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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21화- 외톨이 변경백 호른 (2) (22/130)



〈 22화 〉21화- 외톨이 변경백 호른 (2)

“오른은 여전히 귀엽지?”


그녀가 오른의 시체를 일으킨 걸까.
하얀 수의를 입은 오른을 본다.


방부처리를  건지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시체다.
학원에서 봤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오른이 죽은 시기는 F&Y 학원에 재학하고 있을 무렵이라는 말이 된다.

루시아가 경멸에  음성을 내뱉었다.


“강령술사, 호른  프라시오스 변경백.”

호른이 수더분하게웃었다.

“어머. 굳이 변경백으로 부르지 않아도 돼. 다스리는 영지민도, 지키는 영토도 없거든.”

“다 죽였으니 없겠지.”


“아무렴 어떠니. 그게 중요한  아니잖아?”


무언가 어긋난 호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위태롭다.
나는 루시아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강령술사, 다른 말로는 네크로맨서다.
그녀가 시체를 조종한다고?

“당신은 죽어야 해.”


루시아가 화염구 일곱을 생성해, 호른을 노렸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머릿속은 공백에 가까웠다.


나는 뒤늦게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손을 떠난 화염구다.
오색찬연한 폭발이 일어났다.
요란한 폭음과 폭연이 귀와 눈을 마비시켰다.

연기는 서서히 걷혔다.
호른은 빙벽을 세워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루시아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여간 귀염성이 없는 조급한 계집애야, 그렇지. 서연?”

나는 오른손으로 안면을 쓸면서 호른을 봤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호른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루시아를 가리켰다.

“설명을 듣고 싶으면 그 말괄량이 좀 어떻게 할래?”


“루시아.”

“…서연은 제멋대로야.”

누가 제멋대로인데, 반박하려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여야 한다면서 왜 말리는 거야.”

루시아가 괴로운 얼굴로 나를 추궁했다.
그래, 그녀 또한 행동에 이유가 있겠지.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답답한 가슴을 매만지며 숨을 내쉬었다.


“듣고 싶은 게 있어.”

“……뭘?”


“그녀에게 일어난 일.”



“이미 아는 거잖아.”

나는 모르는 거다.

“잠깐이면 돼.”

“……알았어.”



다시 호른을 봤다.

“호른.”


“응, 서연.”



“오른을 누가 죽였지?”

호른의 새침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삼스러운 걸 묻네? 카펠루스 그 쓰레기의 짓이지.”



카펠루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여기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놈을 가장 먼저 처리하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오른이 어디서 죽었는데.”


“몰라. 기억하고 싶지도않고.”

“그러면 카펠루스는 뭐하는 놈이야?”

“…당신이 그걸 묻는다고? 정신 나갔어?”


정신 나간 사람한테 정신 나갔냐는 질문을  받네.
내 침묵에 호른이 손뼉을 팡팡 치며 이야기를 바꿨다.

“내가 오른을 어떻게 살렸느냐가 궁금한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오른을 봤다.
저게 살아 있다는 건가? 의지도, 생기도 없는 저 모습이?

호른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오른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에는 애정이 존재했다, 비틀린 애정이.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오른을 어떻게 살렸는데?”


일단 그녀의 장단에 맞추기로 했다.
대화를 이어가서 정보를 캐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으므로.


“흑룡에게 갔지.”


흑룡, 새로운 키워드다.


“흑룡?”

“그가 내게 오른을 선물했고, 나는 그의 종복이 됐어.”

호른이 텅 빈 웃음을 흘렸다.

옆에서 루시아가 속삭였다.

“이미 아는 내용이야.”


난 모른다니까.


“서연, 오른이 살아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 줄 알아?”


“……모르지.”

“모든 걸 용서하고 싶을 만큼 기뻤어.”

듣기 괴롭다.

“그러지 그랬냐.”

“흑룡은 관대하게도 내게 용서하지 말라고 했지.”


그녀가 간헐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소름이 끼쳐야 할 텐데,  이렇게 안타깝게 느껴질까.
웃음이 뚝 멎었다.

“서연.”


“어.”



호른이 다정하게 말했다.

“너도 피투성이 대공을 죽이는  괴로웠지?”


누가 누굴 죽여? 내가 아세드를?

“그게 사람이 가능한 일이었냐?”



“네가 죽여놓고  나에게 물어봐?”

“서연!”

