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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80화- 흑룡의 사도 (3) (81/130)



〈 81화 〉80화- 흑룡의 사도 (3)

알니타크는 나보다 먼저 잠에 들었다.
칼리오라와 내내 신경전을 벌이더니 피곤했던 걸까.

잠든 그녀의 뺨을 검지와 중지로 쿡쿡 찔렀다.
마시멜로우처럼 말랑하게 들어가는 알니타크의 볼살은, 이제하루라도 만지지 않는다면 혀에 바늘이 돋고 말 지경에 이르렀다.
가히 마성이라 봐도 좋다.

“내가 뭐가 좋다고 그럴까.”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과한 애정을 주는 알니타크다.
어린 동물은 처음으로 눈과 귀 그리고 촉각으로 경험하게 된 대상을 부모로 생각하고 따라다닌다던데, 용도 그런 각인효과가 있긴 있나 싶다.

“알니타크야, 나로 괜찮겠어? 나 같은 게 부모여도 말이야.”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꿈나라로 떠났으니까.

사실 답을 바란 대답도 아니었다.
알니타크가 제정신이었다면 묻지도 않았을 말이지.

새삼 실감했다.
제대로 된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봉사자들인지.

“뭔가 미안하네. 나는 너한테 해준 게 없는데.”

나는 훌륭한 부모가 되어줄 수 없다.
언젠가 알니타크에게 생사를  싸움을 종용하는 날이 올 거니까.

알니타크가 바라던 일이건, 아니건 나는 그녀에게 부탁을 할 테니까.
웃기지 않아?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지로 모냐고.

“나는 참 걱정이 돼.”

유년기는 어느 생물이든 예민한 시기다.
이렇게 내게 응석부리며 자라다간 알니타크는 자주성이 없는 파파걸, 아니 파파용으로 자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내 부탁이라면 무조건 긍정하지 않을까?

그런 게 싫다.
자식은 부모의 도구가 아니다.
자립된 하나의 개체다.

 부모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네게 그래주고 싶다.

그래서 실은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반항했으면 좋겠다.
내게 정나미가 떨어졌으면 좋겠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니 알니타크가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우후후.”하고 웃음소리를 내었다.
실로 건방지고 괘씸한 귀여움이어서 흐뭇했다.
알니타크의 얼굴을 보며 심숭샘숭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 슬슬 연락을 해볼까.
나는 서연이 준 금색 반지에 마나를 넣었다.

키잉, 반지와 마나가 공명하며 파장을 만든다.
주파수가 잡혔는지 소음이 들렸다.

알니타크가 통화소리에 깨지 않도록 내 근처에 방음벽을 쳤다.
심호흡을 충분히 한 뒤 말을 건넸다.

“여보세요.”

-…….

대답이 없다.
뭐지?

금반지를 봤다.
불빛이 들어오는 걸 보면 수신은 된  같은데.

“커흠, 아아 여보세요.”

-…….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돌부처에 말을 거는 동자승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실핏줄이 이마에 도드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 자식이 듣고 씹는 건가?

“여보세요? 서연 아니세요?”

-…….

무려 세 번이나 되물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분명 반지에는 불빛이 들어오고 있는데 말이다.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다.
오두막을 세  찾아간다는 뜻으로, 촉의 유비가 정치깡패 제갈량을 수중에 넣기 위해 보인 세 번의 립서비스……라고 말하면 화내려나?

아무튼, 나는 제갈량을 찾는 유비의 심정을 느낄  있었다.
그래도 제갈량은  번만에 넘어오기라도 했지, 이 새끼는 제갈량보다 더한 새끼였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응을 보고 만다.

나는 내가 휴대폰 볼륨을 최대로 틀어놨을  가장 민망한 대사 삼선발을준비했다.
우선 첫 번째다.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물론 지금은 새벽이고, 서연은 이미 일어나있으니 내 수신을 받은 것이겠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내가 서연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었다.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나는 앵무새로 빙의하여  대사를 왱왈왱왈거렸다.
그렇게 이십여 초를 넘게 지껄이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뒀다.

더이상 못하겠어.
토가 나오려고 그래.

내가 말하고 내가 내상을 입다니.
본래 이런 건 걸쭉한 남정네 목소리로 해야 파괴력이 증가 되는데, 여리여리한 루시아의 목소리로는 오히려 포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지독한 놈, 내심 즐기고 있는  아니야?
이렇게 입 꾹 닫고 있을 거면 애초부터 수신을 받지나 말던가.
나는 두 번째로 선발한 대사를 치기 위해 가슴팍을 부풀리며 성량을 키울 준비를 했다.

