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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화 〉97화- 파프니르 판 아세드 (2) (98/130)



〈 98화 〉97화- 파프니르 판 아세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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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서 결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듯이 빛나는 저 완고한 안광을 보라.
역전의 용사도 이보다 위세가 높지는 않으리라.

“금방 갔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칼리오라가 온화하면서도 날이 선 미소를 지었다.

“루시, 이제 기다리는  지긋지긋해.”

“아니, 그래도 그…….”

내가 뒷말을 흐리자, 알니타크가 칼리오라를 두둔했다.

“칼리오라 언니의 말이 맞아. 아빠를 기다리는  너무 힘들단 말이야!”

“알니타크는 나랑 떨어진 적이 거의 없지 않니?”

그녀는 머리를 붕붕 저었다.
흰 머리카락이 정신사납게 휘날렸다.

“그 조금도 알니타크는 참을 수 없어!”

“……내 딸은 참을성을 기르는  좋겠구나.”

“싫어!”

오잉?
알니타크의 상태가 이상하다.
알니타크는 미운 네 살의 알니타크로 진화했다!

미운 네 살의 알니타크가 생떼를 부렸다!
효과는 엄청났다!

나한테 이러기야, 알니타크?
내가  어떻게 가르쳤는데!
크게 가르친 게 없긴 하지만.

“그러지 말고 하나뿐인 딸의 의견을 수렴해주는 건 어떠니, 루시?”

“맞아, 맞아!”

칼리오라와 알니타크,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정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이 참 자연스러워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죽이  맞을 수가 있나?
수렴이고 자시고, 애당초 나한테 결정권이 없거든요?

나는 하는 수 없이 유리를 보았다.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저 이모님. 얘네들도 같이 가도 되나요?”

유리는 이 모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여유로운 어른의 자세가 돋보이는군.

그녀는 칼리오라와알니타크를 유심히 봤다.
유리의 시선에 둘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이윽고 유리가 키득키득 웃는다.

“어차피 깽판을 치러 가는 길인 게야. 동행자는 많을수록 좋노라.”

그녀의 언사는 적잖이 께름칙했다.

“………이모님, 뭘 치러 간다고요?”

“깽판인 게야, 깽판. 거들먹거리는 원로들의 콧대를 분질러줄 기회이니라.”

나는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깽판을 치러 가는 것도 모자라 콧대를 분질러?

……한판 뜨러 가는 건가.
내가 얼을 놓고 있을 때, 칼리오라와 알니타크는 동행을 허락해준 유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리이사장님.”

“감사해요. 유리 언니야.”

유리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는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 놀리시는 거죠.”

“이런. 들켰느냐?”

“그렇게희희낙락하시는데, 들키지 않으시리라생각하신 건가요?”

“참 비통하고 애석한 일이노라.”

연극하지 마세요, 이모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기 전에 그 편지에 뭐라 적혀 있는지 말씀이나 해주세요. 저도  알고 싶거든요.”

유리는 윙크를 하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비밀이노라.”

깜찍하긴 모습이긴 하지만, 나는 그런 애교로 넘어갈 만큼 무른 사람이 아니었다.

“안 알려주실 거예요?”

“루시아는 표정 관리를 잘하지 못하니, 나중에 가르쳐주는 게야.”

“……그래요.”

지당한 말이라 반론의 여지가 없네.
내가 고개를 푹 숙이자 유리가 옳다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칼리오라와 알니타크는 이 모습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너희도 내 머리에 관심 있어?”

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혀를 내밀었다.

“만지게 해줄 생각 없네요.”

““아.””

 말에 둘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부러우면 너희도 내 이모해.
이를 지켜보던 유리는 내 머리에서 손을 떼고 회색으로 일렁이는 전이문을 생성했다.

“슬슬 가자꾸나. 이 문으로 들어가면 되느니라.”

“저번 텔레포트와는 이동 방식이 다르네요?”

저번엔 한순간에 풍경이 변했는데 말이지.
유리는 머리끈 하나로 포니테일을 만들며 말했다.

“마기가 급작스레 늘어난 탓에 공간 좌표가 여럿 뒤틀린 게야.  때문에 뒤틀린 공간 좌표를 고정해줄 매개체가 필요하노라.”

아하.
나는 전이문을 손가락질했다.

“이모님이 만든 이 전이문이 이쪽과 저쪽의 공간 좌표를 고정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말이죠?”

“이해가 빠르구나, 요점만 말하면 그렇게 되느니라.”

유리와 나의 대화에 칼리오라는 박식한 사람을 보듯 나를 보았다.
내가 마법물 좀 먹은 사람이야.

비록 출처는 루시아의 지식이긴 하다만.
여하튼, 우리는 전이문으로 몸을 움직였다.

* * *

요하네인 판 아세드.
그는 대공가의 방계 혈족으로 파프니르의 사촌 동생이다.

요하네인은 고된 업무에 지쳤던 심신을 달래기 위해 연차를 내고 한적한 시골 부지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통의 서신을 받았는데, 파프니르 판 아세드 대공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내용을 담은 서신이었다.
그는 충격에 빠졌다.

