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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화 〉82화- 흑룡의 사도 (5) (83/130)



〈 83화 〉82화- 흑룡의 사도 (5)

* * *

나딘 마을에서 출발한 일행(라펠드 공작가의 기사들 포함)은 눈으로 뒤덮인 벌판을 지나, ‘가시나무 숲’에 도착했다.

‘가시나무 숲’이란 마물 군락지가 형성된 숲의 이름으로, 그 뾰족한 이름에 걸맞게 크고 날카로운 침엽수가 무척 많았다.
수목의 밀도도 빽빽한 편이어서, 숲의 내부는 낮인데도 적잖이 어두컴컴했다.
밤이 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겠다 싶다.

선두에 선 척후병을 뒤따라 이동중인 우리는 모두 말을 타고 있다.
……음, 모두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나?

나, 칼리오라, 알니타크.
이렇게 셋은 라스칼에 탔다.
좋은 마차를 놔두고 왜 라스칼에 탔냐고?

가는 길이 험해 마차가 상할 수도 있다며, 에드리스 교수가 마차를 대동하지 않았다.
일면으로는 이해가 가는 사항이라 그를 맹목적으로 지탄하거나, 비난하지는 못했다.
내가 마차를 물어줄  있을 만큼 자본이 넘치지는 않으니까.

여하간, 그런 이유로 마을에서  몇 필을 구해 쾌적한 이동을 도모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라스칼이 성질을 부려 무산됐다.
파르판이나 에드리스가 말을 타는 건 괜찮은데, 나나 알니타크, 칼리오라가 타려고만 하면 그르릉 울음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아주 불한당이 따로 없다.

뾰족한 수가 없는관계로 우리 셋은 라스칼의 등에 탔다.
녀석은 이 사실이 사뭇 만족스러운지 컹컹 울었다.
태우지 못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거대한 늑대 라스칼은 사람 세 명을 태우고 달려도 끄덕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알니타크는 엄밀히 말하면 용이긴 하다만.

“에취.”

코를 훌쩍였다.
분명 내 코는 루돌프마냥 새빨개져 있겠지.

기온이 어떤가 싶어 보온 마법을 몇 분간 풀고 있었다.
짧은 시간임에도 작살나게 추웠다.
쌩쌩 부는 바람은 겨울이 아직 건재함을 알리는 듯했다.

이런 혹한에 어떻게 철제 갑옷을 입고 다닐 생각을 하지?
칼리오라와 엔펠, 그리고 라펠드 공작가의 기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칼리오스 저하, 날씨 진짜 춥죠?”

“확실히 춥긴 춥군.”

얼핏 흘겨  칼리오라의 입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고, 코 역시 새빨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보온 마법을 써야겠어.

주변의 기온을 적당히 조절하자 다들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기사단 분들은 내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추운 것보단 따뜻한 편이 좋은가 보다.

에드리스를 보니 그는 이미 스스로에게 보온 마법을 걸고 있었다.
남들도 좀 신경 써주지, 자기 혼자만 얌체처럼 호사를 누려?

깍쟁이 교수 같으니.
내 시선을 알아차린 그는 질 나쁜 웃음을 지었고, 나 역시 중지를 들며 미소로 화답했다.
칼리오라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아 경. 마법을 계속 쓰면 피곤하지 않은가?”

빠져나가는 마나보다 차오르는 마나가  많아서 그런지, 보온 마법을 유지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무심코 칼리오라가  사파이어 목걸이를 만졌다.
이게 은근히 효자란 말이지.

“저하가 준 이 목걸이 덕분에 전혀 피곤하지 않네요.”

“다행이군.”

칼리오라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사선으로 숙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알니타크가 ‘나 불만스러워.’라고 주장하듯 뺨에 공기를 넣었다.

“언니야, 그 목걸이 뭐야?”

“칼리오스 저하에게 받은 선물이야.”

“나도 언니야한테 선물을 주고 싶어.”

아서라, 네가  줄  있다고 그래.
나는 어버이날에 부모님들이 흔히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알니타크야. 네가 건강하게 자라는 게 나한테는 무엇보다 큰 선물이야.”

선물 거부에 있어 실로 무적치트 같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알니타크는 뭐라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아버지, 어머니 선물 필요한 거 있어요? 라고 물으면 높은 확률로 저 대사가 나왔거든.

내가 저때 뭐랬지?
‘좀 가지고 싶은  이야기하시라고요.’라고 성을 냈던가?
그래, 그랬던  같네.

물론, 어디까지나 청소년기 한정이다.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양심의 가책이 옅어지신 건지 이것저것 요구해오시더라고.
나는 홍삼 세트가 그렇게 비싼지 그때 처음 알았다.

씁쓸한 감정을 만끽하고 있으니, 알니타크가 도끼눈을 뜨며 나를 부라렸다.
뭐가 문제니.

누가 용 아니랄까 봐, 눈빛 참 살벌하다.
나의 딸은 칼리오라를 삿대질하며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반박했다.

“왜 이 오빠야는 되고 알니타크는 안 되는 거야?”

“알니타크야, 그건 말이지…….”

“정지! 전방에 마물 열다섯 마리 발견!”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알니타크를 달래려고 했으나, 앞장서서 가던 척후병이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내 말이 끊겼다.
타이밍 한  기가 막히네.

마물들은 내가 저번에 봤던 역겨운 어패류들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있었다고 말하는 건, 그들의 생김새에  번 더 변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무슨 변혁이냐?
기사들이 저마다 마상창을 꼬나쥐고 돌격해 그들의 피육을 풍선처럼 터트리는, 다소 자극이 강한 변혁이라 설명하겠다.

