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59화- 돌아온 사람 (2) (60/130)



〈 60화 〉59화- 돌아온 사람 (2)

* * *

우리는 지난   가까이 하늘고래인 등애의 위에서 생활했다.
식료품의 보급이나 생리현상을 해결할 때 말고는 지상에 내려가지 않았다.
동선이 아깝거든.

하늘고래는 비행기만큼 빠르지 않다.
체감상 시속은 40~50km 정도 되지 않을까.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와 비슷한 속도다.

뭐든 빨리빨리를 부르짖는 한국인의 신경을 미묘하게 건드리는 속도라 볼  있겠다.
뭐,얻어 타는 입장이고, 도보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니 불만을 제기하진 않았다.

그나마 등애가 수면 중에도 이동할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자면서 날 수 있나 싶다.

그러고 보면 바닷속에서 생활하는 고래는 호흡 때문에 뇌의 반만 잠든다고 하더랬지?
정식 명칭이 반구 수면이라던가. 역시 고래는 판타지 세계를 기준으로 봐도 신기한 생명체다.
반만 잠을 자는  말이 되냐고.

하여튼,  달이란 시간 동안 해프닝이 없던 건 아니다. 따지자면 자잘한 일은 많았다.
그래도 그 일들이 크게 인상적인 일은 아니라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요약하자면 먹고, 싸고, 자고, 알니타크에게 빨리는 일의 연속선이었다.

아 참, 매달 찾아오는 불쾌한 하루도 있었지.
그건 별로 생각하고 싶지가 않구만.
알니타크가 물었다.

“아빠. 저건 뭐야?”

밤이어서 알니타크가 지목한 물체를 보는데 애 좀 먹었다.
그녀가 지목한  거대한 나무다.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던가? 몇천 년은 산다고 하더라.”

“우와. 몇천 년이나?”

“알니타크도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걸.”

“알니타크는 아빠랑 오래오래 살고 싶어!”

“내 딸은 기특한 말을하는구나.”

“아빠는 아니야?”

“아빠도 그래.”

나는 알니타크의 양 볼을 문질렀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찹쌀떡을 생각나게 만든다.

“앗, 아빠 저거는 또 뭐야?”

“아 저거?”

그녀는 한창 궁금한 게 많은 나이여서 보이는 족족 질문을 해왔다.
질문에는 답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었다.

알니타크는 용답게 한 번 물어본 건 다시는 물어보지 않았다.
배움이 빠른 아이다.
 성장세라면조만간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라 부르는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니 서글프군.
아빠가 어감이 좋은데.

부오오오!
잡스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등애가 크게울었다.
이런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왜 울지?”

알니타크가 등애의 울음을 통역해줬다.

“다 도착했대.”

“정말?”

“응. 내리라는데?”

하늘고래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유람이었다.
돌아가면 텔레포트부터 숙달해야지.

“아빠?”

알니타크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왜 딸?”

“벌레들이 바글바글해.”

알니타크의 가느다란 검지가 지면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는 미약한 불빛이 보였다.

불빛은 모닥불로 추정됐고, 그 광원 주변으로 시꺼먼 것들이 꾸물거렸다.
개미들이 사체에 들끓는 것처럼 혐오감을 유발하는 장면이다.
징그러운데?

“뭐지?”

진짜 벌레는 아니리라.
이 거리에서 육안으로 식별되는 벌레가 어디 있겠냐.
알니타크가 눈매를 가늘게 뜨며 아래를 노려보았다.

“아빠. 인간들도 있어.”

“인간들?”

“공격받고 있어.”

습격을 당하는 모양이다.
알니타크가 재차 물었다.

“아빠. 어쩔까?”

못 본 체하고 지나가도 될 일이다.
하지만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겠지.
나는 알니타크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알니타크. 등애한테 번개 좀 뿌리고 싶지 않냐고 물어봐.”

“왜?”

“저것들 쓸어버리게.”

알니타크가 모종의 울음소리를 냈다.
등애가 몸을 흔들었다. 긍정인가?

“좋대.”

등애도 그간 많은 스트레스를 쌓아왔는지 호쾌하게 번개를 내뿜었다.
번개가 내리치며 녀석들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이 노릇노릇하게익었다.
 집 서비스가 좋네.

“고마워. 등애.”

남은 절반은 내가 처리하면 되겠다.
나와 알니타크는 등애의 가장자리로 걸어간 다음, 도약했다.

이렇게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될 줄이야.
위시리스트 하나 채웠군.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감각이 든다.
폐가 쪼그라들어 호흡 하나 내뱉지도 못했다.
지긋지긋한 중력 같으니.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환희의 비명을.

우리는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하늘고래에서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등애 등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었던 나날이여, 작별이다.

머리카락과 옷이 격하게 나부꼈다.
눈꺼풀을 드는 것조차 힘들다.
나는 검은 구체를 바닥을 향해 던졌다.

“저 괴물들만 빨아들여라.”

언령을 통해 특정 목표를 설정했다.
내가 던진 것은 중력장으로 저번 설원제에 늑대들을 무력화시킬  썼던 마법이다.
효과는 발군이었다.

