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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61화- 돌아온 사람 (4) (62/130)



〈 62화 〉61화- 돌아온 사람 (4)

”이스리드 왕국이 반으로 갈라져?“

머리가 띵했다.
신년 타종행사에 얼큰하게 맞는 종처럼 얼얼한 기분이다.
나는 재차 물었다.

“정말로?”

“그래요.”

칼리오라와 헤어진 날짜 계산을 해보자.
카펠루스의 만행으로 설원제가 엉망이 되고 나서 아흐레가 지났을 즈음, 서연이 나를 프라시오스 후작의 영지에 강제로 이동시켰다.

‘일단 9일.’

거기서 우연찮게 백룡인 민타카를 만나  며칠간 소모했다. 대략 닷새는 있었던 거 같다.

‘그럼 14일.’

그러다가 흑룡이 민타카의 둥지를 덮치는 바람에 알니타크와 함께 동대륙으로 날아갔었지?
동대륙에서는 대략 엿새 정도를 보냈다.

‘여기까지가 20일.’

마지막으로 하늘고래인 등애를 타고 한 달 정도를 서대륙으로 이동하는 데에 썼다.

즉, 아무리 많이 쳐줘봤자 한 달하고  만에 이스리드 왕국의 분열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말이 돼?”

라이오라가 새치름하게 답했다.

“일 왕자와 삼 왕자의 대립은 예견된 수순이었어요. 흑룡의 부활로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죠.”

“아니, 그게  이상하지 않아? 흑룡이라는 공적을 두고 저들끼리 싸운다고?”

흑룡은 단신만으로도 수많은 왕국을 멸망시킨 재앙이다.
단합해도 모자랄 판국에 밥그릇을 두고 다툰다?
미련한 것도 정도껏 미련해야 하는 법이다.

일 왕자면 몰라도 칼리오라가 긁어 부스럼을 일으킬 이유가 있던가?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내 표정을  라이오라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당신이 따라다니던 삼 왕자가 흑룡의 부활과 연관되어 있다면요?”

자연스럽게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헛소리하지 마라.”

애당초 흑룡의 부활은 카펠루스의 민폐짓로 벌어진 사달이다.
감히 누구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거냐.
그녀는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

“제가 그렇게 말한  아녜요. 일 왕자 측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말이죠. 아, 이제는 바히프 27세라 칭해야 할까요.”

“바히프 27세?”

“두 달 뒤에 대관식을 치를 예정이라네요.”

“허, 이렇게 급하게 왕위를 승계한다고?”

“선왕이 후계자에 관한 유언을 남겼다나 봐요.”

글쎄,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일 왕자의 평가는 더럽게 박해서 말이야.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군.

유언 조작 정도는 쉽잖아?

이걸 말하면 왕족 모욕죄가 성립되겠지.
나는 머리를 저었다.

“됐고, 칼리오스 저하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라펠드 공작가에 몸을 의탁하고 계시겠죠. 확실한지는 저도  몰라요. 아, 맞다. F&Y 학원의 이사장이 당신을 수소문하고 있는 것도 아시고 계시나요?”

유리 아이나르가 나를?

“아니, 몰랐지.”

“꽤 애타게 찾는 모양인가 봐요.”

하긴 그동안 연락 자체가 되지를 않았으니, 걱정이 들 만도 하시겠군.
나는 금색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고장이라도 난 건가?

“그러고 보니 F&Y 학원은 어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죠. 설원제를 연 곳이 하필이면 흑룡의 봉인 장소라는 점이 악수가 됐어요. 왜 흑룡의 봉인을 푸는 걸 저지하지 못한 거냐라는 문책을 받았다던데요?”

“어떤 새끼들이 그딴 망발을 지껄여?”

“F&Y 학원 주주들이요.  때문에 이사장의 입지가 점점 줄고 있다네요.”

자기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입만 살았군.
부글부글 화가 끓었다.
그 주둥아리를 인두로 지져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꼴같잖네.”

“아세드 대공이 혼수상태인 것도 한몫했어요.”

그러게,  양반 여러모로 좋은 바람막이였으니까.
나는 모자란 머리로 상황을 정리해봤다.

설원제 이후 흑룡이 깨어났다.
 흑룡을 저지하려던 아세드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마기와 마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유리 아이나르는 종적이 묘연해진 나를 찾고 있으며, 흑룡이 깨어난 일로 인해 문책을 받아 입지가 좁아진 실정이다.

또한, 흑룡의 봉인이 풀리자마자이스리드 국왕이 서거했고, 일 왕자가 왕위를 이었다. 두  후 대관식이 있을 예정이다.

한편 칼리오라는 흑룡의 봉인이 풀린 것과 관계가 있다는 누명을 쓰게 됐고, 라펠드 공작가와 손을 잡았다.
 때문에 이스리드 왕국이 반으로 갈라졌다는 거겠지.

개판이 따로 없군.

“다른 사건은 더 없지?”

“마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거 말고는 더 없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이오라의 시선은 알니타크를 살핀 뒤, 나를 향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였나요?”

“그래. 충분히 듣고 싶은 이야기였어.”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나는 눈썹을 들며 고개를 꺾었다.

“내 이야기?”

“네. 종적이 묘연해진 당신의 이야기요.”

“재미없는 이야기를 굳이 듣고 싶어?”

“제가  이야기도 크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저는 삼 왕자의 측근이자, 아세드 대공과 유리 이사장의 제자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상당히 궁금하거든요?”

