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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60화- 돌아온 사람 (3) (61/130)



〈 61화 〉60화- 돌아온 사람 (3)

* * *


해가 밝았다.


지난밤 공기 벽과 보온 마법을 적절히 구사한 결과, 온돌방에서 자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수 있었다.
역시 마법은 생활적인 부분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니까.


“으큽.”

기침이 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알니타크가 코앞에서 곤히 자고 있어서가 그 이유다.
이 귀여운 얼굴에 침을 뿌리는 건  그렇지.

“크음.”


목이 까끌까끌했다.
흙바닥에서 모포를 깔고 잤으니 그럴 만도 하다.

먼지 구덩이에서 잔거나 다를  없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유리 아이나르처럼 공중에서 잘 걸 그랬나.

“깼어? 아빠?”

알니타크가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꿈나라에 있던 게 아니었어?
이상하다. 눈은 감고 있는데?

아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장난기 넘치는 은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언제 일어난 거야?”

“비밀이야.”

소곤소곤거리는 알니타크의 목소리는 ASMR에 가깝다.
묘하게 배덕적이네.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밤을 새운 건 아니지?”

“잤어. 일찍 깼을 뿐이야.”

확실히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다.

“내가 자고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어?”


“아빠의 곁에 있는데 지루할 틈이 있겠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알니타크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좋은 향기가 났다. 누가 이 아이를 용이라고 생각할까?


“알니타크는 애교가 많구나.”


“아빠 한정이야.”

알니타크는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키득거렸다.
나는 그녀의 뺨을 쓸었다.

“알니타크.”

“응.”

“왜 저 둘에게 여동생이라 소개했어?”

내 질문에 알니타크가 배시시 웃었다.

“궁금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녀의 표정은 사뭇 요망했다.

“아빠가 곤란해 보였으니까.”

단지  이유만으로 여동생 역할을 자처했다고?

“음, 그게 상관이 있어?”

“아빠는 인간 중에서 어린 편이지?”

“어리지.”

내 본래 나이인 스물여덟도 많은 나이는 아닌데, 루시아의 나이는 이제 열다섯 살이다.
이 나이면 핏덩이지, 핏덩이야.

“그 나이에 아이가 있으면 곤란하지 않아?”

곤란하지.
묘하게 현실적인 말이다.
나는 대답을 미루며 그녀를 봤다.

알니타크는 이제  달 정도를 살았다만, 외견은 여덟 살에서 아홉 살로 보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예닐곱 살에 알니타크를 나은 줄 알겠지. ……좀 어메이징한데.


“그런 지식은 어떻게 알았어?”


난 가르쳐  기억이 없다.
알니타크는 내 질문을 예상했는지 막힘없이 대꾸했다.

“아빠에게 마나를 받을 때,  마나에 잔존된 기억을 읽었어.”

그런 게 가능해?
나는 입을 벌렸다.


“진짜로?”

“진짜야.”

“그러면 내 기억을 다 알고 있다는 거야?”


알니타크는 의미심장한 얼굴이다.

“일부는?”

그래서 민타카가 찌꺼기라는 걸 먹이라는 거였나?
용의 기억 일부를 습득할  있을 테니까?
편리하고 효율적인 지식전달 방법이긴 하네.

“……일부라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기억을 용에게 먹여도 되는 건가?
그녀가 알아서는 안 되는 지식도 여럿 있다.

혹시 전부 알고 있다면?
목이 까끌까끌함을 넘어서 칼칼해졌다.

“어디까지 알고 있어?”

민타카가 내게 너를 맡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란 것도?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편린적인 부분만 알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말이다.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말이지.
나는 말없이 알니타크를 주시했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제 알니타크에게 마나를 주는 게 껄끄러워졌어, 아빠?”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군.
어린 용도 용이라 이건가. 용의 두뇌 회전을 얕봤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응. 껄끄러워졌어.”

“그래?”