딱 “주인님, 어서…….” 까지 말이 나올 찰나였다.
서연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정신이 나간 건가?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나의 계획이 성공적임을 증명하는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한껏 빈정거렸다.

“그러게 왜 말을 씹냐고.”

-전투중이었다, 지금은 끝났지만.

“……어? 누구랑 싸웠는데?”

-흑룡의 사도.

나만 조뺑이치는 줄 알았는데, 서연도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었구나.
절로 숙연함이 들었다.

“…아, 거 죄송함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네 덕분에 놓쳤다.

“……더 죄송함다.”

서연은 냉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책임이라 볼 수 있겠지.

“……뭐라 할 말이 없슴다.”

-이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상을 받도록 하겠다.

“……선처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생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퉁명스러운 대답에 내 몸이 덜덜 떨렸다.
무슨 보상을 받으려고 그러시는 거지.
그가 건너편에서 짙은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용건이나 말해라.

아, 맞다.
근황 보고를 하려고 했었지.

“대화나 하려고 불렀어.”

-쓸데없는일이었군. 끊는다.

“아, 아 끊지 마. 끊지 마! 진짜!”

사정사정해서 겨우 붙들어놨다.
 주제에 비싸게 구는군.
나는 간신히 서두를 뗄 수 있었다.

“칼리오라랑 만났어.”

-잘됐군.

“그리고 라스칼이랑도 만났고.”

-라스칼?

“왜, 저번에 네가 나한테 설명해준 흰 늑대 있잖아.”

-아, 수호자 말인가.

녀석은 라스칼을 수호자로 부르나 보다.
나도 늑돌이라 부르고 싶군.

“어. 얘도 흑룡에게 쌓인 원망이 많은가 봐.”

-그렇겠지. 일족이 전부 죽었으니.

“흑룡이 직접 죽인 거야?”

그는 관심없다는 투로 말했다.

-나야 모르지.

“좀 알아줘라.”

-그래서 그 말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

“아, 라스칼이 흑룡의 사도를 없앤다고 아우성이야.”

-어쭙잖은 사도는 라스칼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솔직히 말해 놀랐다.
나한테 발린 늑돌이가 그렇게 강하다니.
뭐 약체화 됐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약해졌는지 몰랐으니까 말이야.

이거 일이 쉽게 풀릴  같은 예감이 드는군.
나는 기대감을 품으며 물었다.

“늑돌, 아니 라스칼이 그렇게 강해?”

-힘을 되찾은 상태라면 말이지.

그럼 그렇지.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 예감은 무슨.

“……그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힘들겠지. 이 정도의 마기로 본신의 무위를 찾으려면 족히 3년은 걸릴 거다. 의욕만 앞선다고 볼 수 있겠군.

“그럼 어떡해?”

-너무 걱정은 마라. 수호자 혼자서라면 당연히 힘들겠지만 너도 있고, 칼리오라도 있고, 백룡도 있다. 이 정도 라인업이면 사도 한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

알니타크는 그렇다 쳐도 칼리오라가 그렇게 강한지는 잘 모르겠던데.
나는 머리를 저었다.
서연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으음, 대충 이긴다는 소리지?”

-그래. 사도를 쓰러뜨리면  보고해라.

“알았어. 아 참! 뒤늦게 생각난 건데, 라스칼이 열쇠에 대해서 말했거든?”

-그게 어쨌다는 거지?

“열쇠가 있어야 흑룡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야? 너는 흑룡을 죽였으니 알 거 아니야.”

서연은 잠깐 말을 멈췄다.
말할 수 없는 부류의 질문인가?
 추측은 단순한 우려에 지나지 않았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이다. 하지만 열쇠만으로는 살해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가르쳐주지. 지금은 알아도 쓸 일이 없다.

“그래, 그렇게 해.”

그의 말대로 지금 내 수준으로는 흑룡의 발톱에 흠집을 내지도 못하리라.
으음, 아닌가?
흠집 정도는 낼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또  할 말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라펠드 공작령으로 오는 도중에 만난 사람을 떠올렸다.
굉장히 특이한 인간이었지.

“서연,  오다가 태양교 전투 수녀단의 부단장도 봤어.”

-발렌시아 말인가?

“알아?”

