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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38화- 백룡 타락 저지 (2) (39/130)



〈 39화 〉38화- 백룡 타락 저지 (2)

하고픈 질문은 더 있었지만, 그가 떠난 다음에야 생각이 났으니  질문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연이 남기고 간 육포를 씹었다.
가죽을 씹는 기분이었다. 간도 없고 질기기만 한 걸 녀석은 잘도 먹던데, 나는 턱만 아프다.

“아흐레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다고 했지.”

이 몸의 생리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한 거지?
이 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몰라도 좋은 진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어차피 나인데 뭐가 부끄럽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축적된 경험이 다르다면 그건 이미 다른 개체가 아닐까?
고개를 털었다.

“게임의 시작점이라 그랬지.”

지금까지가 전부 프롤로그라니.
정나미 떨어지게 긴 프롤로그다.
게임은 스킵이 있지만, 현실은 스킵이 없어서 그런 건가.

“시작 한 번 살벌하네. 흑룡이 날뛰고 마물이 나타나고.”

뭐, 옛날 판타지 게임 대부분이 왕국의 멸망, 세계의 위협으로 출발하는 이야기긴 했다.
그리고 변두리 마을에서 자란 주인공이 모험을 시작하는 진부한 내용이었지.
막상 당해보니 고역이다만.

“백룡이라.”

생김새는 어떨까, 서양의 드래곤?
아니면 일반적인 동양의 용?

어느 쪽이든 기대가 된다.
나는 서연이 주고  두툼한 모피코트를 입고 보온 마법을 펼쳤다.

“맞다. 서연의 마나에 대해서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검붉은 마나, 지금의 서연도  수 있는 마나겠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항상 떠난 버스가 아쉽지.”

바닥의 눈을 걷어찼다.
그건 그렇고 산기슭에 있는 나를 칼리오라가 무슨 재간으로 찾아낸다는 걸까.

“으음.”

마냥 죽치고 있자니 무료하다.
현대인이라면 잠시라도 한가함을 참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일종의 불치병이거든.

“주변만 돌아다니는 건 괜찮지 않을까?”

나를 찾을  있다면, 굳이 여기에 있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주변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식수는 걱정 없고, 식량도 서연이 건네준 육포가 있다.
맛은 진짜 더럽게 없지만.

“그래, 가자.”

원래 누가 움직이지 말라면 더 움직이고 싶은 법이다. 별문제 있겠어?
주변을 걸으며 유리가 보여준 작은 별을 상기했다.

“흙의 원소 마법에다 자기장과 중력 계열 마법을 운용하고, 빛과 어둠 마법을 사용하는 거라 했었지.”

손에 둥그런 흙더미를 만들고 자기장과 중력 마법을 운용했다.
여기다 화염 마법을 사용하면 불타는 구체겠군.
공급하던 마나를 끊으니 흙더미가 허물어졌다.

“빛과 어둠 마법을 빨리 쓰고 싶네.”

애석하게도 빛과 어둠 계열 마법은 배우지 못했다.
관련 유파도 적거니와 유리가 한사코 말렸기 때문이다.

‘지금 배워봤자 아무짝에도 효용이 없는 게야.’

별의 마법 권위자님께서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유리.
부디 그녀가 아세드의 혼수상태에 큰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리한 바람이겠지. 끼니는 제때 챙겨 먹을까 몰라.

아세드도 아세드다.
어쩌다 잠자는 대공이 되셨어.

그만큼 흑룡이 강한 상대라는 말이겠지.
서연 피셜로 최종 보스와 엇비슷하다고 했으니까.

어, 잠시만.
최종 보스는 흑룡보다 쌔다는 거야?
나는 언젠가 최종 보스와 싸워야 하는 운명이잖아.

팍 우울해졌다.
여하간 흑룡를 저지하다니, 역시 미친 작자다.
그런 작자를 서연은 어떻게 죽였지? 생각할수록 의문이다.

“응?”

본의 아니게 생각을 멈췄다.
바닥이 푹 꺼진 것이다.
요사이 참 많이 떨어지네.

“으아아아아악!”

몸을 띄우려는 마법을 쓰려 했지만, 카펠루스에게 당한 것처럼 마나가 정지됐다.