루시아가 몸을 날려 나를 밀쳤다.
그녀의 복부에 얼음이 돋아났다.


아니다, 얼음이 그녀를 관통한 거다.
꿰뚫린 복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루시아!”

“…괜찮아.”


그녀는 태연히 얼음 마법을 제거하고, 스스로 치유마법을 걸었다.
앓는 소리   내지 않았다. 나는 멍청하게 그 모습을 봤다.
루시아가 힘주어 말했다.


“……정신 차려. 그녀가 적이라고 말한  서연이야.”



나는 멍했다.

갑자기 공격을 당할 줄 몰랐으니까.


“화가 나네. 그렇지 오른?”



호른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바닥에서 얼음으로 이루어진 갑주를 입은 기사들 수십, 수백이 일어났다.
성벽 위에 있던 녀석과 동일한 놈들이잖아.


“대화하는 동안 준비 좀 했어, 전멸의 기사님. 차린  없지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

호른은 냉소를 지었다.
정신차려라, 서연.
그녀는 명백한 적이다.

“호른.”

“응.”

“오른은 죽었어.”

“죽지 않았어.”


“그렇다면 그녀가 눈을 뜨지 않는 건 어째서냐, 말을 하지 않는 건 어째서고. 네가 이런 행동을 하는데도 잠자코 있는건 어째선데?”

그녀가 신경질적으로답했다.


“오른은 잠을 자고 있을 뿐이야. 깨우면 돼.”

호른의 마나가 움직이자 오른이 눈을 떴다.
그녀의 흐리멍덩한 눈은 죽은 생선 눈깔처럼 어떤 빛도 없었다.
징그럽고 안쓰러운 인형극이다.


오른이 입을 열었다.


-언니.


쇳소리처럼, 혹은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불쾌한 목소리.
도저히  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느낄 수 없다.
호른은 그 목소리마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반문했다.

“왜, 오른?”

-모두 죽이자.

“그러자. 오른.”


나는 무의식적으로 검을 뽑았다.

내가 쥔 검에 검붉은 광채가 흘렀다.
동시에 의식이흐릿해졌다.

“멍청하긴. 네가  상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냐?”

만년설보다 차가운 어조, 내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냉랭한 목소리다.
루시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서연.”


나도 이런 내 반응에 놀라 루시아를 봤다, 아니 보려고 했다.


『여기까지야.』



누군가 내 몸의 통제권을 쥐었다.

“…이제야 봐줄 만한 얼굴이네. 너무 태연해서 화가 났잖아.”



호른이 싱긋 웃는다.

얼음 병사들이 내게 오는지 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검을 쥐었다. 검에서 검붉은 빛이 형형하게 빛난다.


“루시아, 숙여라.”



루시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를 확인한 나는 넓게 검을 휘둘렀다.

단  검.
 많던 얼음 병사들이 모조리 양단됐다.
내가 이렇게 강하다고?



통제할 수 없는  몸이 호른에게 다가갔다.

호른은 뒷걸음치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담담한 눈은 나를 볼 뿐.


“역시 강하네. 전멸의 기사님.”


나는 답하지 않고 검을 겨눴다.

“무서워라. 찌르려고?”



“싫으면 저항해라.”



“그것도 싫어. 지쳤거든.”

호른은 도리어 안아달라는 듯이 팔을 벌리며 내게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으드득, 뼈를 부수고 살을 찢는 감각이 손에서 느껴졌다.


붉은 피가 검을 타고 흐른다.
피를  움큼 토한 호른이 검에 찔린 채 내 품으로 걸어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새는 마나를 겉잡을 생각이 없는  내 얼굴만 바라봤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호른의 손이 꾸물거리며 내 등을 잡았다.

“추워. 서연.”


“피가 빠지니까 춥겠지.”

“기사님이 무드 없기는.”


그녀가 웃었다.



“서연, 모두를 죽일 거지?”

“필요하다면.”


“그런 너를 축복할게.”



호른은 눈을 감았고, 오른은 실이 떨어진 인형처럼 제자리에 엎어졌다.

동시에 내 의식이 끊어졌다.



* * *

성채도시 ‘아세드’는 여타 도시와 달리 음지라는  없다.
땅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피투성이 대공이 통치하며, 유리 아이나르가 머무르는 도시다.
불법적인 사업을 벌여 세력을 키워봤자,  둘에게 들킨 순간 피투성이 기사단과 성휘의 마도의 대대적인 공세에 금방 뜯겨질 터.


