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1화- 백룡 타락 저지 (5) (42/130)



〈 42화 〉41화- 백룡 타락 저지 (5)

백룡이 사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녀는 극지방에서 오로라를 보며 휴양을 즐기고있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쓰러진 인간 모험가를 발견했다.
무슨 변덕이 불었는지 백룡은 모험가를 구했고, 그는 깊은 감사를 표하며 근래의 이야기를 풀었다.



용사를 죽인 흑룡이 날뛰고 있고, 그 흑룡에게 멸망당한 나라와 죽은 용의 숫자만  자리가 넘는다는 이야기.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사라진 이야기였다.

민타카가 그 사내를 죽였다고?

일이 돌아가는 작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백룡은 딸에게 향했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몇 년 전에야 나라를 불사르고 다녔지, 지금의 민타카는 용사가 죽은 성에서 틀어박혀 있었다.

“여긴가.”

짙은 먹구름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성에는 70m의 육박하는 검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커졌구나.
백룡은 인간의 모습으로 성을 향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민타카를 불렀다.

“민타카.”


백룡의 목소리를 들은 민타카는 인간으로 의태했다.
그녀는 전보다 연령대가 낮은 여자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생물로의 의태는 용의 정신연령에 영향을 받는다.
아이와 같은 모습은 그녀의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였다.


“엄마.”


어머니란 단어가 아니었다.
백룡은 불안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 해맑은 아이가 이 지경까지 됐다는 말인가.

“꼴이 말이 아니구나, 민타카.”

“그렇게 보여?”

퀭한 눈동자는 짙은 우울이 담겨 있다.

“무슨 일이 있던 거니.”


민타카는 시선을 위로 향하며골똘히 무언가를 떠올리는 시늉을 취했다.
곧이어 조화처럼 생기가 없는 미소를 지었다.

“죽었어.”

주어가 없었음에도 이해했다. 당신을 닮은 눈을 가진 인간이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좋은 것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같다. 악독한 세상이라 그런가.
백룡은 민타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가.”


“나, 많이 죽였어.”


“들었다.”

“미안해야 하는데, 미안하지가 않아.”


상실로 인한 절망은 강한 감정이고,  감정을 지우려면 더 강한 감정으로 덧씌우는 일밖에 없다.
예를 들면 분노가 있지.
하지만  감정을 쏟아낸 다음에는?


모든 감정을 불태우고 남는 건 잿더미밖에 없다.
백룡은 초연하게 답했다.

“내가 어찌 널 나무라겠느냐.”


“인간만 죽이지 않았어. 용도 잔뜩 죽였어.”


“그럴 수 있다.”

자기가 애착을 갖는 건 민타카다.
동족이야 죽든 말든 좋다.


“미워, 모두가 몸서리치게 미워.”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 악의가 민타카를 향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나를 이긴 인간이었기에  지켜줄 줄 알았건만.
입맛이 썼다.

“이제 인간이 싫으냐?”


“좋아하는데, 미워.”

아이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백룡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감정을 거세해야 하는가.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훌륭한 대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그녀의 붕괴를 가속하는 일이다.
먼저 사태를 명확히 파악하자.

“그 인간은  죽었지?”

“……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민타카의 표정이 사라졌다.


“나때문이야나때문이야나때문이야그가죽었어죽어버렸어이제없어보고싶은데볼수가없어듣고싶은데들을수가없어왜왜왜죽어버리는거야언제나내곁에있기로했잖아다정하게속삭여주기로했잖아나와함께보내준다고했잖아내가잘못한거야내가문제인거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내잘못이아니야나는그저그와함께있고싶을뿐이었어”

백룡은 자책했다. 성급한 질문이었다.
민타카가 이렇게까지 나약해져 있었을 줄이야.
대화를 문제없이 나눠서 이성적인 상태라고 속단했다.

민타카의 트라우마를 직접 격발시킨 꼴이 됐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괴롭다.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군.”


백룡은 민타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딸의 머릿속을 헤집는  결단코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지만,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니 다른 수단이 없었다.




* * *

어린 민타카는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았다.
온종일을 날아다녀도 지치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녀의 하루 일과 중 태반은 하늘을 노니는 것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창공을 나는 행위는 얹힌 속을 풀어주는 소화제 역할을 했다.
때문에 그녀는 아무리 답답한 일이 있더라도, 하늘만 날면  답답함이 씻은 듯이 가셨다.

주로 백룡이 어려운 일을 시키거나, 백룡에게 눈총을 받거나, 백룡의 꾸지람을 들을 때처럼 괴로운 상황을 환기하기 좋았다.
일종의 루틴과도 같은 행위였다.

그날도 민타카는 날았다.
별안간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첨예한 오감을 이용해 그 시선을 느낀 곳으로 몸을 움직였고, 거기에는  머리카락의 소년이  눈을 크게 치뜬 채 이쪽을보고 있었다.
그 소년의 입술이 움직였다.

“멋있네.”


소년의 멋있다는 말은 민타카를 부끄럽게 했다.
비대한 자신의 몸뚱이보다는 어머니인 백룡의 유려한 곡선미가 넘치는 신체 쪽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녀는 인간으로 의태하며,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진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 인간이라는 종족이었다.

“그렇지 않아, 인간. 민타카의 어머니가 더 위대하고 멋있어.”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소녀에게  소년은 딱 잘라 말했다.

“난 네가  멋있다고 생각해.”

민타카는 불쾌함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태양보다 촛불이 밝다고 하는 소리와 차이점이 없었다.

“멍청하긴, 그건 네가 어머니를 보지 않아서 할 있는 소리야.”

소년은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맞아. 나는 너의 어머니를 보지 못했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그는 목청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은은하게 답했다.

