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를 몰랐다. 주제 파악을 못했다. 한갓 가난한 가정교사, 그것도 남장을 한. 그런 주제에 이경은 완벽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여름 별장의 마법 같은 초록색 시간 속에서. 도망치듯 별장을 뛰쳐나와 묵은 호텔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강렬한 매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보낸 황홀한 하룻밤. 잊지 못할 밤이 끝난 뒤, 이경은 그만 겁에 질려 또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운명처럼 이경 앞에 다시 등장했다. 몇 년 뒤, 뜻밖에도 그녀의 상사가 되어. 날카로운 눈빛, 냉정한 말투. 그는 나를 잊은 걸까, 그저 무시하는 걸까. *** “사랑해. 정이훈, 아니 정이경.” 준혁이 속삭였다. 순간 이경의 눈이 커지며 물 먹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알고 있었어?’ ‘정이훈’이 여자였다는 것을? 절벽 앞에 맨발로 선 기분이 들었다. 저 아래 가시 같은 고통이 갈 곳 없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경은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를 사랑하니까. 봄땅 장편 로맨스 소설 <그의 비밀, 그녀의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