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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빵에서 재벌까지-29화 (29/452)

깜빵에서 재벌까지! 29화

“사다리요.”

지금부터는 직설 화법이다.

물론 오한철 부회장이 25년 전 아버지의 사고사를 숨긴 장본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와 어떻게든 손을 잡고 이 교도소를 탈출해야 한다.

앞으로 나가기 위한 임시 동맹인 셈이다.

이대로 교도소에 있으면 계속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

“너, 사법시험에 합격했었다며?”

오한철 부회장은 아침에 교도소 소장을 만났다.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박동수 아저씨가 다른 호실로 이감이 됐다.

하여튼 재벌이 이래서 좋은 거다.

언제든지 교도소 소장을 만날 수 있으니까.

아마도 교도소장과 모닝커피를 한잔했으리라.

‘그때 아마!’

나에 관해서 확인한 것 같다.

교도소 밖에서 나라는 존재를 알지는 못했을 테니까.

‘우리 아버지의 일도 다 잊었을 거고.’

원래 피해자는 평생 못 잊는 일도 가해자는 금방 잊어버린다.

아무튼, 이것을 통해서 오한철 부회장이 내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곧 내가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리라.

그럴수록 내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나에 관해서 다 들었을까?’

물론 교도소 소장에게 오한철 부회장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내가 어떤 사건으로 이 교도소에 왔는지와 또 내가 얼마나 이 교도소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정도이리라.

내가 이런저런 물건을 암암리에 유통하고 있다는 것도 들을 순 있겠지만 그거야 이미 오한철 부회장도 알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사법시험을 딱 21살에 합격할 정도의 천재라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예, 그랬습니다. 뭐 합격은 했는데 자격정지 10년이네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10년이 지나더라도 대한민국 변호사 협회가 나를 변호사로 인정해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사법 연수도 받지 못했고.

지금은 범죄자이니까.

하지만 내가 만약 특별사면을 통해서 모든 범죄가 사면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특별사면은 단순히 징역이 남은 범죄자를 빨리 풀어주는 게 아니라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유죄선고가 무효가 된다는 뜻은?

당연히 무죄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여기 있지?”

오한철 부회장의 물음에 나는 살짝 피식 웃었다.

“모닝커피 시간이 짧았나 보네요.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저에 관해서 물으셨어야죠. 저를 도구로 쓸 생각을 조금이라고 하셨다면 말이죠.”

“뭐라고?”

내 말에 오한철 부회장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자신의 의중을 들켰다는 그런 표정이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씩 웃었다.

“이왕 물어보실 거면 다 물어보셨어야죠.”

이런 내 말에 오한철 부회장이 미간의 주름을 곱게 피고는 슬쩍 웃었다.

“듣기는 했다. 사고가 있었다고 하더구나.”

오한철 부회장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고 말했다.

‘사고?’

사고라는 단어까지 골라 쓴 것으로 볼 때.

그가 이제는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려고 신경을 쓴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그러셨어요? 그러고 보니 GK 그룹은 저랑 애증의 관계네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끝냈으니 그 일에 관해서 숨길 필요는 없으리라.

이런 내 말에 순간 오한철 부회장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원수가 아니고?”

이 말의 뜻은 내가 자신의 6촌쯤 되는 오경철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까지 확인을 끝냈다는 의미이리라.

나는 슬쩍 어깨를 들어올렸다.

"앞으로 삼촌이랑 같이 가려고요. 그래서 애증이죠."

이런 내 말에 오한철 부회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결론을 내자.”

오한철 부회장이 내게 말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행동이란 없다.

재벌 3세가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1인실을 마다하고 일반실에 온 이유.

나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말라죽기 싫으셨던 거죠?”

내 물음에 나를 빤히 보는 오한철 부회장이다.

“그래서?”

“삼촌은, 삼촌이 이곳에 오래 있게 될 것을 짐작하셨겠죠?”

“…….”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오한철 부회장이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도구가 필요하시잖아요.”

“뭐?”

“그게 아니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아버지에게 신장까지 바쳤는데. 그냥 아들 된 도리로 준 거라면 진정한 효자시네요.”

그 순간.

오한철 부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

실수다.

이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극비 사항인데.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너…… 너 대체 누구야?”

오한철 부회장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살짝 스며들어 있었다.

눈빛도 그랬다.

오한철 부회장의 동공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이지 최악의 실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색할 수는 없다.

“최태성이라니까요.”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새끼가 정말!”

오한철 부회장이 인상을 한가득 찌푸리며 소리쳤다.

눈빛이 야수처럼 변했다.

‘저런 눈빛은?’