궁금하다는데 비싸게 굴 필요가 있나 싶다.
나는 그간 겪었던 고초를 털어놓으려다가 멈췄다.
생각해보니 레니 드 라이오라도 귀족이었지.

“그전에 물을 게 있어.”

“뭐죠?”

“넌 어느 편이야?”

“뭐가요?”

“왕국이 반으로 나뉘었다면 일 왕자와 삼 왕자 파벌로 나뉘었겠지. 그렇지?”

“대강은요.”

“네 가문도 어느 파벌에는 속했겠지?”

라이오라가 표독스럽게 대꾸했다.

“일 왕자 파벌이라면 죽이기라도 하시려고요?”

나는 넌더리를 내며 부정했다.

“한 번 구해준 목숨을 거둬가는 취미는 없어. 다음에 만날 때는 다르겠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빤히 나를 응시했다.

“라이오라 백작가는 중립 진영이에요.”

“중립?”

“추이를 지켜보는 거죠.”

“다른 놈들이 뭐라 하지 않나 봐?”

“저희 가문과 척지면 곤란할 걸 아니까요, 당신과는 다르게.”

뒷말이 매콤하네.
여자가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그러게 누가 좀생이처럼 사람을 괴롭히래?”

“……제 잘못을 알고 있으니까 당신의 무례함을 넘어가는 거예요.”

“관대하기도 하셔라.”

나는 라이오라와 파르판에게 동대륙에 넘어간 일만 이야기했다. 서연의 이야기나, 백룡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알아서  되는 이야기기도 했고, 말해준다 한들 허황된 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이나 줬으면 줬지, 믿지는 않을 것 같다.

동대륙에서도 아니마나 여의주의 관한 이야기는 빼버렸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다소 단출해졌지만, 그들은 흥미롭게 들었다. 하기야 하늘고래의 이야기만 해도 충분히 정신 나간 이야기긴 하다.

“대단하네요. 어제  동산 같은 게 하늘고래라는 거죠?”

“어.”

“마물의 절반을 지워버린 벼락도 그 하늘고래가 일으킨 현상이란 말인가?”

“맞아,  고래가 했지.”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둘은 전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을 보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냈다.
진솔하게 말해서 부담스럽다.

하여간 알고 싶었던 건 거의 알게 됐다.
내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다.

칼리오라의 곁으로 가느냐, 유리 아이나르의 곁으로 가느냐.
결과적으로 둘 다 가보기야 하겠지만, 어디를 우선시해야 할까.

내가 여자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되는 날이 다 오는군.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래라면 칼리오라에게 가는 게 맞겠지만, 유리 아이나르의 상태가 걸린다.
서연도 말하지 않았는가, 정신적 충격이 크다고.
그렇게 유리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려고 하면, 칼리오라가 처한 상태도 마음에 걸렸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쪽이 위중한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이네.

이렇게 끙끙거리며 앓아봤자 나오는 건 없지.
나는 고민을 포기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작은 나뭇가지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알니타크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알니타크, 왼쪽과 오른쪽 아무거나 골라줄래?”

“응? 이게 뭐야, 언니야?”

“행선지를 선택하려고.”

왼쪽 나뭇가지는 칼리오라, 오른쪽 나뭇가지는 유리다.

“잘은 모르겠지만 둘 다 고르면  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니타크가 검지로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알니타크는 왼쪽 나뭇가지를 택할래.”

“그래?”

행선지는 라펠드 공작가, 칼리오라가 머무르는 곳으로 결정이 났군.

나는 라이오라와 파르판 둘을 보며 말했다.

“둘  아무나 대답해줘. 라펠드 공작가의 영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파르판이 말했다.

“당장은 라이오라를 따라가면 될 거야.”

“라이오라가 어딜 가는데?”

“본가로 돌아간다더군.”

나는 라이오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 본가랑 라펠드 공작가의 영지랑 무슨 연관이 있냐?”

“……저의 본가는 라펠드 공작가의 영지와 인접해 있어요.”

“아하. 동선이 겹친다는 거지?”

“예, 분하지만요.”

뭐가 분한데?
라이오라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너 마차도 있다고 했지?”

“있긴한데요.”

“좀 타자.”

“제 마차를 얻어타시겠다고요?”

“라펠드 공작가는 너네 영지랑 인접해 있다며. 도중까지만 얻어타자고. 솔직히 목숨값으로 싼  아니냐?”

“……반박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나네요.”

나는 파르판을 흘긴 다음 라이오라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또, 또 왜요!”

그냥 건드렸을 뿐인데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나?
나는 라이오라의 귀에 속삭였다.

“너도 파르판이랑 같이 다니면 좋을 거 아니야?”

라이오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눈치챘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야, 파르판.”

“왜 부르지?”

나는 관자놀이를 긁으며 물었다.

“너 한가하냐?”

“한가한 편이지.”

“그럼 나랑 같이 다닐래?”

“내가?”

“네 목숨 값은 갚아야지 않겠어?”

“……그렇긴 하네.”

우리의 대화를 듣던 라이오라가 소리쳤다.

“드락! 왜! 왜 납득하고 그래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이제  거부할 수 없어졌지? 나를 데려가면 파르판이 따라 온다고.”

라이오라의 눈에 습기가 찼다.
울만큼 기분이 좋은가?

“나쁜 사람.”

알니타크가 조금 질린 기색으로 말했다.

“언니야, 사악해.”

내가 뭘.
편하게 좀 이동하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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