이루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괴물이 중력장 주변에 다닥다닥 붙었다.
훌륭한 홀딩기군. 나는 행동이 제약된 그들을 빙결시켰다.

땅에 부딪치기직전, 알니타크가 마법으로 속도를 줄였다.
나는 감탄의 눈길을 그녀에게 보냈다.

“알니타크?”

“이렇게 하는 거 맞지?”

“……어, 맞아.”

“나 잘했지, 아빠?”

아무리 용이라지만 너무 똑똑한  아니야?
누가 저 아이를 생후 한 달인 아이로 알겠어.

“그럼.”

기특하군.
알니타크의 머리를 마구쓰다듬은 다음, 앞에 있는 두 명을 보았다.
눈앞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조합은  의외로군.

“괜찮냐?”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러셔? 실종된 사람을 보는 눈을  하시고.

“루시아?”

남자, 파르판 드락이 내 이름을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파르판, 라이오라.”

레니 드 라이오라가 몸을 움츠리며 내 행동을경계했다.

“……당신.”

빈말로라도 그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적으로 내가 먼저 시비를 건 형국이었으니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칼리오라가 화를 내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왜?”

복잡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라이오라다.
화라도 내려나?

“…고마워요.”

내 예상과 달리 순순한 감사가 나왔다.
아주 경우가 없는 애는 아닌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말씀을.”

파르판이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그 아이는?”

아, 맞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곤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알니타크가 ‘아빠, 이 사람들 누구야?’ 라고 말하면 어떨까?

내 사회적 말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겠군.
알니타크가 양손을 배꼽에 올리고 상체를 숙였다.
배꼽 인사다.

“저는 알니타크라고 합니다. 언니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언니?””

둘은 나와 알니타크를 번갈아 가며 봤고, 나는 멍하니 알니타크를 봤다.
그녀는 내게 윙크를 날렸다. 요,  영특한 것 좀 보게.
파르판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닮긴 닮았군. 나는 파르판 드락이다.”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레니 드 라이오라에요.”

 다 멋대로 납득하지 마라.
아니, 여기는 납득을 해주는  좋은 부분인가.
나는 머리를 긁었다.

“아무튼, 너네는 왜 여깄어?”

“…그건.”

파르판이 입을 열려는 찰나에 라이오라가 휘청거렸다.
파르판은 말을 끊고 그녀를 부축했다.
둘 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라이오라의 옆구리를 보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방금  괴물에게 물린 건가? 나는 둘에게 고속치유를 걸었다.

“이제  편하지?”

둘은 나를 대단하다는 듯이 봤다.

“뭐야. 그 눈빛은.”

“넌 정말 우리와 같은 학생이 맞는 건가?”

“당신, 나이를 속인 대마법사라던가 그런  아니죠?”

웬 호들갑이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닌가? 나는 안면을 쓸어내렸다.

“소설 쓰지 말고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이야기나 해줄래?”

라이오라가 표표하게 답했다.

“설명할  있나요? 보시다시피 마물에게 습격당했죠.”

“이게 마물이라고?”

“……저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요.”

나는 얼음으로 박제한 마물 덩어리를 살폈다.
음, 굉장히 전위적인 역겨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괜히 봤다.
눈만 버렸군.

나는 다시 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은근히 거리가 가깝네.

“너희 둘, 사이가 좋았었나?”

그 말에 라이오라가 얼굴을 붉혔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나는 턱을 괴며 답했다.

“의외다 싶어서 그렇지.”

“신, 신경 끄세요!”

“당신, 언니에게 무례하시네요.”

라이오라의 가시 돋친 말투에 알니타크의 눈이 음울하게 빛난다.
나는 아이가 돌발행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깨를 잡고 내 앞에 세웠다.

“화내지 마, 딸.”

내 귓속말에 알니타크는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눈매를 찡그렸다.

“아빠, 하지만.”

“날 욕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감히 아빠한테 건방지게 굴잖아.”

화내는 방식이 우악스럽구나.

“친구라서 그래.”

“……알았어.”

알니타크는 표독스럽게 라이오라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앙금이 남은 모양이다. 내가 방심할 때 덤벼들진 않겠지?
여차하면 알니타크의 허리라도 끌어안아서 저지하자.

라이오라는 눈썹과 입술 양끝을 끌어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파르판은 이마를 짚었다.

“넌 말을  곱게  필요가 있어.”

라이오라는 시선을 피했다.

“……저도 무례하게  건 알고 있어요.”

댁이 알고는 있다는 점이 놀랍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동생이 과민 반응을 했을 뿐이야. 나를 참 좋아하거든.”

“……당신 여동생은 당신을 잘 따르는 모양이네요.”

어딘가 부럽다는 듯한 시선이다.

“왜, 넌 여동생이 없냐?”

“형제 자체가 없어요.”

그거 미안하군.
나는 둘을 살폈다.

“둘 다 피곤한 거 같다. 잠 좀 잔 다음에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때?”

“찬성이야.”

“…저도 그게 좋겠어요.”


둘은 내 뜻에 동의를 표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지치긴 지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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