진짜 조폭들이나 주먹 쓰는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눈빛과 흡사했다.

난 이게 그저 참 신기할 뿐이다.

동시에 오한철 부회장의 과거사가 문득 궁금해졌다.

“네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오한철 부회장이 한껏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매서운 눈빛에 시선을 돌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오한철 부회장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복수하실 생각이시잖아요. 저도 복수를 꿈꾸거든요. 그러니 GK 그룹에 관해서는 뭐든 알아내려고 했죠. 그래서 알게 된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오한철 부회장은 내 마음속에 GK 그룹에 대한 복수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이렇게 밝혀서 나중에 문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단 말이지?”

그제야 오한철 부회장의 눈빛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어떻게 내가 그런 정보를 캐서 알아냈는지가 궁금할 테지.

“예. 저는 복수하고 싶거든요.”

이런 내 말에 오한철 부회장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내게 물었다.

“그걸 나한테 말해도 될까? 나도 GK 사람인데?”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작게 피식 웃었다.

“아니죠. 이젠 GK에서 버려진 혼외자죠.”

내 말에 또 한 번 오한철 부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너, 참 많이 알고 있군.”

그 말은 마치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작게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삼촌하고 저는 복수의 대상이 같네요.”

내 말에 오한철 부회장이 나를 바라보다가 따라 피식 웃었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저랑 같이 손잡고 복수하실래요?”

오한철 부회장에게 복수의 마음이 없고 또 GK 그룹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없다면 특실로 갔을 거다.

그냥 오구광 회장이 주는 대로 받아먹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테니까.

사실 그렇게만 해도 오한철 부회장은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교도소 일반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어깨를 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오한철 부회장이 자신의 부친인 오구광 회장과 그룹 경영권을 놓고 지분 싸움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한테?”

오한철 부회장은 복수할 생각이 아니라는 가식적인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일절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렸는데 아들은 효자로 남으시게요? 그러시겠다면 할 수 없고요.”

나는 지금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만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자극적으로 말을 해야 내가 얻을 것을 더 빨리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으음······!”

바로 신음을 토해내는 오한철 부회장이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빤히 바라봤다.

‘독방을 거부한 이유가 있겠지.’

어젯밤은 오한철 부회장에게도 잠 못 드는 밤이었겠지만.

나도 오한철 부회장이 특실이나 다름없는 독방을 마다하고 일반실에 온 이유를 상상하느라 잠을 못 잤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나는 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말라죽기 싫어서.’

결국, 복수와 함께 화려한 복귀.

오한철 부회장은 분명 GK 그룹을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교도소에 들어온 게 틀림없다.

그러니 내게 오한철 부회장은 사다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GK 그룹에 대한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건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카드가 되리라.

게다가 여기에 오한철 부회장이 알고 있는 내부 정보까지 합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의 문제일 뿐.

불가능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그나저나 누구를 지켜주려고 총대를 메셨을까? 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의중을 찔러보았다.

이런 내 물음에 오한철 부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는 정말 별난 놈이구나.”

오한철 부회장이 날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오한철 부회장은 내가 꼭 필요한 놈이라고 확신하는 눈빛이다.

나는 그런 오한철 부회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 놈 한번 써보실래요?”

“…….”

“아마 이 교도소 안에 저만한 놈도 없을 겁니다.”

나는 오한철 부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나는 이곳에 들어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쓸 만한 도구들이 가장 많은 곳이 여기, 교도소라는 것을 말이다.

좀도둑부터 시작해서 전문적인 경제사범까지.

게다가 의사부터 전직 경찰관 출신까지 모든 인간 군상들이 이 교도소 안에 다 있다.

그리고 장 교위의 말대로 배운 놈이, 또 똑똑한 놈이 더 많은 죄를 짓는다.

하나 같이 사연도 많고 탈도 많고, 무엇보다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 다 여기에 있다 이 말이다.

“네가 그럴 깜냥이 되냐?”

오한철 부회장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 필요하면 전 준비가 됐습니다. 숙제를 주세요.”

이렇게 답하곤 오한철 부회장의 눈빛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전히 야수의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예 복수할 생각조차 없었다면 저런 눈빛이 나올 수 없지.

“네가 이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오한철 부회장의 물음에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무엇이든.”

내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오한철 부회장은 도리어 살짝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뭐? 뭐든?”

말까지 더듬는 오한철 부회장이다.

하긴. 이런 깜빵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나처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예.”

나는 바로 대답했고.

오한철 부회장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러던 그때.

“1756번 접견, 오상철 씨 접견.”

교도관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말했다.

그런데 오상철이라는 이름을 들은 그 순간.

오한철 부회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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