그럴 바에 다른 도시에서 시작한다는 게 음지 사람들의 지론이다.
그런 연유로 동종업자는 이 도시에 오는 것 자체를 꺼렸다.

새벽의 수장 로제는 속이 탔다.

오기와 자존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칼리오스 삼 왕자의 암살이 힘들다는 걸 시인해야 했다.

삼 왕자 주변에는 준수한 실력의 기사와 수준을 짐작하기 어려운 마법사가항상 붙어있다.

시녀로 변장해서 저택에잠입하긴 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왕자나 마법사는 목욕시중을 들지도 않았고, 식사 때는 기미시녀가 있다.

“그나마 노릴만할 때가 밤이었는데.”

왕자의 방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저하의 거처에는 무슨 일이지?’

기사의 목소리에 얼마나 간담이 서늘해지던가.

그 이후로 의심 많은 기사가 자신을 주시하기 시작해서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뾰족한 수가 필요한데, 떠오르는 게 없다.

습관적으로 으슥한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응?”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향수보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피비린내 말이다.  도시에서 살인을 저질러? 제정신인가?

소리를 줄이며 골목길 너머를 살폈다.

청년이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


모발이 붉은색인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피가 묻은 거였다.
그가 머리를 털었다. 주변으로 피가 튀는 일은 없었다.

피가 굳었나 보다.
머리카락에 응고된 피는 살해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짐작하게 했다.
좋지 않다,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제가 발걸음을 옮겼다.

“누님이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작은 목소리지만 자신을 겨냥한 말임을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지면을 박차자마자 허리를 베였다.
로제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큭!”


뭐에 베였지?
피가 흐르는 허리를 만졌다.
상처가 깊다.

“도망치라고 한 적은 없는데.”

머리를 들려고 했지만 청년의 발이 그녀의 머리를 짓밟았다.
청년이 화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인사 좀 할까?”


서로의 상판대기도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인사란 말인가, 로제의 오른쪽 뒷허벅지가 불이라도 붙은 듯 화끈거렸다.

“윽.”

터지는 신음을 억눌렀다.


“나 좀 유명한데 누군지 맞춰 볼래?”

그녀는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이 도시에서 태연히 살인을 저지를  있는 자는 몇 없다.
자살지망자나 미친놈이 아닌 이상은.


“모르겠어?”

그는 자신이 유명하다고 말했다.
근래에 유명한 살인자라면 뻔하다.
로제는 자신의 재수를 한탄했다.

“…마법사 살해자.”



마법사 살해자가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맞췄으니까 선물 하나 줄게.”

이번에는 왼쪽 뒷허벅지에 격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잘 참네?  번을 찔러야 앙앙 울어줄까?”

마법사 살해자는 로제의 머리를 누르던 발을 치웠다.

고개를 올려보니 무표정한 얼굴의 청년이 단검을 돌리고 있다.

“……원하는  뭐야.”

“너한테는 없는데?”

로제는 그를 노려봤다.



“그럼 시간 끌지 말고 죽여, 미친 새끼야.”

그는 입술을 말아 올렸지만,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앙칼져, 누님. 시간을 들여서 괴롭히고 싶은 타입이야.”


그녀는 몸을 떨었다.
수많은 변태를만났지만, 저렇게 건조하게 말하는 변태는 처음이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단검으로 로제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뭐 물어도 모르겠지만, 예의상 물어볼게.”

로제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청년을 노려봤다.

“말해.”


“루시아라고 알아?”


칼리오스 왕자 주변을 지키는 마법사의 이름이다.



“…알아.”

“거짓말이면 누님 뺨에 구멍이 날 거야?”

“진짜여도 찌를 새끼가.”

그는 욕설에도 개의치 않으며 답했다.


“그것도 맞긴 해. 좋아, 순순히 말해주면 살려줄게.”


“내가 어떻게 믿고?”


“믿지 않으면 죽든지.”


그녀는 현기증이 났다.
피가 많이 빠졌다.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상처부터 치료해.”


“왜, 지금 모습도 매력적이고 좋은데.”

“이야기 듣다가 강제로 끊기고 싶어?”

마법사 살해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알았어, 그럼 통성명이나 할까? 누님 이름이 뭐야?”

“로제.”


“예쁜 이름이네.”

그는 로제의 상처를 치료하며 말했다.



“나는 카펠루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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