“그렇지는 않을  같아.”


“뭐라고?”


“난, 네게 반했어.”


풋풋한 고백이었다.
민타카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 불쾌함을 느꼈다.

이건 부끄러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째서 부끄러운지 의문을 가졌다.

“하찮아.”


민타카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하늘을 날지 않았다.
백룡의 교육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했다는 말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여러 의미가 있었다.

정황상 소년이  말은 호의와 호감을 품었다는 말이리라.
민타카는 한 달이 지나고 마음이 진정됐을 때  자리에 가봤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소년은 검을 휘두르고 있다.
자신이 온 것도 발견하지 못했는지, 열렬히 휘둘렀다.
민타카가 보기에 그 자세는 엉성한 감이 있었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그녀의 말에 소년이 머리를 돌렸다.
기분이 나빴을 참견이었음에도 환한 표정이다.
 모습은 민타카의 심리를 위축시켰다.


“안녕. 이름 모를 용 씨.”


민타카는 이 해바라기 같은 소년이 껄끄러웠다.
그래서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안녕, 인간.”

“어쩐 일이야?”

“그냥. 인간은  여기 있는데?”

민타카는 말을흐리며 반문했다.

“너를 보기 위해서 기다렸어.”


근방의 숲은 위협적인 야생동물과 마물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용인 그녀라면 몰라도 이런 연약한 아이가 출입할 곳은 아니다.

“위험한 행동이야. 이 숲은 위험해.”

“걱정해주는 거야?”


그녀는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걱정이라니?

“음.”


민타카는 팔짱을 끼며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마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이 필요하다고 백룡이 누누이 말했다.
이 소년이 죽는다면 자신은 유감을 느낄까?

“아니야?”

소년이 아쉬운 듯이 검을 내린다.
 모습에 민타카는 가슴에 이상한 통증이 일었다.
답답했다.


“인간,이리 와.”

용언에 가까운 음성, 언령이었다.
소년은 두려움을 느꼈음에도 태연하게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래.”

민타카가 돌연히 소년의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어떤 반응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목마를 탔다.


민타카는 그 상태에서 용으로 변했다.
거체는 소년을 태우고 하늘을 날았다.

이 작은 인간이 겁이라도 내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지만 그는 작은 탄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 탄성은 그녀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워.”

밤하늘의 별과 환한 달,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작게 변한 숲은 소년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한 풍경이었나 보다.

멋지지?

용으로 변한 상태에서 하는 말은 모두 용언이 되므로 민타카는 말을 자제했다.
소년이 버티지 못할 테니까. 이 날, 그녀는 소년을 통해 배려를 배웠다.


한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다 소년을 내려주었다.
소년은 베시시 웃었고, 그 웃음은 민타카에게도 전염이 됐다.


“즐거웠어, 용 씨.”


“용 씨라 부르지 마.”


“그럼?”

“나는 민타카야.”


민타카, 소년은 그 이름을  번이고 불렀다.


“민타카구나.”

“너는?”


“에드윈 버밀이야.”

내가 무섭지 않은 걸까?
다른 생물들은 나를 보기만 해도 벌벌 떨던데.


겁이라는 것을 상실한 인간인가 싶다.
민타카는  소년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또 올게. 에드윈 버밀.”

“응, 기다릴게.”

에드윈 버밀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타카는 그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게 무엇을 하자는 건지 묻는 눈빛이었다.


“악수야.”

“그게 뭔데?”

에드윈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서로의 손을 맞잡는 행동이야.”

“이걸 왜 해?”


“내가 알기로 친구한테 한다고 해.”

“친구?”

그는 멋쩍은 얼굴로 물었다.


“나는 용 씨의 친구가   있을까?”

민타카는 잠깐도 주저하지 않고 에드윈의 손을 잡았다.

“못할  뭐야?”

시간이 지나면서 민타카와 에드윈은 스스럼이 없어졌다.
둘은 잘 어울려 다녔다.
소녀는 주로 백룡의 엄격함과 훌륭함을 이야기했고, 소년은 얌전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에드윈이 약속 장소에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그가 머무르는 마을을 찾았다.

마을 중앙에는 에드윈이 형장에 속박된 채 돌멩이나, 오물 덩어리를 맞고 있었다.
민타카는 머리가 하얗게 표백됐다.
있을  없는 풍경에 모멸과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죽이자, 모조리.


민타카는 마을 사람들을 지나 에드윈에게 걸어갔다.
에드윈도 그녀를 발견했는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약속을 어겨서 미안해.”

그게 중요해? 소녀는 양손을 꾹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걸.”


“말하면 너는 슬퍼했을 거고, 화를 냈을 거야.”

맞는 말이어서 민타카는 반박할  없었다.
소년은 침묵하는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단지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을 뿐이야. 그러니 슬픈 표정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무언가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용으로 변했고 포효했다.
마을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형장에서 풀린 에드윈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마을의 인간들은 뼛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에드윈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가 마을에서 불길한 역병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부모는 그걸 지켜만 보았냐는 민타카의 말에 소년은 부모가 일찍 타계했다는 말로 대꾸했다.
그녀는 이 소년에게 짙은 연민과 동정을 품었다.


“내가 좋아하는 용이 그런 얼굴을 짓는 게 싫었어.”


에드윈은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고, 민타카는 더없이 격분했다.

“그들을 죽일 거야.”


“그러지 마.”

“왜?”

“너는 나의 멋진 용이니까.”


너는 나의 멋진 용.
민타카는 가슴 한구석에서 용솟음치는 감정을 깨달았다.
이건 사랑이었다.

 

16563955752019.jpg 


(흑룡, 유년시절 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