왜?

차선책으로 서연의 마나를 끄집어냈다.
이 마나로 쓸  있는  빙결계 마법뿐이다.

나는 얼음으로 길을 만들어, 미끄럼을 타며 하강했다.
서연의 마나가 거의 동날 시점에서야 바닥에 당도했고, 상당한 가속력이 붙은 몸체는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요란하게도 굴렀다. 피부 여기저기가 까졌다.
팔꿈치나 팔등, 종아리와 엉덩이 쓰라리지 않은 곳이 없다.
화끈한 통증이 나를 감쌌다.

서연이 모처럼 마련해준 모피코트는 한순간에 너덜너덜해졌다.
불행 중 희소식으로 어디 부러진 곳은 없었다. 나는 실소를 흘렸다.

“이게 뭐야.”

난데없이 비명횡사할 뻔하다니,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서연의 말을 어긴 대가는 컸다. 후회해봤자 늦은 일이지만.

뭐 때문에 루시아의마나를 쓸  없는 거지?
마나를 쓰지 못하니 몸의 치료에도 제한이 생겼다.
마법이란 전능함이 사라진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진짜 위험한 상황 아니야?
서연의 마나도 밑바닥을 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뭐라도 습격한다면 정신이 아찔하겠다.
검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맨몸이다.

제아무리 전멸의 기사의 육체 능력을 승계했다고 해도, 일부일 뿐이라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강한 것도 아니다.
애당초 접근전은 부수적인 요소라 생각하고 있어 괴물을 상대할 때는 무력하지 않을까 싶다.

“곤란한데.”

고개를 위로 향하니 아스라한 붉은 빛이 보였다.
까마득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마법 없이 올라가긴 글렀군.

 루시아의 마나를 쓸  없을까?
여기가 특별한 곳이라서 그런가?

주변을 살폈다.
어두컴컴한 곳이다.
동굴인가?

똑,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섬뜩하다.

마법 빼면 시체인 내가 마법이 제한된 공간에  있는 게 더없이 불안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스탯창을 외치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열 배쯤 더 무섭다.

“……저기요?”

내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아주 음산했다.
사람이 있을 리가 없나.

그때였다.
툭, 툭, 뭔가 어깨에 떨어졌다.

허파가 멈췄다.
숨을 삼켰다.
공포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친 기분이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끈적하고 차가웠다.
불쾌한 비린내도 났다.

미지의 감각에 전신이 덜덜 떨렸다.
제발, 제발, 제발, 부처님, 하느님. 아무 잡신님 다 부탁드려요.

이게 그냥 오물이면 좋겠어요. 오물이면 좋겠어요.
나는 고장 난 호두까기 인형처럼 목을 돌렸다.
시커먼 색의 둥그런 무언가가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유체가 제멋대로 변하는 걸 보면 부정형 물체인가 보다.
그러면 그냥 오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행복회로를 거부하듯 어깨에 올라탄 시커먼 것에서 흰색 빛이 났다.
개나 빛났다. 이렇게 보니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밝으니까 좋지 않나?

나는 멍하니 내 어깨에 올라탄 녀석을 봤다.
녀석이 입을 벌렸다. 상어의 톱니처럼 뾰족한 치열이 보였다.
존나 징그러웠다.

“으하아아아악!”

어깨에 있는 덩어리를 내동댕이치고 달렸다.
있는 힘껏 달렸다.

다닥다닥닥다닥다다가다다가다다다다다다닥.

뭔가, 뭔가 쫓아오고 있어! 제발 꺼져줘! 무심코 뒤를 봤다.
미지의 무언가 잔뜩 뭉쳐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점액 물질, 슬라임 같은 건가 싶다. 그것은 본능적인 혐오감을 줬다.

정신 나갈 거 같아, 정신 나갈 거 같아, 정신 나갈 거 같아.
작작 쫓아와, 씨발놈들아!

“얼어! 꺼져! 씨발!”

서연의 적은 마나를 모조리 모아 녀석들을 얼리려고 했다.

챙강!

