작거리던 감독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할 수 있어. 아니, 해야 돼.’

그는 고집이 세고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최소한의 이성은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질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대타 투입 지시를 받고, 스윙 연습을 이어가는 동안.

다저스 투수 코치가 위기를 자청한 투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교체인가?’

카일은 개인적으로 교체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다저스가 낼 수 있는 카드들 중에서는, 저 투수가 그나마 만만한 편에 속했으니까.

자신의 트레이드 칩으로 다저스에 가더니 불펜에서 쏠쏠하게 활약하면서, 안 그래도 별로였던 여론에 기름을 부어댔던 선수.

저놈과의 중요한 승부처에서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지금의 지옥 같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은 채 기다리던 카일이었지만.

“어······?”

투수가 코치에게 공을 넘겼지만, 불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운드 옆에 서 있던 구현기가 공을 이어받은 뒤, 손에 로진을 바르며 연습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부상으로 이탈한 동안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해버리더니, 끝내 트레이드를 당하도록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적 후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에서 자신을 사정없이 두들겨 팬 그놈이.

“어······.”

그러나 막상 마운드 위의 구현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주 잠깐 치솟았던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그라들었고. 맹수를 마주한 것처럼 그의 등짝이 식은땀으로 젖어들기 시작했으며.

“스트라이크 아웃!!!”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판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방망이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선 채로 삼구삼진.

“뭐 해? 할 말이라도 남았냐?”

주심의 이상한 눈초리와 포수의 핀잔에 못 이겨, 카일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딱!

“아웃!”

이어지는 타자가 초구에 방망이를 냈다가 아웃당하면서, 고작 4구 만에 이닝을 정리해버린 구현기.

고개를 숙인 채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카일은, 혹시 모를 기대를 담아 감독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

눈을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질 기회가 더는 없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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