자연재해도 피해 가는 사람이라 생각한 그가 어째서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단 말인가.
상세한 내막을 듣고 납득할  있었다.
그 전설적인 흑룡과 싸운 것이었다.

‘형님답다면 형님답습니다.’

파프니르의 부재로 원로들은 부리나케 긴급소집을 열었고,  회의에서 바로 대공대리, 섭정을 선출했다.
대공 대리는 요하네인 판 아세드, 자신이 됐다.
그는 자기가 선출된 이유를 냉정히 따져봤다.

‘역시 파벌이 없는 점이 유효한 건가.’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탐낼 자리인 만큼 차라리 아무개에게 줘서 분란을 종식한 다음 차차 결정하자. 그런판단이 아니었을까?

음흉한 늙은이들 같으니.
파프니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킬 때는 다들 야욕을 드러내지 않은 주제에, 그가 중태에 빠지자마자 단물에 벌레가 꼬이듯 기회를 노리는군.
그 일련의 행태는 신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할 정도로 역겨웠다.

크게 관심이 없는 자리지만 받아들였다.
파프니르 형님이 이룬 것들을 그들이 찢어먹게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요하네인은 파프니르라는 남자를 동경했다.
그래서 그의 중태가 안타까웠다.
여기서 저물 별은 분명 아닌데.

“요하네인 섭정님.”

그는 수행원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유리 아이나르 이사장이 방문하셨습니다.”

“또 형님의 병문안인가?”

요하네인은 유리 아이나르라는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여자다.

“아닙니다. 이사장은 섭정 각하와의 대면을요청했습니다.”

“나를 말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가보도록 하지.”

응접실로 향하니, 유리 아이나르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온 게냐. 대공 대리라는 놈이 게으름을 피우는구나.”

요하네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할 말은 그때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더 남은 말이 있습니까?”

“있으니 찾아온  아니겠느냐.”

유리는 편지를 허공에 띄워서 요하네인에게 전했다.

“이 편지는?”

“일단 읽어보고 말하는 게 어떠냐.”

요하네인은 편지를 읽었고, 이내 이 허무맹랑한 편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파프니르 형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즉흥적인 짓을 벌이신 겁니까.
그는 부들부들 손을 떨며 이를 악물었다.

“이 편지지가 사실입니까.”

“그럼 거짓이겠느냐.”

그제야 유리 곁에 있는 은발 청안의 소녀에게 시선이 갔다.
요하네인은 이 소녀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노려봤다.
정작 소녀, 루시아는 무구한 눈동자로 요하네인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탁!
손바닥으로 탁자를 시원하게 친 유리는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요하네인. 소녀가 요구하는  하나다.”

“뭡니까.”

“원로 영감탱이들을 죄다 소집하거라.”

요하네인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판을 벌이자, 이겁니까?”

유리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소녀가 그간 꼽을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말이다. 한바탕 뒤집어엎어야 속이 시원하겠노라.”

“뭘 어쩌실 작정입니까.”

“적법한 후계자를 두고, 저들끼리 섭정을 세운다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 요하네인은 루시아를 흘겼다.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이 어벙한 낯짝이다.
마치 자기가 아세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모르는것만 같다.

“정작 그 적법한 후계자는 자신의 앞에 닥친 일도 모르는 거 같은데 말입니다.”

유리 아이나르라는 마녀는 염세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불만이 있다면 파프니르에게 청원을 하는 게야.”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뭐라 하소연을 하라는 말인가.
요하네인은심호흡을 한 뒤,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게 위조된 문서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검증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 보거라. 당장 그 편지에 찍힌 날인만 확인하더라도 라펠드 공작가의 공문임을 알 수 있을 테지.”

요하네인은  말에 도장 자국을 살폈다.
확실히 라펠드 공작가의 인감이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를 잠자코 듣던 루시아가 손을 들었다.

“……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요하네인, 편지좀 줘 보거라.”

그는 신경질적으로 편지를 내팽겨쳤고, 유리는 대기를 조작해  편지를 루시아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녀석, 성질머리하고는,  루시아야. 읽어 보거라. 그토록 궁금해하던 내용이 아니더냐.”

루시아는 그 편지의 내용을 드디어 읽을 수 있게 됐다.
이윽고 그녀의 안색은 완전히 하얗게 질려버렸다.
마치 표백제에 담긴 빨랫감처럼.

팔락.
루시아 손에서 벗어난 편지는 탁자에 툭 떨어졌다.
알니타크와 칼리오라는 참지 못할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충동을 느꼈다.

‘‘무슨 내용이길래?’’

알니타크와 칼리오라는 탁자에 떨어진 편지를 집고 유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 둘의 모습이 썩 귀여웠는지, 유리는 만면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읽어도 되느니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둘은 편지를 읽었고, 마지막 문단에서 눈길을 멈췄다.

-………하여 정식 제자 ‘루시아’는 파프니르 반 아세드 대공의 정식 후계자임을 알리며, 이에 불복할 시 철의 대련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라펠드 공작이 이를공증한다.

칼리오라의 안색도 루시아와 비슷할 정도로 파랗게 질렸다.
알니타크가 물었다.

“정식 후계자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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