어림도 없었다.
추운 지역에서 서식해서 그런지 냉기에 대한 내성이 상당하다.
오한이 드는 것은 비단 보온 마법이 꺼져서 만은 아니리라.

“어앗!”

하얀 머리카락의 여자가 나타난 건, 내가 바닥에 자빠지고 이상한 점액 무더기에 덮쳐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냉기가 일었고 점액 무더기가 전부 내 코앞에서 얼었다.
내 마법은 통하지도 않는 놈들이었는데?

녀석들은 얼린 상태에서 하얗게 타들어 갔다.
난생처음으로 하얀 불꽃을 봤다.

“나의 둥지에서 마법을 쓸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하지만 빙결 마법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구나. 이 아이들은 추위의 대한 내성이 높단다.”

자상한 구원자의 목소리다.
더없는 안도가 찾아왔다.

“다……당신은?”

그녀가 내게 치유 마법을 걸며 답했다.
실력이 빼어나서인지 통증은 금세 가라앉았다.

“이 동굴의 주인이란다, 아이야.”

“주, 주인이요? 여기가 동굴이었어요?”

“그래. 누추한 곳이지?”

그녀가 하얀 불꽃을 피우며 주위를 밝혔다.
불길의 세기가 강하여 넓은 공동이 다 밝혀졌다.
나는 그 광원에 눈살을 찌푸렸고, 이를 본 그녀가 세기를 줄였다.

“미안하구나, 아이야. 어둠 속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 불의 조절이 미숙하단다.”

누님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은 사람이다.

“당신은 누구시죠?”

“용.”

밥 먹었냐는 듯이 평범한 어조로 말하는 누님이시다.
발언에 대한 파괴력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지만.

“용이요?”

“그렇단다, 아이야.”

그 누님은 내가 이 세계에서 본 존재 중에서 가장 고매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녀는 활동성이 좋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 복장마저 어딘가 격조가 느껴졌다.

예복도 아닌데 저런 우아함을  수가 있나 싶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방금 것들은 뭡니까? 용 씨?”

“나의 찌꺼기지.”

“찌꺼기요?”

그녀는 가냘프게 웃으며 긍정했다.

“그렇단다. 아이는 어떤 일로 이곳을 방문한 거니?”

실족해서 떨어졌더니 여기던데요? 라고 말하기 쪽팔렸다.

“당신, 정말로 용이죠?”

“겉모습은 인간의 껍데기를 썼지만 나는 용이 맞아.”

“그걸 어떻게 믿죠?”

“숨결이라도 뿜어주길 원하니?”

숨결, 브레스를 말하는 건가 보다.

“아뇨. 아, 혹시 당신이 백룡인가요?”

“한때 그렇게 불리기도 했단다.”

백룡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연은 그렇게 말했다.
방금 그녀가 찌꺼기라 말한 것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걸까?
아름다운 누님이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구나.”

“왜요?”

백룡은 어딘가를 손가락질했다.
한없이 꼬물거리는 무언가를 보고 나는 납득했다.



*  * *

백룡이 나를 이끈 곳은 세피아 톤의 방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동굴 안에 이런 방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방은 지극히 실용적인 물건만 있다.
시골에서 검소한 삶을 영위하시는 어르신이 생각나는군.

나는 의자에 앉아 그녀를 봤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감사를 표할 것 없단다. 그보다 손님은 오랜만이구나. 분명 결계를 쳐놨을 텐데, 힘이 쇠락하면서 약해진 걸까?”

그녀는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흘렸다.
혼자 지낸 시간이 많으신가 본데?
나는 당연한 의문을 품었다.

“저, 백룡 씨?”

“왜 그러니, 아이야.”

“여기서 사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녀는 선선히 답했다.

“작위적인 투쟁에 지쳤기 때문이란다.”

“작위적인 투쟁이라니요?”

백룡이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하자면 길겠구나.”

“그래요?”

“그러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질문을 해도 괜찮겠니?”

그녀의 말에는 선뜻 거부하지 못할 마력이 있었다.

“그럼요.”

“아이는 어째서 육신과 영혼이 일치하지 않니?”

내가 대답할  없는 질문을 꺼내는 백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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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무언가를 뒤집어쓴 루시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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