북이 찢어지는 소리가 이럴까.
얼마 걸리지 않아 모든 마물이 정리됐다.
마물의 군락지가 형성된 지역답게 숲의 초입 부분부터 마물이 나타났지만, 마물 토벌에 이골이 난 기사들이어서 내가 직접 나설 것도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 마물이  나타나고, 기사들이 이를 격파하는 일에 반복이었다.
기사들의 차림은 금세 더러워졌기에 나는 간간히 청결해지는 마법을 써줬다.
그들은 내게 눈을 빛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연한 일에 감사를 받으니 낯이 간지러운데.
여기 마법사들은 이런 거 안 해주나?

의구심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칼리오라의 말에 의하면 실력이 높은 마법사일수록 괴팍하고,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편이어서 남 좋은 일은 지양하는 습관이 있단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
쌍둥이들이랑 눈싸움하던 때였지, 아마?

갑자기 쌍둥이들이 보고 싶어지네.
잘 지내고 있겠지?

아무튼 상당히 부정적인 칼리오라의 발언에 에드리스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으나 부인은 하지 않았다.
사실이긴 한가 보다.

괴팍한 완드 받침대 놈들.
이게 뭐가 힘들다고.

어쨌든, 라펠드 공작가의 기사들의 연계는 대단했다.
치어박고, 찌르고, 몰아넣는 그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물흐르듯 연계됐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을 거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파르판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준이 높군.”

그러게, 적당히 잘 싸우네.
……잘 싸우기는 하는데, 뭔가엄청 강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그간 만나온 녀석들이 워낙 인외의존재라서 그런가 싶다.
별안간 알니타크가 나를 불렀다.

“언니야.”

“왜?”

“알니타크는 언니가 뭐라고 해도 선물을 줄 거야.”

네 재정상태를 훤히 아는데  주려고 그러니.
너무 거절해도 아이의 빈정이 상하겠지.
나는 그녀의 열성적인 태도에 져주기로 했다.

“편한대로 해.”

“응, 그럴게!”

기운차게 답하는 알니타크였다.

-어린 백룡께서는 네놈을 어여쁘게 여기시는군.

예고도 없이 날아온 라스칼의 사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뉘앙스가 가득했다.

“뭐, 꼽냐?”

칼리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말했는가, 루시아 경?”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쳤다.

“아, 아무것도 아녜요.”

늑돌이랑 대화는 위험하다.
자칫하면 정신병자처럼 보이니까.
나는 늑대의 등을 퍽퍽 때렸다.

“전방에 마물 여섯.”

“전방에 마물 일곱.”

“전방에 마물 열.”

척후병이 발견하는 족족 기사들이 마물을 처리해 나갔다.
 모습은 마치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처럼 거침이 없었다.
괜히 중세시대의 탱크가 아니구나.

내가  해줄 게 없네.
알아서 척척 죽이는데 거들어주기도 애매하지.

어째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인 걸.
몸이 편하다 보니 여러 잡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흑룡의 사도가 있는 게 맞긴 한 건가?
녀석을 만나면 해치워야겠지?

해치운 다음에는 라펠드 공작가를 방문해야 하나?
가능하면 유리 이모에게 바로 가고 싶은데.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니, 주변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기이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칼리오라도, 알니타크도, 파르판도, 에드리스도, 라스칼도, 기사들도 모두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사박, 사박.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났다.

나 이런 거 면역력이 없다.
왜 자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실까 몰라.

정면을 보니 녹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고개를 숙인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에게?

당연히 나한테 오고 있지.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다가올 뿐이었다.
그런 무신경한 행동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상상력은 공포를 가증시킨다고.

“누구시냐니까.”

그녀의 차림새는 반투명한 네글리제 달랑 하나로 육감적이고, 유려한 몸의 굴곡이 아주  드러났다.
신발은 없는지 맨발이었다.
거리는 이제 5m 남짓이다.

“더 다가오면 마법 쏠 겁니다?”

우뚝.
여자가 멈췄다.

그리고 목을 비틀었다.
발치까지 닿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흩날렸다.

목은 점점 기이한 각도로 꺾여갔다.
쭈뼛, 등줄기에 소름이 내달렸다.
이거 B급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아니냐.

“가시나무 숲에는 마녀가 살아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몸을 위축시키는 목소리다.
그래도 대화는 통하는 녀석인가?
아주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마녀?”

내가 되묻자 여인은 천박하게 웃었다.

“예쁜 아이를 잡아먹는 마녀가 살지요.”

나는 인상을 썼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이 달갑지 않아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네가 그 마녀냐?”

그러자 그녀의 혼탁한 검녹빛 눈동자가 빛을 냈다.

“어느 날 마녀는 부탁을 받았어요.”

아니 대놓고 무시하네.
나는 다시금 질문했다.

“……네가 그 마녀냐니까?”

“세상을 불살라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여인의 녹색 홍채에 색이 서서히 빠졌다.
눈만 한정된 게 아니다.

그녀의 녹색 모발도 색을 잃어갔다.
마치 타고 남은 재처럼.

“뭐야?”

이윽고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완전한 회색으로 변했다.
이 이질적인 현상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화르륵.
여자의 몸에 커다란 홍염이 붙었다.

주변에 쌓여 있던 눈이 한순간에 녹았다.
아릿한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내 주변에 얼음벽을 만들어 열기의 확산을 막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저는 결계의 매듭을 짓는 자.”

여자의 목소리가 공명하듯 울렸다.

“스스로 연소하는 자.”

나는 그녀의 소개를 마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충분히 수상한 여자다.

어쩌면 흑룡의 사도일지도 모른다.
선수필승이지.

“얼어붙어라.”

여자의 다리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산채로 얼려지리라.
하나,  냉기를 불허하듯 불꽃이 일었다.

선연한 화염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흑룡의 사도, 키아데아가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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