알니타크는 다소 실망스러운 목소리다.
나는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널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영민한 용은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챘다.

“혹시 알니타크가 알아서는  되는  있어?”

나는 긍정했다.

“있어.”

심각해지는 내 얼굴을 알니타크는 어깨를 쓸었다.

“하지만 알니타크는 언젠가 다 알게  거야.”

“그래도 가능하다면 나중으로 미루고 싶네.”

“왜?”

“그때는 네가 좀 더 성숙해져 있을 테니까.”

“눈을 가리고 아옹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알고 있단다.”

그녀는 시간 차를 두고 질문했다.

“알니타크를 위한 거지?”

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그 말에 알니타크는 해맑게 웃었다.

“히히. 알았어. 마나 보충은 다른 쪽으로 할게. 이제 많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고맙구나.”

이제 알니타크에게 빨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군. 안심과 아쉬움이 스쳤다. 아쉬움? 뭐가 아쉬운데?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적당히 지나갔고, 어느덧 주변에 자리 잡은 그림자가 햇빛 덕분에 가시기 시작했다.

 두 명은 언제 일어나려나?
얼마를  기다리니 파르판이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악몽이라도 꿨나? 나는 멀뚱히 상체를 일으킨 소년에게 물었다.

“깼냐, 파르판?”

“루시아인가.”

“맞아.”

“……그건 꿈인가.”

나는 무슨 꿈을 꿨냐고 묻는 대신, 다른 질문을 꺼냈다.

“배고프지?”

“허기가 지긴 하는군.”

“사냥  하고 올게.”

“식료품은 있다.”

“그 식료품이라는 게 질기다 못해 고무를 씹는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육포라는 이름의 보존식이라면 정중히 사양하겠다. 그걸 먹느니 차라리 굶겠어.”

말을 하면서 지난번에 서연이 준 육포를 생각했다.
현대의 육포와는 달리 아무런 풍미도 없고 질기기만 했으며, 맛도 더럽게 없는 그 고무 덩어리 말이다.

보존식이라는 게 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맛은 좀 신경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먹다가 화가 나는 게 음식이냐?
 반응에 파르판은 입술을 비뚜름하게 만들었다.

“미식가 납셨군.”

현대인의 입맛은 원래 까탈스러운 법이다.

“그런 이유로 알니타크랑 사냥 다녀올 테니까  지키고 있어.”

나는 검지로 몸을 뒤척이는 라이오라를 가리켰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사냥의 결론만 말하자면 사슴 두 마리를 포획했다.
하나는 내가 잡았고, 하나는 알니타크가 잡았다.

민타카의 조언대로 알니타크를 본체로 돌아가게 만든 후 사냥을 시켰는데, 그녀는 사냥이 처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사슴의 퇴로를 차단하고, 단숨에 목덜미를 물어 무력화시키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동물의 X국에서 보았던 육식동물을 닮아 있었다.

흠, 용도 엄밀히 따지면 육식인가?
입가에 선홍색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백룡은 가만히 나를 살폈다.
칭찬을 바라는 분위기군.

“엄청엄청 잘했어. 알니타크.”

나는 알니타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는 기쁜 듯이 용의 몸으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칭찬은 고래만 춤을 추게 하는 줄 알았는데, 용도 출  있구나 싶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니 라이오라도 깬 모양이다.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마법으로 둥둥 뜨게 만든 사슴 두 마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포착한 라이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수렵이라도 하셨어요?”

“먹을  없어서.”

라이오라는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제 마차 쪽으로 가시면 충분한 요깃거리가 있었을 텐데요.”

“네 마차?”

“설마하니 제가 아무런 수행원도 없이 혼자 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겠죠?”

나는 파르판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 말은 없었잖아.”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이제 알았다.”

그렇다는데  따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으휴. 모처럼 잡은 건데.”

내 짙은 아쉬움을 느낀 걸까.
알니타크가 내 말을 거들었다.