-알지.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인물이니까.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 의뭉스러운 여자의 진영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적이야, 아군이야?”

서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루시아. 내가 겪었던 세상은 모두가 적이었다.

“……뭐?”

-아군이라면, 그래 루시아. 너 말고는 없었지.

“…왜?”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거다.

차차 알게 될 거라는 그의 말이 오늘처럼 불길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설명을 원하나?

“당연하지.”

-적인지 아군인지, 그런 건 네 스스로 판단해서 정하라는 말이다. 나한테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나도 결국에는 실패자에 불과하니까.

“이 게임의 끝을 본 게 어떻게 실패자야? 굳이 따지면 성공한 사람이지.”

-그 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시작을 하는 놈이 뭐가 성공한 사람이냐.

그의 말에는 자조와 한탄이 섞여 있었다.
진솔히 말하자면 꼴같잖았다.

“야, 서연.”

-왜 그러지?

“주접부리지 마.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유리가 죽었고, 오른이 죽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야. 그들을 살린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군.

이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니야.”

-안다. 네가 그런 사람이란 것 쯤은.

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조금은 기운을 복돋아줬을까?

서연과 대화를 있으니 서서히 수마가 몰려왔다.
이런, 아직 말이 많은데.
나는 잠들어버렸다.



* * *

오늘 아침도 여느날과 다를  없는 여상한 아침이었다.
잠기운이 남아 있어 하품을 내뱉었다.

“하으아으아아으으.”

내가 들어도 야릇한 목소리라 조금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눈물로 뿌옇던 시야가 맑아졌다.

어쩐지 몸이 무겁다.
십중팔구 알니타크의 소행이겠지.

“알니타크, 깨어있지?”

“이히히, 들켰네.”

“아빠  위에 올라타는 건 그만둬. 무겁단 말이야.”

“알니타크는 여기가 진정이 돼! 이러고 싶어!”

“비켜야 착한 아이지.”

내 말에 알니타크의 내적갈등이 얼굴로 드러났다.
이렇게 맹랑할 수가 있나.
아이는 결단을 내렸다.

“으음, 그러면 알니타크는 나쁜 아이로도 좋아!”

좋지 않은 결단이었다.
유감이구나.

“그래? 나쁜 아이에게는 쓰다듬거나 칭찬을 해주지 않을 건데, 이걸 어떡한다?”

신발에 달라붙은 수초처럼 내 몸에 엉겨 붙던 알니타크가 정색하며 떨어졌다.
신속하고 기민한 행동이었다.

“그건 용납할 수 없어!”

“우리 알니타크는 별 걸  용납할 수 없구나.”

나는 씻기 귀찮은 관계로 몸이 청결해지는 마법을 사용했고, 알니타크도 나를 따라 사용했다.

“알니타크 목욕 안 해?”

“아빠랑 같이 하는 거 아니면 흥미 없어.”

주관이 참 뚜렷한 아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란 말이지.

“으이구, 알니타크야.”

“응, 왜 아빠?”

“아빠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

알니타크의 초점이 사라졌다.
모습은 마치 마네킹 같았다.

“알니타크야?”

고개를 올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가 무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은 없어도 되는 거예요.”

너무 작은 소리여서 나는 듣지 못했다.
그저 좋은 말은 아닐 거란 추측이 들었다.

“……알니타크야?”

내 말에 알니타크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냈다.

“아빠는, 아빠는 그런 잔인한 소리를 해!”

그러게, 너무 성급한 발언이었네.
이제 두 달짜리 애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지.

“음, 미안해.”

“아빠는 바보야!”

“어, 잠깐 어디 가려고 그래!”

알니타크는 종종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정확히는 나가려고 했다.
알니타크의 머리가 누군가의 가슴팍과 부딪혔다.

“““아.”””

 명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방문에는 칼리오라가 있었다.
그녀는 뻣뻣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거짓말이 서투르시네요. 왕녀님.
칼리오라의 굳은 얼굴은 그녀의 주장에 대한 반증과도 같았다.

나는 왜 그녀의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아침에 약해서 그런 건가?

“……일단 문은 닫고 방으로 들어와요. 설명할게.”

“아, 아니. 나는 루시아가 기혼녀라 해도 괜찮은 걸. 이만한 딸이 있으려면 도대체 언제, ……그 그걸 한 거야?”

미치고 팔짝 뛰겠다.

“오해야.”

오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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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에드리스 교수[25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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