“언니야. 알니타크는 사슴 고기가 먹고 싶어!”

아빠 다음은 언니라, 호칭이 참 여러 가지로 변하는군.
나는 파르판과 라이오라에게 물었다.

“한 번 정도는 먹어보지 않을래? 내가 잡아  정성과 노고를 생각해서 말이야.”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라이오라는 어떨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먹지 못할 것도 없죠.”

헛된 노력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사슴 고기는 어떤 맛이 날까?
기대가 된다.

나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도축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쌍의 시선이 참 부담스러웠다.

“구경났어?”

“편리하다 싶어서.”

“마법을 도축 용도로 쓰는 마법사는 처음 봐서요.”

“언니야를 보는  동생이 가진 의무야!”

차례대로 파르판, 라이오라, 알니타크 순의 대답이었다.
구경거리가 된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네.
도축을 마친 나는 사슴 고기를 꼬챙이에 끼운 다음, 발화 마법을 사용해 고기를 익혔다.

특출난 요리 기술이나 양념이 가미되지는 않았지만, 고기란 그저 잘 굽기만 해도 중간은 가는 법이다.
물론 소금은 필수고.

사슴 고기를 굽고 있으니 동대륙의 동물 마을이 생각났다.
그 녀석들은 주식이 뭘까?
대접한 식사 중에 고기가 있는 걸 보면 자기들도 육식은 하는 모양이던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언간 고기가 다 익었다.
나는 꼬치구이를 나눠주며 입을 열었다.

“자, 멀뚱하게 있지 말고 먹어.”

“일용한 양식, 잘 먹겠다.”

“봐줄 만은 하네요. 잘 먹겠어요.”

“언니야가 해준 요리, 맛있겠다!”

삼인삼색의 말을 들으며 나도 내가 만든 꼬치구이를 입에 넣었다.
충분히 익힌 사슴 고기는 연하고 담백하며,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네.
다른 사람들을 보니 그들도 그럭저럭 맛있게 먹는 모습이다.


 정도면 분위기도 적당히 풀었겠지.
나는 운을 띄웠다.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내 말에 파르판과 라이오라가 엇박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에 알니타크는 내 옆구리 쪽에 찰싹 엉겼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나는 포괄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그리 민감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꼬치구이를 먹던 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라이오라가 뭘 그런  묻고 있냐는  말했다.

“당신이 저희보다  알고 있지 않나요?”


그게 무슨 소리래?

“음, 난 설원제 도중에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버렸거든.”

“이상한 곳으로 날아갔다고요?”

“그건 됐고, 아무튼 설명 좀 해봐.”

파르판이 답했다.

“그렇다면 설원제 때부터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하겠군. 설원제를 진행하던 도중 흑룡의 봉인이 풀렸다.”

“아, 그거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난 다른 게 궁금한데.”


“그런가.”



내가 말을 싹둑 잘랐음에도 파르판은 크게 불쾌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도리어 라이오라 쪽이 불편하게 일그러진 건 왜일까요?

“그렇다면 바히프 26세가 서거한  알고 있나?”

바히프는 칼리오라의 성이다.
그리고 보통  세 같은 건 왕의 이름 뒤에 붙기 마련이지.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이스리드 왕국의 국왕이 죽었다고?”

“그래. 흑룡의 봉인이 풀리자마자 별세하셨다고 들었다.”

“그거 공교롭네.”

라이오라는 혀를 찼다.

“그런 자잘한 것보다 먼저 가르쳐줘야 할 게 있지 않나요?”

“이게 자잘한 거라고?”

일국의 국왕이 죽은  자잘할 정도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파르판은 내 시선을 피했고, 라이오라는 눈가를 매만졌다.

“이스리드 왕국이 반으로 갈라졌어요. 당신과 함께 다니던 칼리오스 삼 왕자가 라펠드 공작가와 손을 잡아서 발생한 일이죠. 알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그건 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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